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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왕생했다가 용화세계에서 만나자
굉안(법안, 강릉 백운사 주지)
1) 첫 중국 방문과 관정 큰스님과의 만남
1997년 인도 성지 순례를 다녀와 법회에서 그 감격을 전하여 많은 신도들도 한 번 가보고 싶어 했다.
그런데 그 법회에 참석한 강릉의 최 거사가 극락에 다녀온 이야기가 쓰인 책이라며 「극락세계 유람기」라는 책을 한 권 주었다.
나는 그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언제나 이런 큰스님을 뵐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큰스님이 이미 한국에 두 차례나 오셨다 가셨고, 그 일은 군위 압곡사 자해 스님이 맡아서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지체 없이 압곡사를 찾아가 큰스님을 뵙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해 관정 스님을 직접 뵐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자해 스님을 비롯하여 여러 분이 중국 복건성에 계신 관정 스님을 찾아가는데 함께 가자고 제안해 온 것이다. 그 때 광덕 거사를 비롯하여 몇 분이 적극적으로 나를 추천하여 첫 중국 방문이자 관정 큰스님을 처음 뵙는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1997년 10월 전국에서 모인 18명이 자해 스님의 안내에 따라 중국에 가서 먼저 복건성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무이산을 찾았다. 무이산은 중국의 이름난 관광지로 아름답기 이를 데가 없는데다, 불교 . 도교 . 유교의 본거지로도 유명하다. 이 무이산에서 불과 몇 시간만 가면 남평시가 있는데, 관정 큰스님이 처음 출가한 개평사가 있다. 개평사는 근대 고승인 허운 화상이 출가 전 수행했던 곳이고, 관정 큰스님도 여기서 허운 화상을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했던 사찰이다. 바로 이 절에서 큰 행사가 있었기 때문에 관정 큰스님이 우리를 특별히 초청하여 가게 된 것이다.
10월24일 열린 대웅보전 . 원통전 . 천왕전 3불당 낙성식 및 점안식은 이절에서 아주 큰 행사였다. 이 점안식에는 우리 뿐 아니라 미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 같은 여러 나라에서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낙성식을 마치고 저녁에 호텔에서 우리 참가자들은 특별히 관정 큰스님으로부터 마정수기를 받았다. 나는 당시 큰스님을 뵙고 유공 스님을 맡겨 공부시키고자 했기 때문에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관정 큰스님을 뵈었다. 그리고 ‘나는 업장이 두꺼우니 업장을 벗게 해 주십시오’라고 큰 발원을 마음에 새기며 마정수기를 받았다. 드디어 큰 스님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며 내 머리에 마정수기를 하시자 갑자기 내 머리에서 모든 무거운 기운이 다 내려가고 몸과 마음이 시원한 상태가 되면서 나도 모르게 감격의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나로서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상황으로 몸과 마음이 모두 깨끗한 물로 씻어낸 것처럼 상쾌하고 가벼웠다. 그 때 나도 모르게 흘린 눈물은 몸과 마음에서 씻긴 다생겁의 업보였으리라고 본다. 당시 함께 갔던 부산 보살도 내가 마정수기를 받으며 눈물 흘리는 것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고 이야기 하였다.
2) 1998년 이후 4번의 백운사 방문
그리고 귀국한 뒤 관정 큰스님이 백운사에 4번 다녀가셨다. 오시면 신도들과 함께 여법하게 법회를 하고 마정수기를 하였으며 재를 지내기도 하였다. 당시 스님이 맥사암사 불사를 하신다고 해서 행사에서 나온 돈은 물론 불전함에 든 돈까지 모두 보시를 하였다. 관정 큰스님이 “너희들도 경비를 써야지!”라고 했지만 모두 드렸다.
우리 절에 처음 오신 것은 1998년 8월 22일 한국에 3번째 오셨을 때이다. 나는 당시 일본에 갔다가 바로 관정 큰스님이 도착하신 날에야 돌아왔는데 이미 우리 절에 오셔서 계셨다. 큰 절을 올리고 왕림해 주신 것에 대해 큰 감사를 드렸다. 작년 중국에 갔을 때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 드렸더니 자신도 가방에서 두꺼운 앨범을 꺼내서 내 사진을 찾아보시고 나서 내가 드린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시며 좋아하셨다. 다행히 내가 없는 사이에도 상좌 스님이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해 주었다. 당시는 방문 기간이 10일 밖에 되지 않았지만 마침 정선 정토암에 오신 길에 멀지 않은 우리 절까지 방문해 주셨다. 당시 정토암의 굉덕 스님과 어머니이신 굉원 스님도 함께 오셨다. 지리산 금선 토굴 굉천 스님도 참석하셨다.
큰 법회는 준비하지 못하고 가까운 신도들만 불러 마정수기를 하였다. 관정 스님은 그림을 많이 가지고 오셔서 하나하나 사인을 해서 나누어 주셨다.
8월 22일 강릉 백운사 법회를 마치고 23일 서울로 올라가 24일 김포공항에서 출국하셨다.
두 번째 방문은 미리 연락을 받고 최선을 다해 준비를 했다. 1999년 9월 7일부터 9일까지 사흘동안 우리 절에 머무셨다. 법회에는 우리 신도 말고도 주변 절과 서울에서 많은 신도들이 극락에 다녀오신 스님이 법회를 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참석하였다. 강설은 정토선을 통해서 극락에 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말씀해 주셨다. 아직도 햇빛이 강렬해 더운 날인데도 불구하고 선풍기 바람에 의하며 긴 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강설해 주셔서 참석한 불자들이 큰 환희심을 느꼈다. 그 자리에 참석하신 상수 제자 자해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역사상 극락을 다녀오신 분이 없었는데, 유일하게 다녀오신 관정 큰스님의 법문을 들으신 여러분은 축복을 받은 불자들입니다.”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당시 통역은 강윤철 거사가 해 주었다. 법회가 끝나고 세 사람이 질문을 하였다.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법문을 모두 비디오로 녹화를 하였기 때문에 참고할 수 있다.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 한국말로 옮긴 「극락세계 유람기」를 나누어 드렸다.
강릉역에 도착하실 때부터 상좌 스님이 얼마나 극진히 모셨는지 관정 큰스님이 즐거워하시며 말씀하셨다.
“한국에서 이렇게 큰 대접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다”
“다음 이 절 주지는 유공(관정 큰스님 제자들의 법명가운데 유자 항렬)이다.”
그리고 유공 스님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글을 써 주셨다.
惟一深修行 오로지 한마음으로 깊이 수행하라.
空門無事牽 공문(空門)에는 매이는 일이 없나니
尼一心念佛 너는 한마음으로 염불하면
姑直上白蓮 곧바로 (극락의) 흰 연꽃 위에 올라가리라.
이 글은 유공에게 큰 화두를 던져 준 것인데 아직은 실천을 못하고 있다. 관정 큰스님은 그 때 유공이 어떻게 수행하고 어떤 발원을 가지고 수행할지 뚜렷한 길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큰스님 말씀대로 공문에 어떤 것이 걸리겠는가? 다만 사람들이 전생부터 가지고 온 알음알이와 업장 때문에 큰 법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큰스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일심염불하면 곧바로 극락에 태어난다.’
나모아미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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