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모임에서도 화두는 역시 좌우 이념갈등이었다. 논쟁 끝에 한 친구가 “좌우 개념이 프랑스혁명 후 처음 나왔을 때…” 운운하며 역사성을 들먹이자 좌중에서 일갈이 터져나왔다.
“어허, 무식한 소리. 동양에는 수천년째 내려오는, 서양보다 훨씬 철학적인 좌우 개념이 있는데.”라는 호령이었다. 주인공은 자리의 좌장 격인 지한(止漢) 이준영 선생. 정통 한학자이자 출판사 자유문고의 대표인 그는 각종 고전을 들먹이며 동양 전통사상에 깃든 좌우 개념을 설파했다. 동양의 좌우 개념은 통치자(군주)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통치자는 5방(五方:동서남북+중앙)에서 정중앙에 자리해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해 앉는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신하들은 그 몸이 평안도에 있건 강원도에 있건, 임금의 지시를 받들 때는 한양 쪽이 아니라 무조건 북쪽을 향해 두번 절하는(北向再拜) 것이다.
남쪽을 향해 자리한 군주의 왼쪽이 곧 동쪽이다. 오행상으로는 나무(木)에 해당한다. 따라서 좌(左)란 동쪽이자 나무이므로 태어나는 곳, 생산하는 곳이다. 사회계층으로는 노동자·농민이 이에 해당한다.左는 늘 생산하고 새롭게 발전하기에 정체되는 법이 없다. 반면 군주의 오른쪽은 서쪽이요 오행으론 쇠붙이(金)이다. 그러므로 우(右)가 하는 일이란 노동자·농민의 생산물을 많이 거둬들여 통치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같은 의무가 도전을 받으면 右는 쇠붙이(무기)를 휘둘러 살상하는 일조차 마다하지 않는다. 군인·경찰 등이 이에 속한다.
좌우 개념은 관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조선시대에 문무를 나누어 양반 제도를 운영했는데 문반을 동반이라고 했다. 문(文)은 근본적으로 左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무반은 서반이자 호반(虎班)이다.‘좌청룡 우백호’에서 보듯 호랑이가 서쪽을 상징하는 동물이기에 호반인 것이다. 무(武)는 두말할 나위 없이 右이다. 벼슬에서도 좌우는 문무에 따라 우선순위가 달랐다. 문관 서열로는 좌의정·좌승상이 우의정·우승상보다 늘 윗자리였다.左를 높인 결과이다. 반대로 무관 서열에서는 우장군이 좌장군보다 윗자리였다.
동양 전통사상에서 左는 생산과 발전을 의미한다. 곧 진보이다. 상대편에 선 右는 치안·국방을 담당하며 체제의 유지·발전에 노력한다. 곧 보수이다.
한바탕 강의가 끝난 뒤 논의는 현실정치로 돌아왔다. 이같은 동양의 좌우사상이 21세기 한국 정치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가가 새 화두가 됐다.
대통령은 중도(中道)를 지켜야 한다. 중도란 좌우의 사이에 어중간하게 선다는 게 아니다. 여기서 ‘중(中)’은 ‘꼭 들어맞는다.’라는 뜻이다. 도(道)에 꼭맞게 행동하는 게 중도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출신이 左이건 右이건 일단 지도자 자리에 오르면 좌우를 아울러 균형을 잡아주어야 한다.
그러면 학자·언론인 등 지식계층은 어찌해야 하는가. 지식인은 당연히 左에 자리잡아야 한다. 전통사상에서 학자는 벼슬길에 올랐건 초야에 있건 左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였다.右는 지키는 일이 본분이므로, 지식인이 右로 돌아서는 행위는 스스로 생명을 끝내는 짓이었다. 이 시대에는 左에서 대통령을 배출하더라도 그 진영은 左에 계속 남아 발전을 지향해야 한다.左인 대통령을 따라가,左가 새로이 右가 되면 균형이 무너져 혼란이 생긴다. 때 이르게 무더운 밤, 새롭게 눈뜬 동양의 좌우 사상에 심취해 토론은 끝간 데를 모르고 이어졌다.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7062103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