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어떤왕이 계속 딸만 낳았는데 그 일곱 번째 딸이 바리데기였다. 일곱째도 또 딸이라는 소리에 화가 난 왕은 딸을 갖다 버리도록 시켰다. 한 십여 년이 흘러 왕과 왕후가 죽을 병에 걸려 점을 쳐보니 저승에 있는 약수를 먹어야 산다고 했다.
이때 왕은 여섯 딸들에게 그 약을 가져올 것을 부탁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이 소식을 들은 바리데기는 다시 왕과 왕후에게 나타나 약을 가져올 것을 약속하고 저승으로 떠난다. 저승까지 가는 길에 공주는 수 많은 역경을 겪지만 불보살의 도움으로 무사히 저승에 도착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저승의 수문장(무장신선)이, 같이 살면서 일곱명의 아들을 낳아주고 온갖 시중을 다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7여년의 시간이 지나 불사약인 약수를 수문장에게 달라고 하자 매일 길어 이고 다녔던 바로 그 물이라 하고 그 약과 함께 남편과 일곱 아들과 함께 부모를 찾아 돌아오던 바리데기는 오는 길목에서 왕과 왕후의 상여를 만난다.
그러나 바리데기가 마지막 시도로 약수를 왕과 왕후의 입에 흘려 넣자 그들은 다시 살아났다. 다시 살아난 왕과 왕후가 바리데기에게 왕국의 절반을 주겠다고 했지만, 바리데기는 모두 거절하고, 자신은 만신의 왕인 무당이 되고 남편과 아들들도 각각 신이 되었다.
<바리공주> 서울지역 전승본의 줄거리
옛날 이씨 주상금마마가 7공주를 본다는 해에 왕비를 맞아들인 후 계속해서 6공주를 낳는다. 왕과 왕비는왕자를 낳기 위해 온갖 치성을 드린 후 일곱째 아이를 잉태했으나 낳고 보니 또 공주였다.
크게 노한 대왕은 일곱째 공주를 옥함에 넣어 강물에 띄워버린다. 아기는 석가세존의 지시로 바리공덕 할아비와 할미에게 구출되어 양육된다. 바리공주가 15세 되었을 때 대왕마마가 병이 들었는데 꿈에 청의동자가 나타나서 하늘이 아는 아기를 버린 죄로 죽게 되었다며 살기 위해서는 버린 아기가 구해다준 무장신선의 약려수를 먹어야 한다고 했다.
바리공주를 찾으라는 왕명이 내려지고 한 대신의 충성으로 바리공주를 찾는다. 바리공주는 모든 신하들과 언니들이 거절한 구약(救藥)의 길을 남장(男裝)을 하고 혼자 떠난다.
저승세계를 지나 신선세계에 이른 바리공주는 무장신선을 만나 약물값으로 나무하기 3년, 물긷기 3년, 불때기 3년 등 9년 동안 일을 해주고 무장신선과 혼인해 아들 일곱을 낳은 뒤 약수를 가지고 함께 돌아온다. 이때 양전마마는 이미 승하해 장사를 지내려는 중이었는데 바리공주가 상여를 멈추게 하고 약수와 꽃으로 양전마마를 살린다.
살아난 대왕마마는 바리공주의 소원을 들어 그녀를 만신(萬神)의 왕이 되게 하고, 무장신선은 죽은 사람이 가는 길에서 노제(路祭)를 받아 먹게 하고, 일곱 아들은 저승의 십대왕(十大王)이 되게 한다.
제석帝釋본풀이 기본 줄거리
서여국의 석가여래는 도를 닦아 풍운둔갑술을 터득하고 나서 세상인심을살피고자 조선국까지 온다. 그리고 요조숙녀로 소문 난 명문대가의 딸인 당금아가씨를 찾아온다.
그 집에는 부모와 오빠들이 공사로 다 나가고 아기씨와 두 하녀만 있었다. 스님은 도술로 여러 문을 열고 들어가 시주를 청했다. 당금아기는 스님의 요구대로 쌀을 시주하나 스님은 일부러 터진 바랑으로 받아 쌀을 다 쏟는다.
그리고서는 아기씨에게 일일이 주어 담게하니 날이 저물게 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하루밤을 묵어 가기를 원한다. 그 날밤에 스님은 도술로 당금아가씨에게 잉태시키고는, 앞으로 삼태자를 낳을 것이고, 아들이 7살이 되면 서천국으로 자기를 찾아오게 하라면서 박씨 3알을 주고 떠나 버린다.
집에 돌아온 부모는 당금아기가 잉태한 것을 알고는 가문의 수치로 여겨 토굴속에 가둔다. 십삭만에 아기씨는 세쌍둥이를 낳아 모친의 도움으로 7살까지 기른 후에 함께 서천국으로 석가여래를 찾아가 만나서는 도를 닦는다.
본래 석가는 선관이고 당금아기는 선녀였는데 죄를 지어 그 업으로 인간세에 태어난지라, 한날 한시에 함께 승천한다. 그래서 당금아기는 삼신으로 받듦을 받고, 3쌍동이는 불도를 닦은 덕으로 삼불제석님으로 고사 정성을 받게 되었다
<천지왕본풀이> 기본 줄거리
1. 태초에 천지가 혼돈하여 하늘과 땅이 맞붙어 암흑 가운데 혼합된 상태였다.
2. 갑자년 갑자월 갑자시에 하늘의 머리가 자방子方으로 열리고, 을축년 을축일 을축시에 땅의 머리가 축방丑方으로 열려 하늘과 땅이 금이 생기고 점점 벌어지면서 땅덩어리에는 산이 솟아오르고, 물이 흘러 내려 하늘과 땅의 경계가 분명해졌다.
3. 이때 하늘에서는 청이슬이 내리고, 땅에서는 흑이슬(또는 물이슬)이 솟아나 서로 합수되어 음양상통으로 만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먼저 별들이 생겨났으나 아직 암흑은 계속되었으며, 동쪽에서는 청 구름이, 서쪽에서는 백 구름이 남쪽에서는 적구름이 그리고 중앙에서는 황구름이 오락가락하였다. 이 때 천황닭이 목을 들고, 지황닭이 날개를 치고, 인황닭이 꼬리를 쳐 크게 우니 甲乙東方갑을동방에서는 먼동이 트기 시작했고. 옥황상제 천지왕이 해 둘, 달 둘을 내 보내어 천지는 활짝 개벽이 되었다.
4. 그러나 아직 천지의 혼돈은 바로잡히지 않았다. 해가 둘이어서 낮에는 백성들이 더워 죽게 마련이고, 달이 둘이어서 밤에는 추워 죽게 마련이었으며, 이 때에는 초목이나 새 . 짐승들이 말을하고, 귀신과 인간의 구별이 없었다.
5. 천지왕이 혼란한 세상을 바로 잡을 걱정을 하던 중 해와 달을 하나씩 삼키는 꿈을 꾸고 세상의 질서를 바로 잡을 귀동자를 얻기 위하여 지상의 총맹부인과 배필을 맺으러 내려온다.
6. 지상에 내려와 먼저 탐욕스럽고 악행을 많이 저지른 수명장자와 그 가족들을 징벌한다.
7. 천지왕이 총맹부인과 천정배필을 맺고 하늘로 올라가면서 아들을 낳거든 큰 아들은 대별왕, 작은 아들은 소별왕으로 이름을 지으라고 한다. 이때 총맹부인이 증거물을 주고 가라고 하자 천지왕은 박씨 두 개를 주면서 아들이 자기를 찾거든 정월 첫 亥日해일에 박씨를 심으라 한다.
8. 아들 형제를 낳아 서당에 보내자 '아비 없는 호래자식'이라고 놀림을 받았고, 아버지를 찾는 형제들은 박씨를 심고, 박줄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9. 천지왕은 두 아들을 기쁘게 맞이하여 이승은 형인 대별왕이, 저승은 아우인 소별왕이 차지하여 혼잡한 질서를 바로잡아 통치하도록 한다.
10. 소별왕은 이승이 욕심나 형에게 수수께끼로 내기를 해 이기는 자가 이승을 차지하자고 제안한다. 형이 낸 두 개의 수수께끼를 아우가 맞추지 못해 아우가 내기에 진다. 아우는 다시 꽃을 심어 잘 자라는 쪽이 이기는 내기를 하자고 해 꽃을 심었으나 이번에도 형의 꽃이 잘 자라자 잠자기 경쟁을 하자고 해 형이 잠든 사이에 형의 꽃과 자기의 꽃을 바꾸어 놓는다. 형은 저승으로 떠나면서 이승에 악이 만연해 있음을 경고한다.
11. 이승에 내려온 소별왕은 이승의 자연질서가 혼란하고, 악이 만연해 있음을 보고 형에게 혼란을 바로잡아 주도록 간청한다.
12. 이승에 내려온 형은 천근짜리 활과 화살로 해와 달을 쏘아 떨어뜨렸고, 송피가루 닷 말 닷되로 모든 금수와 초목이 말을 못하게 하였으며, 저울을 가지고 무게를 달아서 백근이 차는 놈은 인간으로 보내고, 백근이 못되는 놈은 귀신으로 처리하였다.
13. 대별왕이 이처럼 자연질서는 바로 잡았으나 더 이상의 수고를 해주지 않아 아직도 세상에는 역적. 살인. 도둑. 간음이 여전히 많게 되었다.
<창세가> 기본 줄거리
1. 하늘과 땅이 생길 적에 미륵이 탄생했는데 하늘과 땅은 서로 붙어서 떨어지지 아니하다가 하늘은 솥뚜껑꼭지처럼 도드라지고, 땅은 네 귀에 구리기둥을 세웠다.
2. 그 때 하늘에는 해와 달이 둘씩이었는데 미륵이 달 하나를 떼어 북두칠성과 남두칠성을 마련하고, 해 하나를 떼어 큰별을 마련했는데 잔별은 직성별로 큰별은 임금과 대거별로 마련했다.
3. 미륵은 칡으로 장삼과 고깔을 지어 입고, 생쥐로부터 천하의 뒤주를 차지 하도록 하는 대가로 물의 근원과 불의 근원을 알아내어 화식을 시작한다.
4. 미륵이 양손에 금쟁반과 은쟁반을 들고 하늘에 축사하자 금쟁반에는 금벌레 다섯 마리가, 은쟁반에는 은벌레 다섯 마리가 떨어졌다. 이들이 자라서 금벌레는 남자가 되고, 은벨레는 여자가 되었으며, 이들이 부부가 되어 세상사람들이 태어났다.
5. 미륵의 세월에는 세상이 태평하였는데 석가가 내려와서 이 세상을 빼았고자 하여 둘은 내기를 한다. 첫 번째 내기에서 미륵은 동해 가운데 금병에 금줄을 달고, 석가는 은병에 은줄을 달아 먼저 줄이 끓어지는 쪽이 지기로 했는데 석가의 줄이 끊어졌다. 두 번째는 성천강을 여름에 얼게 하는 일인데 이것도 미륵의 승리로 끝났다. 세 번째 내기는 한 방에 누워 자면서 모란꽃이 무릎 위로 올라오는 쪽이 이기기로 했는데 미륵이 잠든 사이에 석가는 자는 척하다가 미륵의 무릎 위로 피어 올라오는 모란꽃을 꺾어다가 자기 무릎 위에 꽂았다. 미륵은 석가의 계략을 알았으나 그 성화가 귀찮아 석가에게 자기 세월을 내준다.
6. 미륵은 석가의 세월이 되면 이 세상에 악이 만연할 것을 예언했는데 과연 그렇게 되었다.
초청의 이유는 동해 용왕이 서해 용왕과 싸우는데 도와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왕장군은 용왕국으로 가, 의기양양해하는 서해 용왕을 쏘아 죽이었다. 그러자 동해용왕이 감사의 보답으로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동해용왕의 아들이 은밀히 알려준 대로 벼룻집을 달라고 하였다. 용왕은 할 수 없이 벼룻집을 갖고 돌아와 사는데, 밤이면 벼룻집에서 선녀같은 미인이 나와서 잠자리를 같이 하고, 의복과 의식을 원하는 대로 만들어 바쳤다.
이렇게 부자가되어 살면서 아들 삼형제 곧 왕건, 왕빈, 왕사랑을 낳아 길렀다. 그러던 중에 하루는 용녀가 "나는 인간이 아니므로 이제는 용궁에 가 살아야 하므로 당신들은 군웅을 차지하여 살기 바랍니다"고 말하면서 돌아갔으므로 왕장군과 아들은 군웅이 되어 인간의 정성을 받게 되었다.
<설명>------------------------------
제주도 서사무가
군웅이란 죽은 장수의 영(靈)으로, 외부에서 들어오는 액을 막아주는 군신(軍神) 이다.
군웅본풀이는 특히 〈고려사〉의 〈작제건설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세경世經본풀이 기본 줄거리
옛날에 김진국 대감과 자지국 부인이 살았는데, 자식이 없어 불공을 드리고 딸을 낳았다. 자청해서 낳았다고 해서 자청비라고 이름을 갖게 된 자청비는 보름달처럼 예뻤다.
언젠가 옥황상제의 아들 문도령이 글공부를 하러 아랫녘으로 오다가 자청비를 만나 함께 글공부하러 가게 되었다. 그러나 자청비가 남장을 하였기 때문에 문도령은 3년이 지나도록 그녀가 여자인 줄을 몰랐으나 목욕을 할 때 그녀의 혈흔으로 마침내 알게 되어 결혼을 약속하고는 박씨 한 알과 얼레빗 반쪽을 꺾어서 신표로 주었다.
그런데 하인 정수남이가 그녀에게 음심을 품고 괴롭히는지라 자청비는 정수남이를 죽인다. 그 때문에 집에서 쫏겨난 자청비는 여기저기 떠돌다가 서천꽃 밭에서 회생꽃을 얻어 정수남이를 살려내어 돌아온다. 그러나 계집애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요망한 짓을 한다고 해서 다시 쫓겨난다.
그 후에 우연히 선녀들을 만나 천상으로 가게 되고 거기서 문도령을 만나 어려운 시련을 통과하고 결혼한다. 그때 천상에서는 난리가 났으므로 자청비는 서천꽃밭에서 멸망꽃을 얻어와 그것으로 적국을 물리친 덕분으로 옥황상제에게서 곡식의 씨앗을 얻어 땅으로 내려와 뿌리고 풍년이 들게 하였다. 이리하여 자청비는 농신이 되고 정수남이는 축산신이 되었다.
<설명>---------------------------
제주도 서사무가.
농경기원신화로도 볼 수 있다. 〈세경본풀이〉는 현재 제주도에만 남아 전한다. 그러나 원래는 우리민족의 고대 제의였던 큰굿 열두거리 제의 중 8번째로 행해졌던 농경신에 대한 제의에서 불린 신화로 추정된다.
세민황제본풀이의 기본 줄거리
이 글은 최운식 선생님의 "우리 이야기 한마당"의 올려진 논문인 <저승 재물 차용 설화 연구>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을 보고자 원하시면 직접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a. 악한 짓을 하던 세민황제가 죽어 저승에 가니, 저승에 있던 백성들이 저승왕에게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고, 죄없는 사람을 죽인 세민황제를 벌하여 원수를 갚아달라고 하였다.
b. 저승왕이 세민황제의 잘못을 꾸짖고, 빼앗은 재물은 돌려주라고 하니, 세민황제는 빼앗은 재물을 갚을 터이니, 돈을 꿔 달라고 하였다. 저승왕은 세민황제의 저승 금고에는 나락 한 묶음밖에 없다면서, 매일장상의 금고에 있는 돈을 꿔 줄 터이니, 이승에 가서 갚으라고 하였다.
c. 세민황제는 저승왕에게서 꾼 돈으로 이승에서 진 빚을 갚고, 이승으로 돌아왔다.
d. 이승으로 돌아온 세민황제가 매일장상을 찾아가 보니, 매일장상은 신을 만들어 팔고, 그 마누라는 술 장사를 하면서도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돕고 있었다.
e. 세민황제는 매일장상의 적선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깨달아 많은 선행을 하였다.
f. 세민황제가 신하들에게 적선의 도를 물으니, 호인대사를 시켜 극락세계에 있는 팔만대장경을 가져와야 한다고 하였다.
g. 세민황제의 명을 받고 극락세계를 찾아가던 호인대사가 바위틈에 끼어 있는 빠른개비를 구해 준 뒤, 그의 도움으로 극락세계에 가서 팔만대장경을 얻어다가 세민황제에게 주었다.
h. 마음을 고쳐 먹은 세민황제는 저승에서 꾼 돈을 매일장상에게 갚았다.
i. 세민황제는 모든 일을 매일장상과 의논하여 처리하고, 팔만대장경을 숙독하며 불도에 정진하여 활인적선지도(活人積善之道)를 마련하였다.
이공二公본풀이 기본 줄거리
김진국의 아들과 원진국의 딸이 결혼하여 살았다. 하루는 옥황상제의 사자가 와서 부르므로 부부는 함께 출발하였다. 도중에 부인이 발병하였으므로 김장자의 집에 종으로 머물게 되었다. 부인은 김장자의 청혼을 거절하고 할락궁이를 낳아 길렀다.
자라면서 할락궁이는 김장자에게 갖은 시련을 당하다가 도망하여 아버지를 찾아 서천으로 가 마침내 만나게 되었다. 한편 김장자는 할락궁이가 도망한 것을 알고 원로 어머니를 죽인다. 할락궁이는 서천 꽃밭에서 회생의 꽃을 얻어 그것으로 어머니를 회생시키고 김장자네 식구를 모조리 죽인다. 그리고 서천으로 모자가 함께 돌아가 꽃밭대왕이 된다.
<설명>---------------
제주도 무당굿의 하나인 주화관장신의 신화의 동시에 그 신화를 노래하고 기원하는 제차. 큰굿 떼에 초공맞이 다음의 제에서 구연되고 불도맞이 떼에도 불린다.
<<월인석보>> 제 8상절의 <안락국태자경>이나 고대소설 <안락국태자전>의 내용과 같아 하나의 원천에서 유래되었음을 알게 한다.
삼공三公본풀이 기본 줄거리
옛날에 남녀 거지가 우연히 만나 부부가 되어 딸 셋을 이루니 은장아기, 놋장아기, 가믄장아기가 그들이다. 그런데 부부는 셋째 딸인 가믄장아기를 낳고서 일약 부자가 되었다. 하루는 부부가 3딸의 효심을 시험하여 보기 위해 누구의 덕에 잘 먹고 사는가를 물었다.
두 딸은 "하느님, 지하님, 부모님 덕으로 잘 산다"고 했다. 그러나 막내만은 "하느님, 지하님, 부모님 덕도 있지만 내 배꼽 밑의 선긋믓 덕으로 잘사오" 하였다. 그래서 막내딸은 불효한다고 하여 쫓겨났다. 집을 나온 가믄장은 도중에 마를 캐는 마둥이(서동) 3형제를 만나 형제 중 막내와 부부가 되어 함께 마를 캐러 다녔다.
하루는 미를 캐던 구덩이에서 금은덩이가 쏟아져 나와 일기에 부자가 되었다. 한편 막내딸을 쫓아낸 부모는 다시 거지가 되고 장님까지 되니 첫째와 둘째 딸은 부모를 나 모른다 했다. 이를 안 막내 가믄장은 맹인 잔치를 열고 부모를 기다린다.
마침내 찾아온 부모에게 술을 권하면서 자기가 가믄잠임을 밝히자 부부가 놀라며 딸을 보려는 순간 눈이 확뜨이어 세상을 보게 되었다. 그 후부터는 막내딸과 함께 잘 살았지만 부부가 갖고있는 전상(전생前生 인연의 준말로 제주방언.)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다.
<설명>------------------------------
제주도 무당굿의 하나인 삼공맞이굿에서 무당인 심방이 노래하는 서사무가, 또는 그 신화를 노래하는 무당굿의 절차를 말 한다.
삼공은 사람의 의지로 어찌 할 수 없으며 사람의 마음을 규제하는 전상을 차지하고 있는 신이다.
가믄장아기는 사람의 행과 불행을 좌우하는 신격으로 형상화하여 있다. 이런 가믄장아기의 내력담을 노래함으로써 나쁜 전상을 물리치고 행운을 기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삼공본풀이〉이다.
초공初公본풀이 기본 줄거리
옛날 임정국 대감과 그 부인 김진국이 큰 절에 시주하고 백일불공을 드려 딸아기를 낳았다. 딸아기 자지멩왕 아기씨가 15세 때 그 부모가 다른 지방으로 벼슬살이를 떠나게 되었다.
딸을 데리고 갈 수가 없어 방 안에 가두어 문을 잠근 후, 종에게 문구멍으로 밥을 주며 키우도록 당부하고 집을 떠났다. 이때 황금산 도단땅 절의 주자 선생이라는 승려가 자지멩왕 아기씨에게 시주를 받으러 왔다. 주자 선생은 요령을 흔들어 잠긴 방문을 열고 시주를 받은 뒤, 아기씨의 머리를 3번 쓸어주었다.
그뒤 아기씨는 잉태했고 임대감 부부는 아기씨를 내쫓았다. 자지멩왕 아기씨는 갖은 고생을 하며 주자 선생을 찾아가서 9월 8일에 맏아들 본멩두를, 다시 18일에는 둘째 아들 신멩두를, 28일에는 막내 아들 삼멩두를 겨드랑이로 낳았다. 3형제는 양반들에게 학대를 받으며 글공부를 해서 과거에 급제했다.
그러나 양반들이 중의 아들들이 과거에 급제함은 부당하다고 항의해 3형제는 과거급제를 취소당했다. 또한 양반들은 자지멩왕 아기씨를 감금해 3형제가 앞으로도 과거에 응시하는 것을 포기하도록 했다. 3형제는 아버지 주자 선생을 찾아가 신칼·산판·요령 등 무구를 받아 굿을 시작하여 어머니를 구해내고, 신칼로 양반들의 목을 베어 복수했다.
<설명>-------------------------
제주도 큰굿에서 심방이 노래하는 무조신(巫祖神) 신화, 또는 그 신화를 노래하고 기원하는 제의절차를 말 한다.
초공이란 무조(巫祖)인 동시에 무업(巫業)의 수호신이다. 이같은 유형의 본풀이는 '제석본풀이'·'제석풀이'·'삼태자풀이'·'시준풀이'·'당금아기' 등의 명칭으로 전국에 분포되어 있다.
문전門前본풀이 기본 줄거리
옛날 남선고을 남선비와 여산고을 여산부인이 만나 부부가 되었다. 집안은 가난한데 아들이 일곱이나 되어 먹고살기가 힘들자 남선비는 배를 마련해 무곡(貿穀) 장사를 떠났다. 그러나 오동나라에 도착한 남선비는 간악하기로 소문난 노일제대귀일의 딸에게 홀려 가진 것을 모두 잃고 거지꼴로 그녀에게 얹혀 지내게 되었다.
남편에게서 소식이 없자 여산부인은 아들들이 지어준 배를 타고 남편을 찾아다니다가 어렵게 만났으나, 남선비는 눈까지 멀어 있었다. 그는 부인이 쌀밥을 지어주자 부인이 찾아온 것을 알고 기뻐하며 그간의 회포를 풀었다. 본처가 온 것을 안 노일제대귀일의 딸은 여산부인을 물 속에 밀어넣어 죽인 뒤 "노일제대귀일의 딸이 행실이 괘씸해 죽였다"며 자신이 여산부인으로 행세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남선비는 그 말을 곧이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러나 그녀를 본 7형제는 자신들의 어머니가 아님을 눈치챘다. 그러자 계모는 아들들을 모두 죽여버리기 위해 병이 난 체하며 자신의 병은 아들들의 간을 먹어야 낫는다고 했다. 아버지가 칼을 갈러 나오자 똑똑한 막내 아들은 자기가 형들의 간을 내오겠다며 형들과 함께 산에 올라갔다.
도중에 지쳐서 잠이 들었는데 여산부인이 꿈에 나타나 노루의 간을 내가라고 했다. 깨어보니 정말로 노루새끼들이 내려오고 있었으므로 6마리를 잡아 간을 가지고 갔더니 계모는 먹는 체하며 간을 자리 밑에 숨겼다. 문 틈으로 엿보던 막내 아들이 들어가 자리를 걷어치우자 형들도 달려들어왔다.
모든 것이 드러나자 계모는 측간으로 도망가서 목을 매고 죽어 측간신이 되고, 남선비는 달아나다 대문에 걸려 있는 굵은 막대기에 걸려 죽어 주목지신이 되었다. 7형제는 서천꽃밭에서 환생꽃을 얻어다 죽은 어머니를 살려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으로 삼았다.
7형제는 각자의 직분에 따라 신이 되었는데 첫째는 동방청대장군, 둘째는 서방백대장군, 셋째는 남방적대장군, 넷째는 북방흑대장군, 다섯째는 중앙황대장군, 여섯째는 뒷문전(뒷문의 신), 막내는 일문전(앞문의 신)이 되었다.
목수인 황우양은 옥황상제의 명을 받고 천하궁의 무너진 집을 고치기 위해 부인과 작별을하였다. 그러자 소진랑이라는 자가 황우양의 아내를 납치하고 동침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부인은 거부하고 구메밥(옥문의 구멍으로 죄수에게 주는 밥)을 먹고 있었다.
한편 꿈자리가 뒤숭숭하여 점을 쳐본 황우양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일을 빨리 마치고 돌아와 소진량을 물리치고 아내를 구출하여 해로하였다. 뒤에 황우량은 성주신이 되고, 그 부인은 지신이 되었다.
<설명>----------------------
가정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가신家神 중 맨 윗자리를 점하는 가옥신의 내력을 풀이한 것을 성주 풀이라 한다. 크게 두 유형이 있는데 동해안과 서울지역 전승본이 그것이다.
서울지역 <성주풀이> 기본 줄거리
목수인 황우양은 옥황상제의 명을 받고 천하궁의 무너진 집을 고치기 위해 부인과 작별을하였다. 그러자 소진랑이라는 자가 황우양의 아내를 납치하고 동침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부인은 거부하고 구메밥(옥문의 구멍으로 죄수에게 주는 밥)을 먹고 있었다.
한편 꿈자리가 뒤숭숭하여 점을 쳐본 황우양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일을 빨리 마치고 돌아와 소진량을 물리치고 아내를 구출하여 해로하였다. 뒤에 황우량은 성주신이 되고, 그 부인은 지신이 되었다.
<설명>----------------------
가정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가신家神 중 맨 윗자리를 점하는 가옥신의 내력을 풀이한 것을 성주 풀이라 한다. 크게 두 유형이 있는데 동해안과 서울지역 전승본이 그것이다.
탱골란(Tengoulan)은 서아프리카 코트 디부아르(Cote d’Ivoire)의 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한,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자그마한 마을이다.
내가 이곳을 굳이 찾은 까닭은 코미안이라는 여자 무당이 이끄는 독특한 원시 신앙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타는 듯한 태양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온몸이 땀으로 젖는 아프리카의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허리를 구부리고 폈다가 다시 뛰어오르고 돌기를 십여 차례. 사람의 몸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을 정도의 거친 몸짓과 열기를 내뿜으며 검게 빛나는 여인이 햇볕 아래 있었다.
나를 포함한 주위의 사람들이 경이로운 눈빛으로 그녀의 몸짓을 바라본다. 신(神)기가 감도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기원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온몸을 들썩이며 같이 춤을 추기도 한다. 모여든 사람들의 경외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 여인은 바로 탱골란 마을의 ‘코미안’(Komian).
탱골란(Tengoulan)은 서아프리카 코트 디부아르(Cote d’Ivoire)의 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한,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자그마한 마을이다. 내가 이곳을 굳이 찾은 까닭은 코미안이라는 여자 무당이 이끄는 독특한 원시 신앙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탱골란은 수도 아비장(Abidjan)에서 30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다. 버스가 아비장과 탱골란 사이에 있는 아벤소루(Abengourou)까지밖에 다니지 않는다고 하여, 나는 할 수 없이 아비장에서 지프를 세내어 타고 물어물어 탱골란 마을을 찾아갔다.
아비장을 떠난 지 십여 분. 외길 국도가 끝나는 지점에 이르자 아비장의 현대적인 풍경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새 사라지고 가슴이 탁 트이도록 드넓은 평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때마침 우기가 찾아와 생명이 움트는 기운으로 가득한 평원을 달리다 보니 다시 밀림 지대다. 그곳을 헤치고 나아가다 만난 늙은 아낙은 처음 만난 동양인이 신기한지 땀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를 닦을 생각도 없이 그저 빤히 바라보기만 한다.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굵고 키가 큰 열대림 사이로 난 붉은 외길을 따라 세 시간 정도 달리다 보니, 흙벽에 풀로 지붕을 만들어 덮은 집들 사이로 염소가 한가로이 노니는 마을이 나타났다. 탱골란이었다.
마을로 접어들자 드문드문 보이는 콘크리트 집과 옹색하나마 통조림이나 콜라 따위를 파는 가게가 문명의 흔적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여전히 추장의 권위가 절대적이고, 마을 사람들은 정령이 자연과 인간사를 주관한다고 굳건히 믿고 있었다.
흔히‘부두교’(Voodoo)라 부르는 이러한 믿음은 가나에서 나이지리아, 베닌에 이르는 지역에 널리 펴져 있다. 부두교라 하면 흔히 공포 영화에서 그려지듯 죽은 이를 좀비로 만들어 부리는 사악하고 비밀스러운 종교쯤으로 여길지 모르나, 이는 아프리카의 종교를 처음 접한 서구인들의 그릇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일 뿐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을 둘러싼 모든 것에 정령이 깃들여 있고, 이들이 모든 자연 현상이나 인간사를 주관한다는 믿음은 세계 어느 나라의 원시 신앙에서나 두루 나타나는 것이다. 이곳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 수호신을 ‘보두’ 또는 ‘보둔’이라고 부르고, 그들의 호의를 얻기 위해 소나 닭, 양, 염소 등을 제물로 바친다. 부두교라는 이름은 이 ‘보두’ 또는 ‘보둔’이라는 정령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구인들에 의해 야만적인 노예 사냥과 식민지 침탈이 자행되던 때에 부두교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자신의 문화와 전통을 지켜갈 수 있게 해준 힘의 원천이었다. 영화 ‘아미스타드’에서도 소개되었던 것처럼 부두 의식은 그들의 결속을 확인해 주는 끈이었던 것이다.
탱골란 마을에는 이 부두교의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과는 달리 코미안이라는 여자 무당이 모든 종교 의식을 주관하고 있다. 코미안은 신의 부름을 받은 이를 말한다. 신의 부름은 특정한 병도 없이 시름시름 앓거나 헛것을 보거나 하는 ‘무병’으로 나타나는데, 무병을 앓게 되면 치료 능력과 예언 능력이 뛰어난 신어미를 찾아가 신에 대한 지식과 약초를 이용한 치료법, 미래를 점치는 법, 신을 불러들이는 춤 등을 일정 기간 수련한 뒤 뙤약볕 아래서 다섯 시간 동안 춤을 추는 시험을 거쳐 비로소 코미안이 된다. 코미안은 대를 이어 전수되는데, 지금은 33세의 아히 알루아라는 여자가 3대 코미안으로 마을의 종교 의식을 주관하고 있다.
여자 무당 ‘코미안’ 주민들 경외심 한몸에
운 좋게도 내가 찾아간 날 마을에서는 아픈 아이를 위한 의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치료를 위한 의식은 나무껍질과 풀을 찧어 약을 만드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코미안은 직접 약재를 구하러 다녀서는 안 된다는 규칙 때문에 이 일은 그녀의 아버지가 대신하게 된다. 약이 다 만들어지면 신에게 바칠 닭과 염소를 잡아 그 피와 털을 흩뿌려 주위를 정화한다.
본격적인 의식은 코미안의 아버지가 마을의 1대 코미안인 마카우야 만도야의 무덤에 술을 뿌리고 난 뒤에야 시작되었다. 고수들이 탐탐을 두드리기 시작하자 온몸에 하얀 고령토를 바르고 색색의 구슬로 단장한 아히 알루아와 그녀의 제자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아히 알루아는 소꼬리와 창을 휘두르며 구부정한 자세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의 춤동작이 빨라질수록 의식에 참여한 사람들의 열기도 높아갔다. 탐탐 소리와 그녀의 춤은 묘하게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구석이 있다.
춤이 절정에 이르자 그녀는 빠른 말투로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프랑스어와 마을 사투리가 섞여 있어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말투와 목소리가 자주 바뀌는 것으로 보아 여러 신들이 그녀의 몸을 드나들며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그녀의 말투와 목소리는 제자들이 건네는 각양각색의 목각 인형에 따라 달라졌는데, 우리네 무당들이 다른 신령들을 받아들일 무복을 갈아입는 것처럼 코미안은 목각 인형을 통해 각기 다른 정령들을 불러들이는 모양이었다.
그녀가 던지는 이야기에 따라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무릎을 치기도 하고, 눈물을 글썽이거나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의식이 무르익어 가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 그녀와 함께 춤을 추는 이들도 생겨났다. 신이 내린 코미안이나 의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나 어쩌면 그렇게 우리와 닮아 있는지…. 나는 어느덧 그 까만 사람들이 살갑게 느껴졌다.
의식을 마치고 난 아히 알루아의 얼굴에는 신기는 사라지고 보통 여자의 모습만이 남아 있다. 천대받는 우리네 무당이나 최고의 지위를 누리는 이곳의 코미안이나, 신과 인간의 중재자이자 치유자로 살아가자면 많은 인간적인 부분들을 스스로 접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히 알루아의 허탈한 표정에 가슴 가득 연민이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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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식의 아프리카 문화기행 | 코트디부아르 ② 희생제
의외로 역사깊은 이슬람 문화
탱골란 마을을 찾은 데에는 코미안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 대부분이 이슬람 교도들인 그들에게 가장 큰 종교축제라 할 수 있는 ‘희생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특별히 탱골란을 고집한 이유는 도시화하지 않은 희생제와 더불어 서아프리카인들의 소박한 삶과 정취를 지니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희생제를 보기 위해 찾았던 탱골란에는 뜻밖에도 5일장이 열리고 있었다.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장이 서면 가장 마음이 들뜨는 사람은 아이들인가 보다. 이곳 어린이들은 어린 나이임에도 노동에 익숙하다. 9세가 넘으면 부모 대신 집안 살림을 맡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자라고 스스로 크는 이 아이들에게 시장은 가장 큰 놀이터 같은 것이다.
어린 동생을 들쳐 엎고 잠시나마 장 구경을 나온 아이들과 몇 푼 안 되는 동전을 땀이 차게 손에 꼭 쥐고 무엇을 살까 고민하는 아이, 이곳저곳 몰려다니며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들의 모습은 정겹기 그지없다.
자전거를 타고 장으로 가는 사람, 며칠씩 모아온 듯한 달걀 한 판을 들고 찾아오는 아낙네들, 머리에 재봉틀을 이고 와 옷을 수선해 주는 사람, 마치 시장이 축제처럼 들뜨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울긋불긋한 열대의 과일들, 아름다운 기하학적 무늬의 옷들, 신기하게 생긴 목걸이와 팔찌, 점토로 만든 그릇들, 어떤 사내는 그 자리에서 눈깜짝할 사이에 옷 한 벌을 만들어 내고, 여자들은 곡식을 이고 와 저잣거리를 채우며, 현란한 나들이옷을 입은 사람들이 길거리를 가득 메워 좋은 눈요깃감이 되고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부족사회의 영향으로 아직도 마을의 추장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나를 몹시 따랐던 꼬마 올가는 이런 사실을 이야기해 주었고, 나는 담배 선물을 준비하여 추장을 만나보았다. 차 대접까지 받으며 그는 한 마을 지도자답게 한국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좋은 사진을 많이 찍어 그것을 본 사람들이 이곳을 많이 방문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마을에 머무는 것을 공식적으로 허락해 주었다.
추장의 절대권력에 관한 사실은 마을 한켠에 마련되어 있는 박물관 같은 건물에서 더욱 알 수 있었다. 시녀와 함께 촌장이 앉아 있고 살인한 자의 목을 치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었다. 현대화하고 성문법의 발전으로 촌장의 힘은 비록 약화하였지만, 서아프리카에서는 여전히 추장은 중요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희생제가 열리는 날은 아침부터 온 마을이 부산했다. 우리의 추석과 설 명절처럼 이들에게 희생제는 큰 축제였다. 여인네들은 익숙한 솜씨로 며칠 전부터 ‘그렌’이라는 노란색 열매와 ‘얌’이라는 나무뿌리로 음식을 준비하고, 집집마다 희생제에 쓸 염소를 손보기에 여념이 없던 터라 그 준비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마을 사람들은 색동옷처럼 빛깔이 현란한 전통의상과 무슬림 복장으로 말쑥하게 차려 입고 여자들은 머리와 온몸을 가리는 각양각색의 차도르를 두르고 희생제가 열리는 마을 공터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중동의 무슬림들과 다르게 그들의 복장은 아프리카를 닮은 자연의 색 그대로였다.
음식, 제물로 쓸 염소 준비로 온 마을 들썩… 죄 씻는 거룩한 하루
아프리카에서 이슬람의 역사는 의외로 깊다. 이미 이슬람은 8세기 초 북아프리카를 정복했다. 정복지 주민의 이슬람교 개종은 서서히 진행되었지만 이슬람 제국이 분열한 후에도 이슬람 세계는 넓어져 갔다. 이슬람 세계를 넓힌 것은 단순히 정복만이 아니라 상인들과 신비주의 교단들의 힘이 컸다고 한다. 그들은 순교할 것을 겁내지 않고 아프리카에 이슬람을 전도하였던 것이다. 덕분에 내륙 지방의 아프리카에서도 이슬람을 전파하였다.
희생제를 취재하러 온 나는 처음부터 그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는데, 그중 자신을 야울루라고 소개한 청년은 희생제가 열리기 며칠 전부터 희생제에 대하여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예배를 올리기 전에 수도꼭지를 붙잡고 열심히 씻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나는 물었다.
“저것은 뭡니까?”
“우두예요.”
예배를 알리는 음악이 마을에 울리고 “알라는 위대하시다, 알라에게 복종하라, 마호메트는 하느님의 사도이시다”라는 경배의 말과 함께 고통스러운 삶을 알라에게 기대려는 마을 사람들의 예배가 시작되었다.
두 손을 내려 배꼽 바로 아래에서 오른손을 왼손 위에 포개는 동작, 두 발을 조금 벌리고 서서 두 손을 양쪽 귀로 모으고 올리는 동작, 이마를 바닥에 닿게 하는 동작, 손바닥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머리를 직각으로 구부리는 동작, 그리고 쉬는 동작처럼 무릎을 꿇고 앉은 자세가 예배의 기본 동작이다. 그리고 동작이 바뀔 때마다 알라는 위대하시다는 말을 함께 하였다.
염소 잡는 행사는 예배가 끝난 뒤에 이루어졌다. 준비한 염소는 몇 초 후면 자신이 이슬람 교도들의 죄를 씻는 희생양이 될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불안에 떠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얌전하게 앉아 있다.
예배를 주관하는 제례장이 날카로운 칼로 능숙하게 염소의 목을 낚아채고 단번에 비명소리조차 날 틈도 없이 찔렀다. 염소는 마치 모든 인간의 죄 갚음을 대신하듯 많은 양의 피를 흘리면서 죽어갔다.
원래 이슬람 교도들은 ‘피는 더러운 것’이라는 생각에 염소의 피가 다 빠져나올 때까지 그대로 내버려둔다. 염소의 붉은 피는 탱골란의 붉은 흙 사이로 스며들고 마침내 염소는 껍질이 벗겨지고 작은 토막으로 잘렸다. 그리고 우산을 쓴 채 다시 한번 코란을 읽은 후 이 행사는 끝을 맺었다.
희생제가 끝나자 의식은 축제의 분위기가 되었다. 나는 들뜬 마음에 야울루에게 “당신도 자신의 죄를 씻어 달라고 기도 드렸나요”하자 야울루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오. 우리 모두의 죄를, 그리고 당신과 나의 죄를 모두 기도했지요…”
탱골란에서 보낸 시간은, 소박하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서아프리카인들의 정서와 생활방식을 대할 수 있는 귀중한 나날이었다. 돌아오는 지프 안에서 야울루의 말이 화두처럼 내 귓가를 맴돌았다. 나 자신의 존재도 잊고 사는 바쁜 세상살이에 너와 함께하는 세상, 그래서 우리가 되어 함께 살아가야 함을 희생제는 일깨워 주었다.
정령과 신자들을 연결해 주는 매개자로서 초능력적 주술의 힘을 지닌 여사제다. 코미안이 되면 경제적인 안정이나 사회적인 명예가 주어지기는 하지만 엄격한 원칙들로 사생활이 자유롭지 못하고 정령에게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는 등 고달픈 삶을 살아간다. 이런 까닭들로 신의 부름을 거역하게 되면 건강이 악화되어 평생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게 되어 결국은 받아들이게 된다고 한다.
좀비
부두교에서 죽은 사람의 떠도는 영혼을 말하는 것으로 부두교인들은 이를 ‘주술적 방법으로 무덤에서 부활하여 일종의 의지력 없는 기계처럼 들판에서 농사일을 하는 데 이용되는 시체’라고 생각한다. 어떤 부두교 사제들은 희생 제물의 피부에 특수한 약을 투입하여 여러 시간 동안 신체적 마비 상태에 빠지게 함으로써 ‘좀비’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트 디부아르(Cote d’Ivoire)
북쪽으로는 말리, 동쪽은 부르키나파소-가나, 서쪽은 기니-라이베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남쪽은 기니만에 면하는 서아프리카에 위치하는 나라. 면적 32만2463km2. 인구 1581만8000명(1999). 인구밀도 49.1명/km2(1999). 정식 명칭은 코트 디부아르 공화국이며, 영어권에서는 아이보리 코스트(Ivory Coast)라고 부르는데 그 연유는 15세기 후반부터 주요한 산출품에 따라 지명을 구별한 것에 기인한다. 상아를 산출한 이곳 해안지역은 상아해안(象牙海岸)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기도 한다.
구한말 명성황후의 총애를 받은 무녀 진현보군(眞顯寶君)의 것으로 추정되는 옷이 발견돼 9일 공개됐다.
서울 정동제일교회 역사편찬위원회 김대구 권사는 “아서 노블 선교사의 부인이 수집해 미국으로 가져갔던 이 옷을 최근 아펜젤러노블기념재단(ANF)으로부터 입수해 국내로 다시 들여왔다”고 말했다.
그는 “노블의 후손들은 이 옷이 구한말 톱(top) 무당이 입던 것이라고 설명했다”면서 “전문가들에게 확인한 결과 이 옷에 왕실에서만 쓰는 비단(청라)이 사용되고 고관대작의 관복에나 있는 문양이 새겨진 것으로 보아 왕실의 총애를 받아 대군의 지위에 오른 당시 유일한 무당인 진현보군이 왕실로부터 하사 받은 옷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진영군(眞靈君)으로도 불리는 진현보군은 명성황후로부터 총애를 받아 국(國)무당의 지위에 올랐다는 정도만 사학계에 알려져 있다. 정동제일교회 목사 출신으로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외무부 차장을 지낸 현순(玄楯·1880∼1968) 목사는 자서전에 진현보군이 명성황후의 총애를 받으며 세도를 부렸다는 사실을 자세한 기록으로 남겼다.
서울대 국사학과 이태진(李泰鎭) 교수는 “톱(top)무당이란 표현만으로 꼭 진영군을 지칭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당시 그런 칭호를 받을만한 이는 진영군 정도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동제일교회는 이 옷과 1882년 고종의 하사품으로 추정되는 태극기, 최근 발견된 구한말 선교사 아펜젤러의 일기, 아펜젤러와 노블이 찍은 1000여점에 달하는 사진 등을 13일 서울 인사동 중앙감리교회에서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둥둥둥…. 방울 달린 북(헹게레크)을 치며 몽골의 강신무(降神巫) 발지마가 신을 청한다. 동서남북에 흩어져 있는 몽골의 1백2신을 불러모으는 의식이 신기하리만큼 우리의 굿과 비슷하다.
26일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1층 강당에서 열린 몽골의 진혼제. 발지마가 쓴 술달린 모자(말라가이)도 황해도 무당이 쓰는 모자 「마래기」와 닮은 꼴이고 몽골의 무속에도 수명을 관장하고 인간에게 복을 주는 칠성신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절로 무릎을 치게 된다.
이어 열린 한국의 진혼굿인 서울 새남굿. 입구에서 무대까지 오색 천을 드리워 망자의 영혼이 타고 올 구름다리를 만들고 십대왕의 초상을 그려 굿당에 걸었다. 호기심에 끌린 대학생부터 도심의 굿판을 보러 온 노인까지 3백여명의 관객들은 점심도 거른 채 자리를 뜰 줄 몰랐다.
한국과 몽골의 무(巫)의식 비교를 통해 두 나라 문화교류의 역사와 우리 공연예술의 뿌리를 찾아보는 「한―몽 문화교류 2000년―무(巫)의식 심포지엄 및 합동공연」.
24,25일 민속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국제 심포지엄에는 한국과 몽골의 무속 전문가들이 두 나라 무속의 역사와 구조 연계성 예술성에 관한 다각적 접근을 시도했다. 한국에서 양혜숙(梁惠淑)원장과 김구산(金龜山)국제불교문화원장 조흥윤(趙興胤) 권오성(權吳聖)한양대교수 윤광봉(尹光鳳) 최길성(崔吉成)일본히로시마대교수, 몽골측에서 푸렙몽골과학아카데미교수 오르트나삼 몽골문화부 국제협력국장 등이 참석했다.
27일 오전11시 국립민속박물관(몽골 나라굿과 만구대택굿), 28일 오후1시 경기도 문화예술회관 야외무대(몽골 마을굿과 경기도당굿). 02―765―84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