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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홍성욱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STS 전공, 신경인문학 연구회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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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뇌는
과학자와 예술가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서양에서는 플라톤 이후에 뇌는 영혼이 깃드는 인간의 신체 기관이라고 간주되었고, 지각과 이성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인식되었다. 적어도 중세 이후에는 뇌에 대한 다양한 해부도와 뇌의 구조와 기능을 연결시킨 이미지들이 만들어졌고, 이 중 일부는
지금도 남아 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두개골로 둘러싸인 뇌를 찍는 PET, fMRI 같은 기술이 발명되어 거의 실시간으로 뇌의 기능과 작동을 보여 주는 사진들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그림과 사진들은 뇌에 대한 전문가들의 그리고 일반인들의 심상을 형성했다.
뇌의 이미지와 관련해서는 매우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생각의 방으로써의 뇌’라는 문제에 주목하려고 한다. [그림 1]은
사랑을 할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에 대한 이미지로, 과학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에 실린 것이다(Fischetti 2011).
이러한 이미지들은 특정한 사고가 뇌의 특정 부위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널리 퍼트리는 데 일조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뇌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가능해진 20세기가 아니라, 중세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과학에서 자주 발견된다(Clark and Dewhurst
1996).
이번 장은 이러한 생각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고, 과학과 의학의 분야에서 이러한 생각에 근거해서 그려지고, 또
이러한 생각을 더 강화시킨 뇌 이미지들을 추적해 볼 것이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뇌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는 호두이다. 사람들은 호두의 울퉁불퉁함이 실제 뇌의 주름과 유사하다고 여길 뿐만 아니라 호두를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속설을 믿고 전파시키기도 한다. 호두와 뇌 모두 딱딱한 껍질 속에 들어 있다는 점도 흡사하다. 뇌와 호두의 유사성은 예술가들을 자극하기도 했는데, 20세기 초 독일의 예술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프리츠 칸[Fritz Kahn(1888~1968)]은 자신의 그림에서 호두와 뇌 부위를 각각 대응시키면서 비교했다([그림 2]).
[그림 2] 호두와 뇌를 비교한 프리츠 칸의 일러스트레이션 http://www.fritz-kahn.com/book.php?site =book&lang=en
뇌에 대한 또 다른 대중적 이미지는 인간이 가진 특정한 생각이 그 비중에 비례해서 뇌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블로그나 카페 게시판에는 2011년에 인기를 끈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주인공들의 뇌 구조나 혈액형별 뇌 구조에 대한 이미지들이 떠다니면서 유머의 좋은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그림 3]).
뇌 구조를 통해서 생각을 비교하는 것의 단골 소재는 단연 남자와 여자이다. 남자와 여자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 이런 이미지에서 남자의 뇌는 섹스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다른 사람의 얘기에 주목하는 능력은 아주 작은 점으로 표현된 반면, 여자의 뇌는 쇼핑이나 로맨스, 소문 같은 것이 중심을 이루고 대신 논리적 사고 능력 같은 것에 취약함을 보여 준다([그림 4]). 남녀의 차이를 보여 주는 뇌 이미지는 서양은 물론 동양에서도 많이 만들어져 유포되는데, 문화권을 막론하고 남녀의 전형적인 뇌 이미지는 흡사하다.
인간의 특정한 생각과 행동의 원천이 뇌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는 것이 아니라 뇌의 국소적인 부위에 집중되어 있으며, 뇌는 이러한 모듈(module)들을 합쳐 놓은 존재와 같다는 생각은 여러 계기와 연구를 통해 발전한 생각이다. 특히 19세기 중엽에 일어났던 한 사건과 그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20세기 중엽에 있었던 한 과학자의 연구는 이런 생각을 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848년, 미국의 철도 노동자였던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Gage (1823~1860)]는 다이너마이트를 준비하다가
이것이 실수로 잘못 터지면서 주변에 있던 파이프가 얼굴을 관통하는 엄청난 사고를 당했다. 거대한 파이프가 얼굴을 관통했기 때문에 즉사했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파이프를 빼고도 게이지는 멀쩡히 살아 있었으며, 병원에 가서도 간단한 출혈 치료만을 받고 나올 수 있었다([그림
5]).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 몇 년의 기간 동안에 게이지는 서서히 난폭해지고 사회성이 결여되는 등 이전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게이지는 이 사건 후 십 년이 지나도록 이전의 성격을 찾지 못한 채 결국 생을 마감했다.
이 사례를 통해서
뇌가 상당히 손상되어도 생명 유지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수 있다는 점과 뇌의 손상된 부위가 개인의 특정한 성격의 발현(혹은 억제)과 연결이
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이지는 왼쪽 전두엽 부분의 손상에 따른 억제 기능의 감소로 인해 성격 장애를 보인 것으로 추정된다(Macmillan 2000; Damasio et al. 1994).
이후 뇌 손상 환자들에 대한 연구들은 뇌 전체는 하나일지라도
뇌의 각 부위마다 담당하는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조금씩 드러냈다. 초기 연구들은 전두엽이 기억과 통제 등을 담당하고, 후두엽에는 주로 시각을
담당하는 신경이 모여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연구의 정점은 1930년대 미국의 신경과 의사 펜필드[Wilder G. Penfield(1891~1976)]의
연구였다.
그는 뇌가 절개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오랜 실험을 통해서 뇌의 중심부에 위치하는 일차운동피질(primary motor cortex)과 일차체감각피질(primary somatosensory cortex)을 바늘로 찔렀을 때 자극받는 신체 부위를 피질의 각 부위와 대응시킨 그림을
그렸다.
[그림 6]의
왼쪽 부분은 일차체감각피질에 대응하는 신체 부위이며, 오른쪽 부분은 일차운동피질과 대응하는 신체의 부위이다.1) 이 그림에서도 잘 볼 수 있지만, 띠 모양을 한
두뇌의 두 피질 영역에 인간의 모든 신체 부위가 대응되었다. 이렇게 대응된 인간에는 ‘피질 소인(cortical homunculu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Penfield and Rasmussen 1950).
펜필드의 소인은 실제 인간과는 다른
기묘한 비례를 하고 있다. 얼굴의 다른 부위에 비해서 입과 입술이 기형적으로 크며, 몸 중에서는 손이 특이하게 거대하다. 이것을 바탕으로
펜필드의 피질 소인을 3차원적으로 재구성한 것이 [그림
7]이다.
뇌의 특정 부위와 신체의 특정 부위를 대응시키는 연구 결과를 보여 주는 펜필드의 그림은 인간의 뇌가 자신을 인식한
이미지로 보통 해석되는데,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뇌 속에 이렇게 기묘한 모양을 한 작은 인간이 하나 들어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체 뇌의 내부가 어떻게 생겼고, 그 미세 구조인 뇌 신경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기에 뇌가 인간의 생각, 감정, 행동의
원천이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한 가지 손쉬운 대답은 뇌 속에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작은 인간(들)이 들어 있어서, 우리가 특정한
인식과 행동을 하도록 조정한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설명은 과학적인 설명과는 거리가 멀다. 뇌가 어떻게 인간의 인식과 행동을
결정하는가를 그러한 인식과 행동을 하는 소인을 도입해서 설명하기 때문에, 실제로 설명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지만, 뇌가 어떻게 해서 세상의
인식은 물론 성찰적인 자의식까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를 충분히 쉽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소인을 도입한 설명이 적어도 대중적인 설득력을 지닐
수는 있다.
[그림 8] 프리츠 칸의 〈인간의 삶〉(1929)의 삽화 http://www.fritz-kahn.com/book.php?site =book&lang=en
[그림 8]은
앞서 언급한 독일 화가 프리츠 칸의 〈인간의 삶〉이라는 제목의 그림인데, 여기에서는 사람이 열쇠를 보고 ‘열쇠’라고 말하기 까지 겪는 과정에서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사람이 열쇠를 보면 그 열쇠의 이미지는 망막에 맺혀서 뇌 신경을 통해 전달되어
뇌에서 필름으로 현상된다(1~2의 과정). 이후 이 필름은 후두엽에 있는 시각 담당 모듈로 전달되는데, 여기에서 후두엽에 기거하는 소인이(3의
과정) 전달된 이미지에 맞는 이미지를 기억된 영상들을 훑어가면서 찾는다(4의 과정). 이 두 이미지가 일치하면, 이 중 ‘쉬뤼셀’이란 단어가
발음을 담당하는 뇌로 이전된다. 여기에 있는 소인은 피아노를 쳐서 쉬뤼셀을 표현하는데(5의 과정), 이 정보는 신경을 타고 기도로
넘어가서(6~7의 과정), 기도에 있는 파이프 오르간을 작동시켜 ‘쉬뤼셀’을 발음하게 한다.
이 그림에서는 뇌가 부분적으로 서로
다른 일을 한다는 것과, 뇌 속의 방에는 각각 핵심적이고 복잡한 기능을 하는 무엇(또 다른 인간)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뇌가 인간의 행동과 생각을 통제하는 과정에 대한 조금 더 기계적인(mechanical) 분석은 17세기 과학혁명기의 합리주의 철학자 데카르트에게서 볼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데카르트는 우주에 물질과 정신이라는 두 가지 실체가 존재하며, 자연의 세계는 운동하는 물질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정신은 인간의 이성과 의지를 관장하는 실체였다. 그런데 물질의 특성은 공간을 점유할 수 있는 연장(extension)이었음에 반해, 정신은 이러한 특성이 없었고, 따라서 ‘정신이 어디어디에
존재한다’는 표현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과 정신은 어떤 형태로든 접점 혹은 인터페이스를 가져야 했다. 뇌를 포함한
인간의 몸은 전적으로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성과 의지의 작동은 정신에 의해서 관장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내가 의지를 가지고
손을 들어 올리는 것은 정신의 명령과 육체의 기계적 운동이 합쳐진 결과이다. 공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정신과 공간을 점유하는 물질인 육체가
어떻게 만날 수 있을 것인가?
데카르트는 1664년에 출판된
《인간론》에서 뇌를 매개로 하여 마음과 육체를 연결시키려는 자신의 구도를 상세히 보여 주었다. 뇌에서도 뇌 전체가 아니라 뇌의 일부이며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송과선(pineal
gland)이라는 조직을 정신과 물질의
인터페이스로 상정하고 손가락을 이동시키는 예시를 통해서 마음이 육체를 움직이는 것을 설명했다. 송과선은 심장에서 만들어진 동물의 정기(animal spirits)가 모여서 몸의 각 기관으로 다시 분출되는 분수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림 9]에서
보듯이, 자유의지에 의해서 화살의 B를 가리키던 손가락이 C를 가리킬 수 있는 것은 마음이 육체를 직접 움직여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송과선에 변화를 주기 때문이었다. 즉 손가락이 B를 가리키고 있을 때에는 송과선의 b에서 나온 동물의 영이 관 7을 타고 손으로 뻗어 내려가서
근육을 팽창시켰던 것이고, 손을 C로 내리고자 할 때에는 송과선이 조금 회전해서 c에서 동물의 영이 나오고, 이것이 관 8을 타고 내려가서 손의
다른 근육을 팽창시키는 것이다. 즉 마음은 몸을 직접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송과선의 위치를 아주 조금 바꿈으로써 인간의 모든 감정과 행동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홍성욱 1995).
뇌 속에 존재하는 송과선은 마음과 물질의 인터페이스였다. 물질세계는 운동 법칙에 의해
작동되는 세상이기 때문에 마음은 물질세계를 움직일 수 없지만,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마음이 송과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마음과 육체는 철저하게 분리되어야 했기 때문에 자유의지에 의한 신체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송과선과 같은 인터페이스가
반드시 필요했다. 데카르트에게 송과선의 작동은 당시 사람들이 영혼이라고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기계적이었지만, 넓게 보면 이는 뇌 속에
존재하는 작은 인간과 비슷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앞의 논의에서 볼 수 있듯이 서양에서는 마음이 위치하고 있는 장소를 뇌라고 간주해 왔다. 그렇지만 예외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뇌보다는 심장을 마음의 원천이라고 생각했다. 뇌의 중요성이 부정할 수 없게 확실해진 것은 헬레니즘 시기의 의사 갈레노스[Galenus(AD 129~199)]에 이르러서였다. 동물에 대한 많은 해부와 실험을 통해 갈레노스가 심장보다는 뇌가 훨씬 중요한 장기라는 것을 밝히게 되면서 정신의 작용을 관장하는 마음의 위치가 심장에서 뇌로 옮겨가게 되었다. 데카르트도 이러한 전통을 잇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마음을 표현할
때, 특히 사랑과 같은 감정을 가리킬 때 그것이 심장이 있는 가슴에 있다고 말하지 뇌에 있다고 하지 않는다. 또 그것을 시각화할 때 심장
모양(♡)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사용한다. 진심을 전달하고 싶을 때 “내 뜨거운 심장을 받아줘”라고 하지, “내 뇌를 받아줘”라고 하지는 않는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뇌에서는 냉정한 인지 작용이 일어나고 심장에서는 뜨거운 감성 작용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통적으로 동양 의학에서는 정신 작용과 감정 모두가 심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간주되었다. 정신을 관장하는 것이
신(神)인데, 신이 기거하는 장소가 심장이었다.
오장육부(간장·심장·비장·폐장·신장·대장·소장·쓸개·위·삼초(三焦)·방광)에도 뇌는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동의보감》을 저술한 허준은 다른
중국의 한의사와는 달리 뇌를 상대적으로 더 강조했다. 인체의 기운을 유지하고 생식을 관장하는 것이 정(精)인데, 이 정이 보존되는 장소가 뇌였다. 뇌에서 보존된
정은 척추 속의 빈 공간을 타고 흘러내려서 척추의 끝 부분에 있는 구멍을 통해 온몸으로 발산되었다. 정은 부모에게서 선천적으로 받은 것으로,
고갈될 경우에 보충하기가 쉽지 않았다.
《동의보감》의 첫 페이지에 나오는 〈신형장부도〉([그림
10])에는 뇌가 니환궁, 수해뇌로 표시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니환궁은 도교의 영향을 받은 것을 보여 주며, 수해는 정수(精髓)가 보존되는 기관임을 의미한다. 물론 허준이 뇌를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보았지만, 그도 정신의
작용의 대부분은 심장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했다(김호 2000).
앞에서 뇌를 생각의 방, 혹은 모듈로
분할해서 파악하는 것이 19세기 이후의 뇌과학 연구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과학적인 근거 없이 오래전부터 뇌를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거치면서 정착되었는데, 그 시작은 기원후 4세기
비잔티움의 의사였던 포시도니우스(Posidonius)로 추정된다. 그는 머리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을 관찰하면서, 앞머리 부분은
감각과 연결되어 있고, 뒷머리는 기억, 머리의 중앙은 인지 작용과 같은 이성의 작용과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은 중세
철학자 아델라드[Adelard of Bath(1080~1152)]와 윌리엄[William of Conches(1090~1154)]에 의해 더욱 정교하게 발전했다([그림 11]).
아델라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하면서 뇌의 전면부, 중앙, 후두부에 각각 상상력, 이성, 기억의 기능을 담당하는 ‘방(cell)’이 있다고 주장했다. 윌리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4성질(뜨거움, 차거움, 건조함, 습함) 이론을 사용해서 이 각각의 방의 특성을 묘사했다. 상상력의 방은 색과 형태를 그리는 작용을 해야 하기
때문에 뜨겁고 건조하며, 이성의 방은 지각을 요리해서 아이디어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뜨겁고 습하며, 기억의 방은 마치 냉장고처럼 여러 자극을
고정시켜야 하기 때문에 차겁고 건조하다는 것이 그의 해석이었다(O’Neill 1993).
[그림 11] 그레고르 라이쉬Gregor Reisch의 《마가리타 필로소피카(Margarita philosophica)》에서 머리를 3개의 방으로 나눈 그림 머리가 감각/상상력/판타지, 인식/계산, 기억을 담당하는 3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다(Smith 1981, p.574).
이러한 생각은 17세기와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쳤다. 17세기 초엽에 활동했던 신비주의 사상가 로버트 플러드[Robert Fludd(1574~1637)]는 뇌를 세 구역으로 나누면서 이 세 구역 사이의 연결을 강조했다. 첫 번째 구역은 감각을 통해 세상을 인지하고 상상력을 이용해서 이를 이성의 재료로 바꾸는 구역으로, 뇌의 전면부에 있는 뇌실에 위치한다. 여기서 보듯이 플러드에게 있어서 감각과 상상력은 같은 영역을 공유했다. 뇌의 중앙에는 비례, 인식, 산술 등을 담당하는 이성의 영역이 존재하며, 여기에서 판단하고 처리한 정보는 후두부의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으로 보내진다. 플러드는 감각/상상력에서 이성으로, 그리고 이성에서 기억으로의 정보의 흐름을 강조했다.
플러드는 한 개인의 뇌 속에서 작동하는
상상력-이성-기억 사이에 밀접한 연관을 강조했는데, 이후 사상가들은 상상력에 해당하는 예술과 문학, 이성에 대응하는 철학과 과학, 기억에
해당하는 역사 사이에 훨씬 더 분명한 경계를 그었다.
이러한 경계는 실험철학을 주장했던 17세기 사상가 프랜시스 베이컨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베이컨은 뇌 속에 방이 나뉘어져서 상상력, 이성, 기억의 기능을 담당한다는 주장을 근거 없는 것으로 배격했지만, 인간의 정신
기능이 이렇게 세 개로 나뉠 수 있고 세상에 존재하는 학문이 이 세 기능에 각각 해당하는 것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Olivieri 1991).
베이컨의 주장은
18세기 프랑스 계몽사상가들에 의해서 가장 정교한 형태로 발전했는데, 이들은 상상력, 이성, 기억의 영역을 나누고 상상력의 역할은 이성이 발견한
진리를 치장하는 것이라고 폄하했다. 이성의 상징인 과학과 상상력의 상징인 예술이 무관하다는 생각은 이후 철학적 정당성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홍성욱 2009).
뇌에 3개의 방이 있다는 생각은 또 다른 이유 때문에 그 정당성을 잃었다. 1664년 영국의 의사 토머스
윌리스(Thomas Willis)는 자신의 《뇌신경해부학(Cerebri Anatome)》에서 뇌실에 상상력, 이성, 기억의 방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해부학적 증거를
대면서 강력하게 비판했다. 윌리스는 전두엽이 기억을 담당하고, 후두엽에 감각과 관련된 뇌가 있으며, 이러한 기능은 뇌실이 아니라 뇌의 회백질
자체가 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해부학적 증거가 받아들여지면서, 인간의 뇌에 3가지 정신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이 나뉘어져 있다는 생각은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O’Connor
2003).
그렇지만 18세기 말엽이 되면 뇌가
여러 심성을 나타내는 다양한 부위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이 다시 등장한다. 이러한 생각은 19세기를 풍미했던 골상학(phrenology)의 기초가 된 생각인데, 이를 강력하게
주장했던 사람이 독일의 의사 프란츠 갈[Franz Gall(1758~1828)]이었다.
그는 뇌의 각 부위가 27개의 능력과 성격에
대응하며, 뇌의 두개골의 튀어나오고 들어감을 관찰하면 각각의 능력(faculty)이 많은지 적은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성격 같은 것을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독일의 골상학자 스푸르츠하임[Johann Gaspar Spurzheim(1776~1832)]은 이를 좀 더 나눠서 인간의 뇌에 35개 내지는 37개의
구획이 존재한다고 주장했고, [그림 13]에서
보듯이 영국의 골상학자 조지 콤[George
Comb(1788~1858)]은 이를 수용해서
뇌를 35개로 분할할 수 있다고 밝혔다(Cooter 1984).
19세기 후반의 미국 골상학자 새뮤얼 웰스(Samuel Wells)는 대중에게 호소력을 가진 골상학 그림을 많이 그려서 골상학을 널리 퍼트린 사람이다.
그가 그린 그림 중에는 두 성직자의 머리 모양을 비교하면서, 종교적 숭배심을 담당하는 머리 윗부분이 튀어나온 사람이 다른 사람에 비해 종교적
숭배심이 월등히 높다는 것을 보이는 것도 있었다.
웰즈의 골상학 연구는 더 나아가서 성 차별, 인종 차별로 이어졌다. 남/녀의 뇌,
인디언과 흑인/백인의 뇌는 다른데 그것이 곧 열등한 존재의 표시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가 그린 그림에 의하면 백인 남성의 뇌는 여성의 뇌보다
더 컸고, 흑인의 두개골이나 인디언의 두개골은 원숭이의 두개골처럼 턱 부분이 앞으로 돌출되어 있었다. 당시 골상학을 통해서 백인 남성의 우월함은
정당화될 수 있었으며, 이는 골상학이 ‘사이비과학’으로 가장 비판을 많이 받았던 지점이었다(Davies 1955).
두뇌의 특정 부위마다 다른 역할을
담당한다는 생각의 역사를 훑어보았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떠한가? 최근 뇌가 활성화되는 부위를 보여 줄 수 있는 fMRI 등장으로 인해서 뇌의 여러 영역들이 각각 다른
기능을 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한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fMRI 연구의 등장과 함께 fMRI는 새로운 골상학일 뿐이라는 비판도 함께 따라오고 있다. 과학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돕스(David Dobbs)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게재한 논문에서
fMRI연구가 21세기에 부활한 골상학에 다름
아니라고 비판했다(Dobbs 2005). 최근
fMRI 연구자들은 이러한 비판을 염두에 두고,
자신들의 실험 패러다임의 설정과 실험 결과의 해석 등을 이전보다 더 조심스럽게 하고 있다.
뇌에 대한 이미지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서양의 경우에 뇌가 심장을 제치고 중요한 기관으로 인식되면서, 인간의 지각이나 인지 기능을 뇌 전체에서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뇌의 부분 부분이
각각의 기능을 나누어서 담당한다는 식으로 점차 이해된 것을 볼 수 있다. 반면에 인간의 복잡한 인지 기능은 뇌의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뇌
전체가 담당한다는 생각 역시 역사를 통해 계속 존재했다. 뇌의 중요성을 설파한 헬레니즘 시기의 의사 갈레노스도 인간의 인식은 뇌 전체에서
담당한다고 생각했다. 최근에도 인지 작용과 같은 복잡한 인식 기능은 뇌의 한 부위가 아니라 뇌의 전체에서 골고루 이루어진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만 뇌를 모듈의 집합으로 보는
생각과 뇌가 전체적으로 작동한다는 생각은 시각화의 측면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뇌의 각 부분이 ‘방’처럼 나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지로
표현하기 쉽다. 반면에 뇌가 전체적으로 기능한다는 생각을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은 쉽지 않다. 이는 19세기 후반기에 뉴런의 구조가
밝혀지고(박지영 2011; [그림 15]),
뇌가 뇌 신경의 복잡한 네트워크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서서히 가능해졌다(예를 들어 Abraham 2003을 보라).
지금은 뇌를 네트워크로 시각화하는 작업도 빈번하게
등장한다. 뇌는 벽으로 나뉜 생각의 방들이 아파트처럼 모여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터넷 망이나 전화 네트워크처럼 복잡한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신경섬유에서 물이 전파되는 것을 추적해서 신경섬유가 서로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를 추적하는 기술까지 등장했다([그림 16]).
이는 뇌의 이미지와 관련해서 매우 흥미로운 연구 주제이다. 그렇지만 이 주제는 본 챕터에서 다루는 범위를 넘어서며, 따라서 다음 작업으로 미뤄야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