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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부터 자전거를 타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전거로 출퇴근할 주제는 안 되고요. 그저 휴일에 한강의 자전거도로에 나가 유유자적 페달을 밟는 거예요. 그러나 사이클링은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으니, 바로 온몸이 태양에 적나라하게 노출된다는 거죠. 자외선 차단제는 물론 21세기의 가장 혐오스런 디자인 중 하나인 자외선 차단 마스크도 써보지만, 돌아와 거울 앞에 서면 깨강정 같은 누님 얼굴이 돼 있는 겁니다. 동남아 여성들의 매력적인 갈색 피부와는 달리, 저의 까만 피부는 앞날이 창창한 노화에 가속도를 붙일 뿐이죠. 지금 여름휴가가 피부에 남긴 흔적 때문에 고민하시는 분들도 많겠죠.
까만 피부를 표백제로 삶아낸 흰색 무명빛으로 바꿔준다는 믿음과 신앙을 갖게 하는 건 화장품 브랜드들의 화이트닝 광고들이죠. 물론 컴퓨터그래픽으로 모델 얼굴에서 나노 크기의 점들도 모조리 지웠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백설공주보다 더 하얀 모델의 얼굴엔 진실이 담겨 있어요. 하얀 피부에 대한 사람들의 오래된 동경 말이에요.
‘백인종’이라는 유럽인들도 중세부터 돼지기름에 달걀흰자, 오징어가루를 넣어 얼굴에 발라 화이트닝을 했다고 해요. 빅토리아 시대 영화들을 보면 여자들이 흰 분을 온몸에 바르고 눈썹도 뽑아버리죠. 중독될 걸 알면서도 수은이 든 크림을 바르던 시대도 있었죠.
결국 화장품 매장에 달려가 카드를 내밀었어요. 제 마음도 그녀들만큼 비장했던 것 같아요.
“화이트닝 제품 좀 보여주세요. 완전 슈퍼울트라 집중 표백효과 있는 걸로요.”
각종 비타민과 무슨 무슨 유도체들이 첨단 바이오 기술로 검은 멜라닌 색소에 작용한다는 에센스와 팩을 구입했어요. 제품을 바르며 혹시 제 얼굴 위에서 검은 악마들을 무찌르는 하얀 난쟁이들이 뛰어다니진 않나 들여다보기도 했답니다.
며칠 뒤 화장품회사 마케팅 담당자에게 어느 계절에 화이트닝 제품의 매출이 늘어나는지 물어봤어요.
“여름휴가 때 화이트닝을 구입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 전에 신상품을 내놓죠'
“특정한 계절에 화이트닝 제품의 매출이 크게 늘진 않아요. 이제 화이트닝은 1년 내내 관심사이기 때문이죠. 남성들도 희고 깨끗한 피부를 선호해서 화이트닝이 되는 제품을 사계절 쓰세요.”
3년 전만 해도 여름철엔 ‘섹시’한 갈색 피부가 대세였는데, 자외선의 부작용이 심각하게 보도되고 ‘동안’과 ‘생얼’ 열풍이 여름에도 아기처럼 빛나는 하얀 피부를 ‘우성’으로, 까만 피부는 ‘열성’으로 만들어버린 겁니다.
그러고 보니 화이트닝은 피부에만 해당되는 용어가 아니에요. 최근 한 달만 쓰면 치아가 두 단계 ‘밝아’지게 해준다는 치아미백 전동칫솔이 나와 눈이 번쩍 떠져요. 치과에서 화이트닝을 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눈동자를 커 보이게 만드는 렌즈도 상대적으로 눈자위를 하얗고 깨끗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잖아요. 이에 착안해 안과에서는 누렇고 늘 충혈된 눈자위를 희게 만드는 눈 미백수술도 한대요.
요즘 사람들은 그냥 예쁜 것보다 깨끗하고 순수하게 보이길 원하는 것 같아요. 살면서 자기도 모르게 밴 얼룩을 지우고, 때는 박박 닦고 싶어하는 거죠. 세월이 만든 주름과 자연스럽게 그을린 얼굴이 아름답지 않냐고요? 말 마세요. 그건 화이트닝하고 태반주사 맞아서 되는 일이 아니잖아요. 잘 늙는 것, 그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