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3일 금요일 (개천절)
이순신장군 발자취따라 '한산도와 노량'
1. 통영 한산도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전라좌수사 별 ★★
전라좌수영 전라우수영 경상.... 수영(水營)이 여러군데 있어 일사분란하여
하나로 통일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라는 새로운 벼슬등장 별 ★★★
이순신장군이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사'
삼도수군통제사가 근무했던 본부 '통제영'
통제영에서 '통영(統營)'이란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통영을 한때는 충무(忠武)라 해서 충무김밥 유행!
다시 통영이란 이름을 되찾았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최초로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냈던 한산도에
두었던 본영'제승당'으로 향한다.
이른 시간이어서 였을까
갈매기를 부르는 소리 새우깡에도 조용조용~
갈매기 떼는 나타나지 않았다.
유람선에서 내려 제승당으로 향하는 길
제승당에서 둘러볼 곳을 알아보고 구불구불 곡선이 아름다운 길을 걸어갑니다,
제승당(制勝堂) - 승리를 만드는 건물
이 곳에서 이순신장군은 최초로 삼도수군통제사로서 근무하셨다
정유재란때 원균이 패하고 불타버린 곳을 그후
복원한 건물로 '제승당'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수루(戍樓)에 올라 한산도 앞바다를 보면 좋으련만 공사중!!
다음 기회에 오면 수루에 올라 한산도 앞바다를 볼 수 있을것이다.
제승당 안에 있는 유물들을 살펴보아요~~~
수루(戍樓)
한산정(閑山亭)
이순신장군이 군사들과 매일 활쏘기를 연마하던 곳이다.
한산정에서 과녁까지는 145m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활터로는 유일한 곳이다.
이 곳에서 밀물과 썰물의 교차를 이용하여 활쏘기를 수련함으로써 실제 해전에서
적선과의 사정거리를 측정하였다고 한다.
수민이는 역사체험 떠나기 전부터 정리하는 것을 즐겼다
지금도 진지하게 정리하는중(?)
충무사(忠武祠)
이순신장군께 저희 다녀갑니다~ 인사하는 중
어쩌면 다큰 수민이 볼에 살짝~ 뽀뽀를 했는지도 모른다.(어머니의 크신 사랑~)
우리는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제승당을 둘러보고 돌아가는 길목에서
사진찍기 싫어하는 동렬이 사촌형과 함께
왜(倭)는 명나라를 공격하러 가려니 길을 빌려달라 '정명가도(征明假道)'라는
명분을 내세워 1592년 15만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조선땅 침략
이름하여 임진년에 일어난 난리 임진왜란(壬辰倭亂)이다.
왜적은 20여일 만에 서울을 점령~ '파죽지세'
선조임금은 의주로 피난~ '나만 살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진퇴양난'
각처에서 의병(義兵)이 일어나고
바다에서 왜적은 불멸의 이순신장군을 만나게 된다.
여기쯤 이었을까?
'거북선 등대'
한산도는 사방이 막혀 헤엄쳐나갈 수도 없고 적이 상륙해도 식량을 구할 수 도 없는 곳
이 곳에 이순신은 먼저 배5척을 이끌고 적의 선봉을 급습,
왜선이 바로 5척을 잡으러 쫓아 나왔고 이순신은 도망가는 것처럼 적을 유인,
한산도 앞바다에서 모든 배가 학이 날개를 펼친듯한 '학익진'을 갖추어 화포를
퍼부어 일본군 배 66척을 침몰시켜 대승을 거두었다.
이름하여 '한산도 대첩'
이른 아침 아니 나타난 갈매기떼 등장~~~
이 정갈한 밥상의 변신!!
보글보글 끓는 해물탕 등장
"국물이 국물이 끝내줘요~"
2. 삼도수군통제영 '세병관'
세병관 지킴이 '벅수'
통제사이하개하마비(統制使以下皆下馬碑)
통제사 이하는 모두 말에서 내려 걸어가라~
그렇다면 왕이 행차할 때는?
세병관 망일루 누각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손수 한자를 써보이시면서 설명해 주셨다
武(굳셀무)자는 止(그칠지) + 戈(창과) 두 글자가 합쳐진 글자로
지과문(止戈門)
이 문의 의미는 창(무기)를 그치게 (멈추게)
하는 문 그래서 평화를 뜻하는 문이라고 한다.
"군인(軍人)은 왜 있을까?"
전쟁을 하지마라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 하셨다.
지과문(止戈門)
높다란 곳에 지과문을 통과해 세병관이 있다.
서로 역사체험학습을 떠나고 싶은데 짝이 없어서 고민하던 친구들.
부모님께 걱정을 덜어드리고 조은이와 지윤이 짝꿍 맺어 줬는데
계속 서먹서먹~~ 둘이 손떼면 안되는 벌칙 내걸고 손잡기
바로 그 손을 꼭 잡고있는 뒷모습~~
스킨쉽의 위력으로 조은이와 지윤이는 사이가 조금 좋아졌다.
세병관(洗兵館)
세병(洗兵)은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중
'만하세병(挽河洗兵) - 은하수를 글어다가 병기를 닦다'
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피묻은 무기를 깨끗이 씻어 전쟁을 끝내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글이다. 세병관은 경복궁, 여수 진남관과 함께 조선시대 건축물 중
바닥면적이 가장 넓은 3대 건물의 하나이다
세병관은 통제영 내의 객사(客舍) 건물로
왕이 있는 곳을 향하는 왕권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은 이 곳에 근무하지 않았고 임지왜란이 지난 후
1605년(선조 38년)에 한산도에 있는 통제영 본영을 옮겨 지었다고 한다.
통제사의 살림집 내아에서.
3. 노량해전의 현장
관음포 이락사, 영상전시관
이순신장군 영상관과 전시관
잘 알아볼 수는 없지만 거북선 모양의 전시관 이었다.
이순신장군의 생애, 임지왜란, 장군을 도와준 참모들
여러가지 이야기를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셨다.
빨간 장미꽃 모양의 마이크가 참 멋졌다.
이순신장군 전시관을 나오는 길
전시관에서 회전식으로 기록해 놓은 전시물이 기억에 남았다.
모두 카메라에 담아오고 싶었고, 시간을 갖고 자세히 읽고 싶었다.
어쩌면 놓친 부분이 아쉬워 다시 발걸음을 할지도 모르겠다.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
전방급 신물언아사(戰方急 愼勿言我死)
"싸움이 바야흐로 급하니 삼가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이락사(李落祠) 입구에서
우리 친구는 무슨 질문을 했을까?
이락사(李落祠)는 관음포 앞바다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이다 순국한 이순신장군의 위패를 모셔놓고 제향을 올리는 사당이다.
대성운해(大星隕海) - '큰 별이 바다에 잠겼다'
이락사와 대성운해 현판은 박정희대통령이 직접 썼다고 한다.
첨망대(瞻望臺) - 관음포 앞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곳
'노량해전(露梁海戰)'으로 잘 알려진
임진왜란의 마지막 격전지. 이순신장군이 순국한 바다라는
뜻에서 '이락파(李落波)'라고도 불리는 곳
우리는 관음포 앞바다를 보고 왔다.
명량대첩에서 패배한 일본군은 육지에서도 계속 고전하게 되고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사하자 일본군은 철수작전을 서두르게 된다.
이 소식을 접한 이순신은 일본군을 섬멸하려 하였으나
원군으로 파병 나와 있던 명나라의 진린이 일본군에게 뇌물을 받고
일본군의 통신선 1척을 빠져나가게 도와줌
빠져나간 통신선 1척이 다른 부대와 연락을 취해 500척을 노량 앞바다에 집결 시킴.
하지만 이미 알고 있던 이순신이 적선 400척을 침몰시켰고
이 싸움에서 적군의 탄환을 맞아 돌아가셨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노량해전-
[한산도와 노량 자료집 본문 중에서]
대략 이 이야기를 하신것 같은데 놓친 부분이 있어서 유창하게 쓸 수 없다~
4. 순천 왜성 (順天 倭城)
정왜기공도 - 征倭紀功圖
'왜를 정벌한 공을 기념한 그림'이란 뜻이다.
정유재란(1597-1598) 마지막 3개월간 육상 해상에서의 전투장면을
당시 명군을 따라왔던 화가가 그린그림이다.
순천왜성에 주둔한 왜군을 조,명 연한군이 수륙양면으로 공격하는 장면이다.
학원 다닌지 두 달째인 윤지 엄마와 함께 친구처럼 마냥 즐거워했다~
우리가 서있는 이 단위에 '천수각'이 세워졌을 것이고
아래 사면으로 바닷물이 에워싸고 있었을 것이고
일본 왜성은 연결다리만 끊으면 천혜의 요새가 되고
왜놈이 성을 지으면 전쟁을 계속해서 점거하겠다는 의미라고...
전라남도 지방에 쌓은 왜성으로 유일하게 오직 한 군데 남아있는곳 '순천왜성'
이충무공의 전쟁터이기도 한 이 성은 왜장 소서행장을 이곳에서 부터 노량 앞바다로
유인하여 대승을 거두었던 곳이다.
임진왜란은 일본이 패하고 조선의 승리로 끝났지만
일본은 조선의 도자기 기술을 훔쳐갈 수 있었고, 조선에서 노략질 한 것들로 큰 부를 칭출할수 있었다.
미운 일본인이지만 싫어하기 보다는 일본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처음 가본 이순신장군 유적지 남해 관음포 전시관과 순천왜성은 참 인상적이었다.
비록 왜놈들이 쌓은 성이지만 찾아가는 길목에서 미로 속을 헤매는듯 했고,
실제로 그 당시 상황처럼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였다면~~~
남해와 순천왜성은 머지않아 관광상품으로 떠오르는 샛별이 되지않을까?
(또 .... 쓸데없는 나만의 생각 ....)
첫댓글 경상도 지역 다른 왜성을 비교답사해봐야 할 터인데, 순천왜성은 다른곳에 비해 충분히 방문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동감합니다. 모양도 모양이려니와 임란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의 원인이 되었고, 일본대표장수 소서행장이 머문곳이기도 하닌까요.
수민이도 아주 열심히였고, 제뒷자리 윤지였나보군요. 그 모녀 나들이도 아주 좋아보였습니다. 엄마의 알기쉽게 설명하는 말도 좋았구요(뉴스에 홍콩사태가 나왔는데, 그 사건의 실체를 윤지에게 아주 쉽게 설명해주시더라구요...)
잘읽었습니다.
저도 반성합니다. 해설사선생님 설명을 귀기울여 들어야겠어요.
수민이는 한산도가 가장 기억에 남고, 윤지는 순천왜성이라고 대답했어요. 엄마께서도 아마 그러실거라고....
남해 아니면 순천왜성 포함해서 낙안읍성 민속마을, 순천만, 다른 좋은 곳이 있으면 체험학습 일정으로 잡아 떠나봤으면 좋겠어요~ 좋은 일정 잡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