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Today’s Meditation)
본문 : 고린도 전서 12장 8절에서 13절( 1Cor 12:8~13)
바울은 7절에서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나타내심’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각 성도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나눠주심으로 그 성령의 은사가 각 성도들에게 나타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12:8~10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고린도 교회나 초대교회 당시 나타났던 성령의 은사는 어떤 것이 있었을까요?
바울은 고린도 전서 12장에서 그 은사 목록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 은사는 지혜의 말씀입니다. 이 은사는 지혜롭게 말하는 은사입니다. 특히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에게 주어지는 은사로 보여 지며 .. 교회나 단체를 이끌어 가는데 지혜롭게 말하여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말합니다.
두 번째 은사는 지식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교회를 섬기는 은사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을 이끌어가는 영적 지도자들에게 주어지거나 혹은 학자들에게 주어지는 은사입니다. 교회에서 말씀의 지식을 전달하는 목사와 교사들에게 주어지며 특별히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수들에게 주어진 은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은사는 믿음의 은사입니다. 믿음의 은사는 구원 얻기 위해 믿는 믿음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믿음의 기적을 일으키는 은사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쉬이 믿지 못하는 것을 믿음으로 그 믿음이 사실임을 나타내는 은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은사는 병 고치는 은사입니다. 병든 자에게 손을 얹고 기도함으로 병을 낫게 하는 은사입니다. 오늘날에도 기도함으로 병든 자들을 고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섯 번째 은사는 능력 행하는 은사입니다. 능력을 행하는 것은 교회에서 어떤 사역을 성취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을 벌려 놓고서 수습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일을 시작하여 완벽하고 효과적으로 일을 성취합니다. 이러한 것이 능력을 행하는 은사입니다.
여섯 번째 은사는 예언하는 은사입니다. 이 은사는 원래 장래 일을 나타내는 은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나타나서 바울이 결박당하여 고난 받을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그와 같이 장래 일을 말하는 은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은사를 사용함에 있어서 점술가와 이방 예언가와 혼동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은사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두려움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와 성도를 섬김으로 세워가기 위한 것이 은사의 목적이므로 위협하거나 두려움을 주는 예언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예언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일곱 번째 은사는 영들 분별하는 은사입니다. 어떤 사람이 악령에 사로잡혔는지 혹은 성령의 인도와 역사가 나타나는지 분별하는 은사입니다. 말씀을 잘 아는 사람들은 대개 이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통해 영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덟 번째 은사는 각종 방언을 말하는 은사입니다. 방언은 초대교회인 예루살렘에서 오순절날 마가다락방에서 나타났던 방언과 고린도서에서 나타나는 방언은 양상이 다릅니다. 오순절날 나타났던 방언은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세계 각국의 방언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주신 방언은 그 당시 실재하는 언어였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에서 나타나는 방언은 하나님의 비밀한 일을 말하는 언어로서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입니다.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은사를 각종 방언을 말하는 은사입니다.
아홉 번째 은사는 방언들 통역하는 은사입니다.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적인 유익을 주려고 하면.. 그 방언은 반드시 통역되어야 합니다. 통역되지 않는 방언은 다른 사람에게 의미 없는 잡음이 됩니다.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이러한 모든 은사들은 한 분이신 성령님께서 성령님의 뜻을 따라 각 사람에게 나누어줍니다. 그러므로 은사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받고 싶다고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성령의 뜻을 따라 필요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사를 주거나 안주거나 하는 주도권은 성령께 달려 있습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성령께서 교회의 상황과 은사를 받을 사람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은사를 주십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스럽게 사역에 동참하면 성령님은 필요를 따라 은사를 주시기 때문에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봉사하지 않으면서 은사를 달라고 하는 자들은 자신이 어떤 은사를 받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은사를 확인하는 중요한 방법은 기도하며 교회에서 섬기는 것입니다.
12: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은사론에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고 몸은 여러 지체들로 구성됩니다. 그 모든 지체들은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런데 각 지체마다 역할과 기능이 다릅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성도들은 지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역할과 기능에 따라 교회를 잘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각 지체인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은사의 목적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의시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사역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자신이 가진 은사를 확인해야 하고 또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주어진 그 은사에 따라 교회에서 봉사해야 합니다.
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바울은 이 구절에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인종과 국적과 신분과 언어를 초월하여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었음을 확인합니다. 유대인과 헬라인은 각각 하나님으로부터 민족적으로 택함을 받았던 백성들을 가리키며 헬라인은 유대인을 제외한 모든 이방인들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종이나 자유인은 .. 로마제국 당시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서 노예가 된 사람의 숫자가 어마어마했는데 .. 종이된 사람이든 혹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유인이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교회의 일원이 되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된 사람은 한 성령을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기서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 할때 성령을 마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원열(李源烈) 목사에 의하면 영어 성경이나 한글 성경에서 원문에 대한 번역이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바른 번역은 “성령충만 곧 성령세례를 받으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게 되는데, 이 생수는 성령님께서 주시는 생수이다. 성령충만 곧 성령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성령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신다는 뜻이다. 이러한 내용이 고전 12:13에서 다시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고전 12:13의 바른 번역은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몸에 속하여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다 한 성령이 주시는 생수를 마시게 하셨느니라”이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참조 : http://usabiblestudy.com/about_me) 저는 이원열 목사의 견해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가 성령충만과 성령세례를 동일시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지만 성령께서 거듭난 그의 백성들에게 생수를 주셔서 마시게 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여기서 생수란 성령님께서 말씀과 은사를 통해 주시는 말할 수 없는 충만한 기쁨과 만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생수를 얻기 위한 조건은 성령 세례를 받고 지속적으로 성령 충만함으로 살아갈 때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이러한 생수를 받아 충만한 기쁨과 만족을 얻는다면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서도 넉넉히 이기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성령으로부터 오는 생수를 공급받아 충만한 기쁨과 만족으로 세상을 승리하며 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