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문교과서의 표지에나 실려 있던 `서당'이 도시학교에서 되살아났다.
서당 간판만 내건 게 아니다. 상투를 튼 훈장이 갓을 쓰고 교단에 올라와 옛어른의 말씀을 전하며 무너져가는 교실공동체에 새 활기를 불어넣는다. 인천 대인고교가 지난 3월부터 한달에 한번씩 전일제 특별활동의 하나로 열고 있는 `대인서당'의 모습이다.
지난 19일 오후 `대인서당'은 모처럼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인천대공원 원두막에서 야외수업을 했다.
“두 사람이 싸워도 지는 사람 없이 같이 이겨야 해요.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 안되지요.”
대인고 선생님들이 수소문해 모셔온 인천 `심전경작 한문서당'의 송우영(38) 훈장은 `무패양승(無敗兩勝)'의 정신을 21명의 `학동'들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사람되는 정신을 가르치려 함이다.
교과서는 서당교육의 첫걸음인 `사자소학'. 송 훈장은 병든 어머니를 위해 눈 속에서 대나무순을 찾아낸 `맹종'의 옛이야기를 통해 “효자는 하늘이 내는 것”이라며 과학이나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덕목에 대해 구수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나갔다. 꾸벅꾸벅 졸거나 한눈파는 학동은 찾아볼 수 없다.
대인서당의 수업이 일반 교실수업과 다른 것은 이것 뿐이 아니다. 우선 학년 구분이 없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21명의 학동이 똑같이 앉아 옛 성현의 말씀을 배운다. 나이 구분이 없고 다만 먼저 깨달음을 얻은 자와 나중에 깨달음을 얻은 자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획일적인 `진도 맞추기'란 것도 없다. 개별학습이 이뤄지는 것이다. 학동들은 스스로 공부하고 배운 내용을 개별적으로 훈장으로부터 점검받는다.
“코끼리에게 하늘을 날라고 요구해선 안되지요. 각자 가지고 있는 재능이 다른 법입니다.” 틀이 갖춰지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교양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송 훈장의 교육철학이다. 여기에는 사람마다 재능이 다르다는 인간존중의 사상이 배어 있다.
옛 사람들은 8살까지 서당에서 <동몽선습> <훈몽강독> <계명편> <격몽요결> <명심보감> <효경> 등을 떼면서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됨의 도리'를 스스로 배웠다고 한다. 그런 교양교육이 이뤄진 뒤에 학동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공부나 기술이 무엇인지 스스로 선택하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서재엽(16·1학년) 학동은
“생활과 철학을 다루는 서당수업이 지루한 줄 모르겠다.
글 속에서 깨우친 덕목을 생활 속에 실천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고 말했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게 아니라 잃어버린 우리 정신을 되찾겠다는 대인고의
당수업은 여름방학이 끝난 뒤 9월 다시 문을 연다.- 99/6/28/hani -
* 교사들 활발한 교과모임 - 준비된 선생님들
준비된 수업은 학생들을 즐겁게 만든다.
하지만 교과서와 교사용지도서만으로는 즐거운 수업을 할 수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그래서 교사들은 `교과모임'을 찾는다. 올해 2월 교육부가 전국의 유치원과 초·중·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교과교육연구회' 계획서를 공모했을 때 5000여점이 넘게 접수된 것도 이런 열기와 무관하지 않다.
교사모임의 `원조'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회장 김민하) 산하 전공별 단체모임이다. 지난 62년 만들어진 한국수학교육학회(회장 윤옥영·서울 금성초등학교 교장)에는 교수와 교사 등 1000여명이 가입해 각종 세미나와 워크숍을 열고 학술논문집도 발간하고 있다. 회원수 800여명의 한국국어교육연구회, 한국사회과교육연구회, 한국중등영어교육연구회 등 교과별로 10여개의 모임이 오랜 활동의 역사를 자랑한다.
한국교총은 교과별 모임 외에도 회원 1만5000명을 거느린 한국교육방송연구회(회장 유태영·이화여대 교수)를 비롯해 한국학교보건교육연구회, 한국학교도서관연구회 등 전공별 단체모임도 있다. 또 지난 97년부터 교사동아리 활성화에 나서 부산교원문학회, 우리동요사랑회, 학급경영연구회 등 10여개 모임을 지원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80년대 들어 젊은 교사들 중심으로 발전한 것이 국어·영어·체육 등 교과모임과 환경·통일·생활지도 등의 주제별 모임이다. 이들 모임의 교사들은 상당수가 전국교직원노조(위원장 이부영)의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국과학교사모임의 회장인 서만석(41·서울 광양고) 교사는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에 있는 교과연구실을 찾았다. 5~6명의 교사와 함께 `통통 튀는 얌체공 플러버 만들기' 실험을 위해서다. 이런 연구결과물과 수업 경험은 <함께하는 과학>이란 교과연구지로 1년에 2차례 발표된다. 교과모임은 지역별 모임까지 생겨났다. 속초·고성·양양 과학교사모임은 올 봄 <과학수업 5분 전에 들려주는 136가지 이야기>란 교사용 교재를 펴내기도 했다.
회원수 4000명인 전국국어교사모임(대표 김주환·서울 장위중 교사)의 <함께 여는 국어교육>을 비롯해 전국미술교사모임의 <신나는 미술시간> 등 교과연구지는 교과별로 12가지나 된다. 이들은 교과별 인터넷사이트도 갖고 있다. `서울초등환경교육연구회'는 `환경을 생각하는 전국교사모임'에 속한 13개 지역모임 가운데 하나다.
환경교사모임은 계간지 <녹색교육>을 펴낼 뿐 아니라 지난 5일 환경의 날엔
`동강살리기 1만 교사 서명운동'을 벌여 만만치 않은 세를 과시하기도 했다.
- 99/6/21/hani -
* 학생의 수행평
- `수행평가' 그게 뭐지?
올해부터 전국의 거의 모든 학교에 처음 도입된 수행평가제도를 두고 교사들은 대뜸 이런 질문을 던진다. 학부모와 학생들도 불만스런 표정이다. 교실에서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평가의 대상이고 내신성적에 영향을 주게 된 때문이다.
“딸랑 딸랑~ 딸랑 딸랑~.”
지난 10일 오전 서울 불암중학교 3학년14반 교실. 선생님이 작은 종을 흔들자 `시장바닥' 같던 교실이 찬물을 끼얹은 듯 이내 조용해진다. 종소리는 옆사람과 `토론'을 마치고 선생님에게 주목해 달라는 교사와 학생의 약속이다. 학생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지를 필요도 없다.
“학생이 40명이나 되는 교실에서 토론수업을 하려면 아이들을 다잡는 요령이 필요했어요.”
이미숙(40·도덕) 교사는 지난해부터 `작은 종'을 이렇게 토론수업에 활용한다. 이 교사를 도와주는 것은 `작은 종'만이 아니다. 이 교사의 교무실 책상엔 2개의 고무도장이 있다. 하나는 `한마음' 도장이고, 또하는 `최고야' 도장이다.
이 교사는 이 도장을 기분내키는 대로 막 찍어주는 것은 아니다. 한 학급을 10개조를 짠 뒤 발표를 잘하거나 교육활동이 충실한 학생들을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학생들의 동의를 얻어 칠판 옆에 조별로 `바를 정'(正)자 방식으로 표시를 해준다. 또 조별활동을 잘하면 `한마음' 도장을, 개인활동을 잘하면 `최고야' 도장을 `바를 정'자 수만큼 학생들의 공책에 찍어준다. 물론 도장의 갯수는 학기말에 `수행평가' 점수로 반영한다.
학생들의 공책은 수업중에 토론한 내용과 자신의 생각들로 가득하다. 숙제를 해오거나 칠판에 적힌 내용을 받아쓸 필요도 없다. 학생들의 공책은 말 그대로 `시험지'가 된다.
서울 당곡고등학교 강우희(34·사회) 교사는 학기마다 첫시간 수업을 한 학기 길라잡이(오리엔테이션) 시간으로 사용한다. 한 학기동안 배울 내용과 준비물, 평가방식과 조별 보고서 제출요령 등을 가르치는 것이다. 강 교사의 이런 수업은 벌써 4년째 계속되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6차 교육과정 교과서를 보고 수업방법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1시간은 이론수업을 하고 1시간은 과제에 따른 탐구수업을 해야 했거든요.”
강 교사는 수업방식을 바꾸기 위해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고 한다. 교과서를 주된 참고도서로 삼고, 수업내용을 재구성해 매시간마다 유인물을 만들어 나눠줬다. 공책에 붙여진 유인물의 지시에 따라 아이들은 토론을 하고, 자료를 찾아보고, 보고서를 만들어 교사에게 제출한다. 이렇게 제출된 공책과 보고서는 매학기마다 총점(100점)의 10%까지 수행평가 점수로 반영된다.
수행평가를 시도하면서 과목간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은 장점으로 꼽힌다. `실험학습'의 도입이 대표적인 예다. 서울 대림여중의 남호영(37·수학) 교사는 지난달 `함수관계'를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보고서 양식'을 나눠주었다. 학생들은 보고서 양식에 따라 교실 밖에서 수학적인 실험을 한다. 주제에 따라 스스로 실험방식을 정하고 역할을 나눠 실험결과를 그래프로 그려내는 것이다.
대림여중 2학년 권소라양이 속한 조는 `종이태우기'를 선택했다. 종이의 질량에 따라 종이가 타는 시간이 달라지는 것을 그래프로 그리고, 실험과정을 사진으로 찍어 첨부했다. 어떤 학생들은 재질이 다른 옷감을 다리미로 태우며 그래프를 그렸고, 또다른 학생들은 페트병에 구멍을 내고 물이 흘러나오는 시간을 잰 뒤 그래프로 그렸다.
국어시간에나 가끔 하던 토론수업이 도덕이나 사회교과에 응용되고, 과학시간에나 하던 실험이 수학시간에 응용되면서 아이들은 살아있는 지식을 체험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문제점도 많이 드러났다. 불암중학교 한 학생은 선생님에게 이런 편지를 띄웠다. “수업시간의 활동 하나하나가 점수에 반영되면서 수업시간마다 너무 긴장이 돼요. 심지어 인간적인 비애를 느끼기도 합니다.”
학생들의 스트레스는 긴장감 뿐이 아니다. 학사일정이 정해져 있다보니 과목별로 보고서 제출기한이 겹쳐 감당하기 힘들다는 하소연도 생겨난다. 교사들의 부담이 늘어난 것도 문제다. 주당 20시간 안팎의 수업에 담임업무와 행정업무를 처리하다보니 수업에 필요한 자료제작과 수업 뒤 평가를 위해 집에까지 가서 일을 해야 하는 때가 많은 것이다.
“열린 수업을 하려면 수행평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수행평가를 하라고 강요하기엔 현재의 업무가 너무나 많습니다.”
교사의 `자율재량'이 중요하다는 게 이미숙 교사의 생각이다. - 99/6/14/hani -
* 학생들의 동아리 한마당 참관기
-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
청소년들은 이제 더이상 지하공간으로 숨지 않고 밝은 공간으로 나와야 한다. 이런 생각으로 지난 25일 과천 서울랜드에서 열린 `99서울 학생동아리 한마당'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열정적으로 동아리 활동을 꾸려나가는 교사들을 만나면서 오랜만에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어렵더라도 교사들이 이처럼 `학생동아리'를 하나씩 꾸려간다면 1~2년 안에 학교문화가 크게 변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엿본 것이다. 이런 활동을 통해 새로운 연결점을 찾지 못하면 학교는 영화 <여고괴담>에 나오는 흉물스런 모습으로 우리 모두에게 상처만 입히게 될 것이다.
이번 행사가 남긴 의미는 사뭇 많다. 우선 교사와 학부모 등 기성세대가 학생들을 이해하고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만남의 장소를 제공한 것이다.
행사장에서 만난 한 교사는 “동아리 활동이 교내 학생활동의 일부여야 하는데, 이번 행사로 흥미있는 문화는 밖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늘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일선 학교에서 동아리 활동을 적극 지원해주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교사들의 요구가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였다면 지금처럼 학교가 이런 심각한 지경에 빠졌겠는가? 이제 교사들도 전략을 써야 한다. 요구할 것은 하면서 동시에 이런 기회가 오면 십분 활용하여 학생들을 살려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10대 학생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아주 암울할 것이다. 아이들은 점점 더 냉소적이 되고 자기관리를 포기하려 들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문화산업이 일어날 수 없다. 지금처럼 문화적 감수성을 기를 기회가 박탈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동아리 한마당은 적어도 답답한 현실에 돌파구를 마련하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본다. 교사들이 좀더 학생들 처지에 서주길 바란다.
학생동아리와 자치활동 활성화는 시간의 문제다. 어느 교사의 소망대로 다음 행사는 좀 긴 준비시간을 두고 기획해 교사와 학생들이 좀더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행사로 발전했으면 좋겠다. 학생들의 자발성을 한껏 살리면서 교사와 학생이 다함께 노래부를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되면 좋을 것이다.
동아리 축제가 교사·학생 모두를 위한 `살림'의 축제로 자리잡기 위해 일선 단위학교 안에서 동아리 활동이 활성화될 수 있는 방안이 계속 나오기를 기대한다. - 99/5/31/hani -
* 스승의 날을 보내고
- 서울 북공고 3년 황성규
올해 스승의 날은 어쩐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정년 단축이니 촌지교사니 하면서 우리 선생님들이 정부와 언론으로부터
시달림을 받았기 때문에 학생들로서 선생님 뵙기가 민망했다.
우리 학교에도 정년 단축과 명예퇴직으로 올 8월 떠나실 선생님들이 많다.
그 분들은 애써 우리들 앞에서 태연한 척하시지만 그래도 얼굴 한가운데 우울한 그림자가 엿보인다.
그 가운데 한 분이 너무 떠드는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이놈들아 요새 선생님이 가르칠 기분이 안나는 것은 봉급이 줄어들었기 때문도
아니고, 정년이 단축됐기 때문도 아니다. 너무 말을 안 들으니 속상한
것이다. 그래 정부가 선생님들을 우습게 여기니 너희들도 그러니?”
정말이지 요새 학생들, 선생님들을 너무 괴롭힌다. 선생님들 힘든 사정도 모르고 책가방도 잘 안 챙기고 숙제도 안 가져오고 선생님이 나무라면 대드는 학생도 많다. 툭하면 결석·지각에다 수업중 몰래 도망가는 학생들도 있다. 선생님들의 주변상황은 한마디로 사면초가다. 이런 실정이니 교육개혁은 바로 선생님들이 맘놓고 가르칠 수 있는 분위기부터 만들어놓은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게 평소 생각이다.
그러나 선생님, 선생님께서 흔들리면 저희들은 오갈 데 없음을 아셔야 합니다. 저희들이 예전의 학생처럼 가르침을 순종하듯이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떠들면서 혹은 반항하면서 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일 겁니다. 그러니 힘내세요.
선생님께서 “어려움은 한때일 뿐”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 99/5/17/hani -
* 학생들에게 전통놀이 보급 이상호 교사
“문지기 문지기 문열어라.
열쇠없어 못열겠네.
어떤 대문으로 들어갈까. 동대문으로 들어가.”
강강술래 장단에 맞춰 노래를 부르던 민주가 다애의 손을 꼭 잡고 다리를 만든다. 그러자 성준이가 허리를 굽혀 지나간다. 운동장 한켠 버드나무 아래서 `문지기 놀이'를 하던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시골학교 앞마당을 가득 메운다.
충남 천안군 목천면 신계초등학교(교장 서정훈) 2학년 아이들은 요즘 `놀이'를 통해 친구를 사귀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문지기 놀이'가 재미없어지면 `꼬리잡기 놀이'가 기다리고 있다. 가위 바위 보를 통해 술래가 된 수연이는 줄 맨끝 꽁지에 선 아람이의 허리를 잡아채느라 10여분 동안 비지땀을 흘린다. 놀이는 `얼음땡'이나 `그림자 놀이' `떡장사 놀이' `땅따먹기'로 이어진다.
아이들은 이런 놀이를 통해 손을 잡고 볼을 함께 부비면서 오누이보다 더 가까운 친구가 된다. 그러나 친구가 되는 게 놀이의 전부는 아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함께 살아가려면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운다.
이상호(37) 교사는 이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사러져 가는 전통놀이를 보급한 장본인이다. 그는 원래 서울에서 교사를 일했다. 그러나 시골에서 전통놀이를 찾고 보급하기 위해 지난해 봄 이곳으로 자청해 내려왔다.
이 교사가 담임을 맡은 2학년1반 아이들은 `놀머니(놀이주머니)'라는 보물단지를 하나씩 지니고 있다. 엄마가 만들어준 희진이의 놀머니에는 은색제기와 주사위, 공기돌, 구슬, 단추팽이, 실과 가위, 색종이 따위가 들어있다. 놀머니에는 고누놀이(말을 움직여 상대 말을 포위하거나 떼어내 승부를 가리는 놀이)판도 빠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등교하자 마자 선생님과 첫눈을 맞춘 뒤 놀머니를 푼다.
“우리 전통놀이에는 손을 사용해 즐기는 놀이가 많습니다. 손을 많이 사용하면 머리도 좋아지고 감성 지수(EQ)도 높아진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입니다.”
이 교사는 지난 87년 `놀이연구회'에 참여하면서부터 `놀이학습'에 눈을 떴다. 그때부터 사라져가는 우리 놀이를 찾기위해 인천 영종도와 울릉도, 제주도 등 전국 도서벽지를 10년 넘게 찾아다녔다. 96년에는 중국 연변의 조선족 동포를 찾아 `하늘·땅 놀이'를 찾아내기도 했다.
“하늘·땅 놀이는 하늘나라와 땅나라로 나뉘어 서로 말을 하며 상대방의 별명을 알아맞추는 놀이입니다. 이런 놀이는 자연이 살아 있는 곳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더군요.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이런 놀이부터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교사는 요즘 10년 넘게 발굴해온 우리 놀이 101가지를 정리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우리놀이를 유아와 저학년 고학년에 맞게 나눠 이를 다시 사계절로
분류한 <전래놀이 101가지> 출판을 앞두고 있다.
“제가 자랄 때만 해도 놀이가 많았어요.
지역을 대표하는 놀이와 나이에 맞는 놀이를 찾아내 아이들이 즐기면서 학습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제게 주어진 사명같습니다.” -중앙/5/10/99 -
* 학교폭력
- '요즘아이들' 싸잡아 단정말고 포용력 보여야
어째서 우리 교육현장에 폭력현상이 생겨나고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아이들조차도 `폭력은 목적을 위해 얼마든지 정당화 될수 있다'라고 생각하게 된 것일까?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우리 아이들'을 개개인으로 보는 세심한 시선이 필요하다.
고교시절 학교에서 문제학생으로 찍힌 장우영(21)씨는 “나보다 약한 아이들을 괴롭혔던 까닭은 학교에서 `그렇고 그런 애'로 취급 받으며 나도 힘과 생각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도무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화를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공부 잘하는 아이가 만화를 그리면 `공부 잘 하는 아이가 다른 것도 잘 한다'고 칭찬하면서도 공부를 못하는 아이가 만화를 그리면 `공부도 못하면서 쓸데없는 낙서를 한다'고 꾸짖었다고 한다. 울분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청소년기를 지배하는 가장 큰 소망은 `사람들한테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공부도 잘하지 못하고, 가정에서는 문제덩어리로, 학교에서는 '그렇고 그런 애'로 치부당하는 청소년의 경우 우월하며 대접받을 수 있는 존재라고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은 폭력처럼 잘못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때문에 늦되는 아이들을 기다려주는 관용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아이들의 다양한 특성과 재능을 인정해주고 개개인을 그 자체로서 수용해 주는 포용력이 더더욱 필요하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왕따 현상' 등 최근 대두되고 있는 청소년 폭력문제의 원인을 흔히 폭력적 성향이 짙은 영화, 게임 등 대중문화의 악영향에서 찾는다. 물론 일부 청소년들이 이런 문화상품들을 통해 폭력행위에 대한 미화 등 잘못된 인식을 지닐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대중문화를 속죄양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게임이나 영화 등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에도 폭력은 있었다. 말하자면 상상에 불과한 영화나 게임보다 더욱 더 잔인하고 끔찍한 폭력을 접하게 되는 곳은 바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들인 것이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라는 말이 있다. 청소년들이 보고 배우는 것은 영화와 게임의 주인공들이 아니라 주위에서 듣고 보는 어른들의 말과 행동이다. 몇 분 더 빨리 가기 위해 차창을 열고 욕설을 퍼부으며 난폭운전을 하고, 작은 이익을 위해 이웃과 대거리를 하는
사소한 폭력들….
이런 곪은 모습에 지금 당신의 자녀들이 상처입고 있다.
- 김현진/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99/5/3/hani -
* 교육/ 독일/ 부끄러운 역사를 통한 '통일교육'
· 독일이 통일된 지 꼭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통일비용으로 들어간 돈만도 1000조원이나 된다.
아직도 석탄을 난방연료로 이용하는 동독인들과 늘어난 세금부담으로 불만이 가득한 서독인들을 하나로 묶기 위한 독일인들의 지혜가 가장 물씬 배어나는 분야가 `교육'이다.
`부끄러운 역사도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이런 정신으로 통일 뒤의 사회통합을 가속화 시켜온 독일의 `통일교육'을 교사탐색대가 살펴보고 왔다.
독일 통일교육의 철학은 `평화'와 `공존'이다. 우리가 베를린시 교외 오라니엔부르그에 위치한 `전쟁기념 유적지(2차대전 때 독일군 게쉬타포 사령부 주둔지)'를 방문했을 때다. 현장수업의 하나로 학생들을 인솔하고 온 단데스키 교사는 “잘못된 역사에 대한 철저한 현장보존과 반성을 통해 미래의 보다 성숙한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 우리 교사들의 몫”이라고 말해 우리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베를린 시내 곳곳에 놓여진 전시표말엔 유대인 학살장소가 일일이 나열돼 있다. 이곳을 교실삼아 수업에 임하는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곳”이라며 잘못된 과거에 대해 가르치고 있었다.
이런 성숙한 사회와 잘못된 역사를 인정하고 반성할 줄 아는 우수한 교사들이 만들어 나가는 독일의 학교교육이 부럽기만 했다.
이런 현장수업은 교실로 그대로 이어진다. 베를린시 베딩구의 레씽 김나지움은 학생수 8~23명에 불과한 작은 교실에서 시청각 자료를 활용한 토론식 수업으로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시켰다.
사회과를 담당하는 라인만 교사의 13학년 수업의 주제는 <히틀러 시대의 위임법에 대한 분석과 고찰>이었다. 교사가 미리 제시한 과제에 대해 학생들이 준비해온 탐구자료를 바탕으로 치열한 토론수업이 진행됐다. 교과서는 없다. 물론 교사는 위정자에게 국민의 기본권을 위임한 내용인 위임법고 관련된 몇가지 자료를 학생들에게 제시했다. 학생들이 찬·반으로 나뉘어 자기의견을 밝힌다.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악법이다.”
위기와 나약한 국민대중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히틀러의 요구를 기꺼이
수용했다. 무지한 대중은 위임법이 가져온 엄청난 재앙을 예견할 수 없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학생들의 90분에 걸친 토론식 수업에 교사는 히틀러라는 독재자가 독일역사와 민중들에게 끼친 분단과 죄악의 단초로서 위임법의 반민주성을 지적하면서 연속수업을 끝냈다. 학생들의 리포트와 발표태도는 당연히 평가자료가 된다.
12학년 구제 교사의 역사수업도 마찬가지다. <히틀러의 등장배경과 나치 시대의 독일사회 현상>을 주제로 시청각을 활용한 토론수업이다. 실물화상기 화면을 통해 히틀러 집권 절정기의 사진들과 함께 당시의 문학작품들이 소개되고 독일인의 보편적 사고와 문제점이 지적됐다. 그리고 학생들은 조별로 준비한 나치에 의한 참혹한 학살장면과 수용소 모습, 그리고 전쟁뒤 폐허가 된 독일의 참상 등이 담긴 자료를 함께 지켜봤다. 반전사상가들의 작품과 친 히틀러 세력들의 작품을 자유롭게 토론되며 스스로 결론이 도출됐다.
이 학교의 아니타 매힐러 교장은 “통일 교육의 목표는 평화와 공존”이라며 “다양한 교과간의 통합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탐구식 토론을 함으로써 열린 사고를 갖게 된다”고 말한다.
교장선생님의 표현대로 복도에서 만난 12학년 쿤제군은
“엄청난 통일비용과 동·서독 사람들간의 갈등이 사회문제로 남아있지만
우리는 모두를 사랑하며 살 거예요”
라며 환하게 웃었다.- 99/4/28/hani -
* 특수학교서 건강한 사회를 보았다
오스트레일리아를 처음 방문한 우리를 압도한 것은 광활한 대자연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진지한 태도였다.
방문하는 곳마다 아무리 바쁜 상황이어도 장애인을 위한 시설과 자리는 따로 있었다. 버스를 타거나 기차역에 서 있을 때도 우리는 장애인 배려 차원을 넘어 존경 수준에 도달한 사회분위기에 압도당했다.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는 전시용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현지인들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하는 여유와 친절로 늘 우리를 기분좋게 만들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특수학교는 건강한 사회를 보여주는 잣대였다. 브리즈번 시내를 빠져나와 서니백 특수학교를 찾았을 때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환경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정원이 예쁘게 꾸며진 집들이 특수학교 주변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잘 꾸며진 집 앞에 특수학교가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감히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정원을 정성스럽게 가꾸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다가갔다. 집 앞에 특수학교가 있어 불편한 점이 없느냐고 묻자 굳이 학교를 구분지어 물어보는 우리를 의아하게 쳐다본다. 정원을 다듬고 있던 아주머니는 특수학교 가까이에 있는 자신의 집에 대해 연신 좋다고만 말한다. 특수학교를 세울 때마다 요란한 시위대의 구호에 가슴 졸이는 것이 우리의 현실 아닌가?
특수교육에 종사하는 교원들의 헌신적인 자세도 배울 만한 것이었다. 그레벳 특수학교의 샤롯 교장은 정부의 학생지원금을 두고 정부와 입씨름을 계속하는 중이라고 설명한다. 학생 1명당 배치교사를 늘리고 학생을 위한 편의시설과 보호대책을 세우기 위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들이 월급의 일부를 반납할 자세가 돼있다고도 했다.
이런 교사들을 위해 교육부는 교사가 학생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1주일 중 하루를 `비접촉의 시간'으로 허용하고 있었다. 교사들은 이날 학생 개개인의 수업프로그램을 짜고 과제물을 만드는 등 연구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이것은 긴 안목으로 보아 교사와 학생 모두를 위한 큰 이득이 될 것이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너는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 열심이었다. 학생들이 당당하게 자기 몫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분명하게 완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특수학교의 학생들과 일반학교의 학생들이 수업시간이나 행사중에 틈틈이 만남을 갖는 것도 인상적이다. 어린 시절부터 교육현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자연스럽게 만나 왔기 때문에 그들이 함께 하는 교육현장은 통합 그 자체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하는데 이들은 일찍부터 어린 아이들에게 `함께 사는 법'을 자연스럽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를 제대로 알기에는 우리의 영어 실력에 한계가 있었다. 중·고교, 대학시절 우리가 배워온 영어과목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 유학생의 말처럼 내가 몸담고 있는 현장에 새로운 무엇인가를 불어넣기 위해 교사인 우리들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져리게 깨달은 것은 이번 탐방의 값진 결실 가운데 하나다.
- 99/4/28/hani -
* 학교규칙 스스로 만들고 지킨다
서울 장승중학교 학생회장 김석영(15)군은 요즘 친구들과 한 약속을 지키느라 무척 바쁘다. 지난달 학생회장 선거 때 `머리모양과 옷차림을 자유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기 때문이다.
“짧은 머리를 위해 가위질당하는 것은 학생들의 인격입니다.
혐오감을 주지 않는다면 제각각인 얼굴처럼 머리모양도 다양하게 인정돼야 합니다.”
지난 2일 학생대표들의 모임인 대의원대회에서 학생들의 의견이 다시 모아졌다. 학생들의 희망에 대해 학교(교장 소재익)쪽도 `두발 자율화 수용'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하지만 조건이 따라붙었다. 자유를얻었으니 책임지는 방법을 연구하라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제일 먼저 학생부장인 송형세 교사와 함께 설문지를 만들었다.
1.학생들의 두발규정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2.머리에 무스, 젤, 스프레이, 염색 등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3.학생들의 신발규정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4.여학생의 블라우스와 머리핀에 관한 규정은 어떤 것이 좋은가?
5.여학생들이 매니큐어를 바르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
이런 내용의 설문지를 받아든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은 77% 가량이 두발 및 복장 자율화에 찬성했다. 이런 조사결과를 토대로 새로운 학생생활 규정이 마련됐다.
윗머리 1㎝, 앞머리 3㎝ 이내로 제한됐던 남학생들의 머리형태 규정은 `자신의 얼굴과 체형에 맞는 단정한 형태'로 바뀌었다. 단발머리 또는 커트 형태이던 여학생의 머리형태 규정도 `어깨 아래로 내려오는 긴 머리는 반드시 단정하게 묶는다'로 개정됐다.
다음은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받을 차례였다. 학생회장단은 16일 열린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지나온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11명의 운영위원들은 설문조사에 근거한 개정안에 대체로 만족해하면서 학생들에게 다시 한번 3가지 과제를 내주었다.
1.개정된 용의복장 규정은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2.위반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3.남을 위하는 생활태도를 어떻게 기를 것인가?
19일 오후 학생회장 김석영군은 장승중학교 대의원회를 열어 세가지 숙제를 풀어나갔다.
“자유를 얻는 대신 책임지는 법을 찾기로 학교 어른들과 약속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요?”
봉사활동을 하거나 벌점을 주자는 의견부터 학급별로 단속반을 꾸리자는 의견까지 봇물처럼 쏟아졌다. 하지만 가장 큰 박수가 쏟아진 의견은 반별로 한달에 한번씩 가장 용의단정한 학생을 학생들이 스스로 뽑아 상을 주고 이를 본받자는 의견이었다.
대의원대회를 지켜보던 안승문 교사는
“학생들 스스로 의사봉을 두드리고 학교교칙을 만드는 것 자체가 소중한 교육”
아이들이 스스로 절차를 만들어온 지난 한달 동안 무스와 스프레이를
머리에 뿌리는 아이들이 크게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