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만화'라 부르는 것에는 여러 가지 다른 이름들이 있다. 개념에 따라, 때론 나라마다의 언어 특성에 따라 달라지는 만화의 여러 가지 의미들에 대해 짚어보도록 하자.
이번 회는 만화의 여러 이름들 중 웹툰(혹은 웹카툰)에 대해 다루도록 하겠다. |
|
5. 웹툰WebToon, 웹카툰WebCartoon |
|
1) 경향 |
|
누리그물Internet이 활성화하면서 만화는 그 무대를 종이 위에서 모니터 위로 확장했다. 처음엔 단순히 출판 만화를 스캔Scan하여 제공하는 차원에서 이뤄지던 것이 점차 ‘모니터에 최적화한 만화'의 개념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누리그물 즉 웹(월드와이드웹WWW의 약어)을 통해 제공되면서 모니터에서 보기에 알맞은 형태와 형식을 갖춘 만화를 두고 웹툰WebToon, 혹은 웹카툰WebCartoon이라 부르게 되었다.
완전히 개념이 정립된 형태의 용어는 아니지만, 이 웹툰WebToon 혹은 웹카툰WebCartoon의 경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 지나치게 스크롤바Scroll Bar를 내리지 않아도 될 만큼 적당한 길이. ② 복잡하지 않고 간결한 이야기 구조Narrative. 긴 호흡의 줄거리Plot 구성보다는 한 단락 안에서 완결되는, 연속성 없는 짧은 이야기들이 묶이는 경향을 보임. ③ 한 눈에 들어오게끔 아기자기한 형태의 캐릭터Character들. 쉬운 몰입을 돕기 위한 방편으로 의인화한 동물 캐릭터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음. ④ 칸Cut의 구분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등, 기존의 만화 문법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을 보임. ⑤ 컴퓨터 모니터를 매개체로 하므로 흑백보다는 색깔을 칠한 작품이 많음. 눈이 피로하지 않은 색상이 대세. ⑥ 패러디 등, 내용 전개에 필요한 재료 활용에 매우 유연한 면을 보임. |
|
|
「마린블루스」 2005년 6월 14일자 연재물. 쭈꾸미 군이 드디어 제대하면서 ‘민간인'임을 강조하고 있다. “난 민간인이니까”는 그 유명한 「슬램덩크」 마지막화에서의 강백호 대사를 패러디한 것. (c) kimslicensing |
|
웹툰 혹은 웹카툰은 복잡다단하고 긴 호흡을 요하는 내용보다는 작가의 신변잡기 등 가볍고 간단한 내용으로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소재가 주가 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누리그물Internet이라는 매체에서 독자들의 접근성과 구독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들라면, 제작과 유통 등에 매우 복잡한 과정이 걸려 있는 출판 만화와는 달리 제작에서 공개에 이르는 과정을 모두 작가 손에서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소재와 방식이 바로 작가 스스로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주변'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기존에 출판되어 나온 만화를 스캔Scan해서 제공하는 ‘온라인 만화방'과 같은 형태를 두고는 웹툰WebToon이나 웹카툰WebCartoon이라 하지 않는다. 단순히 ‘어디에서 제공하고 있는가'로 따진다면 굳이 이렇게 구분을 지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
|
2) 흐름 |
|
「스노우 캣」과 같은 ‘태동기'의 작품들은 ‘혼자 놀기'에 가까운 일기의 영역 확장과 새로운 노출 창구의 확보를 (스스로는 크게 의도하거나 의의를 두고 시작한 건 아닐지언정) 이뤄냈다. 때마침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놓여 있던 많은 이들은 동호회와 같은 공동 공간이 아닌, 오롯한 자기 공간을 통해 펼쳐지는 ‘개인적 에세이'에 빠져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여기에 「파페포포 메모리즈」와 「마린블루스」는 그 연장선상에서 캐릭터의 힘이 어디까지 바로이음(오프라인)에서 통할 수 있는지를 확인시켜주었다. 「파페포포」가 잔잔한 에세이 형식으로 감동을 끌어냈다면, 「마린블루스」는 의인화한 캐릭터들을 통해 재기발랄한 표정과 개그를 끌어냈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마린블루스」는 ‘만화'라는 말에 얽매이기보다는, 그 때 그 때 사소하고도 소소할 법한 소재들을 웃지 않고는 못 배길 장면으로 탈바꿈시키는 데에 필요하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마구 끌어오는 왕성한 잡식성을 선보였다. 다른 무엇보다 ‘재미를 주는 데' 성공한 이들 작품들은 캐릭터 상품화 등을 통해 널리 퍼져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이 때 이들 몇 작품의 성공사례를 보며 ‘카툰 에세이' 등의 이름을 달고 우후죽순 격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대중들은 금세 식상함을 느끼고 말았고, 이 시점에서 이미 웹툰, 웹카툰은 곧 에세이 툰 혹은 카툰 에세이일 뿐이라는 인식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이런 조류의 만화에는 이런 것밖에는 없는가? 라는 의문이 점차 퍼지고 있을 때, “그렇지 않다”라는 답을 해준 인물이 바로 강풀이다. |
|
|
강풀의 「순정만화」 중에서 (c) 강풀 |
|
‘짧은 호흡에 기승전결도 없고 짧은 웃음과 감동만을 자잘하게 내미는' 것이 모니터 위의 표현에 적합하다고 인식되고 있을 때, 강풀의 작품은 같은 모니터 위에서도 ‘긴 호흡'이 가능함을 증명했다. 짜임새 있는 긴 이야기와 나름대로 복잡한 내면을 간직한 캐릭터들이 모니터 위에 등장했던 것이다. 현재 「순정만화」를 대표작으로 내밀고 있는 그는 ‘미스테리심리썰렁물'같은 새로운 소재도 줄기차게 파고 있으며, 영화화 계약 등으로 ‘이야기'의 충실함을 증명해내고 있다. 그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강풀의 만화가 실리는 [다음 커뮤니케이션]과 경쟁사 관계인 KT의 [파란닷컴]에 「1001」이란 작품이 등장한다. 탄탄한 그림으로 정평이 나 있는 양영순의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많은 눈길을 끌고 있으며 해당 포털 방문객 수 상당수를 책임지고 있는 형편이다.
한편 옆 나라 일본에도 웹툰, 웹카툰의 형식의 만화가 있다. 단 우리나라처럼 오프라인에까지 진출하는 역동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보다는 몇몇 작가의 개인 누리집Web Site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그들 작품들 상당수의 성향에서 드러나는데, 우리가 ‘일기'와 ‘에세이' 형식을 빌려 소소한 감동과 재미를 끌어내며 반향을 얻기 시작했다면 일본의 조류는 온On이나 오프Off나 모에(萌)에 매여 있다. ‘모에' 자체에 대해선 추후 기회에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으나, 간단히 말해 ‘극에 달한 취향의 파편화'다.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반응하는 온갖 페티쉬fetish 코드를 집약시키는 형태를 일컫는데, 그 극단에서 여러 형태의 ‘캐릭터'들이 양산된다.
이들은 우리로 따지자면 DC인사이드 격인 후타바 채널이나 2ch 등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이야기'는 ‘캐릭터의 설정과 개성'에서 끌어다 붙이는 형태로 창작과 재창작을 반복한다. 「OS걸즈」 시리즈나 「하바네로땅」 등이 대표적인데, 특히 「윈도우 걸즈」 시리즈는 MS의 시스템 운영체제인 윈도우즈 시리즈의 각 버전별 특성을 소녀의 신체 치수 등에 반영해 재창조해낸 일본식 웹툰, 웹카툰의 결정체다. 설정과 캐릭터가 이야기를 낳고 그 이야기가 다시 뒤섞여 다른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이러한 방식은 지극히 일본다운 방식으로, 일본의 쇼우죠망가(少女漫畵 : 소녀만화)와 우리의 순정만화가 지닌 차이, 큰 이야기 흐름 속에서 인물을 찾아가는 우리와 캐릭터를 움직여 이야기를 풀어가는 일본의 차이 등 여러모로 재미난 비교가 가능하다. 분명한 건 우리가 어느 새 기존 매체의 ‘대안'으로 웹툰, 웹카툰을 주목하고 있다면 이들은 이미 오프라인에서조차 이뤄질 만큼 이뤄진 코드를 좀 더 극단적으로 추구하기 위한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 정도.
이와 같은 일본식 웹툰, 웹카툰의 형식의 맹점이자 가장 명확히 드러나는 ‘개성'은 상당부분이 어떠한 원전(이를테면 상품)이나 현상(전쟁 등)을 ‘의인화'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땅」이나 「파키스땅」[*주]과 같은 작품의 등장이 그 좋은 예다. 전자인 「하바네로땅」이 고추과자 상표를 캐릭터화한 거라면 후자들은 말 그대로 해당 국가의 현실(?)을 빗대 풍자한 의인화 캐릭터들이다. 이들은 취향을 극단으로 추구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 대신 스스로 마이너 무대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인다. |
|
|
|
DOS시절부터 XP에 심지어 ‘노턴'까지 변태박사 역을 부여받아 등장하고 있는 「OS걸즈」 시리즈의 결정판 「트러블 윈도우즈」. 마치 월간 뉴타입의 지면과 같은 편집으로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만화영화까지 나오냐?!”라는 경악을 자아내게 하였지만 사실무근으로 판명. 하지만 그만큼 각 버전별 특성을 고스란히 몸과 얼굴에 고스란히 녹여낸(?) 캐릭터 조형 솜씨는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일본 모에(萌) 문화 그 자체를 맛 볼 수 있는 한 예. 참고로 OS걸 시리즈에 이어 IE에 대적하는 모질라 재단의 「파이어 폭스」도 무녀복을 입은 여우 아가씨로 환생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
|
[*주] ~땅たん이란 건 ‘~씨'라는 존칭인 ‘상さん'에서 파생한 애칭인 ‘쨩ちゃん'을 한 번 더 비틀어 더더욱 귀엽게 대할 때 쓰는 용어로 근래에 등장한 신조어다. 「아프가니스땅」이나 「파키스땅」의 경우 원래 국가명의 ‘탄' 부분을 발음이 비슷한 쪽에 끼워 맞춘 말장난인 셈. |
|
3) 방향 |
|
분명, 우리에게 웹툰 혹은 웹카툰은 누리그물Internet의 활성화가 이뤄낸 또 하나의 만화문화이며 누구나 쉽게 만화를 만들어내고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반면에 유행을 좇기 좋아하는 매체들의 집중 조명 이후로 그 생명력이 상당부분 깎여 나갔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조류에서 신변잡기 류의 간단한 이야기와 귀엽고 예쁜 팬시형 상품으로 각광을 받았을지언정, ‘작품'으로서 조명 받을 수 있을 만큼 스스로를 개척하고 다듬는 데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시장에서의 열광은 ‘만화'에 있지 않고 단지 ‘캐릭터'에서 멈춰 섰을 뿐이고, 이는 곧 웹툰WebToon 혹은 웹카툰WebCartoon이 그 하위의 개념인 에세이툰Essay Toon 그 자체인 것으로 인식하는 편견과 결부, 선지자 격인 몇몇 작품과 작가 이후로는 유행의 끝자락을 맞이했다. 다시 말해 상당부분 퇴조를 보여주고 말았다.
장과 장을 넘기는 시선을 감안해 연출을 섞는 기존 만화와는 달리 스크롤바Scroll Bar의 이동에 따르는 시선을 감안하는 또 다른 형태의 표현과 연출을 개발하는 것. 현재 강풀이나 양영순과 같은 작가들이 그러한 고민의 결과들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모험 섞인 시도들이 해당 작가의 성공 사례 이상을 넘어 하나의 조류로 ‘정착'할 수 있었는가는 의문으로 남는다.
웹툰 혹은 웹카툰이 반드시 기존 만화판의 대안이 되어야만 하는 건 물론 아니다. 하지만 한 조류의 유행 이후 우후죽순 경쟁하듯 튀어나오는 비슷한 형태의 작품들은 그 자체가 이미 생산성과는 거리가 멀다 보는 편이 옳다. 모두가 다 그럴 순 없을지언정, 다양성만은 전체적으로 확보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직 결론 내리기는 어려울 정도로 형식과 발상의 전환이 빠른 게 누리그물Internet이고 웹툰, 웹카툰 또한 그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하지만, 좀 더 다양한 형식을 고민하여 내놓는 작가와 작품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대안은커녕 언제 무너질지 모를 사상누각으로 전락하기 쉽다.
B급달궁의 「다세포 소녀」라든지, 서상훈의 「프리랜서로 사는 법」과 같은 독특한 포스를 내뿜는 작품들이 계속해서 치고 올라와주는 것이 반가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완전히 굳지 않은 땅이라면, 그 위에서 좀 더 많은 시도가 나타나 땅을 다져주길 기대할 수밖에. |
|
서찬휘( seochnh@manhwain.com ). |
|
만화 즐김이. 만화 이야기터 [만화인]( http://manhwain.com /)을 운영하고 있는 컬럼니스트 겸 프로그래머. 한겨레 신문,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CTNews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만화와 만화영화 이야기를 해 왔으며 [독자만화대상]과 [만화인의 노래] 등의 관련 행사에서 개발과 진행에 참여하기도 했음. 참여 저서로 『애니메이션 시크리트 파일』(공저, 시공사 출간)이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