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말까지 겹친 8월 31일 금요일, 정신 없이 하루 일하고 귀가하니 흥미로운 게임이 기다리고 있었네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배구 4강전 대한민국 대 태국'의 4강전입니다.
김연경-박정아-이재영-양효진-김수지-이효희-임명옥 베스트 7이 그대로 코트를 먼저 밟은 대한민국 대표팀. 하지만 경기 출발은 기대만큼 좋지는 못했습니다.
■ 오늘의 경기 흐름 살펴보기
1세트, 힘이 100% 다 실리진 못했었다 해도 김연경 선수의 경기 첫 두 공격은 태국이 그대로 다 받아냈습니다. 임명옥 리베로는 상대에 서브에이스를 헌납했고(점수 1대4), 박정아 선수도 같은 실수로 실점(1대6)!
졸지에 6 대 8 타임아웃에서 이효희 세터의 말 그대로 "우리가 아직 몸이 덜 풀렸어!" 바로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수비 안정을 위해 황민경 선수를 투입해봐도, 세터를 이다영으로 교체해도 쉽사리 흐름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상대 태국팀은 보다 탄탄한 리시브에 눗사라 세터를 중심으로 시종일관 빠른 공격을 선보이며 점점 점수차를 벌려나갔습니다(10 대 16).
이후에는 같은 아시안게임 유도 78kg이상급 김민정 선수(사진)의 유도 결승전을 지켜보느라 그대로 종료.
일본의 소네 아키라에 패하며 아쉽게 금메달은 놓쳤지만, 김민정 선수의 은메달 축하합니다.
배구경기 1세트는 15 대 25로 한국 패.
2세트는 확실히 우리팀의 출발이 좋았습니다. 세트 첫득점을 깔끔하게 성공시킨 후 점점 공격성공률을 높여간 김연경 선수와, 국내에서도 사기캐릭터에 가까운 양효진 센터의 중앙속공이 더해져 점수는 11대6까지입니다.
하지만 태국은 다시 한 번 끈질기게 따라붙었습니다. 눗사라(Nootsara) 세터의 빠르면서도 노련한 경기운영은 내내 참 돋보였네요. 플럼짓(Pleumjit) 선수와 보여주는 속공 호흡, 낮고 빠른 백토스에 툭툭 뒤돌아 선 자세에서 우리 코트로 밀어넣는 패스페인트까지..
점수는 순식간에 16 대 16 동점이 되었고, 17 대 20까지 벌어졌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시점에서 김연경 선수를 잠깐 벤치로 불러들였으면 했습니다.
이날 경기 내내 태국은 김연경 선수의 공격을 완벽하게 틀어막았습니다. 유효블로킹으로도 많이 걸러냈고, 시원하게 들어가는 듯 보였던 스파이크는 후위에서 다 받아냈습니다. 정말 '상대 벤치에서 100% 분석하고 들어왔구나'하는 생각이 확실하게 들었으니까요.
이에 2세트 막판까지도 공격성공률이 30%를 넘지 못했던 김연경 선수는 경기가 마음대로 풀리지 않자 서브 범실(19 대 23)까지 범했고, 그대로 2세트도 내주게 된 대한민국입니다.
3세트는 출발부터 강소휘 선수가 나왔습니다. 김연경 선수와 교체된 건 아니고, 처음엔 김수지 & 나중엔 이재영 선수 자리를 이어받았는데, 활약이 눈부셨습니다. 7대4를 만들었던 스파이크와 8대5를 만드는 터치아웃 유발 공격까지... 경기 중반부엔 김수지 선수와 콤비로 16 대 11을 만드는 2인블로킹까지 성공시켰습니다.
역시 3세트에 교체 출전한 황민경 선수의 수비적인 뒷받침도 칭찬해줄만 했고요. 한 때는 5점차까지 벌어졌던 경기가 18 대 17 다시 접전으로 흘러갔고, 우리는 터치네트 범실 2개 등 불안한 모습들을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엔 한 세트를 챙겨올 수 있었습니다.
4세트 초반, 다시 강소휘 선수의 서브에서 촉발된 김연경 선수의 다이렉트 공격과 또 김수지 선수의 블로킹까지... 출발이 좋았던 한국입니다(8 대 5). 하지만 잠깐 방심하면 금세 따라오는 태국. 강소휘 선수가 10 대 5, 16 대 12를 만드는 귀중한 서브득점 둘을 보탰지만.. 그리고 이효희 세터의 노련한 밀어넣기로 21 대 18까지도 만들었지만 석연찮은(?) 판정으로 21 대 21. 그리고 우리 선수들은 3세트 후반부에 보여줬던 '스스로 부담감에 무너지는 모습'을 다시 노출했습니다. 세트스코어 1 대 3. 태국의 승리로 끝난 4강전입니다.
■ Today's Best Player : 대한민국 강소휘
오랜만에 보는 강소휘 선수, 반가웠고 잘했습니다.
오늘 경기 스파이크 10개(성공률 50%)로 13득점! 늘 그렇듯 '어디서도 주눅들지 않는 시원시원한 공격력'에 스파이크 서브, 코트 안에 파이팅을 불어넣는 특유의 제스쳐들까지... 잘했습니다.
(사진은 아시안게임 홈페이지 제공입니다. 여권사진인 듯 보이는데 머리카락 길고 있습니다)
■ Today's Worst Player : 대한민국 김연경
반대로 오늘 경기, 제가 본 바로는 김연경 선수가 가장 많이 아쉬웠습니다.
공격성공률이 32%(16 성공/50 시도)까지 올라왔다고는 해도 팀이 졌고, 솔직히 수치화된 성공률보다도 더 큰 문제였습니다.
본인도 많이 답답했겠죠? 때리는 족족 상대에게 다 걸렸으니까요. 답답함에 후위공격도 밀어넣기 시도도 해봤지만, 표현 그대로 '다 막혔던' 경기였습니다. 나중엔 스스로 몸에 힘이 들어가 범실도 많아졌고, 에이스가 막히니 다른 우리 선수들도 동요가 왔을 거고요.
現 대한민국 팀으로서는 결과가 좋을 수 없었던 그런 경기였습니다.
■ 그 외 주요 Point!
상기 Best & Worst Player 선정에서 글을 이어오겠습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차혜원 감독이 '좀 더 빨리 강소휘 선수 등 벤치자원을 활용했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입니다. 상대팀 태국은 우리 주전 7명에 대해 확실하게 파악하고 나온 듯했고, 저는 2세트 중반부터는 "진짜 확실하다"고 외쳤었거든요. 같이 중계를 시청한 저희 부모님께서도 김연경 선수에게 다시 토스가 올라갈 때마다 "저기 주면 안 되는데... 뻔하게 다 보이잖아" 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여자배구 팬들 중에 김연경 선수를 비난할 분이 있으실까요? 아무리 그래도 우리팀의 에이스이고, 오늘 경기도 16득점. 그리고 그동안의 숱한 국내/외 경기들에서 보여준 그녀의 업적은 No.1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날 경기! 결승으로 올라가는 것이 중요했고, 저는 잠깐이나마 '차 감독님이 과감한 선택을 해봤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한 겁니다. 예를 들면 강소휘 선수를 김연경과 바꿔 이재영 선수와 같이 뛰게 해보고... 이재영 선수가 정 아니었다면 아예 고등 유망주들을 투입했었으면 어땠을까. 어떤 드라마 같은 반전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 부분입니다.
(참 되돌아보니 실제 경기에서 김연경-이재영 선수를 대체할만한 윙스파이커 자원이 이렇게 없다니... 또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인터넷으로 관련 보도를 접하다 보니까 (차 감독님에 대한 비난은 일찍부터 엄청난 수준이었고) 임명옥 리베로에 대한 이야기도 많더군요. 이날 경기 리시브성공률은 48%(14 시도 / 29 성공), 디그는 10개(시도 22). 솔직히 수치를 굳이 살펴볼 필요도 없는 것 같고, 또 임명옥 선수에게만 뭐라고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팀 전체적인 수비가 다 흔들렸었으니까요.
이럴 때 또 생각나는 부분은, 또 다른 리베로 나현정 선수의 투입! 작년 연이은 국제대회에서 안정적인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고, 또 2단 연결에서도 강점을 갖고 있는 나현정 리베로인데... 역시 김연경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임명옥 선수를 잠시나마 바꿔줬더라면 어땠을까? 역시 결과론적인 부분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다시 전진해 나가야 하고, 일단 오늘 2시 30분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이어서 세계선수권 대회와 2020 도쿄올림픽도 앞두고 있고요. 모쪼록 이날을 교훈 삼아 꼭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봅니다. 우리 선수들 수고 많습니다.
■ Today's Photo
공격하는 김연경(좌)과 양효진 선수 모습. 두 선수 다 높이를 보면 '진짜 사기'란 생각이 듭니다.
작전타임 중인 대한민국 대표팀. 버텼지만 내내 힘든 경기였습니다. + 그리고 결승행을 확정지은 태국팀 벤치(우)
우리 선수들, 고개를 숙일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처절한 비판과 자기 반성으로 다시 전진해 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