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그리스도의 선물과
나의 예물
에베소서
4:7-8
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7절에서 '은혜(카리스 χάρις)'는 '은사'와 같은 말입니다. 또 '선물'이라고
쓰인 헬라어 '도레아(δωρεά)'는
선물(gifts)을 의미하는 '도론(δῶρον)'이라는
명사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도론'은 마태복음 2:11에서 동방박사들에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에서 "예물로
드리다"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그 외에 이 단어는 한국어로 번역될 때에 거의 "예물"이라고 번역되었습니다(마 5:23, 24 8:4,
15:5, 23:19).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은 최고의 예의를 갖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본문에 '선물'로 번역된 '도레아(δωρεά)'는 성경에서 거의 '선물'이라고 해석되었습니다(요 4:10(하나님의
선물), 행 2:38(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 8:20(하나님의 선물), 행 10:45(성령부어
주심), 행 11:17(선물), 롬 5:15(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 롬
5:17(의의 선물) 고후 9:15, 히 6:4(은사), 엡 3:7(하나님의 은혜의 선물)).
그런데
'선물'이라는 뜻의 '도레아(δωρεά)'라는
말은 7절의 "은혜를 주셨나니"의 '주다'라는 헬라어 동사 '디도미(δίδωμι)'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또 야고보서 1:17의 "각양 좋은 은사"의 '은사'라는 헬라어 '도시스'(δόσις)라는
말 역시 '주다'라는 '디도미(δίδωμι)'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히브리서 6:4에서는 본문에 쓰인 '선물'이라는 뜻이 '은사'라고 번역되었습니다("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 따라서 '선물'과 '은사'는 우리가 같은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
우리는
'은사'를 성령께서 주신다고 생각합니다(고전 12장). 그런데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또 야고보서 1:17에서는
'빛들의 아버지' 즉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온다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삼위일체되신 하나님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며,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물을 주기를 기뻐하시며 또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8절
말씀은 시편 68:18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를 끌고 선물을 인간에게서, 또는 패역자 중에서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려
하심이로다"(시 68:18).
시편
68편에서는 선물을 받으셨다고 기록하는 반면에 본문 8절은 선물을 주셨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본문 8절과 연결이 되는데,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라는 말은 예수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실 때에 사망과 죄의 권세를 갖고있는 사단의 모든 것을 정복하시고 전쟁의 승리
후에 전리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듯이 성령을 보내 은사를 주셨다는 말입니다.
시편
68편은 하나님께서 전쟁의 대장으로서 고아의 아버지와 과부(소외되고 억울한 자들)의 재판장으로서 수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그분을 대적하는 모든
원수를 무찌르신 뒤에 왕의 처소인 시온산 즉 하늘 보좌에 오르셔서 백성들로부터 경배와 예물을 받으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성소에 거하시기 위하여 성전(거룩한 전쟁)을 치르시고 거룩한 산 시온을 향해 전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행진을 시작하시자 모든 원수들이
도망가기 시작합니다. 연기가 몰려감같이, 불 앞에서 밀이 녹음같이 하나님을 대적한 자는 결국 그렇게 다 멸망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행진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행진하시도록 의인들은 대로를 수축하며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찬양하며 기쁨의 소리를 발합니다. 많은 여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공포하며, 집에서도 탈취물을 나눕니다. 즉 집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전리품이 나누어질 정도로 큰 은혜가 임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특히
압제당하고(욥 36:6, 사 49:13) 겸손하며(잠 16:19), 피곤한 자(습 3:12)들과 같은 가난한 자들과 고아와 과부들에게
아버지이시며, 재판장이시며, 영원한 구원자이십니다. 원수들은 눈이 날아가는 것같이 날려버리실 것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양우리에 누울 때에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에서 날개를 은으로 입히고 그 깃을 황금으로 입힌 비둘기처럼 번영과 평안을 누릴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모든 짐을 져주시는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 시는, 양 우리에서 잠을 자는 순결하지만 찬란한 빛을 발하는 비둘기처럼 우리에게 빛들의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빛을 발하도록 은사를 내려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선물 즉 예물을 드리는 감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드리는 선물과 비교도 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올라가시면서 성령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참고로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시편 68편을 '칠칠절'의 시로 낭독하였고, 크리스천들은 '오순절'에 이 시편을 낭독했습니다. 칠칠절은 보리를 추수하는
날이라고 해서 맥추절이라고도 하며 그날에 성령이 임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오순절이라고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각 사람에게 알맞는 은사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요즘은 은사를
너무 강조하므로 성경말씀은 뒷전에 가있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은사는 하나님께서 교회에서 덕을 세우기 위해 주신 것이지, 은사를 통해
자기를 드러내며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싸움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자신의 정욕으로 쓰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은사집회에 좇아다니고 있습니다. 은사를 받아서 무엇하려고 합니까? 이들이 모르는 것이 있는데, 은사는 성령을 받을 때 이미 주어진
것입니다. 누구에게 안수기도를 받는다고 해서 성령의 은사를 받는다는 생각에 아무에게나 안수해달라고 머리를 맡긴다면,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물론
성경에서 안수를 받을 때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사도들과 같은 이들을 찾기가 힘들고, 거짓 선생들이 너무나 판을 치고있기 때문에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정말로 말씀에 깊이와 넓이가 있는지, 그리고 진정으로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이러한 말도 모순이 있습니다. 그것을 분별하려면 목회자의 위치에까지 올라야 한다는 말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안다면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사집회에 좇아다니면서 무엇을 받으려고 하지말고, 이미 우리가 받은 구원의 선물이 얼마나 귀중한 것임을 깨달아 그 은혜에 감격하여 내가 무엇을
하나님께 드려야 할 지를 생각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려고 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나의 달란트를 발견하게 됩니다. 따라서 나의 정욕을 십자가에 모두 못박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롭게 부활하여 나를 살리신 그분께 나의 평생을 바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를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주신 그리스도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성령의 은사를 저에게 주셔서 저에게 주신 재능으로 교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어둠속에서
죄의 종노릇을 하며 살던 저를 빛으로 불러주셔서 빛의 자녀가 되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주께서는
목숨까지 저에게 주시는 큰 은혜를 베푸셨는데, 저는 그것도 모자라 자꾸만 달라고만 했음을 고백합니다.
저에게
주신 재능이 많이 있는데, 저는 마귀에게 속아서 제 재능을 땅 속에 뭍어두고 사용하지 않은 것이 많았습니다. 열등감과 자격지심으로 자꾸만 뒤로
빠지려고만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빛과는 상관이 없는 삶이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자꾸만 앞으로 나서고 싶었습니다. 남들이 저를 무시하는 것이 싫었고, 사람들을 컨트롤하고 싶었습니다.
자라오는
환경 속에서 엄하게 자라며 컨트롤(조정)받으며 살아오다보니 성인이 된 후에는 제가 사람들을 조정하고 싶었습니다. 다스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한 것은 사람들을 조정하고 싶은데, 앞에 나서기는 싫었습니다. 그래서 뒤에서 계속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기도 하고, 제 주장을 끊임없이
내세웠습니다.
결국
앞에 나서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실제적인 리더는 제가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마귀의 본성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께서는
누구를 시키지 않으시고, 항상 제자들 앞에서 가르치시고 고쳐주시고 책망도 하시고 말씀도 하셨습니다. 결코 누구를 내세워서 예수님 대신에
가르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세상을 떠나실 때에야 예수님 대신에 예수님의 사역을 담당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자기가 나서지 않고 자꾸만 뒤에서 부추기며 이런 저런 생각을 넣어줍니다. 뒤에서 조정하면서 자기의 계획과 뜻을 성취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열등감이나 자격지심이 많은 저는 그것이 마귀의 성품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것이 겸손한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겸손이 아니라
엄청난 교만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건강한 크리스천이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빛을 세상에 비추기 위하여 비겁하게 뒤로 숨어서 사람들을 조정하는 모든 더러운 어둠의 습관을 버리고 빛의 자녀답게 최선을 다해 제 은사를
활용하여 가정과 교회에 덕을 세우기를 원합니다.
저의
단점과 부족한 것을 최대화하므로 제 장점을 죽이고 살아왔던 과거의 시간들, 즉 마귀의 종으로 살아왔던 어둠의 시간들을 이제는 반대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저의
단점과 모든 연약하고 부족하고 모자라는 것들을 모두 주께 맡김으로 주께서 채워주심에 따라 저의 약한 데서 하나님의 강함이 드러나기를 원합니다.
저의 부족한 곳에서 주의 완전하심이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저의 장점들을 십분 활용하여 주님의 기쁨이 되고 주님께 영광이 돌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땅속에
달란트를 뭍어두어서 주님 앞에서 "무익한 종"이라는 책망을 받고 구원의 즐거움에 참여하지 못하고 지옥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되는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기를 원합니다.
오늘
하루도 주께서 저에게 주신 선물이 너무나 많은데, 그것들을 잘 활용하여서 "잘했다. 충성된 종아"라는 말씀을 듣게 하여
주옵소서.
저와
동행하셔서 매순간마다 일일이 간섭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셔서 제가 무엇을 하여 덕을 세워야할지를 가르쳐주옵소서.
오늘도
빛의 자녀답게 제가 서있는 곳이 어느 곳이든 주님의 빛만이 드러나게 하시고 모든 어두움이 물러나게 하옵소서.
가정과
교회와 제가 속한 모든 곳의 어두운 곳에 주님의 빛을 비추어 구석 구석에까지 밝은 주님의 빛으로 환해지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가난한 자의 아버지가 되시며 모든 핍박당하며 압박당하는 자의 재판장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행진하고 계심을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마귀의 궤계로 인해 요동하지만, 주의 자녀들은 오늘도 주님의 품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
수 경
†he
2nd
Life
Foundation
Esther
Soo-Gyung Kim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