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이란 한 글자는 음을 간직하고 성품을 기르며 분명히 성찰하는 것으로 범부에서 성인에 이르는 지켜야할 도(達道)이다.
「존은 우리의 마음가짐(存心)이고, 수양함이며, 「성은 반성. 성찰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끊임없이 양반할 수 있어야 범부에서 성현의 과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범부를 벗어나 성인으로 들어가는 원리 원칙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그런데 범부의 경지(보통사람이 처하는 평범한 지위)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온갖 경계가 뒤얽혀 나타나는데, 한번 알아차리지 못하면 스스로 우발적으로 언행에 신중함을 잃으면) 이치에 어긋나는 갖가지 감정과 생각이 눈 깜짝할 사이에 생겨남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탐 · 진 · 치• 망상 등 그릇된 생각이 갑자기 발동한다.).
우리가 현전하는 모습은 무지하고 용렬한 박지 범부입니다. 이미 범부 지위에 있는 한 우리는 성과 명을 쓰는 공부가 매우 적어 일상생활에서 육근육진 경계에 접촉하는 동안 하나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릇된 일을 하게 됩니다. 하나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마음속에서 우치癡번뇌가 생겨납니다. 이것을 의업이라 합니다. 그리고 몸과 입으로 갖가지 죄업을 짓게 마련입니다. 탐 · 진 · 치 · 망념 등등의 그릇된 생각이 갑자기 발동합니다. 왜 이러한 것이 생깁니까? 우리에게 알아차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알아차릴 수 있다면 그러한 생각들이 생길 리가 없습니다.
몇 사람이 알아차릴 수 있습니까? 알아차릴 수 있음은 우리가 늘상 말하는 관조공부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관조공부를 알아차림(察)」이라고 합니다.
《금강경>에서 말씀하셨듯이 "무릇 모든 상은 다허망합니다(우리가 만약 일상생활에서 경전 상 교훈의 표준에 의지해 마음속과 바깥경계를 알아차리면 절대 탐 · 진 ·치·망념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를 성과 명이라 하고, 이를 보살도를 행함이라 합니다. 능엄경>에서도 「관상원망」·「관성원진이 여덟 글자를 말하는 두 마디 경문이 있습니다.)
우리가 시시각각 제기할 수 있어야 경계상이 현전하고 육근과 육진이 서로 접촉할 때 즉각 상이 허망하고 성이 진실함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 안에는 망념이 있을 리 없고, 탐 · 진 · 치 · 교만이 있을 리 없습니다. 이것이 곧 알아차림」이자 앞에서 말한 성찰공부입니다. 이 점을 부디 기억해두어야 합니다. 뜻을 잘못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려서 이렇게 당신이 백년을 알아차려도 여전히 범부이면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곧 공부를 할 줄 아는 것과 공부를 할 줄 모르는 것의 구별입니다. 우리가 대승경론을 독송하여도 이익이 있는지 여부는 일상생활에서 경전의 교훈에 따라 실천하는지 여부에 달려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일단 생기면 진심心은 끝내 그것에 뒤덮여 가둬지고, 쇠에 녹이 슬듯이 거울에 먼지가 끼듯이 일편 천진한 마음은 끝내 사람의 욕심에 의해 가려지는 것이다.)
우리는 선과 악, 옳고 그름, 이해와 손해를 깨달을 수 없으면 "진심은 끝내 가둬지고 덮여지고 맙니다.” 불경에서 늘 진심으로 무명번뇌에 덮여버리고 만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쇠에 녹이 슬듯이 거울에 먼지가 끼듯이 일편 천진한 마음은 끝내 2사람의 욕심에 의해 은폐되는 것이다.” 쇠와 거울은 진심과 같습니다. 녹에 슬고 먼지가 끼는 것은 우리가 탐 · 진 · 치 · 무명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오욕육진五欲塵이 우리의 진성眞性을 덮고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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