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현동에 위치한 일본 사신이 머물던 동평관(東平館)
인현동 2가 192번지에 있었던 동평관(東平館)은 일본 사신이 들어와 머물던 곳이어서 이 일대를 왜관동(倭館洞)이라고 하였다.
조선 초부터 일본과 왕래가 있어서 그들이 머물 곳을 마련해 주었다. 세종 2년(1420)에는 이곳의 일본인들이 법을 어기므로 이곳에 감호관(監護官)을 두고 감시케 하는 한편 동평관 주위에 울타리를 둘러 해가 뜨면 문을 열어주고 해가 지면 문을 닫게 하는 등 출입을 엄중하게 단속하여 공청무역(分廳貿易)을 제외하고 사적(私的)인 거래를 막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 27년(1445) 왜인들이 담을 뛰어넘고 민가에 출입하면서 잠무역(潛貿易: 밀무역)을 행함으로 의금부에서 이들을 체포하여 구금한 일도 있었다. 그 뒤 삼포왜란(三浦倭亂) 때에도 의금부에서 10여 명을 감금하는 등 조처를 취했으나 동평관에 머물던 일본인들이 일으킨 폐단이 많았다.
임진왜란 때는 동평관이 소실되었는데, 그 이후 일본 사신의 상경을 불허하면서 폐쇄되었다.(*)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