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한국와이퍼 투쟁 신년운세를 점쳐보다
시흥안산누구나노조 박태현 분회장
공장사수 투쟁으로 새해를 시작하다
2023년 1월 1일 0시, 새해의 희망과 기대를 담은 타종과 불꽃놀이 소리가 요란한다. 같은 시간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공장사수조>를 꾸려 불꺼진 공장을 지키며 새해를 맞는다.
한국와이퍼 지분을 100% 보유한 일본 덴소 자본은 한국와이퍼 경영진을 앞세워 2022년 7월 7일 청산계획을 발표했고, 정확히 6개월 후인 2023년 1월 8일 청산절차를 감행하기 위해 시간표대로 착착 저들의 할 일을 하고 있다. 기어이 12월 31일부로 영업종료를 선언하고 현장출입을 금한다는 문자메세지를 보냈다. 노조사무실만 남겨두고 모든 현장은 쇠사슬과 판넬로 봉쇄됐다. 아마도 며칠 후 새해 벽두에 220명이 넘는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해고통보 문자메세지를 받을지도 모른다.
이에 20~30년간 청춘을 바쳐온 나의 일터, 나의 현장, 나의 생존을 지키겠다고 한국와이퍼 분회 조합원들이 <공장사수조>를 꾸린 것이다. 너무 처절하고 살벌한 이름이다. 하지만 어찌보면 생존권을 목숨 걸고 지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자본은 필요한 생산설비를 빼내고 필요 없어진 사람들을 내쫒으려고 하지만 노동자들은 출근투쟁을 벌이고 공장을 지키겠다고 <공장사수조>를 꾸렸다.
무엇을 얼마나 더 해야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
사실 지난 6개월간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청산발표에 저항하며, <고용안정협약서>의 약속을 지키고 기만적인 청산계획을 철회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하며 싸워왔다.
일단 덴소코리아, 고용노동부, 현대자동차 앞에서 책임당사자들을 규탄하는 집회를 여러차례 벌이며 사태해결을 촉구했다. 또한 <일본 덴소>자본을 규탄하는 도보행진(‘덴소규탄 뚜벅이’)으로 국내법을 무시하고 ‘먹튀행각’을 벌이는 덴소자본의 횡포를 널리 알렸다. 과정에서 MBC뉴스보도로 덴소자본의 ‘고의적자’, ‘위장청산’ 등 전형적인 먹튀행각과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의 고용위기가 알려지고, <국정조사>에서도 주요이슈로 다뤄지며 한국와이퍼 노사가 증인으로 출석, 결국 ‘특별근로감독’ 대상이 되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청산계획은 중단되지 않았고 실질적 소유주이자, 집행권자인 덴소자본에 대한 특별근로감독과 청산철회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농성, 6시간 총파업 총력투쟁>을 결행하게 되었다. 최윤미 분회장과 이규선 지부장은 국회앞에서 44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농성을 하며 사태해결을 촉구했다. 일본 원정투쟁도 다녀왔다. 안산의 시민사회가 움직이고, 국회의원 등 정치권이 움직이며 사태해결을 위한 대화의 물꼬가 터지는 듯 했지만, 결국 자본은 12월31일 영업종료를 실행에 옮겼고, 청산절차는 계획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정말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최윤미 분회장이 단식 중에 했더 말이 생생하다. “도대체 얼마나 더 내줘야 약속이 지켜지고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을 수 있습니까?”
승리의 열쇠는 단결의 힘
그렇다면 우리의 투쟁은 결국 패배하는 것일까?
나는 이 절망적인 물음에 대해 확실히 ‘NO’라고 대답할 수 있는 몇 가지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 근거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이 보여준 <단결의 힘>이다. 위에 언급한 스펙타클한 투쟁의 과정들은 한국와이퍼 분회 조합원들의 단결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회사는 노동조합의 힘을 빼기 위해 ‘조기퇴직제’라는 것을 들고나와 위로금을 챙겨줄테니 사직서를 내라고 수차례 종용했다. 하지만 1, 2차 조기퇴직제 시행에도 24명의 조합원만 빠져나갔고, 230명의 조합원이 흔들림없이 자리를 지켜왔고 힘있는 다양한 투쟁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이다. 분회 조합원들이 모이면 주문처럼 외치는 구호가 있다.
“단결하는 노동자는 패배하지 않는다!”
지역사회 공동체와 함께하는 고품격 단결
이 단결의 힘은 어디서 왔을까? 단결하자고 수없이 외친다고 다 그렇게 되진 않는다.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의 단결의 힘이 공고한 이유는 지역의 노동자들과의 연대, 지역사회와 교류에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투쟁이 패배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다. 한국와이퍼 분회는 설립 초기부터 ‘사업장의 울타리를 넘어 연대하자’를 핵심구호로 <시흥안산지역지회>를 건설하고, 지역의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실천적 기틀을 마련하여 연대투쟁을 생활화했다. 뿐만 아니라, 단협을 통해 매년 1200만원의 <공동체상생기금>을 출연해 <안산시흥 일하는사람들의 생활공제회 좋은이웃>에 기탁해 지역의 비정규 취약노동자들의 권익향상을 위한 기금으로 활용해왔다. 아파트 청소,경비노동자 자조모임, 배달노동자 응원사업, 노동자동아리 지원사업, 청년노동자 지원사업 등 다양한 사업에 기금이 활용되었고 한국와이퍼 노동자들도 지역사회 교류활동에 함께해왔다. 지역사회 공동체와 함께 하는 한국와이퍼 노동조합의 활동은 씨줄 날줄이 되어 그야말로 튼튼한 조직을 만들었다. 덴소자본은 지금 <전국금속노조+안산시흥지역사회 공동체>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2023년 한국와이퍼 투쟁은 이길 수밖에 없는 운세
한국와이퍼 노동조합의 단결력과 조직력은 이미 지난 2020년, 2021년 고용안정 투쟁을 승리로 이끄는데서 증명되었다. 2022년 투쟁에서도 45개 시민사회단체가 이름을 걸고 <한국와이퍼 안산시민행동>을 구성해 기자회견, 간담회, 시청앞 선전전, 퇴근길 촛불선전전 등 대대적인 여론전을 펼치며 안산시장, 시의회, 국회의원들을 움직였다.
무엇보다 한국와이퍼 투쟁이 이미 승리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던 장면이 있었는데,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년 노동자들의 모임 <마니또>가 ‘전태일 영상제’에 한국와이퍼 투쟁을 소재로 출품했고, 지역노동자들의 ‘좋아요’, ‘댓글’을 조직해서 1등상을 탔고, 상금 300만원을 한국와이퍼 투쟁기금으로 전달했던 장면이다. 눈물이 날만큼 감격적이었다. 청년노동자들의 등장과 그 아름다운 마음이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우연이 아닌 필연적인 노동자들의 만남과 연대가 삶에 힘이 되고 울림을 주는 것을 느꼈다. 한국와이퍼의 노동운동은 이미 전대미문의 승리의 길을 걸어오고 있다.
가끔 한국와이퍼 분회 조합원들은 나에게 애써줘서 너무 고맙다고 인사를 전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가장 최전선에서 싸우는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 한국와이퍼 투쟁은 한국와이퍼만의 투쟁이 아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을 믿고 끝까지 당당하고 흥겹게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