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공중도론
1. 삼종자성설
삼론에서 비록 진속이제설과 팔부중도설을 제창하고 있지만 용수의 공사상은 어디까지나 유소득의 그릇된 고집을 타파하는 공空에 그 근거를 두고 있었다. 다시 말해 용수가 공이란 말로 있다[有]는 것을 부정한 의도는 다만 그 있다는 차별적인 그릇된 생각을 깨뜨리기 위한 방법으로 취해진 표현이었지만, 그러나 그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고 무한히 부정하는 방법 때문에 그는 마침내 무상개공無相皆空을 주장하기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은 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다.
그런데 이와 같이 삼론에서는 무한히 부정해 나감으로써 철두철미하게 무상개공을 주장하고 있지만, 우리들의 눈앞에는 분명히 산하대지와 삼라만상이 전개되고 있을 뿐 아니라 또 그 속에는 영원히 생명이 맥맥이 흐르고 있는데 이런 사실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현상계의 모든 만물은 비록 우리의 심식心識이 전변轉變한 것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고, 또 그러한 현상을 전변시킨 우리의 심식 역시 거짓된 것일망정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므로, 부정만으로는 진리를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은 단지 거짓으로 존재하는[假有] 겉모습[相]만을 상대로 하여 망념된 집착을 일으킨 때문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모양으로 보아 전혀 없는 것은 아니고[非空], 또 동시에 아무리 그러한 모양이 있다할지라도 그 바탕[性]의 측면에서 볼 때 그것은 거짓으로 있는 것이어서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다[非有]. 예를 들어 우리가 파도나 새끼줄을 그 겉모습으로 볼 때는 분명히 그것들은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 바탕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단지 물이나 지푸라기일 뿐 물이 없는 파도나 지푸라기를 떠난 새끼줄이 따로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일체의 모든 사물의 실체는 공한 것도 아니고[非空] 있는 것도 아닌 것[非有]이 진리, 바꾸어 말해서 중도라는 것이 세친(世親: 바수반두)의 주장하는 유공중도설有空中道說이다.
그런데 유공중도설을 주장하는 세친은 그의 유식론唯識論에서 삼성설三性說이라 하여 현상계의 모든 법을 통틀어 다음과 같은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다. 이제 그 하나하나를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변계소집성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이란 두루 헤아려 집착되는 바의 성질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두루 헤아린다는 것은 우리들의 그릇된 인식, 즉 착각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저렇게 제멋대로 헤아리는[計度] 허망분별을 뜻하는 말이고, 집착되는 바라는 것은 그 그릇된 인식으로 말미암아 허망 분별되는 바의 정신적 물질적인 일체의 인식대상을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성질이라는 것은 그렇게 그릇되게 인식되는 자기 바탕[自性]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별성分別性이라고 이름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변계소집성이란 우리들이 어떠한 대상을 인식할 경우 그 주관적인 착각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거짓된 망상의 경계를 말한다. 즉 우리들이 어떠한 사물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식의 주체인 눈·귀·코·혀·몸·마음[안이비설신의]라는 육근六根과 그 대상인 색성향미촉법이라는 육경六境을 필요로 하는데 그 두 가지가 합해짐으로써 비로소 제6의식이 주관적인 인식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제6의식은 그 자체가 본래 믿을 수 없는 망식妄識이므로 그에 비쳐진 대상 역시 올바르게 인식된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은, 마치 색맹이 빛깔을 올바르게 식별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므로 변계소집성이란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들이 실제로 있다[實有]고 인식하는 모든 사물이 사실은 인연으로 말미암아 거짓으로 있는 것[假有]임을 알지 못하는 의식의 착각으로 나타나는 주관적인 미정의 세계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캄캄한 밤길을 걷던 사람이 지푸라기로 꼰 새끼줄을 뱀으로 착각하는 것과 같아서, 우리들이 인식하는 모든 사물은 주관적 망정妄情으로는 있으나 이치상으로는 실체가 없다는 말이다.
의타기성
의타기성依他起性이란 남에 의해 일어나는 성질이라는 뜻으로 의타성依他性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남[他]이라고 하는 것은 인연을 가리키는 것으로 객관적인 현상계의 모든 사물은 그것이 정신적인 것[心法· 心所有法]이든 물질적인 것[色法]이든 어느 하나도 상주불변하는 고정적인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겨났다가 인연으로 말미암아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인연이라는 남[타]의 힘에 의해 생멸하는 의타기성은 비록 실체는 없더라도 순수하게 주관적인 착각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변계소집성과는 차이가 있다. 즉, 뱀이라고 착각했던 새끼줄 그 자체는 이미 주관적인 착각 속의 뱀이 아니라 개관적인 현상인 새끼줄임에 틀림없지만, 그 새끼줄은 본래 상주常住불변하는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닥의 지푸라기가 바탕이 되어 사람들의 힘에 의해 서로 꼬여져 있는 것일 뿐이므로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 거짓으로 있는 것[假有]이다. 유식론에서는 이와 같이 의타기성이 실체가 없다는 것을 꼭두각시[幻事], 아지랑이[陽焰], 꿈[夢事], 거울에 비친 모습[鏡像], 그림자[光影], 메아리[谷響], 물에 비친 달[水月], 변화라는 여덟 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원성실성
원성실성圓成實性이란 원만히 이루어진 진실한 성질이라는 뜻으로 진실성眞實性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의타기성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본체적인 진리로서 구체적으로는 진여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진여는 시간적으로는 삼세에 뻗어 있고 공간적으로는 시방에 두루하여, 새로 생기지도 않고 나중에 없어지지도 않으며, 변함도 없고 거짓도 없이 일체의 모든 사물의 실성實性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물이 바람이나 온도 등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의타기성인 모양은 천태만상으로 변화하지만 원성실성인 그 본성은 변하지도 달라지지도 않는 것과 같다. 또 지푸라기를 꼬아 만든 새끼줄은 그 가공방식이나 시간의 흐름 등에 따라 굵거나 가늘거나 짧거나 길게 각양각색으로 모양을 달리하지만, 그 본질은 똑같이 지푸라기인 것과 같다. 그러므로 원성실성은 변계소집성처럼 망정으로는 있으나 이치상으로는 없는 것[情有理無]도 아니고 의타기성처럼 꼭두각시와 같이 거짓으로 있는 것[如幻假有]도 아닌 진실한 실체[眞有]이다.
이상에서 설명한 삼성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요약해 보면, 변계소집성은 새끼줄을 뱀으로 착각하는 것이고, 의타기성은 지푸라기를 새끼줄로만 보는 것이며, 원성실성은 지푸라기 그 자체와 같은 것이다. 우리들은 나날이 먹고 입고 자는 일을 되풀이하면서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지만, 그 보고 느끼고 행하는 일들이 모두 원성실성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거짓된 것을 참인 듯 없는 것을 있는 듯 미혹하여 헤매는 것으로 참으로 깊이 생각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