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아침에 책꽂이 신발장 주변에 곰팡이가 피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오래된 집이라 단열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추운 날씨가 계속되자 밖과 안의 온도 차이 때문에 결로 현상이 생기면서 벽과 책꽂이 신발장에 곰팡이가 피게 된 것이다. 전에 쓰던 책꽂이로 쓰던 것을 이사 오면서 신발장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책꽂이 신발장’이 되었다. 밖의 온도는 낮고 내부 온도는 높아서 생기는 것이‘결로 현상’이다. 벽에 물기를 닦아내고 신발장에 핀 곰팡이를 제거하면서 어제 수요 예배 때 나누었던 말씀이 생각이 났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55:8) 어떻게 하면 이 온도차이로 생기는 결로 현상을 막을 수 있을까? 방법은 벽에 단열벽지를 붙이고 창문에는 일명‘뽁뽁이’를 붙여서 냉기를 차단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온도 차이가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르고 하나님의 길과 나의 길이 달라서 결로 현상이 나고 곰팡이가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마찬가지로 외부에서 해결책을 찾으면 힘들다. 밖에서 해결하는 것은 어렵다. 내부에서 해결해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생각에 맞춰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길을 따라야 한다.‘순종’밖에는 답이 없다.
아굴은 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심히 기이히 여기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서넛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➀ 공중에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자취 ➁ 바위 위로 기어 다니는 뱀의 자취 ➂ 바다 한가운데서 길을 찾아다니는 배의 자취 ➃ 남자가 처녀와 음행한 자취 ➄ 음녀의 자취 나쁜 짓을 하고서도 시치미를 떼고“나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라고 말하면 할 말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본인이 스스로 자백하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이것 보다 더 놀라운 일이 있다는 것이다. ➀ 종이 임금된 것과 미련하고 멍청한 자가 부자가 되는 것과 ➁ 미움 받는 여자가 시집 간 것과 여종이 안주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가 있어?”“참 운이 좋이 좋은 사람이군!”하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분명 그 사람이 그런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어 보이는데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불합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뭔가 비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자신도 그 자리에 올라가고 싶어하고, 자신에게도 그런 행운이 따르길 바라면서 살짝 배 아파한다. 그런데 아굴은 이렇게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일들을 바라보면서 심히 기이히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아굴은 분명 경건하고 믿음 있는 사람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아굴은 또 하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24 땅에 작고도 가장 지혜로운 것 넷이 있나니’ ➀ 힘이 없는 종류로되 먹을 것을 여름에 준비하는 개미 ➁ 약한 종류로되 집을 바위 사이에 짓는 사반 ➂ 임금이 없으되 다 떼를 지어 나아가는 메뚜기 ➃ 손에 잡힐 만하여도 왕궁에 있는 도마뱀 이 들은 작지만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것들이다. 또한‘잘 걸으며 위풍 있게 다니는 것 서넛이 있다’ ➀ 짐승 중에 가장 강하여 아무 짐승 앞에서도 물러가지 아니하는 사자 ➁ 사냥개, 숫염소, 당할 수 없는 왕 그런데 다른 번역본에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31 으스대며 걷는 수탉과 수염소와 군대를 거느린 왕이다. (현)> <31 또 어깨를 으쓱거리며 걸어가는 수탉과, 가축 떼를 거느리고 돌아다니는 숫염소와, 누구도 감히 맞설 수 없는 왕이다.(현대어)> <31 꼬리를 세우고 걷는 수탉, 양떼를 거느리고 가는 수염소, 군대를 지휘하는 임금이다. (공동)> '사냥개'로 번역한 이 단어는 (모텐): 허리, 엉덩이 loins, hips> 란 뜻인데 다른 번역본에는‘수탉’으로 번역하고 있다. 사자야 그렇다 쳐도 ‘으스대며 머리를 세우고 걸어 다니는 수탉’과‘황소 앞에서 조차 물러서지 않는 수염소’의 무모할 만큼 위풍당당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세상은 나쁜 짓을 하고서도 시치미를 떼고“나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라고 말하는 뻔뻔한 사람들이 많고, 자격 없는 자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 속에서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고 위풍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하나님의 공의로 다스리고 계심을 믿기 때문이다. 모든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붙잡히셨을 때가 생각이 난다. 가진 모함과 거짓 증거로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아가고 죽이려고 할 때 다른 말에는 침묵하시면서“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라는 대제사장의 질문에 “내가 그니라”라고 말씀하시는 그 당당한 모습이 생각이 난다.
주님은 오늘 이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갈 힘이 어디서 오는지를 기억하게 하신다. 그 당당함 앞에 사람들이 오히려 기이하게 생각할 것이다.‘도대체 뭐가 있길래?...’‘도대체 저 목사는 뭐가 있길래?...’‘도대체 저 교회는 뭐가 있길래?..’알고 보면 아무것도 없지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 곳에 주님이 펼쳐 놓으신 하나님의 나라가 있기에 당당해 질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의 주님! 연말연시 작은 것 때문에 없는 것 때문에 위축 될 수 있는 저에게 진짜 기이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신하가 임금이 되고, 멍청한 바보가 부자가 되고,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는 막 돼먹은 여자가 멋있고 좋은 신랑과 결혼하고 계집종이 안주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기이한 것이 아니라 작지만 주님이 주시는 지혜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없지만 주님이 약속한 하나님 나라가 있기에 어깨를 으쓱거리며 걸어다니는 수탉처럼 가축 떼를 거느리고 돌아다니는 숫염소처럼 위풍당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세워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당당함이 사소한 것 때문에 무너지지 않도록 성령께서 붙잡아 주시고 새 해를 새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