'적과의 동침'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1990년대 초 영화였다. 주인공이 결벽증에다 의처증까지 지닌 남편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바다에 나가 실종돼 죽은 것으로 꾸미고 새로 운 생활을 하는 영화였다. 내내 흥미진진했다. 같은 제목으로 재작년에 나온 한국영화도 있었다. 김주혁과 장려원 주연의 영화였는데, 한국전쟁 당시 시대상황을 잘 묘사해 재미를 주었다. '웰컴 투 동막골'을 떠올리게 했다. 내용은 다르지만, 영화의 제목처럼 '적과의 동침'이 일상화된 곳이 있다. 새들이 새의 적인 사람과 공존하는 것이다. 무안군 무안읍 용월리 상동마을, 이른바 '학마을'이다.
새들에게 가장 큰 적은 무엇일까. 약육강식의 세계인 만큼 생태계의 강자일 수 있다. 환경오염도 적일 수 있다. 또 있다. 사람이다. 환경오염도 결국은 사람의 행위인 탓이다. 하여, 새들이 살기에 가장 좋은 조건은 사람이 없는 곳이다. 무인도나 인적이 드문 섬에 새들이 많이 사는 건 이런 연유다.
 | 백로와 왜가리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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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상동마을은 다르다. 사람이 사는 마을의 한복판에 새들의 집단 서식지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 앞 용연저수지와 저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청용산이 백로와 왜가리들의 집단 서식지다. 사람들이 사는 마을과 바짝 붙어서 새와 사람이 함께 살고 있다. 새들에게 사람은 위협적인 존재이지만, 이곳에 사는 백로와 왜가리 떼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그만큼 마을사람들이 잘 보살펴 준다. 그래서 서식지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의 새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새들에 해가 될 만한 일은 하지 않는다. 주민들이 감시자가 되어 새에 해를 끼칠 만한 사람의 접근도 막고 있다. 주민들은 차량의 경음기를 누르지 않는 것은 물론 목소리 높여 싸우지도 않는다. 주민들이 백로와 왜가리에 애착을 갖고 이것들의 서식지를 마을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 청용산 새 서식지가 바라다 보이는 용연저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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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부녀회에서 담그는 전통 장류의 상표도 '학동네 전통장'이다. 정인숙 부녀회장은 "동네 주민들이 지은 콩을 원료로 해서 전통의 방법 그대로 장을 담고 있다"면서 "판매를 하면서 학동네라는 이미지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했다.
새들이 많으면 주민 피해가 상당한 건 당연한 일. 새떼의 울음소리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마치 수백 마리의 개구리가 한꺼번에 우는 것 같다. 배설물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크게 불편해 하거나 개의치 않는다. 이미 새와 함께하는 생활이 일상이 돼 있다.
 | 연꽃 가득한 용연저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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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동마을의 왜가리와 백로는 해마다 춘분을 전후해 찾아든다. 여기서 알을 낳고 번식을 하다가 10월께 동남아로 날아간다. 주민들은 이 새들이 마을의 액운을 없애주고 부흥시켜 준다고 믿고 있다.
이곳 상동마을이 이른바 '학마을'이 된 것은 1960년대 중반. 8ㆍ15해방을 전후해 날아들기 시작한 백로와 왜가리는 한국전쟁 이후 뜸했다. 그러다가 1960년대 중반 백로 2000여 마리와 왜가리 500여 마리 그리고 해오라기 수십 마리가 찾아들면서 서식지를 이뤘다. 지금도 청용산과 용연저수지를 중심으로 수천 마리가 살고 있다.
 | 새 서식지 관찰용 망원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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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용산이 온통 새들로 덮여 하얀 산으로 변했다. 눈이 내린 것 같은 풍경이다. 멀리서 보면 흰 빛깔로 반짝거린다. 가까이 가서야 비로소 새의 무리라는 걸 알 수 있다. 산이 새들의 땅이고 천국이다.
법적으로도 이곳은 백로와 왜가리들의 땅이다. 이 서식지가 1968년 천연기념물(제211호)로 지정됐다. 백로와 왜가리의 땅이라는 걸 공인받은 셈이다.
 | 회산 백련지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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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백로와 왜가리를 탐조하기엔 지금이 적기다. 새들의 번식기인데다 개체수도 가장 많아서다. 하루 중 먹이를 찾으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오전 10시와 오후 5시 전후가 가장 좋다. 입에 먹이를 물고 부산히 나는 새들이 지천이다. 나뭇가지에 앉아 몸을 부대끼며 사랑을 속삭이는 무리도 보인다. 이리저리 날갯짓을 하며 비행시범을 보이는 무리도 있다.
 | 몽탄면 이산리에 있는 식영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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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철새탐조는 멀리서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것도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보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이곳의 백로와 왜가리는 그럴 필요가 없다. 누구나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주민들과 친해진 덕분에 사람들이 가까이 가도 전혀 경계를 하지 않는다. 청용산 앞 용연저수지에 둥근 섬에 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수변 길과 불과 10여m 거리다.
주차장 한켠에 전망대도 있다. 대형 망원경으로 산자락에 있는 새들을 살필 수 있는 공간이다. 여기서 보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새의 깃털까지도 선명하게 보인다. 보통 망원경을 통해 보려면 500원짜리 동전 하나는 넣는 게 기본. 하지만 여기서는 그것도 필요 없다. 공짜다. 학마을의 넉넉함이다.
여행전문 시민기자ㆍ전남도 대변인실
여행 정보
 | 된장 연포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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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서해안고속국도 무안나들목으로 나가 1번국도 타고 무안읍(무안군청) 방면으로 1.5㎞ 정도 가면 오른편에 '백로ㆍ왜가리 집단서식지' 입간판이 있다. 여기서 무안군상수도사업소를 지나 농로를 따라 가면 학마을에 닿는다.
●먹을 곳 무안은 뻘낙지의 본고장이다. 월두회수산(453-1480)의 된장연포탕이 담백하면서 시원하다. 된장을 푼 물에 무, 양파, 청양고추, 팽이버섯과 산낙지를 넣어서 끓인다. 우성식당(452-8551)의 낙지김치찌개와 숙이네식당(452-9857)의 물회도 별미다.
녹색한우타운(454-0601)과 무안식당(453-1919), 승달가든(454-3400)은 소고기가 맛있다. 생선회는 도리포의 도리포횟집(454-6890)과 수한횟집(454-7645)이 소문 나 있다.
●묵을 곳 무안생태갯벌센터의 캠핑트레일러(450-5631)가 인기다. 평일에 4인용 6만원(주말 8만원), 6인용 8만원(주말 10만원)으로 그리 비싸지 않다. 홈페이지(getbol.muan.go.kr)를 통해 예약하면 된다. 송계어촌체험마을(454-8737)에서의 민박도 괜찮다. 망운면의 무안톱관광펜션(454-7878)과 현경면의 홈펜션민박(010-3455-9294), 해제면의 참새골황토펜션(453-3645)도 있다.
●가볼 곳 몽탄면 이산리(배뫼마을) 영산강변에 '식영정(息營亭)'이 있다. 조선시대 우승지를 지낸 한호(閑好) 임연(1589~1648) 선생이 지은 정자다.
팽나무 고목이 운치를 더해 준다. 사창리에 호담항공우주전시관도 있다.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항공기, 전투기, 헬리콥터와 연습용 비행기(건국기)를 볼 수 있다. 일로읍 회산방죽도 가깝다. 면적 33만㎡(10만평), 둘레 2.8㎞의 백련지에 백련이 활짝 펴 있다. 백련지를 가로지르는 나무다리와 산책로도 멋스럽다.
●문의 무안읍사무소 061)450-4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