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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본문 : 막11:1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祈禱)하고 구(求)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찬송가 364장 ‘내 기도하는 그 시간’
2차대전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한 부인이 식료품 가게에 와서 성탄절 만찬에 아이들을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식료품을 달라고 했습니다. 돈이 얼마나 있느냐고 주인이 물으니 남편이 전쟁에 나가 죽어서 기도 밖에는 정말 아무 것도 드릴 것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당신의 기도를 종이에 써주십시요. 그러면 그 무게만큼 식료품을 주겠소 놀랍게도 부인은 접혀진 노트장을 주머니에서 꺼내 주인에게 건내주면서 '우리 어린애가 지난 밤에 아파서 옆에서 병간호를 하며 기도를 적어 두었지요'하고 대답했습니다. 읽어 보지도 않은 채 주인은 구식 저울의 추를 놓은 곳에 기도가 적힌 종이를 놓고는 '자 이 기도가 얼마치의 식료품무게가 되는지 달아봅시다'하고 중얼거렸습니다. 놀랍게도 빵 한덩어리를 놓았는데도 저울은 꼼짝을 않했습니다. 다른 식료품을 올려 놓았는 대도 저울은 움직이지 않자 주인은 더욱 당황했습니다. 드디어 저울에 더 이상 올려놓을 수 없으니 당신이 봉지에 담아가시요. 나는 바쁘니까 하고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눈물 흘리고 감사하며 그 부인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아갔습니다. 저울이 고장난 것을 얼마 후 주인은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몇 년 동안 주인은 가끔 의아했습니다. 그 일이 정말 우연의 일치일까? 왜 그 부인이 미리 기도를 써 가지고 왔을까? 왜 그 부인이 저울이 고장났을 때 왔을까? 그때 그 부인이 적은 기도문은 ‘주여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였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시편 40: 1)
굽이 없는 신발을 신고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한 지혜로운 남자가 자기가 만든 신발에 수많은 벌레와 곤충이 밟혀 죽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신발에 밟혀죽은 곤충과 벌레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 신발에 밟혀죽는 벌레들이 많아요. 제 발바닥을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저에게 지혜를 주세요.” 그때 하나님께서 한 가지 지혜를 주셨습니다. 남자는 사람의 발바닥 가운데가 오목한 것을 보고, 신발의 뒤축을 만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가운데가 오목한 신발을 만들고 보니, 발도 편안하고 몸의 균형도 잡혔습니다. 그때부터 신발의 굽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근원이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상상을 뛰어넘는 지헤로 채워주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항상 지혜를 선물로 얻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우리는 하나님께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의 음성은 아주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그분은 우리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그분은 우리의 음성을 듣기 위해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십니다. 그러므로 무시당할까봐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설령 말을 더듬고 머뭇거린다든지, 다른 사람들이 우리 말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을지라도 하나님만은 귀 기울여 듣고 감동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양소에 있는 노인들의 안타까운 하소연을 들으십니다. 사형수들의 가슴에 맺힌 고백을 들으십니다. 알코올 중독자가 은총을 구할 때, 남편과 아내가 결혼 생활의 지혜를 구할 때, 직장인들이 사무실을 빠져나와 예배당 구석 자리에 앉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음성을 들으십니다. 주의 깊게, 집중해서 들으십니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시120:1)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은 어떠한 기도를 기뻐하시고 들으셨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아브라함의 기도
창세기 18장 16- 33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자가 소돔과 고모라로 떠난 이후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그곳에 나의 조카 롯이 있지 않는가?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에서 우리를 불러내시고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 주시고 보호하셨는데 롯을 버리시겠는가? 그리고 롯은 비록 죄악이 관영한 땅에 살지만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지 않는가? 그리고 긍휼의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의 수많은 생명을 심판하고나면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실까? 아브라함은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 악인들 때문에 의인이 함께 심판 당하게 하시렵니까?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중보의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기를 원하지 아니하시고 죄인이 돌아오기를 바라시므로 아브라함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의인 열 사람만 있어도 멸하시지 아니하시겠지요? 하나님은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온 누리에 나누어 지길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기도를 할 때, 나를 위해서 나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자기 이기심으로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모두 받으십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무엇으로 사랑을 베풀까?" 생각하십니다. 그러나 더 좋은 기도는 이웃을 위하여 타인을 위한 중보기도입니다. 중보기도를 들어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앞에 나를 위해서, 그리고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2. 한나의 기도
기도는 신앙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유일한 두 장소가 있다면, 기도하는 방과 말씀을 만나는 방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바로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늘 응답 받는 신앙생활이 된다면, 이보다 더 복된 신앙생활이 어디에 있을까? 삼상1: 1- 11절을 보면 한나의 기도는 모두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한나의 기도에서 다시 음미해 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한나의 기도 동기는 사랑을 잃어버린 여인의 아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한나의 남편은 브닌나와 한나 즉 두 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 중 브닌나는 자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농경사회에서 자녀가 없는 아내는 언제든지 퇴출될 수 있었습니다. 한나의 생애에 가장 큰 위기를 만났습니다. 한나는 이 위기에서 하나님에게로 나아갔습니다. 신앙자의 위기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됩니다. 한나의 기도 동기는 자기 자신의 문제 해결이었지만, 기도하는 중 서원하는 기도로 내용이 바뀝니다.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간구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였습니다. 이미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건강한 제사장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건강한 제사장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몸도 늙고, 가정을 잘 이끌어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쓰실 사람을 찾고 계셨습니다. 한나가 애통하여 기도할 때, 긍휼히 여기시고, 한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그리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응답에 한나는 성실히 서원을 지켰습니다. 우리 가정에도 문제가 있으면 기도방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솔로몬의 기도
열왕기상 8장 22- 30절에 보면 솔로몬의 기도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우선 자기가 누구이며,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가를 잘 알고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왕으로 나왔을 때의 나이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직 미숙한 청년의 때였습니다. 그는 아직 국정을 살필 수 있는 특별한 수업도 받지 못했습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섬겨야 할 사람이나 아직 어린 자신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잘 알아야 바른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아직 나이 어린 소년이 어른들이 필요한 것을 구한다든지, 어른이 어린아이들이 필요한 것을 구한다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까? "나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부족합니다."라고 자신을 고백하는 솔로몬의 기도는 하나님이 기다리신 기도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처럼 솔로몬도 백성을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구하는 것은 당연히 내가 주리라. 그리고 너의 기도가 내 마음에 합했다. 그런고로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화도 주리라. 너 자신을 위해서 큰 군대나 오래살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은 구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네가 훌륭한 왕이 되도록 돕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위한 기도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을 위한 기도를 하나님은 기다리십니다.
4. 히스기야의 기도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왕하 20:2,3)
히스기야는 유다의 14대 왕입니다. 그가 왕 위에 있는 동안 앗수르 군대가 침입하여 나라는 풍전등화 같았고, 자신은 죽을 병에 걸려 절박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간절한 심정으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리고 심하게 통곡하며 '벽면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그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해주셨고, 18만 5천 명의 적군이 한순간에 멸절되는 기적까지 베풀어주셨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란 히스기야 왕이 인생의 가장 힘든 상황에서 드렸던 간절한 기도를 말합니다(왕하 19:15-19).
히스기야는 이처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우리도 히스기야의 기도를 배웁시다.
이사야 38장 5절에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년을 더하고"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히스기야가 기도했다면 우리도 할 수 있고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다면 우리의 기도도 들이십니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대저 나는 주께 객이 되고 거류자가 됨이 나의 모든 열조 같으니이다"(시편39:12)
여러분의 인생에서 히스기야나 시편기자처럼 기도해야 할 때는 언제입니까?
5. 다니엘의 기도
다니엘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 동무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그 일을 고하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긍휼히 여기사 자기 다니엘과 동무들이 바벨론의 다른 박사와 함께 죽임을 당치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구하게 하니라"(단 2:17,18).
다니엘은 위급했던 한 때를 기도로 극복했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10).
자기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기도하고 감사하며 그 상황을 하나님 앞에 의뢰하고 있는 기도의 사람 다니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자마자 즉각적으로 기도에 들어갑니다. 여기에서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는 다니엘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은 승리의 방편으로서 기도의 중요성을 인식했습니다. 다니엘은 응답받는 기도의 핵심이 회개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다니엘은 유대 민족이 고난에서 해방될 것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이 그의 기도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니엘의 기도는 죄에 대한 자복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그 민족에 대해서 기도하면서 그 민족의 범죄를 먼저 자복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기도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그 민족의 범죄 가운데 자기 자신의 범죄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가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예외로 삼지 않았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이웃들과 민족을 위해서 기도 할 때 나와 상관없는 대상인 것처럼 기도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민족의 고난을 바로 자기 자신의 책임으로 통감했습니다. 응답받는 기도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회개에 있습니다. 우리들의 그 많은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지 못한 이유는 우리가 자기 자신의 삶을 철저히 회개하지 않은 데에 있을 것입니다.
다니엘의 기도에 대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셨는지가 다니엘 9장 20-23절에 나와 있습니다. 아마도 성경에 나온 모범적인 기도들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응답된 기도가 바로 이 부분의 다니엘의 기도일 것입니다.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및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곧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가로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더니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
다니엘이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은 언제 쯤부터 시작되었습니까? 성경은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하나님께서 행동을 시작하셨다고 적고 있습니다. 내가 기도하고 있는 그 문제에 관하여 응답을 주시기 위하여 천사를 동원하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모습을 보십시오. 때때로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과 나 사이의 거리가 너무도 멀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너무 멀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좌는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즉각적으로 내 기도를 들으시고 즉각적으로 천사들을 동원하는 역사를 시작하시는 분이십니다. 기도를 일단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다 들으시고 판단하십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뜻에 합당하다고 판단되면 하나님의 역사는 기도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얼마나 흥분된 기대를 가지게 됩니까? 기도할 때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상상해 보십시오. 하늘의 보좌 위에서 내 기도를 주께서 받고 계십니다. 천사를 거느리고 응답을 시작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을 보십시오.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창백했던 모습들을 회개하며 기도의 위대한 부흥이 우리 속에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고 있던 다니엘에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그 민족의 역사에 관한 것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속에, 아니 전인류 역사에 이루어질 가장 중요한 어떤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사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비밀입니다.
6. 겟세마네의 기도
마태복음 26장 36- 46절을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전력을 다해서 기도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핏방울이 떨어지듯 땀을 흘리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렇게 진지하게 기도하셨을까? 그것은 예수님의 마음에 심한 갈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수님이 지금 십자가 형틀에서 죽는다고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해야 하는데 열두 제자마저 아직 제대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구원의 확신도 없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흑암의 권세의 노예였습니다. 죽어가고 있고 삼키우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없이 지낼 많은 영혼들의 앞날이 걱정스러우셨습니다. 동정심 많은 예수님은 이 땅에서 더 많은 사람들은 구원하신 다음 하나님께로 가야겠다는 마음에 십자가 짐이 온당치 않다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습니다. 죄가 없는 의인이 죄인의 손에 잡히시고 심문을 당하시고 불의한 재판을 받고 십자가 처형을 받게되면 악이 의를 이기게 되는 결과입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악이 의를 이기게 하십니까?"라고 하나님 앞에 반문하였을지도 모릅니다. 두 번씩이나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의 기도에 침묵하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되도록 해달라는 기도가 입술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하나님 아버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가 바뀌게 될 때, 예수님은 십자가로 나가셨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가 되어야겠습니다.
7. 세리의 기도
우리가 생각할 때에 하나님은 의인들의 기도를 들으시기를 좋아하시고 죄인들의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죄인 중에 죄인인 세리의 기도를 하나님은 기쁘게 받아들이신다" 내가 실수해서 혹은 내가 원치 않았지만 죄를 범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게을리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8장 9- 14절을 보면 어느 날 성소에서 가장 앞자리에 두 손을 들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바리새파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자기의 종교 생활을 낱낱이 아뢰면서 자기의 의를 자랑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다른 사람의 삶과 자기의 삶을 비교하면서 자신이 저들보다 훨씬 의롭다고 자만했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감히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소의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얼굴을 들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부끄럽고 송구했습니다. 죄를 짓지 아니하려고 노력을 했지만, 세리가 직업인지라 어쩔 수 없이 범한 죄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애통하면서 하나님 앞에 지은 죄는 낱낱이 고하고 할 수만 있으면 죄를 짓지 않도록 도와달라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의 기도를 하나님이 받으시겠는가?" 하나님은 세리의 기도 받기를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죄를 많이 지은 다음 기도하라고 말씀하지는 않았습니다. 죄를 지었더라도 겸손히 하나님께 기도하면 죄의 용서와 축복을 주십니다.
8. 민족을 위한 기도
디모데전서 2장 1- 2절을 보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라 그리하여야 평온한 중에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32장 30- 35절에 보면 모세는 자기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기를 "이스라엘을 버리신다면 차라리 나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시라도 내 민족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사람은 가정의 범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그릇이 드러납니다. "피붙이 즉 핵가족만 가정이다"라고 보는 사람은 생리적인 존재입니다. 이러한 가족 개념은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의 기본적인 본능입니다. 곤충 내지는 조류들까지도 자기의 피붙이를 목숨걸고 사랑합니다. 그 다음, 대가족을 가족으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농경사회에서는 보통 대가족을 가족으로 보았습니다. 당시는 넓은 농장을 소유하고, 함께 생산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것 역시 육신의 삶의 방안으로 이루어진 가족입니다. 좀 더 넓게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을 가족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1900년대 초부터 "동무"는 "가족"이라는 개념이 싹 텄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나 예수님은 온 세계, 온 인류를 가족으로 보았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면 한 가족으로 보았습니다. 바울은 자기 민족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을 했다 하더라도, 은혜로 구원해 줄 것을 간곡히 간구하였습니다. 우리는 남한과 북한을 두 나라로 볼 것이 아니라 한 민족으로 보고 북한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 믿지 않는 동족들이 예수 믿도록 기도하고 민족의 번영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9. 기도의 능력
고아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조지 뮬러 목사님은 애쉴리타운이라는 큰 고아원을 세워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날 고아원의 보일러가 갑자기 고장이 났습니다. 보일러를 고치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걸려야 하므로 고아원은 온통 비상이 걸렸습니다. 사람들은 조지 뮬러 목사님에게 뛰어와서 "목사님 목사님, 큰일났습니다. 영아들이 있는 동에도 보일러가 고장나서 아이들이 다 얼어 죽게 되었습니다." 하며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뮬러 목사님은 일어나 성경책을 옆구리에 낀 채 교회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밤을 새워가며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구했습니다. "날씨를 주장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 어린아이들은 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맡겨주신 생명들입니다. 이 어린 생명들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시고 저는 총무일 뿐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시간과 때를 주장하시는 아버지께서 일주일 동안은 봄 날씨로 변화시켜 주옵소서!" 조지 뮬러가 부르짖어 간구하는 동안, 갑자기 동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영구 전체가 봄 날씨로 변화되고 말았습니다. 그때는 지금과 같은 기상이변도 흔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조지 뮬러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북풍을 중지시키고 동남풍을 불게 해서 영국 전체가 온실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보일러를 수리한 후 정상적으로 가동하자 다시 한 겨울의 세찬 바람이 쌩쌩 불어왔습니다.
새는 날개가 무거워도 그것으로 인해 날 수 있고, 배는 돛이 무거워도 그것으로 항해하고, 기차는 화통이 무거워도 그것으로 질주하고, 비행기는 날개가 무거워도 그것으로 날아갑니다. 어떤 사람이 시계에 달린 큰 추를 보고는 시계가 힘들어 하니 추를 떼어 두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추를 떼는 그 순간에 시계바늘은 서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성도들은 피곤하고 힘들어도 매일 기도해야 삽니다. 그 기도의 힘 덕분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도에 관한 성경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0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0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15:7)
0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6)
0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
0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0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0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0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55:6)
0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3:4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얼마나 자주 만나십니까? 여러분의 순종과 믿음을 어떻게 나타내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여러분과 만나시길 원하시며 깊은 영적인 교제를 나누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당신에 대한 순종과 확신의 증거로 기도하는 여러분들의 모습을 항상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모하여 만나기를 간절하게 원하는 자, 온전한 순종과 믿음을 보이는 자들에게 커다란 축복을 더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꾸준하고 겸손하게, 그리고 끝까지 기도를 멈추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우리 신앙의 참됨을 증거하여 축복받는 성도들이 되도록 합시다.
* 기도: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 주신 약속들을 다시 붙잡고 기도합니다. 내가 지칠 때에 다시 일으켜 세우셔서 주님께서 보여주실 결과들에 대해 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기도하게 하시며, 주님께 속하여 합당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이 시대의 유일한 소망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소서.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기도가 저의 기도가 되게 하시고, 저 역시 다른 이들을 품어 기도하는 자로 살게 하소서. 기도의 동역자를 구하고 함께 합심하여 기도함으로써 응답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오직 하나님 앞에 두 무릎을 꿇은 자만이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사오니 항상 기도에 힘쓰고 가정과 이웃과 나라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기도하는 성도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 구하면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는 믿음을 언제나 갖게 하여 주시고 주님의 강한 팔로 우리를 붙드사 주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게 하옵시고 쉬지 않고 기도함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은혜교회)
▣ Praise The Lord!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민6:24-27)
God Bless You!
대한 예수교 장로회 은혜교회(경기도 구리시 수택동 404-13)
목사: 한태완, 시무장로: 송태환
☎ 교회: 568-4368, 목사관: (02) 959-3049
주일예배: 11:00, 주일찬양예배: 14:00, 수요예배: 19:30,
금요예배: 20:00
찾아오는 길
주변지하철: 구리역(경의 중앙선) - 시티은행에서 30m 거리
주변정류장: 돌다리, 구리전통시장에서 가까움
* 은혜교회 홈페이지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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