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렐류드의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강렬하지만 섬세하고, 부드럽지만 날카롭고, 따끈따끈하지만 싱그러운 서정적인 멜로디와 따뜻한 정감이 느껴진다. 일상에서 얻은 다양한 감성과 즐거움을 재즈라는 형식을 빌려 자유롭게 연주한다. 유연한 테크닉과 폭발적인 에너지, 그리고 풍성한 재즈 사운드를 들려주면서도 어렵지 않게 전달하는 것이 이 밴드만의 매력이다. 이렇게 프렐류드만의 색깔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버클리 음대 시절부터 함께 연주해오며 오랜 기간 쌓아온 팀워크 덕분일 것이다. 우리나라 재즈 밴드 중 그 멤버 그대로 8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는 밴드는 찾기 어렵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공연과 음반 활동을 해야 하는데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지 않음에도 이들이 지금껏 꾸준히 활동을 해올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을 대표하는 밴드가 되어야겠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프렐류드’가 결성된 것은 2003년, 버클리 음대에서 재즈 퍼포먼스를 공부하던 고희안(피아노), 최진배(베이스), 리처드 로(테너 색소폰), 라그리마스 주니어(드럼) 등 2명의 한국인과 교포 그리고 외국인 멤버가 의기투합하면서였다. 한국과 미국에서 흩어져 활동하다 방학하면 학기 중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으로 비행기표를 끊어 한국 무대에서 뭉쳤다. 재즈 클럽과 EBS 〈공감〉 등에서 연주하던 이들은 2005년, 보스턴의 지하 스튜디오에서 단 하루 만에 녹음한 데뷔작 〈Croissant〉을 발표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태평양을 넘나드는 악조건에서도 재즈의 즐거움을 한국 음악 팬들과 공감하고 싶어 ‘프렐류드’를 이어갔다.
한 민족의 한을 정서적으로 100% 느낄 수 없는 것처럼 미국 흑인의 감정을 100% 이입할 수 없었기에 프렐류드는 우리의 정서에 재즈를 접목시켜 ‘우리만의 사운드를 만들어보자’고 정하고 앨범마다 새로운 시도를 했다. 1집 〈크루아상〉(2005)을 만들 때는 주변에서 듣는 모든 음악을 어쿠스틱한 재즈 악기로 표현해보자고 했다. 동요 ‘섬집 아기’를 3/4 스윙재즈로 편곡했다. 반면 2집 〈브리징 업〉(2007)에선 간단한 멜로디로 1980년대 정서를 내보려고 시도했다. 3집 〈프렐류드〉(2008)는 대중과 더 가까이에서 호흡하기 위해 애니메이션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음악영화 〈원스〉 등의 주제곡을 재즈풍으로 편곡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4집 〈보스 사이즈 오브 프렐류드〉(2009)와 5집 〈무브먼트〉(2010) 역시 대중화의 연장 선상에서 팝, 영화음악 등 우리에게 친숙한 곡들을 프렐류드만의 색깔로 재해석해 선보였다. 2012년 1월 선보이는 6집 앨범에는 경기민요 이수자인 전영랑씨가 보컬에 참여하면서 한국적이면서도 프렐류드만의 또 다른 색깔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우리가 가진 것을 표현해내는 게 좋았어요. 서로 고민해서 의견을 내고 사운드를 만들고 기록으로 남기는 활동이 즐겁습니다.”(최진배)
왼쪽부터 리처드 로, 고희안, 라그리마스 주니어, 최진배. |
재미교포인 리처드 로는 음악이 자신의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가서 사춘기 시절 잠시 나쁜 길로 빠졌던 그를 제자리로 돌려놓은 것이 바로 음악이었다. 그는 색소폰이라는 악기를 접하면서 문제아에서 우등생으로 바뀌었다. 성적도 올랐고 인성도 바뀌면서 결국 인생도 변한 셈이라고 한다. 팀의 리더이자 애니메이션 음악감독에 숙명여대, 호원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는 고희안씨는 대학시절 음악 동아리 활동을 하고, 군 입대 후에는 군악대에서 활동하면서 음악으로 인생 진로를 바꾸었다. 제대 후 ‘내가 일생을 걸고 하고 싶은 일이 뭘까?’ 고민하며 휴학했던 그가 찾은 답은 음악이었다. 대학을 자퇴한 후 그는 ‘제대로 음악을 배우겠다’며 버클리 음대 입학을 결심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록밴드를 했던 최진배씨는 “우연히 라디오에서 에릭 돌피의 음악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소음처럼 들리는데 무척 아름다웠죠. 이렇게 자유로운 음악이 재즈구나 싶었습니다”라고 말한다. 군 제대 후 재즈카페 등에서 6년여간 연주자로 활동하다 음악을 좀더 심도 있게 배우고 싶어 버클리 유학을 결심했다. 이들이 음악을 시작한 동기는 각기 다르지만 재즈라는 장르를 선택한 데는 재즈에서 원초적인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같은 음악이라도 매번 다르게 표현하는 즉흥연주가 강하고, 창조적이어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들은 유학시절부터 힘든 고생도 마다 않고 음악의 열정을 불태웠다. 앨범을 낼 돈이 없어 흑인 동네에 있는 세탁소에서 하루 13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고, 앨범 제작도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내공을 쌓았다.
“어떤 것이든 쉽게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힘든 가운데서도 오랜 기간 버틸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히트곡이 없더라도 설령 100% 발휘를 못하더라도 우리의 음악을 만들고, 프렐류드만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조금씩 많아지면 거기에 만족하면서 커지기 시작했죠. 표를 파는 재즈밴드가 된 거예요. 한국에선 표를 팔아 재즈밴드로 성장한 밴드가 거의 없거든요. 그러는 동안 단단해졌습니다. 재즈밴드가 6집 앨범을 낸다는 일 자체가 쉽지 않거든요. 2012년에는 LG아트센터 단독공연도 잡혀 있습니다. 좋은 일이 조금씩 생기면서 재미를 느끼기도 합니다.”
이들은 겨울 시즌이면 전국의 대학병원을 순회하는 자선 공연을 해오고 있다.
“4년 전부터 해오고 있어요. 환자들이 우리 음악을 들으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기쁩니다. 매번 마지막 공연은 암센터에서 하는데, 호응이 더 좋아요. 뮤지션으로서 음악으로 사랑을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렐류드는 ‘재즈밴드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그룹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좋은 환경이었다면 지금처럼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끈끈한 팀워크로 뭉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이제 한 사람만 빠져도 안 돼요. 하나하나 이뤄가며 함께 기뻐하고 감사하는 게 저희가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어요.”
“프렐류드는 놀이터예요. 재미있어요. 항상 연습하러 가고 싶고, 곡이 장난감이라면 계속 갖고 놀고 싶은 장난감? 제가 놀 수 있는 놀이터랄까요? 계속 즐기면서 프렐류드만의 음악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이들은 재즈가 난해한 즉흥연주가 아니라 친근한 음악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밴드로 성장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