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권 인목대비와 상궁 개시
1부, 운명의 덫
毒殺(독살) 3
이런 이야기는 이이첨의 귀에도 속속들이 들어갔다.
그가 요처마다 풀어놓은 심복들이 밤이면 그의 사랑방에 모여들어 시정에 떠도는 여론을 속속들이 고해 바친 덕분이었다.
그의 심복 가운데는 개시의 의붓아비 유몽옥이란 자가 있었는데, 그가 어느 날 이이첨에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잠시 피신해
있을 것을 은근히 권했다.
"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의금부에 잡혀들어간 서정익이란 자가 아마 초죽음을 당했나 봅니다. 다행히 목숨을 부지하여
살아 나온다 하더라도 사지가 온전할 리 없다 하더군요. 혹 무슨 일이 있기 전에 잠시 피해 계심이 어떠신지요."
"아니야, 그건 저들이 우리의 책략에 말려들었을 따름이야. 이제 때가 되었는데 몸을 피한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이보 전진하기 위해 일보 후퇴한다는 말은 병법에도 있는 말입니다. 그저 잠시만 피신해 계시지요."
"나는 이미 내가 나아갈 방향을 분명하게 정한 몸이야. 설령 일이 예상과 같이 않다 하더라도 자네가 염려할 바는 아닐세."
이이첨은 이렇게 말하고 손짓으로 유몽옥을 가까이 불렀다.
"내일 저녁에 자네 부인을 내게 데리고 오시게."
"예?"
"왜 그렇게 놀라나?"
"저 또한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마는 제 집사람은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천한 계집입니다."
"그렇게 말하지 말게. 자네들이 지금은 비록 보잘 것 없는 천예라 하나 오래지 않아 반드시 귀한 신분이 될 것이야."
"듣기만 해도 황공한 말씀이옵니다."
유몽옥의 얼굴이 흥분으로 금세 붉어졌다.
이이첨은 그런 유몽옥의 어깨를 두어 번 다독거려 주었다.
"내가 자네 어부인을 만나서 긴요히 당부 드릴 일이 있어 그런다네."
이튼날 유몽옥은 자기 부인을 데리고 이이첨 앞에 나타났다.
키가 작고 이목구비가 오종종한 여자였다. 훤칠한 키에 이마가 반듯한 개시와는 생판 다른 모습이었다.
이이첨은 이 여자와 유몽옥을 내당으로 데리고 들어가 다과와 주안상을 내어놓고 그들에게 잘 대접한 뒤 말했다.
"내가 김상궁을 만나 긴히 의논할 이야기가 있어 그러는데, 무슨 좋은 방도가 없겠소."
"그 아이가 전에는 종종 다녀갔사옵니다. 하오나 주상 전하의 환후가 위중하시고부터 통 걸음이 없었습니다."
"부인께서몸이 아프다고 연통을 넣어 보시지요. 대궐에 매인 몸이라고는 하지만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 계신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면 잠시 잠깐이라도 다녀가지 않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나으리."
집으로 가는 길에 유몽옥은 무당 수련개를 찾아갔고, 수련개는 그 이튼날로 대궐로 들어가 개시를 만나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로부터 닷새 뒤에 개시가 대궐에서 나왔다.
연락을 받은 이이첨은 그 즉시 유몽옥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물리친 뒤 개시와 단둘이 마주앉았다.
"내가 김상궁을 만나고 싶어 잠시 허언을 꾸몄습니다. 어머니께서 위중하시다는 전갈을 받고 몹시 놀라셨을 줄로 압니다."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꽤나 놀란 것은 사실입니다."
"그 점에 대하여는 내가 사죄를 드리지요."
이이첨은 목소리를 조금 가다듬었다.
"내가 밖에서 듣건데 세자 저하께서 주상 전하께 아침 문후를 드리러 가셨다가 합문 밖에서 별안간 피를 토하셨다 하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예."
"전하께서는 요즘도 세자 저하의 문후를 받지 않으십니까?"
"아닙니다. 어느 때는 흔쾌히 문후를 받으시기도 합니다. 그러시다가도 갑자기 돌변하여 문후를 중단하라 호령하시는 바람에
내관이며 상궁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거리기 예사지요."
"이거야 원.....,"
이이첨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그를 개시는 고개를 들어 가만히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길이 허공에서 잠시 마주쳤다가 풀어졌다.
"주상 전하의 병세가 심상치 않다고 들었습니다. 김상궁이 보시기에 요즘 주상 전하의 병세는 어떻습니까?"
"전의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엿들어 보면 회복을 기대하기란 어렵다고 합니다. 앞으로 보름이 고비라고 합니다."
"보름이라......,"
한동안 천장에 쏠려 있던 그의 눈길이 개시의 이마에 가 멎었다.
"세자 저하께서는 장차 이 나라의 종사를 이끌어 가실 분입니다. 김상궁이 가까이 계시니까 잘 보필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개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자 저하께서 만에 하나라도 심약해지신다면 이보다 더한 큰일이 없습니다. 밖에서 누가 무슨 소리를 지껄이든 조금도 개의치
마시고 항상 담대하고 의연해야 한다고 김상궁이 부추겨 주십시오."
"잘 알겠습니다."
"지금 도처의 유림들이 줄을 이어 세자 저하께 충성을 맹세하고 있다는 말씀도 필히 전해 주십시오."
"그 말씀을 전해 들으시면 크게 힘이 되실 줄로 압니다."
이이첨은 목소리를 은근히 낮추었다.
"어차피 떠나야 할 사람이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바람에 조정에 앉아 있는 소인배들이 엉뚱한 욕심을 품고 일을 자꾸 그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마음에 도둑이 들었으니 좌우를 분간 못하는 소치입니다. 무슨 조치를 취해야겠어요. 안 그렇습니까, 김상궁?"
이이첨의 눈이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그런 그를 말없이 바라보면서 개시는 자신도 모르게 손끝을 바르르 떨었다.
4
개시와 헤어진 이이첨은 그 길로 유희분을 찾아갔다.
밤이 이슥하여 거리에 인적이 끊긴 지 이미 오래였다.
"제가 오늘은 여기서 묵을까 합니다. 드릴 말씀도 많고,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습니다."
"그러시지요."
오래지 않아 주안상이 들어왔다.
두 사람은 한동안 침묵 속에서 술잔을 서너 순배 주고받았다.
이이첨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임금이 유고에 계시면 세자가 임금을 대신하여 국사를 보살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조정의 형세를 보자 하면
저들은 임금과 세자 사이를 서로 의혹케 하고, 그 틈을 이용하여 자기네들 뜻대로 국사를 결단하고 있으니 종사의 앞날을
염려하지 않을 수없습니다."
"내가 우려하는 것도 바로 그 점이 아니겠습니까."
유희분은 함숨을 내쉬었다.
"지금 백성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정원군의 사저에 왕기가 서렸다느니,
임해군이 무뢰배들을 끌어모아 기회를 엿본다는 흉흉한 소문마져 돌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니, 그게 사실이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그와 같은 이야기를 꾸며내겠습니까. 모두가 내 귀로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관송은 그와 같은 이야기를 대체 어디서 얻어 듣습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주변에 사람을 모아들이면 됩니다. 장차 큰일을 도모하려면 수족처럼 따르는 심복이 있었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오래 전부터 이런 날이 있을 것에 대비하여 나름대로 많은 사람을 사귀어 왔습니다. 뜻이 아무리
크다 해도 곁에 거들어 주는 사람이 없으면 모두가 허사 아니겠습니까, 세상에 독불장군이란 없는 법입니다."
"지극히 옳은 말씀입니다."
이이첨은 그런 유희분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비위 맞추어 주려고 마지못해 응대하는 수작이 아니라 진심으로 탄복하는 빛이 그의 얼굴에 역력히 드러나고 있었다.
이이첨은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나는 세자 저하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작정한 몸입니다. 그것이 곧 이 사라의 종사를 지키는 바른 길이구요."
"고맙소, 관송, 세자 저하께서도 관송의 그와 같은 충절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이이첨은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일 날이 밝으면 동궁전에 드십시오."
"그야 어렵지 않습니다만........?"
"세자 저하께서 주상 전하께 직접 주청하셔서 중벌로 다스려야 할 사람이 두어 명 있습니다."
"그게 누구누구인가요?"
"내암 선생과 나 이이첨입니다."
유희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둘 정도로 만족하지 않는다면 석서도 함께 중벌로 다스릴 것을 주청하셔도 무방합니다."
석서는 이경전의 호다.
"당치 않으신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 곁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암 선생, 관송, 게다가 석서까지 탄핵을 받아 귀양이라도 가게
된다면 세자 저하를 보필해야 할 핵심이 다 빠지지 않습니까."
"그게 아닙니다."
이이첨은 태연하게 술잔을 기울였다.
"사리가 그러한데도 그게 아니라니요?"
"나도 물론 귀양을 가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런데요?"
"세자 저하께서 먼저 자식된 도리를 다하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상 전하께서도 더 이상 노여움을 품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금 조정을 장악하고 있는 소인배들도 경계심을 늦출 것입니다. 지금이 매우 적절한 호기입니다."
그러나 유희분은 여전히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어째 찜찜한 구석이 없지 않군요."
"크게 염려하실 일이 아니래두요. 내가 처음에 양위설을 터뜨리자고 제의했을 때도 그러시지 않았습니까, 잘못하면 일을 그르칠
뿐이라구요, 하지만 지금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당황한 저들은 자중지란에 빠져 애꿏은 젊은 선비 하나만 요절을 내고
말았습니다."
"그야 그렇기는 하지만......,"
"두고 보십시오. 결코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내 예상이 맞아떨어진다면 길게 잡아 보름이나 한 달 정도면 충분합니다. 나는
세자 저하 곁으로 반드시 다시 돌아옵니다."
이이첨은 조금도 거침이 없었다.
"정히 그렇다면 내 관송의 뜻을 쫓으리다 그 대신 예상과 달라서 일이 여의치 못하더라도 내게 원망은 품지 말아야 합니다."
"대세는 이미 기울어졌습니다. 주상도 결국은 지금의 상황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요. 다만 시일이 좀 걸릴 따름이지만."
이튼날 아침 이이첨을 보내고 유희분은 동궁전으로 들어갔다.
세자와 마주앉은 그는 유영경을 탄핵하라는 상소를 올려 물의를 빚은 정인홍과 그를 부추긴 이이첨, 이경전을 탄핵하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그런데 세자보다도 곁에 있던 세자빈 유씨가 깜짝 놀라 반문했다.
15부에서 계속.....
첫댓글 잘 보고 듣고 알고

나감니다 





수고 하셨읍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감니다,
역사가 현실과 연맥 상통하는가 봅니다.
좋은글 고맙습니다,잘보 고갑니다.
신국 감사합니다.
신국.14.좋은 글 감사한 마음으로 즐감하고 나갑니다 수고하여 올려 주신 덕분에
편히 앉아서 잠시 즐기면서 머물다 갑니다 항상 건강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잘 보구갑니다
신국 잘보고 갑니다.
즐감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