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선생 2주기 추모현장. (사진=리대로)
뿔쌈꾼(혁명가) 백기완 선생이 이 땅을 떠난 지 벌써 두 해가 되어 2월 11일 마석 모란공원묘지에서 열린 2주기 추모행사에 다녀왔다. 이날 추모식에는 가족과 백기완 선생을 따르고 함께 활동하던 100여 명 뜻벗들이 모여 그를 기리는 행사를 알차게 했다. 백기완 선생은 나라와 겨레를 남달리 사랑하고 그 사랑을 실천한 분이다. 입으로만 애국, 애족한 것이 아니라 몸으로 움직이는 모습에 감동하고 우러러보는 이들이 많다. 백기완 선생은 스스로 혁명가란 한자말 대신 불쌈꾼이라는 우리말을 살려서 썼다. 겨레와 나라를 못살게 구는 외세나 잘못된 권력을 그냥 보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 맞서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행동하는 싸움꾼이었다.
그는 너와 내가 함께 땀 흘리며 일하고 노나 먹으며 같이 잘 사는 노나메기 세상을 만들자고 외친 불쌈꾼이고, 남북 민중이 함께 어울려 얼싸안고 살자는 꿈을 이루려고 몸부림친 통일운동꾼이고, 우리말을 살리고 빛내자는 민족사상가다. 힘없는 민중이 권력에 짓밟히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함께 싸우는 거리 싸움꾼이기에 백기완 선생을 존경하는 이들이 그 분의 불호령을 그리워하며 그의 무덤에 꽃을 바쳤다. 나도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길든 어려운 일본 한자말과 외국말을 쓰지 말고 우리 한아비들이 쓰던 우리말을 살려서 자주독립국이 되자는 우리말 사랑을 백기완 선생과 함께 실천한 사람으로서 꽃을 바치고 절을 했다. 백기완 선생은 일본 식민지 때에 태어나고 어릴 때에 일본 식민지 국민으로, 또 해방은 되었으나 남북이 나뉘고 전쟁까지 겪으면서 가난한 민중으로 고통 속에 살면서 헐벗은 산에 나무를 심는 농촌운동가로, 권력과 싸우는 민주투사로, 외세에 맞서는 민족운동가로 생존투쟁현장에서 함께 싸운 거리투사였다. 입으로만 나라와 겨레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독재권력과 외세의 압박을 벗어나 모두 함께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온 몸으로 싸운 애국자였다. 그래서 그를 고마워하고 그의 불호령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노나메기재단을 만들고 그의 꿈과 뜻을 이어가려고 2주기를 맞아 “기죽지 마라. 우리가 백기완이다”라는 추모문집을 내고, “그리운 백기완 불호령”이라는 구호 속에 2월 15일에는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추모문화제를 연다.
11일 노나메기재단 일꾼들과 뜻벗들은 마석 모란공원 백기완 선생 무덤 앞에서 2주기 추모식을 열고 그가 이루지 못한 민주나라, 자주통일나라를 이루자고 다짐하는 마당굿을 열었다.(사진=리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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