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천구 한국광물자원공사 개발지원본부장
인천공항에서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까지 비행시간과 체류시간을 합치면 무려 35시간이 걸렸다. 지난달 8일 떠난 이 긴 출장의 목적은 볼리비아 우유니 염호에서 추출한 염수를 갖고 연구개발한 '탄산리튬 제조기술' 보고서를 제출하기 위해서였다.
경쟁국인 일본은 지난해 8월, 중국은 올해 7월에 이미 제조기술개발 공정 보고서를 제출했고 프랑스도 제출한 상태이다. 한국은 주간사인 한국광물자원공사를 비롯해 포스코 산하 포항산업과학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 3개기관이 그동안 공동연구를 추진해 왔다. 그리고 6개월 만에 8개 공정을 개발, 그중에서 KB1, KB2, KB3 등 3개 공정을 보고서로 제출했다. 한국이 탄산리튬 제조기술을 볼리비아 정부에 제출한 것은 국가로는 네 번째이다. 한국은 우유니 리튬자원 개발에 뛰어든 후발주자인 셈이다.
우리는 출장 전부터 후발주자가 갖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치밀한 전략을 세웠다. 단순히 보고서 제출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경쟁국이 하지 못한 이벤트가 필요했다. 그것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는 뛰어난 기술력이 빛을 보게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우선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에서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설명회를 열었다. 정부 관계자·교수·언론사 기자 등 현지에 영향력 있는 인사를 가능한 한 많이 초대했다. 또 직접 우유니 염호 현장을 찾아 염수 채취과정을 확인하기로 했다. 볼리비아측에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해주고 새로운 모델의 양해각서 체결을 이끌어 내려고 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바라는 대로 이뤄졌다. 설명회에는 많은 전문가가 참석해 높은 관심을 표명하고 열띤 토론을 펼쳤다. 큰 박수를 받은 한·볼리비아 동영상 비디오는 이벤트 행사로 크게 한몫했다. 우유니 염호 시찰 때는 우리를 관광객으로 오인한 한 마을 주민들이 우리 일행을 억류하고 중앙정부와 협상하려는 일도 벌어졌다. 그들에게 "우리는 관광객이 아니라 당신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 온 조사단"이라고 설득했다. 24시간 억류 끝에 염호 시찰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우리 정부 특사나 관련 업체 CEO들도 한 해 3~6차례나 끈질기게 볼리비아를 방문했다.
마침내 볼리비아 대통령이 그 긴 시간 비행기를 타고 우리나라를 찾아왔다. 지난달 26일 청와대에서 한·볼리비아 대통령이 지켜보는 앞에서 광물공사와 볼리비아 코미볼사 간에 새로운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탄산리튬 제조기술 보고서 제출로 시작된 우리의 계획은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한국은 세계 자원국들에 늘 하는 말이 있다. "당신들 나라의 자원과 노동력에 한국의 기술과 자본을 결합하면 시너지 효과가 엄청날 것이다." 그런데 지난달 12일 라파스에서 열린 설명회에서 어느 볼리비아 과학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세계 최고라고 자랑하는 기술을 어떻게 우리에게 제공할 것인가?" 우리는 분명히 말했다. "볼리비아 정부가 하기 나름이다. 한국을 제외시키지 않고 기술력에 걸맞은 대우를 해준다면 우리는 볼리비아와 영원히 같이 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3년 전 우리가 볼리비아와 첫 인연을 맺은 코로코로 구리 광산은 스페인이 버리고 간 광산이었다. 그 광산 개발에 우리나라가 뛰어들었다. 그런 노력이 이제 결실을 맺고 있는 것 같다. 방한했던 볼리비아 대통령과 수행원들이 한국의 발전된 모습만이 아니라 우리의 진정성까지 함께 느끼고 갔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