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장에는 대제사장의 무리들이 가이사랴에 있는 로마 총독 벨릭스에게 바울을 고소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5~9절을 보겠습니다.
5 우리가 본 바로는, 이 자는 염병 같은 자요, 온 세계에 있는 모든 유대 사람에게 소란을 일으키는 자요, 나사렛 도당의 괴수입니다.
6 그가 성전까지도 더럽히려고 하므로, 우리는 그를 붙잡았습니다. (6절 하반절부터 8절 상반절까지 없음)
8 각하께서 친히 그를 신문하여 보시면, 우리가 그를 고소하는 이유를 다 아시게 될 것입니다."
9 그러자 유대 사람도 이에 합세해서, 그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고 주장하였다.
본문에, 6절 하반절부터 8절 상반절까지는 없다는 말이 ( ) 안에 들어있는데, 누군가 후대에 삽입한 내용이 일부 사본에 나오기는 하지만 원본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가이사랴는 ‘카이사르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으로 90km 정도 거리에 있는 지중해 해안도시로, 로마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것을 믿고 지켜왔다면서, 자신은 작당을 하거나 소동을 일으킨 적이 없는데, 이 사람들이 범죄의 증거는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단지 편견으로 고소를 하고 있다는 요지로 스스로를 변호합니다.
총독은 심문을 연기하고, 며칠 뒤에 유대인인 자기 아내와 함께 바울을 불러내 강론을 듣습니다. 바울이 장차 올 심판에 대해 말할 때 두려움을 느낀 총독은 강론을 중지시켰고, 그 이후로도 바울을 자주 불러내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바울을 불러낸 이유는 단지 뇌물을 바랐기 때문이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두 해가 지난 뒤로 이어집니다. 바울이 가이사랴에 있는 총독의 관저에서 2년 동안 수감되어 있었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그동안 보르기오 베스도라는 새 총독이 전임 총독 벨릭스의 후임으로 부임해왔는데, 그는 유대 사람의 환심을 사고자, 바울을 가둔 채로 내버려 두었다는 기록으로 24장은 끝을 맺습니다.
전임 총독 벨릭스는 서기 52~60년까지 유대 총독으로 재임했고, 후임 총독 베스도는 서기 60년에 부임해서 62년에 갑자기 죽었다고 역사는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