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천하는 신묘한 그릇
천하를 가지고 작위하려고 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될 수 없다.
천하는 신묘한 물건이라 작위 할 수 없나니,
작위하면 실패하고 잡으려면 잃어버린다.
그러므로 세상의 사물이란 앞서 가기도 하고 뒤 따르기도 하며,
훈훈하게 데울 때도 있고 차게 식힐 때도 있으며,
강한 것도 있고 약한 것도 있으며,
더해지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심하게 하지 않고,
사치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는다.
천하를
통치의 대상인 제국과
그 백성이라 보든,
모든 사물 전체라 보든,
그것은 신성한 그릇과 같은 것이므로
함부로 간섭하고 지배하거나 소유하려 들지 말라는 뜻이 강조된다.
그러면서 자연의 대극성과 양 극 사이의 이동을 예시하고
과도하게 지나침을 삼가도록 권한다.
신기 (神器)란
왕필의 주에 의하면 신령처럼 형체 없는 것이 합하여 이루어 진 그릇이다
.
웨일리는 신기를 거룩한 그릇(a holy vessle)이라 번역했고
빌헬름은 영적인 것(ein geistiges Ding)이라 번역했다.
시간과 공간으로 제약된 의식의 합리적 기능으로는
파악하지도,통제하거나 조작할 수 없는
어떤 누미노제(*고등종교가 갖추어야할 특성이기도 하면서, 유령, 귀신의 존재에 대한 설명)를
지닌 비합리적 실체,
혹은 그 속에서 혼합, 분리,융합, 승화 등
대극 간의 갈등과 극복과 같은 창조적 변환이 일어나고 있는
연금술의 그릇(vas hermeticum)과 같은 것을 생각해본다.
그것은 무엇인가. 인간의 마음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인간의 무의식 세계이다. 무의식은 변환의 장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단지 의식에 종속된 열등한 부분으로
합리적으로 해석하거나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것은 잘못이다.
무의식은 그 자체의 창조적 기능을 가지고
의식의 일방성을 조절하며 치유의 상징들을 산출하는 신성한 그릇과 같다.
그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반하는 도의 작용(反者道之動, 제40장),
즉 극에 도달하면 되돌아오는
자연과 인생의 대극반전의 이치를 인식하고
무의식의 작용을 ‘성실하고 주의 깊게 관찰하는 태도’를 지켜야 한다.
제29장의 마지막 구절은 빌헬름이 번역한
‘지나친 것(Zusehr),
너무 많은 것(Zuviel),
너무 큰 것(Zugross)을
삼간다
는 말이 적절할 듯하다.
(*연금술은
지상의 물체들과 인간의 관계를 살피고 있다
인간의 삶이 창조자의 뜻에 의해 이끌려지고, 그것은 하늘에서나 땅에서 그 징표가 나타난다는 믿음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사고 유형인 듯하다.중국·그리스·이슬람 문명권에서는 많이 발견되고 있다그것은 변화나 변형과 관계되어 있다. 연금술에서 가장 중요한 광물은 수은과 유황이다. 연금술사들은 많은 광물을 황산염·백반·염화나트륨 등과 반응시켜 마치 화학 실험 같은 것을 했는데, 이러한 실험 결과 황산·염산·질산을 발견하게 되었다(→ 색인 : 야금술). 연금술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중심 단어는 변환이다. 병에서 건강으로, 늙음에서 젊음으로, 지상적인 것에서 초자연적인 것으로 변환을 꾀하는 연금술은 자연히 부·장수·불사(不死)를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연금술 책은 손사막(孫思邈:581~673경)이 쓴 것으로 알려지는 〈단금요결 丹金要訣〉인데, 이 책에서 그는 수은·유황·소금·비소 등을 가지고 불사의 영약(靈藥) 만드는 법을 제시하고 있다(→ 색인 : 연금약액). 유럽의 연금술이 금 만들기를 목표로 하는 연금술사와 영약 만들기를 목표로 하는 이들로 분열되어 있는 반면에, 중국의 연금술은 주로 영약 제조에 몰두했다. 이 차이는 아마 유럽에는 불사를 약속하는 종교가 있었던 반면에 중국에는 그런 것이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의 연금술은 영약의 부작용과 다른 의미에서 불사를 가르치는 불교의 유입과 함께 쇠퇴되었다.
헬레니즘 사회의 연금술
은 BC 300년경부터 시작되었으나, 가장 권위 있는 연금술사는 3세기경 이집트의 조시모스이다. 조시모스에 의하면 '기본' 금속은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귀금속(금)이 되어야 하는데, 이때 그 금속은 검정색·흰색·노란색·자주색으로 변화되는 단계를 밟아간다고 한다. 조시모스는 세상에 사람들이 원하는 물질로 만들 수 있는 어떤 원물질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철학자의 돌'이라고 불렀다. 철학자의 돌은 결코 평범한 돌이 아니라, 저급하거나 병든 금속을 변화시켜서 온전하게 만드는 원물질인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나중에 연금술이 인간의 병을 고치는 제약학으로 바뀌는 데 기여하게 된다. 중요한 연금술 문서인 '베네치아-파리 사본'의 저자 가운데 하나인 시네시우스는 연금술을 정신적인 작업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의 연금술
화학적인 방법으로 금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19세기에 들어와서였다. 그전까지 많은 사람들은 연금술을 통해 금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연금술에 대한 권력자들의 태도는 크게 2가지로 나뉜다. 금의 무분별한 생산에 대한 우려로 그것을 금지하는 것과, 더 많은 금을 소유할 목적으로 그것을 후원하는 태도이다. 그러나 연금술로 금을 생산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18세기부터 연금술은 종교적인 목적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다. 근대 화학의 발달과 더불어 인간과 우주의 관계에 대한 물음은 이제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종교적 문제로 확연히 구별되었다. 그결과 17세기에 영적인 변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장미십자회 운동이 생겨나 이러한 경향을 가속화시켰으며, 오늘날에는 연금술이 주로 신비주의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연금술에 대한 평가
연금술사들은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키거나, 열등한 물질로 금을 만들어내려고 끈질기게 노력해왔다. 그러나 어느 것도 달성해내지 못했다. 그대신 새로운 실험 기구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물질들을 발견하는 등 근대 화학의 발달에 많은 기여를 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기도 하지만 대체로 화학의 발달에 대한 연금술의 공헌을 인정하고 있다. 1920년대 스위스의 분석심리학자인 C. G. 융은 연금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는데, 그는 연금술 문헌에 나오는 수많은 상징적 표현들과 정신병 환자의 꿈속에 나타나고 있는 상징적 이미지의 연관성을 발견해낸 뒤 연금술 역시 '집단 무의식'의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 ‘연금술사’의 줄거리
산티아고라는 청년이 있어요. 산티아고는 원래 집에서 신부가 될 예정이었는데....
모험을 떠나고 싶어 양치기가 된 사람
그 사람이 양치기가 되면서 떠돌아 다니면서 어느 마을에서
예루살렘의 왕을 만나서 신비한 돌을 받고<-우림과튬밈>
보물로 가는 길과 자신의 양을 바꾸게 된다.
그래서 양치기를 떄려치우고 보물을 찾으로간다.
이책에서 연금술은 그냥 단순히 고철을 금으로 만드는 기술이아니라
만물과 통하는 우주의 언어를 꿰뚫어
궁극의 '하나'에 이르는 길이며,
마침내 각자의 참된 운명, 자아의 신화를 사는 것이다.
그렇게, 지난한 연금술의 여정을 통해
그는 만물과 대화하는 '하나의 언어'를 이해하며
마침내 영혼의 연성자
(확실히 연성자의 입장이 되면
주위 일 모든 것을 망상에 결부시키는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되는 것 ) 가된다.
그러나 사실은, 꿈을 찾아가는 매순간이
만물의 언어와 만나는 눈부신 순금의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하나인 것으로 회귀
『도덕경』제39장에는
‘귀함은 천함을 뿌리로 삼고, 높음은 낮음을 토대로 삼는다’
(故貴以賤爲本,高以하(下)爲기(基))는 말이 있다.
‘높은 것은 낮은 것 위에 서 있다(Hoch steht auf tief).
융이 서양인의 만다라를 해석하면서 인용한 노자의 말이 이와 같다
이 말은 옛날에는
하늘, 땅,신, 골짜기, 만물,왕이 모두 ‘하나,
도의 일원기(一元氣))를 얻어 맑고 안정되고 영험하며 채워지고,
생겨나고, 천하의 중심이 되었는데
이 모든 것이 하나를 써서 하나를 지킴으로써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고
맑고 영험하고 채우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할 때는 그 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구절 뒤에 나오는 말이다.
공을 이루는 근본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강조되어 있다.
그렇다면 낮은 것과 천한 것은 높고 고귀한 자에게는 지켜야 할
그 하나인 것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매개자일 터이다.
그로써 그는 비로소 전체가 되기 때문이다.
전체인 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왔으니
돌고 도는 도의 움직임을 재인식시키고자 하는 말이 제40장에서 이어진다.
되돌아음이 도의 운행이며, 유약함이 도의 작용이다.
천하 만물은 유에서 생겨났고, 유는 무에서 생겨났다
.
反者, 道之動, 弱者, 道之用,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대극 간의 순환은 근원적인 것이다.
말하자면 원형적 조건이다.
도의 움직임은 대극 간의 영원한 순환 반복만을 말하는 것이 아닌 듯하다.
반(反)이란 근본으로의 돌아옴이다.
‘천하의 만물을 무로 되돌리고자 하는 도의 움직임을 말한다.’
유무,
난이,
장단,
고하,
전후,
자웅,
흑백,
영욕,
흡장(흡(翕)張),
약강,
폐흥,
탈여(奪與)와 같은 것들을
근본,
무극,
무물,
박소(박(樸)素) 등으로
반복, 순환, 복귀하는 것이 도의 운행이라고
임헌규는 말한다.122)
그것은 궁극적으로 대극적 상대성을 거쳐
이를 하나로 융합한 것으로의 회기이다.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자아의 자기로의 회기,
대승기신론(인도의 승려 마명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대승 불교의 교리를 통론적으로 서술한 책 )의
귀일심원(歸 -心源)과 같은 것이다.
또한 여기서 도의 쓰임,혹은 작용으로 제시된 유약함이란
강과 약이라는 대극의 한 극으로서의 약 (弱)이 아니라
무위자연의 작용을 나타내는 말로 보아야 한다는
임헌규 의 주장에는 설득력이 있다.
‘유는 무에서 나왔다’는 말을
철학적으로 존재와 비존재의 관계로 풀이하지 않는다면,
앞에서 이미 지적한 대로
융의 분석심리학설의 큰 전제의 하나인
‘의식은 무의식에서 나왔다는 말과 뜻을 같이한다.
무의식에서 자아의식의 가녀린 싹이 싹트고 자라서
의식을 형성, 발전시킨다.
무의식은 작은 섬을 둘러싼 바다와 같은 것으로
의식을 앙육하며 전체를 이룬다.
대극의 상대성을 포괄한 하나인 자,
도의 모습은 어떠할까?
그것은 짙은 그림자를 뒤로 하고
찬란한 햇빛을 받고 선 성인의 모습도 아니고
진격에 진격을 거듭하며 승승장구하며 적을 물리치는 영응의 상도 아니다.
제41장에서 노자는 말한다.
밝은 도는
어두운 듯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도는
물러나는 듯하고,
평평한 도는
어그러진 것 같고,
훌륭한 덕은
속된 것 같으며
,
아주 희면
때묻은 것과 같고,
큰 덕은
부족한 것 같고,
굳센 덕은
연약한 것 같고,
솔직한 진실은
틀린 말 같다.
큰 모는
모서 리가 없고,
큰 그릇(인물)은
늦게 이루어지고,
큰소리는
들리지 않으며,
큰 형상은
드러나지 않으니,
도는 이름 없이 숨어 있으나
오직 도만이 잘 베풀어주고 잘 이룬다.
|
|

첫댓글 심한 것은 지혜로운 것이 아니다. 머리에 맴돕니다. 이번주는 김기택님의 시를 읽는데요. 도덕경과 연결?연상?될 만한 게 있어요. 짠하면서도 빛과 어둠의 대극합일을 말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라서 부분 적어봤어요. :) 제목은 (어둠도 자세히 보면 환하다)
창문 하나 없던 낡은 월세 자취방. 한낮에도 어둠이 빠져나가지 못하던 방. 아침에 퇴근하여 햇빛을 받고 들어가면 직사광선이 일제히 꺾이어 흩어지던 방. ...... 어둠이 보일 때까지 어둠 속의 무수한 빛과 색깔이 내 눈을 발견할 때 까지 오래오래 어둠의 내부를 들여다보던 방. 자세히 보면 어둠도 환하게 보이던 방. 방안의 온갖 잡동사니들이 큰 숨을 들이쉬며 느릿느릿 어둠을 빨아들였다가 제 속에 든 빛을 오래오래 발산해주던 방. 보잘것없는 물건들이 서로 비춰주고 되비춰주며 제 안에서 스스로 발광하는 낮은 빛을 조금씩 끊임없이 나누던 방.
노자의 '빛과 어둠의 대극합일'
헤겔의 사상, 변증법 '정 반 합'
둘다 참 마음에 드는 사상이예요.
그러나 성경에서 나오는 빛과 어둠, 선과 악은 대극을 이루어 항상 상충하는 듯하지요
그러나.
지구가 원래 카오스상태(CHAOTIC mass)였었는데 '빛이 있으라 '하심에 '빛이 있었고'....
어둠은 빛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어둠이 빛과 대극을 이루는 상충하는 상태(二元論) 라기 보다는 , 빛이 없어지면 어둠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어떤 지협적인 것이라고나 할까요? 빛이 켜지는 순간 어둠은 자취를 감추지요............
어둠 속에 오래 있다보면 물체가 그런대로 희미하게 보이죠.
'큰 숨을 들이쉬며 느릿느릿 어둠을 빨아들였다가 제 속에 든 빛을 오래오래 발산해주던 방. '
봄 바다 바람이 겨울 바다 바람보다 추운 이유는
여름내 쬐는 태양빛으로 바다가 더워져서 겨울 바다는 봄 바다보다 덜 차가은 이유와 같아요.
바다의 열용량이 봄 보다 겨울이 큰거죠.
저 멋없죠?저는 아무래도 시적인 심상이 메마른 것 같아요.좋은 글 많이 올려 주세요^^
@레베카 바다의 열용량이라니 멋진데요 ^^
@hugyou 오늘 물김치 좀 담그노라 분주했더니 어깨가 시원찮아 공부는 휴강임다^^
@hugyou 아두운데서 잘 보는 고양이의 눈조리개 생각도 났고요. 암튼 저는 시의 심상이 꽝이라니까요.
흐흐 미드나잍 굳 잠^^
레베카님~ 제가 오늘 택배받고 깜놀해서 메일 보냈어요.
혹시 안 보실까봐 여기에 댓글 달아요.
꼭 확인부탁드려요~
네, 답글 보냈습니다.
건강하고 예쁜 아기 순산을 기도합니다.
Proud of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