迎新堂主 강대성(姜大成:1890~1954)의 생애
전북 남원시 도통동에 본부를 둔 갱정유도(更定儒道)는,
1929년 영신당(迎新堂) 강대성(姜大成)이 도(道)를 이루면서 시작된 종교이다.
부친 강덕진이 세상을 구원할 자식을 소원하더니
꿈에 한노인의 인도로 해와달의 정신으로 서방에서 동방으로오는
동자를 만나는 태몽을꾸고
영신당은 1889년 9월 17일 전북 순창군 구암면 봉곡리에서
부친 강덕진(姜德津)과 모친 정(丁)씨의 3남매 가운데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5세부터 부친에게 글을 배우고 익혔지만,
9세에 부친이 사망하자 글 배우기를 싫어하게 되었다.
20여세가 지나면서부터 그는 천리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29세에 문씨와 결혼해서 이듬해 아들을 낳으니, 바로 용학(龍鶴)이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영신당은 항일투쟁에 참가했다가 검거되어 옥살이를 하기도 하였다.
그해에 모친마저 세상을 떠나자,
영신당은 모친의 3년상을 마치고 봉곡리를 떠나,
정읍군 산내면 진삼동으로 이주하였다.
진정으로 국가와 민족을 구하고
세상에 큰일을 하려면 도를 이루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함
이곳에서 그는 이름을 기동(基東)으로 바꾸어 부르고,
부인, 아들과 함께 도를 이루기 위한 수련을 시작하였다.
어느 날 영신당은 “때가 바쁘니
어서 화개산(花開山)에 가서 수도하라”는 천신의 외침을 듣지만,
화개산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어서
순창군 쌍치면 묵산리 산정안(山亭安)의 처가 동네로 가서
셋방을 얻어 살면서 천신(天神)에게 기도와 수련을 계속했다.
이러한 생활을 하던 중 1924년이 지나면서부터는 심신이 맑아지고
심령이 생겨 인간의 길흉과 산리(山理)까지 걸림없이 아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39세 되던 1928년, “금강산 금강암에 가서 수도하라”는 천신의 명령을 듣고
순창의 회문산 가운데 승강산이라는 골짜기에 있는
‘금강암’에 초가 3간을 짓고
부부자(夫婦子) 삼인이 본격적으로 정진수련(精進修鍊)을 시작하였다.
영신당주는 선법으로 수도하고
부인문씨는 불법으로수도하고 아들용학은 유법으로수도함
이렇게 수련을 하던 중인 1929년(39세) 7월의 어느 날,
영신당은 천지가 진동하는 벽력같은 고함을 지르고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도통(道通)을 이룬 것이다.
도통을 한 영신당은,
그 후 7일 간을 하늘에 올라가 천하무형세계(天下無形世界)의 도수(度數)를 다 보고,
상제(上帝)로부터 천지(天地)가 지천(地天)되었다가
다시 천지가 되는 대법정도(大法正道)와
노천노지(老天老地)를 신천신지(新天新地)로 변역시켜
부부자 3인이 광제창생(廣濟蒼生)하라는 대임을 받고 내려왔다고 한다.
이 일이 있고 난 다음해인 1930년 5월 4일
영신당의 부인 문씨가 송백목(松栢木)에 목을 매고 사망하였다.
이같은 부인의 죽음을 갱정유도에서는 생사교역으로 본다.
즉, 영신당의 육체는 살아있지만,
영혼은 천상일기를 통솔해서 부인의 배속으로 들어와 죽고,
부인의 육체는 죽었지만, 영혼은 살아서 영신당의 몸에 들어오게 된,
즉 생체(生體)가 사체(死體)되고, 사체가 생체가 된 것이다.
또한 그 아들이 생사교역의 내막을 알지 못하고 모친의 죽음을 슬퍼해서 크게 통곡하니,
천상의 황제가 아들을 불러
서로 영혼을 바꾸자고 하여, 부부자 3인이 모두 생사교역이 이루어졌다.
영신당주는천황씨로서 천상의 일기(성인들말씀 충효열 도덕등)를
고통받고있는 인간세상에 인도(해원)하는것이고
부인 문씨는 지황씨로서 인간세상의 죄악과 병독을 없애는것이고
아들용학은 인황씨로서 성인(儒佛仙합일)들 소식을 만민에게 전하여
새로운 사람(新人)으로 만들어 천상의 일기를 해원하는것
그러나 영신당은 천심(天心)으로 생각하면 기쁘지만,
인심(人心)으로 생각하니 매우 슬프기에 통곡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부인과 아들이 같이 따라서 정읍 수통골에서 3일 간을 울었다.
그들이 흘린 눈물을 수건으로 닦아서 짜 모으니 각각 한 그릇씩이 되어,
그 눈물을 서로 나누어 마시니 이것이 누건수도리(淚巾水道理)이다.
1930년에는 40세 때에는 부부가 서로 영혼을 바꾸고,
그 아들은 황천상제(皇天上帝)와 영혼을 맞바꾸는 생사교역(누건수도리)을 하게 되었다.
생사교역은 삼변성도로 이루어진다
제1변
천상의 일기가 迎新堂主에게 귀의하여 부부자 3인이 천상일기의 해원을 준비하게된다
제2변
부인문씨가 소나무에 목을매어 죽게되고 부인문씨의 영혼은 영신당주의 몸으로 와서
세상의 죄악과 병독을 씻기위해
아들과 함께(1940년 사망)몇개월간 전국을 순회한후
제자들과 1954년(24년간) 8월16일 까지 이루어진다
영신당주의 영혼은
(죽은부인 문씨의 몸을 영신당주의 몸이 6개월간 방에 불을때고 몸을 씻어줌)
천상일기를 준비하기위해 공난간에 머문다
제3변
신천지(儒佛仙합일)소식을 세상에 전해 만민해원을시키기위해
공난간에있던 영신당주영혼(上帝)과 아들용학의 영혼이 바뀌게된다
이 후 영신당은 4-5년간 여광여취(如狂如醉)의 생활을 한다.
그는 순창과 남원 사이의 여러 곳을 떠돌며,
병을 치료해주거나 동서양간의 전쟁, 청일전쟁 등을 예언하기도 하였다.
또한 길을 가다가 소리를 지른다거나
한겨울에도 여름에 입었던 옷을 입고 다니는 등, 기이한 행적을 계속하였다.
1934년(44세), 영신당은 진안군 운장산으로 들어가 그 곳에 머물면서
박경준을 비롯한 7인 제자를 얻고 여러 가지 공사를 벌이는 한편
갱정유도의 기본경전인 「해인경(海印經)」을 내놓게 된다.
1941년(51세) 7인의 제자들과 부응경 365권 완성
1942년(52세)에는 순창 회문산 도령동으로 가서
그 곳에 최초의 성당(聖堂)을 짓고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1944년 가을에 영신당은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예언하였는데,
그 날짜를 정확히 맞추었다고 한다.
해방이 된 후인 1946년부터 영신당은 그간 필사로 기록해 놓았던
책의 일부를 석판으로 발행하여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1950년 영신당은 본부를 남원읍 천거리로 옮겼다가,
다시 1951년 2월 김제군 광활면 학당리로 옮겨갔다.
이곳에서 영신당은 비로소
「시운기화유불선동서학합일대도대명다경대길유도갱정교화일심
(時運氣和儒佛仙東西學合一大道大明多慶大吉儒道更定敎化一心)」이라는
28자로 된 교단의 명칭을 만들고
조직과 기구를 편성해서 본격적인 종교단체로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1953년에는 수화기제(水火旣濟)
태극기라는 독자적인 교단의 기를 제작해서 본부에 게양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영신당은 제자들을 시켜서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대통령과 대사,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하도록 하였다.
그 이유는 이들에게 통일독립과 세계평화의 방법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제자들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였지만, 모두 무위로 끝났다.
또한 1954년 3월에는 영신당의 제자 4인이 서울에 와서
「세계평화하실 만고무비지대성인(萬古無比之大聖人)」이 한국에 출세하였다」는
소식을 정부에 전하려다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동년 5월 16일에는 15인의 갱정유도인들이
아시아 반공대회장에 깃발을 들고 참석해서 같은 소식을 알리다가 체포되기도 하였다.
1954년 6월 1일 전북 경찰국으로부터 50여명의 무장경찰들이
갱정유도 본부에 와서 도조(道祖) 영신당을 비롯한 갱정유도 신도들을 집단으로 구타하고
그 가운데 57명을 경찰국으로 연행해 갔다.
이 가운데 도조 영신당을 비롯한 5인이 구속되었고,
영신당은 경찰로부터 체포될 때
심한 구타를 당한 후유증으로 인해 병보석으로 풀려나 병원에 입원하였다.
그러나 입원한지 3주 만인 1954년 8월 16일 영신당은 선화(仙化)하였다.
강대성이 순도한 이후 갱정유도는
1958년 2월 계도선사 김갑조(繼道先師 金甲祚)가 맥을 이었다.
그는 17살에 갱정유도에 입도한 이래
열심히 수련하다가 1958년에 도통하고 1962년에는 강대성의 딸과 결혼했다.
김갑조는 교조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여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서울에서 대대적인 포덕을 계획했다.
1965년에는 2대 도정 계도성사(繼道聖師) 김갑조(金甲祚)의 지도하에
신도 5백여 명이 서울에 상경해 남북통일을 주장하는
유인물을 배포하며 시위한 서울시위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영신당주의 뒤를 이어 갱정유도의 도통(道統)을 계승한
계도선사(繼道先師 영신황제) 김갑조(金甲祚,1933~1979)는
이러한 유도의 세상을 도덕문명(道德文明)의 시대로 재정의하였다.
갱정유도의 5대 도정(대표)이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이었던 한양원(한중환, 1923-2016)이 2016년 11월 11일 작고하였다
1996년 현재 전북 남원시 도통동 300번지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교세로는 교당 36개 소가 있고, 178명의 교역자와 4만 9,450여 명의 신도가 있다.
갱정유도 남원 본부 한재오 훈장
첫댓글 저는 수원에 사는
김범상이라고 합니다~^^*
방가워요
저도 수원사는 신기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