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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남한의 리듬체조와 북한의 예술체조, 그리고 체조 지도자들
[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남한의 리듬체조와 북한의 예술체조, 그리고 체조 지도자들
리듬체조는 줄·후프·공·곤봉·리본 등과 같이 손으로 다룰 수 있는 기구를 이용하는 체계적인 신체운동으로 여자기계체조인 도마·2단평행봉·평균대·마루운동 등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며, 수중발레처럼 춤동작을 응용한다. 이 리듬체조는 18세기부터 시작되었으며 1948~56년까지 일부 체조선수들이 올림픽 대회의 개인경기와 단체경기에 참가했으며, 1984년 올림픽 대회 때 개인경기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세계선수권대회는 1963년부터 2년마다 1번씩 여러 도시에서 번갈아 열렸다. 이 리듬체조는 선진국 몇 나라에서는 인기종목 중 하나이다.
리듬체조가 대한민국에서는 아직 비인기종목이다. 그런데 지난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리듬체조대표팀의 '체조요정' 손연재 선수가 여자리듬체조 개인결승전에서 동메달을 차지한 뒤, 점점 알려지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7월 “남한 대표팀 지도하는 90년대 북한 리듬체조 여왕”라는 보도가 나가자 리듬체조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졌다.
그 기사는 “북한 고위층의 딸 이경희씨 한국 리듬체조 단체대표팀을 지도하는 북한의 리듬체조 스타 출신 이경희 코치. 국가대표 리듬체조 단체팀을 지도하는 이경희(40) 코치는 사연이 남다르다. 그는 과거 북한 최고의 리듬체조 스타였다. 그는 1991년 영국 셰필드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대회 리듬체조에서 개인종합 우승을 포함해 3관왕을 차지했다. 이 코치는 89년부터 각종 국제대회에서 입상했고, 91년 유니버시아드 3관왕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공훈체육인 호칭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어린 시절부터 외국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하면서 바깥 세계에 눈을 떴다. 북한에서 배운 것과 너무 달라 괴로웠다”고 말했다고 소개하면서, 중국에서 남편과 사별하고 2007년 6월 아들을 데리고 남한 行을 감행했고, 2007년 11월부터 체조협회 순회코치 자격으로 리듬체조 대표팀을 두루 지도하다가 2011년 1월부터 단체팀 전담 코치가 됐다고 한다. 이 코치는 “북한에서는 ‘밉게 생긴 아이가 예술체조를 하면 예뻐진다’는 말이 있다”며 리듬체조를 홍보했다. 그가 말한 예술체조가 바로 리듬체조이다. 북한에선 에술체조가 나름대로 인기종목이다. 그래선지 북한의 월간 홍보잡지 <조선>은 2011년 8월호에서 “모녀예술체조감독”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평양체육단의 예술체조책임감독 최명심과 감독 정순영은 모녀간이다. 어머니인 인민체육인 최명심의 이름은 예술체조분야에서의 전문가, 애호가들 치고 모른는 사람이 없다. 제5차 세계예술체조선수권대회(1971) 뜀줄운동에서 높은 성적을 쟁취한것을 비롯하여 선수시절부터 이름을 날리던 그이다. 감독시절에도 최명심은 집체운동팀을 조직하고 훌륭히 키워 제11차, 제12차 세계예술체조선수권대회들에서 아시아나라들 중 처음으로 순위권에 들어가는 기록을 세웠다...36년간의 감독생활과정에 수많은 예술체조선수와 전문가들을 키웠는데 딸 정순영도 그중의 한사람이다...정순영은 일곱살때부터 예술체조를 배웠다...조선체육대학에서 교육과정을 거쳐 2001년 12월부터 감독생활을 시작하였다...2007년부터 국가종합팀 예술체조감독사업을 맡아보면서 정순영...지금도 이들 모녀감독은 국제경기대회에서의 금메달 쟁취라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온 넋을 바치고있다.” 이다.
그렇다면 남한의 이경희와 북한의 정순영은 모두 최명심에게 동문수학을 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두 사람 다 2007년부터 국가대표팀과 인연을 맺었다. 앞으로 이들은 언제고 경기장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모두 정치를 떠나 한반도의 리듬체조 발전에 크게 기여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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