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재에서 동사강목을 읽다/ 김영미
학문의 밭은 넓다
아니 묵향의 아집에 가로막힌
선비의 길은 비좁다
뻐꾹새 울음이 명리의 담장을 겨우 넘어와
한 사나이의 서책 속에서 실학을 찾아낸 건
한 시대의 혁명이었을까
노비와 손 잡고 나무를 태워 숯을 굽고 자신을 사르던
경세치용의 역사는 장터에서 시작되는가
번잡스레 요점 잃은 역사책에서 어긋난 필법의 오류를 바로잡고
이십여 년을 역사 정론의 뿌리를 찾아 기록한 열일곱 권의 편년체
한 때 삿갓의 무게에 눌려
벼루 밖의 들녘을 바라보는 일이 힘겨울 때가 있었다
어짐이 때를 놓치면 탄식이 됨을 곰곰이 되새기며
당쟁이 길어질수록 선비의 기개는 남루해 지는
그 알 수 없는 누습을 견뎌내는 동안
누군가는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또 다른 아픔의 암중모색이라고 했다
한 촌로가 통속 인분을 휘휘 저어
봄날의 호박밭에 뭉클 뿌리는
그 따듯한 가훈을 보면서도 선비를 벗지 못했다
숫돌도 왕후장상의 씨를 달리 벼리지 않는데
병풍 안쪽에서 이 고뇌를 놓지 못하는가
순암 안정복은
역사 속에서 실사구시를 악몽처럼 지키던
불후한 르네상스의 가객이다
이택재에 불던 바람은 조용히 서책을 덮는데
밭두렁 봄 꿩들은 덜 읽은 세상을 넘겨다 본다
[시작메모]
-'동사강목'에 어린 숨결을 느끼며 빈속을 포장하던 삶의 허울을 벗는다.-
2024년 10월 26일 해 밝은 11시 <제7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시상식 및 문화재>가
경기 광주시 중대동 텃골 이택재 경내에서 열립니다.
순암 선생의 초대를 전하면서
여러분과 함께 문학의 향연과 어우러진 이택재의 고전적 정취와 역사적 묵향에 취하고 싶습니다.
순암 안정복 선생은 명문가 광주안씨 가문에서 태어나
영특한 자질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재야에서 학문에 전념했으며,
35세 때부터 스승으로 섬긴 성호 이익 선생의 '경세치용학'을 이어받아 근기 실학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동사강목』,『열조통기』,『임관정요』,『하학지남』등의 저술 중
『동사강목』은 선생 필생의 역작으로 후일 박은식, 신채호 등의 민족사학 수립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1회 순암 백일장>은 광주문인협회에서 개최하였고, 여러 문학단체를 거처
지금은 순암 연구소에서 주관하고 있습니다.
순암 안정복 선생은 현 순암 문학상 추진위원인 저와는 인연이 깊은가 봅니다.
‘이택재에서 동사강목을 읽다’란 글도 그런 연분으로 나온 글입니다.
순암 선생은 정치적으로는 불행한 시대를 사셨지만,
사상적으로는 비교적 자유스럽고 개방적인 시대에 산 인물이기에
역사상의 비중은 정치적 행적이나 정책적 업적보다는
학문적ㆍ사상적인 공헌과 영향에 역점을 두고 싶습니다.
일생을 청빈하게 보내면서 시류와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철저히 현실에 대응한 주체적ㆍ선진적인 실학자이기 때문입니다.
▼ 골프타임즈 가는 길
골프타임즈 모바일 사이트,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37회] 이택재에서 동사강목을 읽다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이 가을의 서정이 따듯했음은
여전히 다정하신 김봉균선생님의 발자취 덕분이었군요..
11월에도
김봉균선생님..
늘 건강하시고요,
문장마다 빛나는 문사의 나날이 영예로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