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진포(花津浦)의 해파랑길엔 김일성 별장도 있다
(해파랑길 제2편)
루수/김상화
고성 통일 전망대 관광을 마치고 해파랑길 트래킹을 하기 위해 화진포로 왔다. 화진포는 동해와 연접해
자연풍광이 수려하고 면적 72만 평에 달하는 광활한 호수 주위에 울창한 송림이 병풍처럼 펼쳐진 국내 최고의 석호이다. 동해 연안에 형성된
석호(潟湖) 가운데 하나로서 경관이 아름다워 강원도 기념물 제10호로 지정되었다. 동해안의 호수 가운데 최대 규모로서, 면적은 2.39㎢이고,
호수의 둘레는 16㎞에 달한다. 화진포는 여름엔 유명한 해수욕장이 기다리고 있으며 김일성 별장과 이승만 대통령 또 이기봉 전 부통령 별장도
있다. 화진포는 해양 박물관도 있다. 우리는 바닷물이 철석이는 소리를 들으며 걸을 것이다. 그리고 김일성별장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는
해파랑길에서 자연을 만끽해 볼 것이다. 바닷가의 흰 모래사장을 오래간만에 걸어본다. 갈매기 몇 마리가 오손도손 즐겁게 놀고 있다. 해파랑길의
뛰어난 경관을 보며 동해의 맑고 신선한 공기도 마시며 오늘이란 하루를 내 생애 최고의 날로 승화시켜 보고 싶다. 화진포(花津浦)는 그곳의
지명이기도 하지만 호수의 이름이기도 하다.
해파랑길이란 단어 자체가 매우 아름다워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그 뜻은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색인 "파랑"과 "~와 함께"라는 "랑"을 합쳐 "동해의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길동무 삼아 함께 걷는다"는
뜻이다. 부산 오륙도 해맞이 공원을 시작으로 강원도 고성 통일 전망대에 이르는 초광역 걷기 길이다. 이것을 4개의 테마로 나뉘어 보면 다음과
같다. 동해의 아침(부산~울산), 화랑 순례길(경주~강릉), 관동 팔경길(울진~고성), 통일기원길(양양~고성)이다. 총 50개의 코스이며
770km에 이르는 긴 구간이다. 우리는 오늘 이 구간 중 일부를 맛보고 갈 것이다. 해파랑길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 옆길을 걸을 때
얼마나 신비로울까? 또 얼마나 경관이 화려하고 아름다울까? 상상만 해도 바다 물결이 바람에 일렁이듯 나의 마음도 찰랑찰랑 행복되어 쏟아져
나온다.
갈매기의 화려한 날갯짓과 물 위에 동동 떠다니며 다정다감하게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며 모래사장을 걷는다. 모래사장을 벗어나
응봉산(鷹蜂山)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올라가다 보니, 별장같이 아담하고 예쁜 집이 나타난다. 알림판엔 화진포의 성(城) 김일성 별장이라고
쓰여있다. 6.25 전쟁 전에는 화진포가 이북 땅이었다. 그래서 최고의 명승지인 이곳에 별장을 지었던 것 같다. 도대체 천하제일의 악명높은
독재자 김일성의 별장의 내부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호기심에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내부의 1층에서 3층까지 모두 살펴보았다.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보다 훨씬 초라하게 보였다. 그러나 그 당시는 상상할 수 없는 삶의 수준일 것이다. 2층 침실엔 목침대 한 개가 덩그러니 놓여있고
벽걸이엔 몇 벌의 옷이 걸려있다. 김일성으로 인해 남북 분단이 생겼고 38선이 그어지게 되었다. 물론 강대국들의 정치 공학에 의해 빗어진 일이
지만 이자의 입김도 많이 작용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또 이자로 인해 6.25란 피비린내 나는 전쟁도 맛본 것이다.
알림판에
의하면 이 건물은 일본 강점기인 1937년 일본이 중일 전쟁을 일으키면서 원산에 있는 외국인 휴양촌을 화진포에 강제 이주시켰으며, 독일 건축가인
H.Weber가 1938년 건립하여 예배당으로 이용하였다, 해안 절벽 위 송림 속에 우아하게 자리한 모습에서 "화진포의 성(城)"으로 불렸다.
김일성 별장이라고 일컫는 본 건물은 한국전쟁 이전에 북한지역으로써 주변 경관이 수려하여 공산당 간부들이 휴양지로 사용하였다. 1948년 이후에는
북한이 귀빈 휴양소로 운영하였고, 당시 김일성과 그의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이 묵고간 적이 있어 지금까지 "김일성 별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64년 육군에서 훼손된 본래의 건물을 철거하고 재건축하였으며, 1995년 육군 복지단에서 개. 보수하여
장병 휴양시설로 운영하여 오다가 1999년 7월 육군에서 기존의 건물을 용도 변경, 개수하여 역사안보전시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화진포의 城은
당초 선교사 셔우드 홀 부부에 의해 1938년 독일 망명 건축가 베버가 건축하였으며, 6.25전쟁 중 훼손된 건물을 2005년 3월 옛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아름다운 경치를 지니고 있는 화진포는 둘레가 16km라고 한다. 이곳은 동해안 최대의 자연호수이다. 넓은 갈대밭 위에
수천 마리의 철새와 고니가 날아들면 환상적인 움직이는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오늘 이러한 광경을 보지 못하고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매우 아쉽다. 화진포(花津浦)의 경치는 동해와 인접하여 자연 풍광이 수려하고 호수 주위에 울창한 송림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 화진포는
호숫가에 해당화가 만발해 이름 붙여졌으며 송림과 어우러진 철새도래지로 유명하다. 주변 경관이 빼어나 예부터 주변에 유명한 별장들이 많았던 곳으로
지금도 이승만 대통령 별장과 이기붕 별장, 김일성 별장이라고 하는 화진포의 城이 안보전시관으로 남아있다. 특히 모래 빛이 하얗고
모나즈(monaz) 성분이 많아 모래를 밟으면 감촉이 부드럽다. 또한 개미 등 곤충류(昆蟲類)가 살지 않으며 맑은 동해의 해수가 화진포 담수와
교차해 해수욕장으로도 최적지이다. 호수 주위의 빼어난 경치에 심취하여 죽정(竹亭), 모연(暮煙), 풍암(楓岩), 귀범(歸帆), 장평(長坪),
낙안(落雁), 가평(加平), 야종(夜種)을
화진팔경(花津八景)이라고 한다.
뜻밖에도 화진포 설화를 보았다.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이 설화는 옛날 화진포 마을에 이화진이라는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인색하고 성격이 고약해 마을에
구두쇠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데 어느 날 건봉사 스님이 이화진의 집을 찾아와 시주를 얻으려 하자 시주 대신 소똥을 퍼주었다. 그러자 스님은
염불을 외며 소똥을 바랑에 받아 넣고는 답례로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말하며 돌아서 나갔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며느리는 얼른 쌀을 퍼서
스님께 드리며 "우리 아버님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라며 빌었다. 그러자 스님은 들은 체도 않고 화진포 고개의 고총산까지
올라갔다. 며느리가 쫓아오는 것을 보고 딱 멈춰서며 며느리에게 말했다. 왜 자꾸 나를 쫓아오시오?"라고 묻자 며느리는 사정하며 또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스님은 시주를 받으며 "그대는 나를 따라오면서 무슨 소리가 나더라도 절대 돌아보지 말라" 고 말했다. 며느리가
얼마 동안 스님 뒤를 따라 걷는데 갑자기 뒤에서 "쾅" 하고 하늘이 무너질 듯한 큰 소리가 나자 며느리는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다봤다. 그러자
하늘에는 폭우가 마구 쏟아지고, 이화진이 살던 집이며 논밭이 순식간에 모두 호수가 돼 버렸다. 스님은 이미 모습을 감춘 뒤였고, 며느리는
애통해하다 그만 돌이 되어 버렸다. 그 일 이후 고을에 큰 홍수가 나고, 농사는 흉년이 들기 시작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착한 심성을 가진
며느리의 죽음을 안타까이 여겨 고총 서낭신으로 모셨는데 그 후로 농사도 잘되고 전염병도 사라졌다고 한다. 화진포라는 이름도 바로 이화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화진포의 성을 구경하고 정상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올라가면서 바라본 경관은 말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신비로움에 싸여있다. 너무도 환상적인 풍광이 눈앞에 펼쳐져 어리둥절하기까지 하다. 혹시 내가 꿈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었다. 올라가는 오솔길엔 소나무에서 은은하게 솔향을 풍기고 한쪽 옆은 동해의 푸른 물이 넘실거린다. 또 한쪽은 아무 말도 없이 물을 가득 채운
화진포는 그 우아한 자태를 드러낸다. 옹기종기 자리를 잡고 있는 섬들은 얼마나 아름답던지 놀랄 정도다.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그저 멍하니 임을
기다리는 해바라기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관에서 풍겨오는 신비로움은 전 세계에서도 흔치 않을 것이다. 필자는 마치 꿈속에서 한참
헤매다 온 기분이다.
해발 122m의 응봉산(鷹峰山)이란 정상에 도착했다.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신바람 나게 올라왔다.
올라와서 보니 작은 키의 정상 석이 아담한 몸매로 서 있다. 마치 애인을 기다리는 듯 필자를 기다린 것 같다. 얼굴을 붉히며 반갑게 맞이해
준다. 필자 역시 얼마나 반갑던지 숨 고를 사이도 없이 끌어안고 입맞춤부터 했다. 향기로운 입맞춤이 끝난 후 사방을 바라보았다. 화진포 호수
동쪽에 위치한 높은 산이 매가 앉은 형상과 같다고 하여 매 "鷹" 자를 써서 응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산 전체가 금강송으로 둘러싸여 있다.
금강송에서 풍기는 솔향이 어찌나 향기롭던지 온몸이 녹아내린다. 작은 섬들은 바다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사랑이라도 속삭이듯 정다워 보인다.
뒤로는 백두대간의 향로봉과 비로봉이 보인다. 옆에는 화진포 호수에선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이 공중에 떠다니는 몹쓸 말들을 끌어들여 앞으로는 좋은
말만 하라고 타이르며 자장가를 불러주는 것 같다. 이상으로 1,2편을 모두 마친다. 해피 가족은 오늘 하루도 자연에 묻혀 향기를 맡으며 자연의
신비로움을 만끽해보는 행복한 하루였다.
2019년 02월 02일
첫댓글 장문 옮기시느라 수고 하셨습니다.
평안한 주말 보내소서~!
반갑습니다. 비추/김재원 시인님
백제문학 발전을 위해 훌륭하신 시인님께서 노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좋은 작품 기대합니다
늘 행복하시고 향필하시기 바랍니다
@루수/김상화 평안한 밤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