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加納莞蕾(1904~1977) 明治37年~昭和52年、所蔵点数120点 明治37年、広瀬町布部に生まれる。 島根県師範学校中退後、本郷洋画研究所に学び、前田寛治、佐伯祐三などと交友しその影響を受ける。 初め二科会に所属していたが、独立美術会発足にあたって二科会を脱退、これに参加し会友となった。 一時小学校の教職にあたったが、昭和13年より約1年間京城師団指帝都付の従軍作家として中国に渡り、その後京城高等工業学校に勤める傍ら創作活動を行った。 そして第2次大戦終戦により帰国後、フィリピン戦犯問題に取り組む。 昭和32年頃から墨彩画・書に打ち込むようになった。 安来市の美術愛好家グループ「五彩会」はこの人の墨彩画を集大成して画集「墨彩」を発刊した。孤高の野人的タイプの作家で若くしてフォービックなタッチと鮮烈な色彩で島根に独立美術協会系の洋画を根付かせた功績は大きい。 晩年は病魔と闘いながら念願の戦犯釈放に成功すると共に墨彩画の世界に没頭した。 莞蕾と号した。 |
우선 이 글에 실린 지도 한 장부터...
아래는 1963년 간행된 고 손경석 선생님의 등반백과에 실린 설악산 지도입니다. 비교해보시길...
아무래도 저본이 1918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 오만분의일'지도인 만큼, 많이 닮았습니다.
다만, 加納莞蕾의 지도가 당시 인쇄술이 발달되지 않아서인지 지도에 표시된 지명을 읽지 못함이 무척 아쉽습니다. 부족하지만 그의 글에서 설악산 곳곳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니 그의 글을 통해 1942년 설악산 지도에 표기될 지명을 읽어보시지요.
백담사의 내력에 대한 내용은 만해 한용운이 정리한 '건봉사급 건봉사 말사 사적'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해 실제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만, 한계사에서 운흥사, 심원사 등등을 거쳐 옮겨온 위치는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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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백담계곡 입구 즉, 금교 아래가 금강소(金剛沼)이고 현재 국립공원 백담사탐방 안내소 아래가 영축(취)사지(靈鷲寺址)로 주춧돌과 늙은 소나무만 남았다는 것은 제가 오랫동안 여러 유산기를 통해 고증한 내용( blog.naver.com/dvmhong )과 부합하기에 이 글이 많은 자료를 참고해 쓰여졌다고 여겨집니다.
영축사지를 지나 좌측 계곡이 (지금은 절골이라 부르는 계곡이) 광협동인데 좌측에 선구사지가 있고, 석탑이 남아있다고합니다. 이 석탑은 현재 백담사 앞으로 옮겨져 있습니다. 광협동 즉, 널협이골이 현재는 백담계곡중 절골 다음 골자기를 지칭하나 당시에는 이 글은 물론 조선오만분의 일 지도에도 첫 계곡(현재 절골)을 일컬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 광협동을 통해 길골 상부로 올라가 저항령을 넘어 신흥사로 넘어다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백담사까지 큰 길이 뚫려 자동차로 오르지만 굳이 험한 백담계곡을 올라 길골을 통하지 않고 저항령으로 넘을 수 있는 옛길이었음이 확인됩니다.
두번째 지계곡을 초대동(지금의 넓협이골)이라 불렀는데, 고문을 통해 이곳에 삼연 김창흡 선생의 설악에서의 첫 은신처인 벽운사(碧雲寺)가 있었다고 전하며, 최근 밭을 갈다 금부처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 그러나 이제까지 발굴된 유산기를 보면 설악에서의 삼연의 첫 은거지는 한계사지 부근 자양밭 부근의 한계수옥(정금발사)였으며, 그후 백담계곡 두퇴소 옆 오로봉 위쪽으로 백연정사(百淵精舍)가 있었습니다.
영시암에 삼연 선생의 유허비가 있었다는 대목도 눈여겨 볼 내용입니다. 삼연선생 유허비는 노산 이은상 선생의 설악행각(1933년)에도 등장하는데, 현재는 탁본만 존재할 뿐 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탁본에 의하면 이 비는 130X54.5cm의 크기였다합니다.
오세암이 설정선사때에 다섯살 아이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라는 설을 일축하고, 원래 관음암이었지만, 김시습이 머물렀기에 지어진 이름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세암에 걸려있던 김시습의 영정은 지금은 없어졌지만 1940년 송석하 선생이 촬영한 사진으로 남아있습니다.
가야동의 천왕문(天王門)이 등장합니다. 그 이전 유산기에는 속세로부터의 인연을 닫는다는 의미로 폐문암(閉門巖)이라 불리웠지요.
가야동, 수령동을 가르는 청봉의 지맥인 '용아장성(龍牙長城)이 등장합니다(이이야마 다츠오(飯山達雄)의 역작 '조선의 산'(1943년, http://blog.naver.com/dvmhong/70133260958 참조)에도 나오는데 飯山達雄은 1936년 설악산을 등산했다고 합니다).
화가이니 만큼 설악산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화가의 이젤이 어디에 서있었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첫댓글 지도에 나와있는 지명이 잘 안보이는게 무척 아쉽습니다.
많은 연구가 필요할듯 싶네요~~~
귀중한 자료입니다. 차분히 감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