⑴ 발달:선사시대의 주거지인 구덩식 집터[竪穴式住居址]는 빗살무늬[櫛文]토기시대와 민무늬[無文]토기시대로 나뉜다. 시대가 앞서는 빗살무늬토기시대의 것은 황해도 이북 북한 지역의 하천 하류 연안 및 해안평야의 소구릉 경사면 등지에서 약 10곳이 발견되었고, 시대가 뒤진 민무늬토기시대의 것은 압록강·두만강·대동강 및 한강 등 하천 연안평지에서 100여 곳이 발견되었다. 상고시대에는 한강·금강 유역에 마한, 낙동강 유역에 진한, 영산강·섬진강 유역에 변한이 일어나 정착농경문화를 성립시켰다.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는 지방호족들에 의해 장원촌락(莊園村落)이 발달하였고, 또 국가의 북진정책으로 인해서 북방에 요새적 성격을 지닌 진(鎭) 취락이 많이 성립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인구가 증가하면서 국토의 10∼15%가 농경지로 이용되었는데, 그들 농경지는 낙동강·금강·삽교천·곡교천(曲橋川)·한강·재령강·예성강·대동강·청천강 등 9개 하천유역의 하성평야(河成平野)에 집중되었다. 따라서 촌락의 분포는 결정적으로 농경지 분포의 영향을 받았는데, 당시의 중심 취락은 행정적 통제와 군사적 방어기능을 복합적으로 담당한 읍성(邑城)취락이었다. 읍성취락은 농경지대의 중심지 또는 수륙교통의 요지에 발달하였는데, 동시에 진산(鎭山)이라고 부른 요새지를 끼고 분지형의 지형에 입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한편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형성되기 시작한 동족(同族)촌락은 그후 크게 확장되어 전국에 걸친 자연부락 단위의 한 유형이 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개항과 함께 작은 어촌이 항구도시로 발전한 예가 있고, 또 철도의 개통으로 무명의 한촌이 지방중심도시로 성장한 예가 적지 않다. 일제강점기의 북한지역에서는 많은 광산촌이 개발되었고, 광산촌의 개발은 광복 후에도 태백산지구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상업적인 과수재배가 시작되자 이례적인 취락형태인 산촌(散村)의 과원(果園)촌락이 생겨났고 광복 후 과수재배 지역의 확산 및 감귤재배의 본격화로 과원촌락은 전국적인 분포를 보였다.
⑵ 입지:한국의 촌락입지는 수리·지형·교통·방위·인근 촌락과의 관계 등 자연적·사회적 조건 및 풍수지리설, 동족촌락의 형성 등 전통적 관습에 크게 지배되어왔다. 배산임수(背山臨水), 즉 산을 등지고 물을 낀 촌락입지는 한국의 가장 보편적인 취락입지의 유형이 되고 있다. 그것은 겨울에 북서계절풍의 그늘이 되면서 양지바르고, 바로 가까이에 수리가 안전한 농경지를 끼며, 아울러 음료수·땔감 등을 얻기 쉬운 촌락의 입지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밖에 홍수의 피해가 적은 넓은 평야지대에서는 평지에 주로 입지하지만, 하천 연안에 있는 범람원이나 하구의 삼각주와 같이 배수가 잘 이루어지지 않거나 수해의 위험이 있는 곳에는 자연제방을 통해 촌락의 입지가 이루어지고 있다. 범람원을 배경으로 한 촌락은 한국의 4대강 유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데, 특히 팔당에서 뚝섬에 이르는 한강 하류의 범람원에서는 자연제방과 하중도(河中島)의 퇴적단구 등에 취락이 띠모양[帶狀]으로 형성되어 있다. 대관령 부근의 고위평탄면 지역이나 죽령 부근의 옛 화전 지대에는 기후·토양에 맞는 특수영농을 하는 촌락이 입지한다. 해안에는 기존의 어촌들 외에 전북 부안의 계화지구(界火地區), 군산의 미옥지구(米沃地區) 등 간척지에는 새로운 간척지촌락이 형성되었고, 대천·연포·만리포 등 해수욕장이 있는 해안에는 위락(慰樂)촌락이 형성되었다.
⑶ 형태:호남·나주·논산 등 대규모 평야지대와 경기·황해·관서 서부, 함남 해안부 등 답작지역에는 대부분의 촌락이 집촌(集村)을 이루어, 그것이 한국의 보편적인 취락형태가 되고 있다. 제주·철원분지 등지에도 집촌이 형성되어 있는데, 투수성(透水性)이 큰 다공질 현무암대지가 넓게 펼쳐져 있어 해안이나 침식곡의 용천(湧泉)이 주위에 괴촌(塊村)을 형성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산촌(散村)은 밭농사를 위주로 하는 북부의 고원 산악지대 및 이와 연결되는 태백산지 지역에 분포한다. 논농사 지역이면서 이례적으로 산촌이 분포하는 곳은 당진에서 서산에 이르는 태안반도 일대이고, 그밖에 나주·대구 부근의 사과 과수원 지역, 제주의 감귤 과수원 지역 등지에 부분적으로 산촌이 분포한다.
⑷ 기능:한국은 전통적으로 벼농사가 중심이어서 모내기·김매기 등에 필요한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촌락은 농촌·산촌(山村)·어촌 중 어느 것일지라도 농업적 기능을 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농촌은 크게 논농사 농촌과 밭농사 농촌으로 구분되는데, 한국의 논농사지대는 남해안을 저변으로 하여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면서 점차 폭이 좁아지는 쐐기 모양의 지역 형태를 보이고, 밭농사지대는 대체로 연천·포항을 잇는 동쪽의 산악·구릉지대와 거기에 서쪽의 평야지대 중 수리·기후·지형 등 자연조건이 논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 포함된다. 근래 교통수단의 발달과 식생활 양상의 변화로 근교농업이 활발해졌는데, 서울 주변의 고양·광주·김포, 부산 주변의 밀양·김해, 대구 교외의 동촌, 대전 교외의 유성 등지가 대표적인 근교농업지이고, 또 서울 주변의 평택·안성·화성·시흥·안양, 충남의 천안·아산, 부산 교외의 양산 및 경춘가도 등지의 교촌(郊村)에서는 낙농업이 성하다. 그밖에 남해안 일대의 채소류, 제주의 감귤, 대구 주변의 사과 등의 재배는 대표적인 원교농업(遠郊農業)이다.
본래 화전농(火田農) 위주인 산촌(山村)에서는 1965년 화전정리법 시행 이래 고랭지농업으로 전환하여, 여름무 등 고랭지 채소류와 씨감자·홉·약초 등을 원교농업 형태로 재배하여 대도시로 출하하고 있는데, 그 중심지는 대관령 부근, 죽령 부근 일대이다.
한국의 어촌은 대부분 반농반어(半農半漁)의 형태이다. 1950년대 말부터 원양어업에 눈을 돌려 태평양·인도양·대서양의 3대양에 진출하였고, 1960년대 중반부터 어청도(於靑島)·흑산도(黑山島)·나로도(羅老島) 등 10개 도서에 어업전진기지를 두어 수산업진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성어기에는 외지 선박이 모여드는 흑산도·위도(蝟島)·연평도(延坪島) 등에 파시(波市)가 형성되어 임시 가옥들이 형성되기도 한다.
이러한 농촌·산촌·어촌 외에 다음과 같은 특수한 기능을 가지고 성장해온 촌락들이 있다. 삼국시대 이래의 역원제(驛院制)에 의해 역(驛)취락·원(院)취락·파발(把撥)취락 등이 발달하였는데, 역촌동·역삼동·말죽거리·마장동 및 역(驛)자가 붙은 전국 각지의 리·동(里洞), 양재원·장호원·이태원 등 원(院)자가 붙은 리·동, 구파발·파발막 등으로 불리는 리·동 등이 그것이다. 그밖에 역시 교통에 관련된 기능을 가진 취락으로 삼거리·점촌(店村)·주막리(酒幕里) 등으로 불려 가촌(街村)을 형성한 막(幕)취락, 삼전도(三田渡)·삼랑진(三浪津) 등 도진(渡津)취락 및 고개[嶺下]취락 등이 있다.
행주산성(幸州山城)·해미읍성(海美邑城)·통영(統營)·만포진(滿浦鎭) 등은 방어기능을 가진 산성취락·읍성취락 및 수영(水營)·진영(鎭營) 등을 바탕으로 발전 또는 쇠미한 곳들이다. 점차 쇠퇴되고 있는 시장촌은 발안장(發安場)·안성장(安城場) 등 지명을 남겼고, 영산포(榮山浦)·마포(麻浦) 등은 조창(漕倉)취락을 이루었던 곳이다. 태백산지구에는 상동(上東)·도계(道溪)·장성(長省)·사북(舍北) 등 광산촌이 발달하여 장성은 신설된 태백시(太白市)의 일부가 되었고 경인·경수(京水) 지역의 역곡(驛谷)·주안(朱安)·동암·시흥(始興)·군포(軍浦)·부곡(富谷) 등지는 전철 등 교통수단의 발달에 힘입어 통근자취락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국민소득수준의 향상에 따라 송추(松湫)·일영(日迎)·수안보(水安堡)·도고(道高) 등 도시주변의 경승지·온천지대·해안지대 등지에 관광촌이 크게 성장해 가고 있다. 대도시권을 중심한 도시집중화로 인하여 주택난과 교통혼잡 등 도시문제가 심해지자 신도시개발이 본격화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서울시의 주거기능을 분담하는 과천시·일산·분당·평촌·산본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