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이 주목한 시집
송진 시집 <워프, 워프, 더 워프>(엄브렐라)
▶시집 속 대표시
하지 외 4편
감자 파티가 열렸어요 첼리스트가 비를 맞고 있네요 사람들이 처량하게 바라보네요 여기는 백합이 피었구요 저기는 영지버섯을 삶고 있어요 아, 습도가 낮아서 정말 좋아요 초록의 계수나무 아래 서 있어요 살랑거리는 하지의 바람 아, 저녁이 상쾌하군요 그가 올린 사진을 보고 영감을 받아 이 글을 쓰고 있어요 여긴 백합도 영지버섯도 토실토실 햇감자도 없어요 여긴 느리게 기어가는 구름뿐이군요 새까만 모기가 폰 잡은 오른 손등에서 피를 빨고 있어요 이를 어째요 내치지도 못하고 먹어 먹어 피를 대주고 있어요 흰 강아지가 주인을 끌고 가고 있어요 힘도 없으면서 귀여움으로 힘을 발산해요 하지는 나에게 말해요 애교 좀 떨어보렴 멍멍 애교를 떨었지만 비가 내려요 흠뻑 젖은 첼리스트는 울고 있어요 어째요..어째요..함께 울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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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윤미 양에게
오늘의 센텀 거리는 낭만적으로 느껴집니다. 대지는 안개와 더운 입김으로 흘러내리고 매미는 잠시 울다 그치고 풀벌레 소리가 저녁의 온기를 그물처럼 뒤덮습니다. 사람들은 두 다리를 인도에 쭉쭉 뻗으며 씩씩하게 걷고 있습니다. 한 손에는 스마트폰이나 물병을 들고 있구요. 나는 새 운동화 속 흰 양말이 반쯤 벗겨진 채 걷고 있습니다. 오른쪽 복숭아뼈에 물집도 살짝 잡히는군요. 윤미 양은 샤인머스켓을 맛있게 먹었겠군요. 잘하셨습니다. 도심을 걸으면 왠지 도시의 나무들이 윤미 양을 지켜준다는 기분이 들어 든든해집니다. 양을 앙으로 잘못 쓰니 오늘 정오에 먹은 앙버터가 생각납니다. 가끔 검은 고양이나 흰 비둘기들이 출몰하여 늪이나 저수지를 떠올리게도 하는데요 오랫동안 혼자 살아온 기분을 되살려 산책을 잘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감정 중 불안은 아름다운 예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로의 하얀 점선들이 규칙을 노래할 때 상상력은 거꾸로 보기입니다. 사랑하는 윤미 양이 보고 싶어 이 편지를 보냅니다. 우유 한 잔, 계란 한 개, 땅콩 일곱 알, 과일 여덟 조각을 날마다 먹어야 한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또 편지할게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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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마돌 태풍 오는 날
너는 후쿠오카에서
나는 해운대에서
비바람을 보며 영상 통화한다
서로의 비바람을 보여주며
잘 견디고 있어
욕조에 물도 받아두고
창문에 목과 팔을 찔린 선인장을 생각하며
위험한 유리창에는 가까이 가지 말자
어떻게 알지 위험한지?
어두운 골목은 푸른 수국빛 청바지를 입고 있다
수국의 빛깔이 변할 시간이 다가오자
붉은 비가 더 더 더 쏟아진다
비는 피하는 게 아니고 뚫고 나가는 것이다
두 손을 움켜쥐고 비 쏟아지는 수국의 나라로 뛰어들자
어디 있는지 몰랐던 심장이 튀어 올라 같이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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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
지난겨울, 그는 강원도로 떠났다. 그곳에서 뿔이 긴 꽃사슴을 만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도심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꽃향기가 났다. 새벽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면 향기로운 과일 향이 코끝을 문질렀다 죽은 오빠가 가끔 책장과 화장대 사이에 끼여 만화책을 읽으며 울고 있었다 친구는 이름을 벗어나지 못해 죽어서도 이름을 끼고 살았다 도심의 가을은 쓸쓸했다 보도블록 가장자리 나무 세 그루 지나면 한 그루 사라진 자리 또 나무 세 그루 지나면 한 그루 사라진 자리 별은 남쪽에서 반짝였지만 사람들은 손에 휴대폰을 들고 희미한 불빛을 따라갈 뿐 아무도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어스름한 산 그림자는 검은 모자를 쓰고 울고 있었다 그러다 가끔 하품하고 실눈 뜨고 두 손에 따듯한 아메리카노 쥐고 가는 늙은 여자와 그 옆을 졸졸 따라가는 인면수 닮은 강아지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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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과 붙어있는 수영장
오래전 죽은 사람이 수영장에서 다이빙 연습을 하고 있다. 가장자리 하늘빛 타일 위에는 남자2, 여자1 리본체조로 몸을 늘이고 장산 입구에서 등산객이 내려와 급히 초록빛 횡단보도로 뛰어드는 게 보인다. 투명한 창가에 투명한 토끼 한 마리, 귀 안쪽 선홍빛 실핏줄, 후피향나무 나뭇잎은 붓에 선혈을 찍어 잎맥에 묻힌다 자전거 바구니에 가득한 여행용 전단지가 곤약 같은 바람에 흩어진다. 편의점 주인은 토끼를 찾아다닌다. 진아ㅡ진아ㅡ내가 아는 시인의 이름과 같구나 진아, 너는(네가)(너의) 어릴 적 키우던 아홉 마리의 토끼 가족은 한순간에 월남전에 갔다 온 막내 삼촌의 거친 입속으로 들어가 뼈도 못 추렸다. 죽음이란 바람 같은 것 누가 기억하겠는가 찬바람 불어오면 뇌가 씻기운다. 후적 후적 휘리리 휘리리 5월 11일 토요일 오후 6시 9분은 남쪽으로 날아가는 검은 새소리, 세 마리는 함께 가고 따로 한 마리 저 마을 너머 붉은 넝쿨장미가 빙수처럼 번진다. 토끼 새끼 배 안에 토끼 새끼 한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