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명곤붕(北溟鯤鵬)-2 통권 112
“신, 무주사마 양초지 아룁니다. 해도대원수의 저의가 무엇인지 무척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무슨 말이오?”
“충분한 힘이 있으면서도 남상의 반란을 토벌하는 데 3년이나 걸렸다는 것은 한번쯤 생각해볼 일입니다. 게다가 조정에 반한 무리를 다시 거두고, 거주를 금지한 도적 무리를 백성으로 삼은 것은 명백한 반역 행위, 지금 당장 그를 불러들여 시시비비를 따져 물어야 합니다.”
“을주사마 마신건 아룁니다. 애초에 남상 서해대수영 반란을 토벌하는 일은 2년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나 그것은 반적 웅랑들의 발호가 없었을 때였으며 웅랑이 의백을 치자 그것을 견제하며 힘을 키우느라 1년을 소모했다고 크게 탓할 일은 아닙니다. 또한 남상의 백성들이 스스로 조정에 귀순하게 한 것은 오히려 상을 줄 일이지 벌을 줄 일이 아닙니다.”
“그럼, 사사로이 인시드와 분쟁을 한 것은 어찌 생각하시오?”
“본관은 서해대수영을 설치하면서 서해도독에게 그에 대한 전권을 위임했던 것으로 아는데, 본관이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오? 대장군 라혼을 서해수군통제사로 제수할 때 반란 토벌 이후 서해대수영이 하던 임무를 맡게 된 것 아니오.”
남상 토벌이 성공했다는 장계가 정식으로 원주 천호궁에 올라오자 조정은 그것에 관해 갑론을박 설전이 벌어졌다. 그것은 3개월 전 대장군 라혼의 혼례식 때 보인 함대의 위용과 그가 가진 10만 대군의 위세를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지난 3년 간 그런 정병이 길러지는 것을 감지 못했는지 허탈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각 세력마다 백호나한이 가진 힘에 대해 분석하면 분석할수록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었다. 남례성에 웅크리고 있는 23만으로 불어난 하남천원군, 그의 아내인 북지대장군 천상천화의 7만, 그리고 대수영의 10만이 바로 그의 수중에 있는 군사였다. 또한 지역적으로도 북지성, 남례성, 남상이 완전히 그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천원회의(天元會議)의 을주와 계주의 사마들이 전적으로 그를 지지하고 나서니 그것을 지켜보는 호황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아직까지는 대장군 라혼을 믿고 있었지만 그에게 집중된 힘은 호황을 불안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호영을 통해 해도대원수인 그의 다음 목표가 해남군도의 해황가이고 그 후 후려를 가시거리에 두고 후선을 압박한다고 하니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북지성에 있는 그의 아내가 가진 병권을 어떻게든 회수하고 싶었지만 그것도 여의치 못했다. 북지성에서의 그녀의 영향력이 생각했던 것보다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만들 하시오. 공을 세운 장수는 치하해야 마땅하거늘 어찌 전장에 있는 장수가 한 일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수 있단 말이오? 짐은 10만 대군을 호령하는 해도대원수의 지위에 맞게 대장군 라혼의 직급을 대원수로 제수할 것이오. 또한 남상의 백성들 또한 그간의 죄를 용서하고 해도대원수로 하여금 남상에 도독부를 설치케 하여 그에게 도독의 임무를 겸하도록 하겠소.”
“하나 남상은 비워두는 것이 그간의 방침인데…?”
“방침이란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것이오. 짐은 그 세 가지 논제를 호황의 이름으로 천원회의에 가부를 묻겠소.”
당금 천하의 조정이란 바로 천원회의를 말했다. 이 천원회의에서는 중원십일주의 십이진가와 오성사역의 도독, 절도사, 안찰사의 대표가 참석하여 천하의 만사를 다루었는데 사실상 중외오성과 변방사역은 발언권이 약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성사역의 도독, 절도사, 안찰사는 바로 천원회의의 의결을 통해 임명되기 때문이었다. 천자인 호황은 이 천원회의를 직접 주관하는 권한이 있는 십이진가의 대표인 존재였다. 따라서 대장군까지는 호황이 직권으로 임명하고 천원회의에 발언권을 가진 사마들이 거부하지 않으면 대부분 통과되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대원수는 스스로 군부인 원수부를 열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자리이고, 천원회의에 의결권은 없으나 발언권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남상의 도독이 되면 의결권을 갖게 되고, 남상의 내륙을 비워둔다는 조정의 방침을 바꾸는 일은 그가 행한 일을 사후 승인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러니 호황이 얼마나 그를 신임하는지 알 수 있게 하는 척도인 것이다. 그리고 호황의 이름으로 천원회의에 가부를 물었으니 발언권만 가지고 있는 사마들로서는 본가에 연락하여 의결권이 있는 십제(十帝)들에게 가부(可否)를 물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