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술잔에 모래 맥주를 따라 마시는 모래들
어둠이 내리면 사막은 빛나기 시작한다
빛나기 시작한 어둠 속에서 모래들은 울기 시작한다
물어물어 찾아온 골목 언저리
독립 서점 자리에 처음 본 모래언덕이 생겼다
사막을 지키는 경비 아저씨
여기가 책방이 있던 자리 아닌가요
언덕이 언덕을 만드는 건
혼자만의 울음을 달래어 보는 것
하룻밤 사이에 생긴 모래 언덕에 앉아
모래 술잔에 모래 맥주를 따라 마시는 모래들이 있다
술병이 진열되어 있는 모나리자 주점
모른다는 것이야말로 오래된 수수께끼
별이 된 부끄러움
흐느끼는 도시의 불빛들
모래언덕이 되어버린 작은 가게 하나
모래 술잔에 모래 맥주를 따라 마신다
신정민, 『의자를 두고 내렸다』, 2022년
새벽이면 이별을 생각했다. 당신이라는 별을 떠나면 또 다른 별세계가 찬란하게 펼쳐질 것만 같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리라 결심했다. 그리고 나는 어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굴레를 딛고 자유롭게 훌훌 다른 세상을 향해 떠나는 어떤 여인의 가벼운 발걸음을, 찰랑이는 머릿결을, 환하게 웃던 그 박꽃 같은 미소를…. 그녀를 향해 눈부시게 쏟아지던 감귤빛 햇살을….
저녁 무렵이면 이내 당신이라는 익숙한 별이 그리워, 새벽의 결심을 후회하곤 했다. 부정맥을 앓고 있는 심장이 아프고 아팠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자가 된 것만 같았다. 사랑은 샛붉은 맨드라미처럼 핏빛이었다.
이 사랑,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여전히 뜨거운 맨드라미일까.
모든 것은 식기 마련이다. 앞의 사랑이 그랬고, 훗날의 사랑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내가 앓고 있는 이토록 생생한 아픔은 무엇일까. 불에 데인 듯 뜨거운 심장은 무엇일까. 한여름 하늘이 무너져 내린 듯 무턱대고 쏟아지던 장대비처럼, 비 그치고 나면,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유난히 청명하던 맑고 푸른 하늘처럼, 잊혀지고 퇴색되고 변색되는 것이 사랑일 것이다.
선뜻 놓지 못하고 있는 이 사랑 또한, 언젠가 모래가 될 사랑, 사상누각처럼 그 빛을 잃고 허물어질 “모래언덕” 같은 것일 것이다. 이젠 자유롭게 사랑에게 날개를 달아주자.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날아갈 수 있게, 이젠 그를 사랑에게 돌려주려 한다. 아니, 나에게 선녀 옷을 하사하고자 한다.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다시 날아가주렴…. 슬퍼하기에는 이르니, 오늘밤은 “모래언덕이 되어버린 작은 가게”에서 “모래 술잔에 모래 맥주를 따라 마”시며 흠씬 흥을 돋구어 보자. 취해보자.
모래가 모래 같은 사랑을 했네. 먼지가 먼지 같은 사랑을 하네…. (홍수연)
🦋 다시, 시작하는 나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