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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전송년칼럼
위기의 대한민국, 매천에게 길을 묻다.
- 지식인은 난세(亂世)를 이렇게 살았다. -
난리 속에 살다보니 백발이 성성하구나
그동안 몇 번이나 목숨을 끊으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제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게 되었구나
가물거리는 촛불이 푸른 하늘에 비치는도다.
요망한 기운에 가려 임금 자리 옮겨지더니
구중궁궐 침침하여 해만 길구나
이제부터 조칙(詔勅)이 다시없을 것이니
옥같이 아름다웠던 조서(詔書)에 천 가닥 눈물이 흐르는구나
새와 짐승이 슬피 울고 바다와 산도 낯을 찡그린다.
무궁화 이 강산이 속절없이 망하였구나
겨울 등잔불 밑에 책을 덮고 수천 년 역사를 회고하니
참으로 지식인이 되어 한평생 굳게 살기 어렵구나
일찍이 나라 위해 한 일 조금도 없는 내가
다만 살신성인(殺身成仁)할 뿐이니 이것을 충(忠)이라 할 수 있는가
겨우 송나라의 윤곡(尹穀)처럼 자결할 뿐이다.
송나라 진동(陳東)처럼 의병을 일으키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
경술년에 이르러 나라가 망했다. 전라도 장수(長水)사람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 마침내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융희 4년(1910년) 8월 4일 합방령이 군청을 거쳐 마을로 반포되어 내려오자 그날 밤 다량의 아편을 먹고 자결한 것이다. 붓을 놓고 창을 들지 못한 매천의 회한(悔恨)이 결국 글 아는 사람 노릇을 죽음으로 대신한 것이다. 매천은 조선의 청백리인 황희의 후손이고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무민공 황진의 10대손이요 병자호란 당시 남원 의병장 황위의 8대손이다. 매천의 가문은 대대로 가난했으나 조부 대에 이르러 7백 석의 큰 재산을 모았다. 그 유산으로 인해 매천은 3천여 권의 장서에 묻혀 학문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가 오늘 우리에게 남긴 불후의 명저 『매천야록』은 고종 원년 1864년부터 경술국치 1910년까지 47년간 그가 살았던 격동의 조선시대를 기록한 매우 귀중한 역사서다. 하지만 이 책은 그의 죽음으로 절필(絶筆)된 이후 미완(未完)의 유고(遺稿)가 되어 오랜 세월 묻혀 있었다.
매천 황현이 이 땅을 떠난 지도 어언 한 세기를 훌쩍 넘어섰다. 그럼 바야흐로 오늘의 우리가 매천을 다시 불러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의 『매천야록』을 다시 열어보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그곳에 바로 매천의 시대정신과 기록정신이 주는 역사의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의 손에 지금 우리 앞에 닫힌 나라의 문을 열어주는 지혜의 열쇠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역사가로서의 매천에게는 절대로 숨김이 없었다. 그에게 숨기거나 왜곡하는 역사는 이미 역사가 아니었다. 비록 숨기지 않았더라도 비판하거나 고발하지 않는 역사라면 그에게 그런 역사는 한낱 요설(妖說)이나 궤변이나 잡문(雜文)에 불과했다. 이렇듯 매천의 역사정신은 늘 정의로움으로 충만해 있었다. 요컨대 『매천야록』은 1894년부터 1910년까지의 기록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있고 양적으로도 방대하다. 특히 매천의 시대인식에서 부패한 봉건통치배들에게 저항한 1894년 동학농민의 봉기는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가르는 충격적인 분기점이었다. 그것은 국가존망의 갈림길로 이 나라를 몰고 가는 오늘 이재명 의회권력의 폭거와 그들의 선전선동에 대한 대한민국체제 수호세력들의 저항과 다름없었다. 결국 매천의 역사정신은 동학을 통해 불타올랐다.
이런 이유 때문인가. 갑오년 동학변란이 일어나자 매천은 절규했다. ‘아아! 역사의 변란이 일어났다. 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는가. 그것은 오직 사람의 잘못에 기인하는 것, 그 잘못 또한 오랫동안 쌓이고 쌓여져 이루어지는 것, 결단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 조선은 200년 노론의 일당독재와 그 뒤를 이은 60년 장김(장동김씨)의 독재로 나라는 이미 거덜 난 후였다. 그의 눈에 비친 조선은 붕당과 사학(邪學)으로 망가진 나라,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골병든 나라였다. 백성들은 지역과 계층으로 철저하게 갈라졌고 자유의 기운과 나라가 다시 살아날 기력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가 공직자의 무능과 부정부패, 군주의 무능까지 더해진 세상은 암담한 절망의 공간 그 자체였을 것이다.
오늘의 우리 시대가 바로 그날 그 시대를 그대로 빼닮았다. 기울어진 운동이 된 언론들이 부추기는 온갖 음모론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라, 지역과 세대, 우파와 좌파로 철저하게 분열되어 이미 심리적 내전 상태로 들어가 버린 오늘의 대한민국, 극단적 증오와 불의와 거짓이 넘실대는 이 나라의 오늘은 어떤가? 희대의 범죄자가 192명 국회의원을 한 손에 거머쥐고 선출된 정부권력을 하나하나 무너뜨리며 노골적인 국가 반역을 저지른다. 오직 자신의 산적한 범죄를 집권욕으로 불태워 날리기 위해 국민을 끝없이 편 가르고 속이면서 이 땅의 공의를 깔아뭉갠다. 망국의 그 날을 초래한 노론(老論)과 장김(壯金)보다 더 지독한 친북좌파 운동권 패역의 무리들이 줄 탄핵, 줄 특검으로만 날밤을 지새우며 자유민주주의와 민생과 안보의 밑바닥을 파헤친다. 지금 당장 나라가 무너져 내려도 하나 이상할 것 없는 폭풍전야 같은 오늘의 이 시대가 매천이 살았던 망국의 시대와 도대체 무엇이 다르다 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은 모른다. 천길 벼랑 끝에 내몰린 절박한 이 나라의 현실을 모른다. 지금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그들은 모른다. 그냥 오늘도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거라고 믿으며 편하게 산다. 이 같은 자신들의 생각에 뭔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의문 따위를 아예 우습게 여긴다. 매월 정해진 날 어김없이 내 통장에 꼬박꼬박 봉급이나 연금이나 또 다른 고정 수입이 들어오는 사람들은 더더욱 그렇다. 타고난 천성이 낙천적이거나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들도 그렇다. 나와 가족을 포함해 내 주변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든 큰 어려움 없이 그만그만하게 살고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들에게 국가적 혹은 사회적 차원의 절박한 이슈는 다 먼 나라 얘기다. 조금만 정신 차리고 한 번만 제대로 살펴봐도 왜 그런지 알 수 있는 이토록 심각한 망국적 병리 현상들이 다 저들에겐 한낱 구경거리다.
이제 간절한 마음으로 붓을 들어 이 땅의 잠자는 영혼들을 깨우는 새벽종을 치고자 한다. 그러므로 이 글은 시대의 아픔 앞에서 비겁하게 침묵하지 않기 위한 나의 몸부림이다. 이 나라를 살리는 일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다만 이뿐임이 안타깝고 안타까울 뿐이다. 글을 써 세상에 알리고 이 같은 진실을 후세에 남기는 것은 자유의 공기를 마시며 숨 쉬는 지식인에게 부여된 엄숙한 소명이다. 살아보니 무릇 글이란 소리 없는 함성이고 문자로 된 깃발이었다. 세상을 구하려는 함성이고 깃발일 수 있을 때 역사가의 글은 살아있는 글이 된다. 나는 이런 진리를 이미 오래 전 매천의 역사 정신에서 배웠다. 비록 오늘을 깨우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내일을 위한 기록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글의 독자들은 자신의 주변을 한번 살펴보기 바란다. 지금 자신이 거센 파도로 요동치는 어둠의 바다 위 구멍 뚫린 쪽배에 실려 있음을 아는가? 여전히 그 난파선 위에서 정신 나간 좌파 폭력집단이 풀무질하는 내란죄 광풍 앞에 무릎 꿇고 고개 처박은 장관과 여당의원, 비겁하게 울먹이며 겁에 질려 대통령을 배신하는 똥별들,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사정없이 대통령을 물어뜯는 검찰, 경찰, 공수처 사냥개들을 당신은 보고 있는가? 그 망국의 길바닥에 쏟아져 내린 죽음의 마약에 마취당한 채 밤마다 촛불을 들고 몰려드는 인생들을 보고 있는가? 이 글은 바로 그들을 위한 간절한 글이다. 이 글은 바로 그들에게 전할 글이다.
그렇다. 결국 나 자신과 우리는 나 자신과 우리만이 살릴 수 있다. 구명정이 다가와 던진 밧줄은 그것을 잡는 사람만 살아난다. 아무리 구명정이 다가올지라도 또 생명의 밧줄이 나를 향해 던져질지라도 누구나 죽음의 바다에서 살아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내가 탄 배가 구멍 난 난파선 쪽배임을 모르고 잠들어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살아날 수 없다. 또 자신이 탄 배가 결코 난파선이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들, 그게 아닐 거라고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무지를 깨뜨려야만 살아날 수 있다.
생각할수록 한국인들은 지지리도 지도자의 복이 없다. 널린 게 인재들인데 왜 하필 어쩌다가 윤석열과 이재명을 앞에 세워놓고 이 고생인가? 두 차례의 망국을 체험하고 훗날 미국의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폴란드 출신 정치학자였다. 그는 ‘국가는 왜 몰락하는가?’라는 물음에 나라를 자살로 몰고 가는 어리석은 지도자의 국가경영이라고 대답했다. 그가 경고한 것은 미국의 쇠락이지만 여론 조사상 국민의 절반이 정치에 무관심한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국가지도자가 헛것을 보는 순간 나라는 지도에서 사라진다. 대통령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처럼 여의도 발 국가자살행위가 계속된다면 저들의 남은 임기만으로도 대한민국을 구제불능 국가로 만들기에는 넉넉한 시간이다. 『매천야록』 4권에 이런 구절이 있다.
‘美國公使安連遞歸 新任摸杆代之 連留我國者十數年 臨歸對人歎曰 韓民可憐 吾嘗周流九萬里 上下四千年 如韓國皇帝者 其亦初出之人種乎.’
(주한 미국 공사 알렌이 신임 모건공사로 교체되어 귀임했다. 알렌은 우리나라에 머문 지 수십 년 되었는데 돌아갈 때 사람들에게 탄식하며 이르기를 ‘한국 백성이 불쌍하다. 내가 일찍이 구만리를 다녔는데 상하 4천 년에 한국 황제(고종) 같은 임금은 처음 나온 인종이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1894년 동학혁명부터 1905년 을사늑약까지 나라가 만신창이가 되어 신음할 때 오직 일신의 안위만을 생각한 희대의 암주(暗主) 고종은 차라리 국가의 재앙이었다. 그 11년 동안 미국, 영국, 아라사, 프랑스 공사관에 7차례나 들락거리며 나라와 백성을 버리고 도망치려 했던 고종이었다. 왕이 내보인 추태의 극치는 열강의 조롱거리가 되어 기록으로 남았다. 1905년 1월 19일 주한미국공사 알렌은 미국무부에 이런 전문을 보냈다. ‘황제가 파천을 간청한다는 요청을 조선 관료로부터 접수했다.....황제가 공사관의 담을 넘더라도 내쫓겠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망해가는 한 나라를 씁쓸하게 지켜보았던 그 날의 이방인, 알렌의 심정과 똑같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불쌍하다. 80년 대한민국 역사에서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문재인과 대통령 윤석열, 의회권력을 거머쥐고 나라를 자살로 몰고 가는 이재명 같은 인간은 처음 나온 인종이다.’ 분노가 하늘에 닿는다. 왜 우리가 이런 살얼음판을 날마다 걸어야 하나?
또 『매천야록』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自元子誕生 宮中祈醮無節 遍及八道名山 賞亦恣意遊宴 賞賚不貲 兩殿日費千金 內需司所藏 不能支敷 遂公取戶惠廳而用之 掌財之臣 無一人違忤者 不朞年 雲峴十年之積 蕩然矣 賣官賣科諸弊政 繼是而作’ (원자가 탄생하면서부터 궁중에서 잘되기를 비는 제사에 절제가 없었으니 팔도강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지냈고 고종 또한 마음대로 연회를 베풀어서 상으로 주는 것이 헤아릴 수 없었다. 왕과 왕비가 하루 허비하는 비용이 천금에 이르러 내수사의 소장으로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끝내 호조와 선혜청에서 공금을 취해다 썼는데 관리 책임자는 그것이 위반이라는 것을 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1년이 채 못되어 대원군이 비축해 놓은 것을 모두 탕진하였다. 그래서 매관매과(돈 받고 과거에 합격시킴) 등 온갖 폐정이 계속하여 행해졌다.)
망국의 징후는 예나 지금이나 한 치의 오차가 없는 법이다. 왕자의 무병장수와 왕실의 호화사치를 위해 국고를 거덜 낸 그날의 조선과 천년만년 권력을 잡고 패거리들만의 부귀영광을 꿈꾸고 누리기 위해 국가예산을 난도질하는 이재명 민주당은 무엇이 다른가? 국민의 피땀인 혈세로 우매한 국민들의 주권을 마구잡이로 사들이는 이재명 여의도 권력의 포퓰리즘 입법폭거와는 또 무엇이 다른가? 그날 그 망국의 전야에 왕실이 호조와 선혜청의 공금을 마구 끌어 쓰는데도 비겁한 침묵밖에 없었다고 매천은 개탄했다. 흥청망청 퍼내 쓰고 나눠먹고 털어먹고 고스란히 빚더미를 후손에게 떠넘기는 이토록 참담한 오늘 이나라의 풍경 앞에서 여전히 침묵하는 우리 시대의 언론과 집단지성에게 묻는다. 당신들의 비겁한 부역(附逆)이 정녕 부끄럽지 아니한가?
무안공항에서 179명의 생목숨들이 사라졌다. 고인과 유가족들에게는 한없이 송구하지만 하늘의 경고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다. 그래서 억울한 죽음이다. 국가적 재앙이란 결코 우연일 수 없음은 이미 오래된 역사의 교훈이다. 이제 2024년, 잿빛 가득 음울한 나라의 하늘이 저물어간다. 금년 한해는 한마디로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 더럽고 무서운 존재인가를 실감하며 보낸 한해였다. 계엄과 탄핵으로 얼룩진 여의도 돌집에서 누구든 눈이 시리도록 목격할 수 있었던 풍경이었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왔는가 보다. ‘밤중에 산길을 가다가 앞이 따뜻하게 느껴지면 귀신이고 섬뜩하게 느껴지면 사람이다.’ 어떤 이는 자녀들에게 절대로 개를 키우지 못하게 한다고 들었다. 왜일까. 개를 키우다 정이 들면 사람도 개 같은 줄 알고 지내다가 언젠가는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걸 보고 있노라면 이 말이 내게는 딱히 우스개로 들리지 않는다.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에게서 개보다 나은 게 별로 없어 보인다.
엄동의 하늘 아래 상식과 합리와 진리가 병들어 신음하는 소리가 가득하다. 가슴에 한가득 화를 품은 사람들이 세상에 넘친다. 광화문의 태극기 함성이 여의도의 촛불이 강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모여드는 이유다. 물론 풀잎처럼 바람 부는 대로 넘어지는 게 인간의 본성이긴 하다. 하지만 지성인, 종교인, 언론인의 처신은 절망적이다. 내 둔한 머리로는 이해 불가다. 그래서 나는 날마다 글을 쓰며 머리와 가슴의 울분을 비운다. 때로는 애국가에서도 위로를 받는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동해물과 백두산이 그대로인데 하나님이 설마 이 나라를 버리시겠나.
그래서 나는 믿는다. 우리가 비록 범죄하고 타락하여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연고로 이런 시련을 겪을지라도 이제 다시 깨어나 간절하게 회개하고 바로 선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보우하신다는 믿음이다. 선이 악을 이기며 정의가 불의를 이기며 참이 거짓을 이기며 진리가 허구를 이기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다. 동시에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고 망국의 그날 매천이 절규했던 구국의 혈로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다.
사실 매천에게 나라를 살리는 길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개인의 의견이 아니요 세상의 여론이었고 신묘한 비법이 아니라 평범한 상식이었다. 마치 열병에는 망초(芒硝)와 대황(大黃)을 쓰고 냉병에는 육계(肉桂)와 부자(附子)를 쓰는 것과 같았다. 요컨대 ‘정치는 바로 상식이다. 하지만 이 상식을 벗어나면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 이게 바로 매천의 생각이었다. 매천의 생각은 오늘 우리의 생각이다.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너와 나, 우리의 생각이다. 오늘 대한민국의 깨어있는 국민들이 115년 전 망국의 그날, 매천이 제시한 구국의 길을 다 함께 주목해야 하는 절박한 이유다.
돌이켜보면 1636년 병자년의 겨울은 뼈를 파고드는 혹독한 추위와 망국의 공포로 절망했던 비극의 역사였다. 호란(胡亂)이 덮친 그 날 남한산성 행궁의 마룻바닥은 얼음장이었다. 마침내 글을 공부한 죄 값으로 지천(遲川) 최명길(崔鳴吉)이 그곳에서 항서(降書)를 쓰는 십자가를 졌다. 청태종 홍타이지가 거느린 십만 청병의 창칼과 총포가 틀어막은 절망의 공간에서 조선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천은 붓으로 그 길을 열었다. ‘전하! 글로써 길을 연다면 글이 곧 길이 아니겠나이까.’ 지천은 그날 가슴으로 통곡했다. 그렇다. 글이 곧 길이었다. 하지만 115년 전 망국의 한가운데에서 매천의 붓은 안타깝게도 길을 열지 못했다. 목숨을 다 바쳐 글을 썼지만 매천의 글은 길을 열지 못했다. 왜일까. 희대의 혼군(昏君) 고종에게 또 무능 부패로 집권욕으로 찌들은 노론, 장김의 집권세력들에게 매천의 글은 다만 종이 위의 먹물이었다. 그래서 강토의 백성들은 왜적의 노예가 되었고 나라는 망했다.
그럼 2024년 위기의 대한민국이 살아날 길은 어디에 있나? 그것은 바로 매천이 남긴 길이다. 그의 길이 바로 망망대해를 헤매는 난파선 같은 오늘의 대한민국이 살아날 길이다. 그리고 우리는 간절하게 매천에게 길을 묻는다. 하지만 언제나 그의 길이 우리의 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나라의 국민들이 스스로 깨어 일어나 매천에게서 길을 찾을 때, 비로소 매천의 길은 오늘 우리의 길로 살아날 것이다. 2024년 세모의 오늘, 망국의 절벽 앞에 선 이 나라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다. 이 나라가 살아날 길 역시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열어야 한다. * 20241230/ 글/최익제(칼럼니스트/敎博)
첫댓글 감동으로 글을 읽었네
내년에도 졸고있는 우리를 깨워주시게
항상 건강하시길~~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온가족 건안 하시길 기원 합니다.
어느덧 이해도 3시간 여 남았습니다. 지난 한해 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고마운 댓글로 응원해 주신 동기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국적은 바꾸어도 모교는 바꿀 수 없다고 했습니다. 졸업 앨범을 들춰보지 않아도 이름만 불러도 그 즉시 얼굴이 떠오릅니다. 비록 당시는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되돌아보니 다 아름다운 추억일 뿐입니다. 동기 여러분들과의 소중한 인연을 영원히 간직하며 살겠습니다. 새해에도 늘 건강하시고 이 카페를 통해 안부 나누기를 원합니다. 늘 건승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갑진년 제야에 최익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