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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蔚珍) - 보배로운 것이 빽빽하다는 울진
울진읍 남쪽은 왕피천 하구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비교적 넓은 평야지대이다. 북쪽 죽변은 외항으로 어업협동조합과 큰 통조림 공장이 있으며 부근은 좋은 어업 기지이다. 울진에는 유원지로 이름난 연호정이 있고, 평해는 구읍이며 역시 관동 팔경의 하나인 월송정이 있다. 평해 남쪽 후포는 어업으로 발달한 항구이다. 온전면에는 백암온천(白巖溫泉:수온 42 )이 있는데 유황질이다.또 근남면에는 관동 팔경의 하나인 망양정이 있다. 근남면 부근에는 석회암이 분포되어 지하 금강이라고 하는 성류굴(聖留窟:길이 470m)이 있다.
울진 문화관광 http://www.uljin.go.kr/index.sko
영상포엠 한국 100경
http://www.ktv.go.kr/common/popup/vodplayer.jsp?cid=350328
영상포엠 한국 100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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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구계곡 연리지[連理枝]
《후한서(後漢書)》 채옹전(蔡邕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후한 말의 문인인 채옹(蔡邕)은 효성이 지극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채옹은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삼년 동안 옷을 벗지 못하고 간호해드렸다. 마지막에 병세가 악화되자 백일 동안이나 잠자리에 들지 않고 보살피다가 돌아가시자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시묘(侍墓)살이를 했다. 그 후 옹의 방앞에 두 그루의 싹이 나더니 점점 자라서 가지가 서로 붙어 성장하더니 결(理)이 이어지더니 마침내 한그루처럼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채옹의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와 자식이 한 몸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덕구온천[德邱溫泉]
응봉산 중턱의 원탕에서 하루에 4000톤 가량 솟는다는 원수는 4㎞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덕구온천에 공급된다. 덕구온천은 42.4℃의 원수를 데우거나 식히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다. 또한 이 원수는 2~3개월 동안 가두어 놓아도 침전물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수질이 좋다. 덕구온천에서 원탕(사진)까지는 왕복 2시간 정도의 거리. 원탕 가는 길에 있는 덕구계곡에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와 프랑스 노르망디교 등 세계 유명 다리들을 축소(1/100 크기) 제작해 놓은 12개의 테마 다리도 볼 수 있다.
망양정[望洋亭]
망양해수욕장 남쪽의 바닷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 동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관동팔경 가운데 으뜸이라 하여 조선 숙종이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을 하사하였다. 또 정철(鄭澈)은 〈관동별곡〉에서 망양정의 절경을 노래하였고, 숙종과 정조는 어제시(御製詩)를 지었으며, 정선(鄭敾)은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으로 화폭에 담는 등 많은 문인·화가들의 예술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망양 오징어 거리>(바다를 바라보는 정자라는 뜻의 望洋亭)
민물고기생태체험관 근남면 행곡리 228번지
지상 1층에는 천연기념물, 희귀어종, 외래어종, 우리나라 담수 생태계 등을 주제로 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지하 1층에는 경상북도 봉화군 열목어 서식처와 안동호, 왕피천 등 경상북도 내의 주요 민물고기 서식처를 재연해놓았다.
신라시대 한 사냥꾼이 창에 맞은 사슴을 쫓다가 날이 저물어 포기하였다. 그 이튿날 다시 사슴의 행방을 찾아 근처를 헤매던 중 사냥꾼은 상처를 치유한 사슴이 도망가는 것을 보았다. 이를 이상히 여긴 사냥꾼은 사슴이 누워 있던 자리에서 뜨거운 샘이 용출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뜨거운 샘이 발견된 후 인근 백암사 스님이 돌무더기로 탕을 만들어 환자들을 돌보았으며, 고려 명종 때는 목조 욕탕으로, 조선시대 때는 석조 욕탕으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불영사[佛影寺]
http://tour.uljin.go.kr/open_content/life/media/movie/Default.aspx?atc_act=ArticleView&seq=9658
울진 불영사 은행나무는 600년 세월 불영사를 지키고 있는 나무이다. 1996년 태풍 때 나무가 부러졌으나 기왓장 하나도 손상되지 않았는데, 불영사 신도들은 부처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불영사 주지 심전일운(心田一耘)이 바람에 넘어간 은행나무로 3년간 정성 들여 삼존불상을 만들어 2002년 5월 7일 삼존불 점안식을 거행하였다. 현재 불영사 대웅보전 삼존불은 부러진 은행나무를 이용하여 만든 것이다. 불영계곡[佛影溪谷]
불영사 의상전(義湘展)
1.불영사 돌거북 한 쌍 불영사 대웅보전(보물 제1201호)은 두 마리의 돌 거북이가 머리만 힘겹게 내놓은 채 떠받치고 있는데, 이는 화기가 많은 불영사 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함이라 한다. 화기가 어찌나 센 지, 머리가 검게 그을렸다. 기특하다며 관광객들이 연신 머리를 쓰다듬고 지나간다.
2. 불영사 나무무덤 불영사에 거의 다다르면, 길가에 돌무더기 하나가 눈에 띈다. 자세히 보면 돌무더기 밑에 거대한 나무둥치 하나가 잠들어 있다. 의상대사가 불영사 창건기념으로 심은 1300년 된 굴참나무라고 하는데, 오래 전 고사되어 당당했던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3. 연못 속의 부처 불영사 이름의 유래가 된 연못에 비친 부처의 환영. 그 실체는 불영사 뒤편 언덕 왼쪽에 있는 부처형상의 바위이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이 바위가 연못에 비치는데 정말 부처의 형상인지 확인해 보자.
성류굴[聖留窟]
1963년에 천연기념물 155호로 지정. 성류굴은 원래 이름이 선유굴(仙遊窟)이었으며, 신선이 노닐 만큼 주변경관이 아름답다는데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성류굴이라는 지금의 이름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굴 앞의 사찰에 있던 불상을 이 굴속에 피난시켰는데, 여기서 '성불이 유한 굴'이라고 성류굴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생성시기는 2억 5천만년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굴 내에는 종유석, 석순, 석주, 동굴진주, 석화, 동굴산호, 동굴방패 등 다양한 생성물로 인해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고 있어 ‘지하금강’이라고 불린다. 2007년 한국동굴연구소의 조사에서 국내최초로 수중구간이 약 85m발견되었는데 대형의 종유석, 석순 등의 동굴생성물이 물속에 잠겨있으며, 이는 과거 빙하기 동안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그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또 진동굴성 쥐며느리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되기도 하였다. <성류문화제>
십이령
금강소나무숲길 1구간은 두천1리에서 소광2리에 이르는 13.5km의 7시간 코스이며 하루 예약한 80명만 입장이 가능하며 매주 화요일은 휴식하는 날이다.
울진 내성행상 불망비[乃城行商不忘碑] 십이령을 따라 울진에서 봉화까지 물물교환하던 행상들이 1890년경 세운 철로 만든 비이다. 이 비는 일제강점기 쇠붙이를 공출할 때 땅속에 숨겨 현재까지 보존되었다고 한다. 1995년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310호로 지정되었다. 1890년(고종 27)경 보부상의 최고 지위격인 접장(接長) 정한조(鄭韓祚)와 반수(班首) 권재만(權在萬)의 은공을 기리고자 세운 것이다. 정한조와 권재만은 모두 봉화 내성 출신이다
첫째고개 바릿재 옛날 보부상은 먹고살기 위해 바리바리 짊어지고 이 고개를 넘었다.
선질꾼들은 12고개를 넘으며 잠시 숨을 돌릴 때도 지게를 진채 휴식을 취했다. 이 때문에 이들 상꾼을 선질꾼이라 불렀다
왕피천(王避川) 왕이 피신한 곳
왕피천이라 부르게 된 것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로 935년경에 신라 경순왕의 왕자인 마의태자가 모후 송씨와 함께 이곳으로 피신 왔다가 모후가 이곳에서 별세하고 왕자는 금강산으로 갔다는 설이 있다. 둘째로 1361년 원나라 말기에 홍건적이 결빙기를 이용하여 남침하여 고려 31대 공민왕이 이곳으로 피신했다는 설이 있다.
연호정[蓮湖亭]
http://tour.uljin.go.kr/open_content/life/media/movie/Default.aspx?atc_act=ArticleView&seq=9649
울진 봉평신라비[蔚珍鳳坪新羅碑] 전시관
봉평신라비 1988년 11월 4일 국보 제242호로 지정되었다. 봉평비라고도 한다. 1988년 1월 경북 울진군 죽변면 봉평2리의 논에서 객토(客土)작업을 하던 중 발견되어, 4월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내용은 거벌모라(居伐牟羅)와 남미지(男彌只) 지역에서 무슨 사건이 발생하자 군대를 동원해서 이를 해결한 뒤, 소를 잡아 의식을 거행하면서 이 지역에 대해 사후조치를 취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먼저 신라 정치사의 핵심주제인 6부 문제에 대해서 기존에 성립시기와 과정에 관한 많은 이견이 있었으나, '신라육부(新羅六部)'라는 구절이 판독됨으로써 이 비가 건립되기 이전인 6세기 초 이전에 이미 6부가 성립되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숲 http://www.uljintrail.or.kr
금강송 군락지
http://tour.uljin.go.kr/open_content/life/media/movie/Default.aspx?atc_act=ArticleView&seq=9647
황장봉계표석[黃腸封界標石] 황장봉산(黃腸封山)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한 것으로, 전국에 황장목이 있는 산을 봉산(벌채를 금지한 산)으로 지정하여 일반인들이 함부로 벌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조처였다. 황장봉산이란 황장목의 생산지로 지정한 산림이다. 황장봉산 제도는 왕실에서 의례에 필요한 질 좋은 목재를 확보하기 위해 만든 제도로, 1680년(숙종 6) 처음 시작된 이후 점차 여러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금강송 군락지 세계유산 등재 총력전
문화재나 궁궐의 기둥이나 건축 목재로 사용되어 왔던 금강송은 경제적·문화적·역사적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금강송이 많은 울진은 지역 명이 같이 붙어 울진금강송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문화재 복원용 목재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금강소나무(강송 또는 춘양목)는 강원도 금강군에서 경상북도 울진·봉화·청송에 이르는 산악지역과 동해안에 자라는 소나무를 일컫는 이름이다.
소나무를 뜻하는 송(松)이란 한자에는 “중국 진시황이 길을 가다 소나기를 만났는데 소나무 덕에 비를 피할 수 있게 되자 고맙다는 뜻으로 나무에게 공작의 벼슬을 주어 목공(木公), 즉 나무의 공작이라 하였고, 이 두 글자가 합해져서 松(송) 자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춘양목이라는 이름은 봉화 인근의 춘양역에서 울진·봉화·태백 등 주변 지역의 질 좋은 금강소나무들을 수집해 철도편으로 대도시로 실어낸 것에서 유래한다
‘금강송’이라 불리는 소나무는 나이테가 사람 살 같이 붉고 누르다 해서 황장목이라 불리기도 하고, 붉은 껍질을 가지고 있어 적송이라 불리기도 한다.
문화재용 목재생산림으로 노란색 띠를 두른 보호수(1488본)로서 산림청이 관리하며 문화재청이 문화재 보수나 재건의 필요성이 있을 때 협의하에 사용된다고 합니다.. 수령은 약(20년 ~ 80년)입니다.
2009년 약 44억원을 들여서 완공한 춘양목산림체험관. 동절기라 지금은 폐문입니다. 1층에 금강소나무와 송이에 대한 소개가 있고 2층에는 문수산(1205m)과 옥돌봉(1242m) 그리고 산촌을 전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습니다.
같은 종의 나무끼리 연리목 현장이 이루어지긴 하지만 다른 종의 나무가 몸을 합친 것은 대단히 보기 드문 일이다. 숲 해설사 김원동씨는 이곳 사람들은 태백 참나무가 금강소나무에 반해서 울진까지 시집을 온 거라고들 말한다고 했다
울진원자력 홍보관
방사능은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이 붕괴할 때 나오는 일종의 빛이다. 에너지의 일부는 빛의 형태로 나오는 것이다. 빛인데 파장이 매우 짧기 때문에 막대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에너지 바로알기를 주제로 에너지 역사, 에너지발전의 효율성 및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증진하고자 한다
월계서원[月溪書院]
외삼문을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에‘월계서원(月溪書院)’,‘월계강당(月溪講堂)’이라는 현판이 나란히 걸린 서원이 있다. 서원 뒤 내삼문을 지나면 사우인 경덕사(景德祠)와 1998년 건립한 국보각(國寶閣)이 나온다.
국보각 안에는 국보 제181호인 ‘장양수 급제패지(張良守及第牌旨)’가 보관되어 있다. 장양수 급제패지는 현존하는 패지(牌旨; 위임장 등의 공식문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고려시대 과거제도를 연구하는 데 있어 귀중한 자료이다. 담장은 토담, 석담, 와담(기와) 3개로 되어있다. 항아리(장독)으로 만든 굴뚝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그을음방지와 골고루 따뜻해진다.
울진친환경엑스포공원
울진 후정리 향나무(천연기념물 제158호)
향나무 옆에는 서낭당이 있으며,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신성하게 여겨 신목(神木)으로 삼고 있다. 해마다 풍어와 해사평안을 비는 대상으로 되어 오고 있다. 이러한 제로서 어민들의 안심과 자신을 주어 왕성한 해양활동을 할 수 있게 해준 이곳 향나무는 값진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울릉도에 자라던 향나무의 가지가 폭풍우로 끊어져 해류를 타고 이곳 부근에 이르러 육지에 올라와 착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나무는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제사 때 향을 피우는 재료로 쓰이며, 정원수·공원수로 많이 심는다.
월송정[越松亭] 평해읍 월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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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8경(關東八景)의 하나로, ‘月松亭’이라고도 쓴다. 명승을 찾는 시인 ·묵객들이 하나같이 탄복한 곳이라고 한다. 현판은 최규하(崔圭夏)의 휘호로 되어 있다. 관동8경을 꼽을 경우, 월송정 대신 강원 통천군 흡곡(歙 谷)에 있는 시중대(侍中臺)를 꼽는 이도 있다.
죽변 대나무숲 오솔길
죽변등대 아래의 절벽위에 지어진 하얀 지붕의 소담스런 주인공 집과 작은 교회는 드라마의 여운을 느낄 수 있으며, 대나무와 등대를 배경으로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이 일품이다.
특히 100년 된 등대 아래의 바다절벽 위 대나무숲 오솔길은 이곳에서만 체험할 수 있다.
죽변등대
최상층에 돔 형의 등명기(燈明機)를 설치하였으며, 내부에서 옥상까지 나선형 철제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6·25전쟁 때 폭격으로 부서진 것을 이듬해 10월에 보수하였으며, 1970년 4월 소리신호기를 설치하였다. 20초에 한 번씩 불빛을 밝히는데, 약 37㎞ 거리까지 전달된다. 을릉도까지 직선거리가 제일 가깝다. 맑은 날은 을릉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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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풍헌[待風軒]
울진 대게국제축제 대게의 ‘대’는 대나무이다. 다리가 대나무 비슷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영어로는 스노 크랩(Snow crab)이라 한다. 살이 눈처럼 하얗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대게가 특히 울진에서 많이 잡히는 까닭은 울진 앞바다에 왕돌초라는 거대한 암초가 있어 여기에 대게가 집중적으로 서식하기 때문이다.
대게는 수컷과 암컷의 몸 크기가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수컷은 등딱지(체장) 길이가 13cm 정도 될 때까지 자라지만 암컷은 7cm 조금 넘길 뿐이다. 암컷은 몸이 찐빵만하다 하여 빵게라고 부른다. 또 암컷은 자원 보존을 위하여 잡을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가 먹는 대게는 수컷이다. 수컷은 15년 이상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컷도 등딱지 길이가 9cm 이상 되어야 잡을 수 있는데, 이 정도의 것이면 8년 정도 자란 것이라 한다.
울진 금강송 송이 축제 송이는 가을 추석 무렵 숲 속 소나무 아래에서 채취되는데 생육 조건이 까다로워 생산량이 적으며 가격 또한 고가이다. 울진군은 일명 '적송(赤松)'이라고 부르는 금강송(金剛松)의 국내 최대 군락지이자 전국 최대의 송이 생산지이다. 국내 자연산 송이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울진군에서는 본격적인 채취시기인 10월 1일부터 3일까지 사흘간 울진엑스포공원에서 송이축제를 연다. 송이는 보통 9월과 10월 두달간 채취가 이뤄진다.
울진맛집 물곰국(곰치국) 울진의 물곰국은 겨울이 제철이다. 국물이 얼얼하기 때문. 물곰국은 원래 뱃사람들의 밤샘 술타령에 쓰린 속을 풀어주는 해장국이 원조다. 물곰은 100% 자연산인 데다 최근 들어 생산량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추천할 만한 맛집 물곰국의 제 맛을 보려면 죽변항을 찾으면 된다. 항을 중심으로 물곰국 전문식당이 몰려 있다. 추천할 만한 맛집은 죽변시장 이순덕 할머니의 성진식당, 돌섬식당
죽변항죽변항은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에 있는 어항이다. 1995년 12월 29일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다. 죽변해수욕장으로 들어가시면 하트 모양의 자갈 사장이 있어요
여름이면 물놀이도 괜찮은데 1박2일과 드라마 폭풍속으로를 촬영했던 울진 하트모양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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