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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창세기-008 하나님의 창조(창세기 1장 1-5절)
성경말씀은 창세기 1장 1절에서 5절까지 봉독합니다.
[창세기 1장]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오늘부터는 창세기 말씀을 살펴 가면서 이 책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뜻을 헤아려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가 되고 진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66권 성경이 다 소중하고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습니다만 아마도 저에게 66권 중에 딱 한권만 선택할 수 있다하면 틀림없이 저는 창세기를 선택할 것 같아요.
그만큼 저에게 있어서 창세기는 매우 중요한 책이었고 또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겁니다.
혹시 우리가 복음주의 노선에 서 있는 목사님들의 설교나 강의를 들어보면 신구약 중에서 로마서가 제일 소중하다. 이렇게 강조하는 분들이 가끔 있어요.
저도 그런 얘기를 몇 번 들었는데 로마서 안에는 믿음으로서 의롭다함을 받는 기독교의 기본 진리가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죠.
그 로마서가 지향하는 바 믿음으로서 의롭다함을 받는 모델이 표상이 창세기에 나와요.
바로 아브라함이예요.
로마서가 지향하는 최고의 믿음이 바로 아브라함을 모델로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로마서도 중요하지만 항상 창세기가 더 중요하다. 하는 것이고..
또 이 창세기의 중요성은 모든 우주와 만물의 기원이 거기 나온다는 거죠.
우주의 기원이 나오고 만물의 기원, 인간의 기원, 죄의 기원, 문화의 기원. 여러 기원들이 여기에 나와요.
그래서 어떤 학자가 말하기를 창세기는 하나님의 기원 말고는 다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존재하시게 되었는지 그 하나님의 기원만 빼고 모든 것의 기원이 있는 책이다.
그래서 언제든지 가치있고 깊이가 있는 어떤 이야기는 시작할려고 하면 창세기에서부터 시작해야 돼요.
우리가 보통 이제 교회에서 우리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우리 기독교가 출발한 것처럼 얘기를 하는데 이것도 역시 잘못된 겁니다.
여러분 우리 믿음은 기초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믿는 데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거기에서 출발해요.
그래서 창세기는 모든 책 앞에 모든 다른 책보다 먼저 자리를 차지하는 게 당연하고 여기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돼야 제대로 된 역사가 나옵니다.
또 여기에서부터 믿음을 출발해야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뭐 어느 곳에 가서 강의를 하거나 설교를 하거나 집회를 하거나 무슨 세미나를 하든지 부흥회 사경회를 하든지 간에 반드시 창세기부터 시작해요. 이야기를..
그리고 끝날때는 반드시 요한계시록으로 끝이 나요.
이야기를 그렇게 해야 이야기가 처음이 있고 과정이 있고 결론으로 끝나는 거니까요..
우리 기독교라는 종교가 기독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서 아주 우월하고 특징이 있다고 할 때 그것은 바로 창세기를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불교라는 종교를 보면 굉장한 철학을 가지고 있지만 창세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물으면 대답을 잘 못해요.
이 우주만물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 대답을 못하는 거예요.
그냥 우연히 저절로 있었다. 우연속에 어떤 인연이 닿아서 이래저래 헝클어져서 사람이 되고 소가 되고 이런 식으로 되었다고 말하는데..
옛날에 우리가 무식할 때는 그것이 진리인지 믿을는지 몰라도, 생각을 조금 해보면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어요.
4월 초파일 되면 시간 내 가지고 불교의 뿌리가 뭔지 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잘 모르니까 사람들이 거기 빠지고 하는 건데.. 알면 참 어이없는 것이거든요.
기독교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하면 온 천하는 다 입을 닫아야 돼요.
무슨 종교든 무슨 철학이든 딴소리 하면 안돼..
창조주 하나님이 나타나는데 누가 감히 입을 벌리겠어요.
일절 그저 입이 닫혀야 돼요.
온 우주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 나타나면 공자님이고 맹자님이고 석가모니고 할 것없이 아무도 입을 열 수 없어요.
그래서 창세기를 아주 중요시해요.
또, 저는 저 개인적인 소원은 모든 학문과 모든 예술과 모든 역사가 창세기를 믿고 창조 원리에 맞는 그런 학문 그런 과학 그런 공부를 해야 돼요.
창조원리에 맞춰서..
그래서 아마 이 말은 계시록까지 가는 동안에 몇 번 듣게 될 겁니다.
창조원리라는 ‘하나님의 창조원리’라는 말을 아마 저가 굉장히 많이 쓰는 편이예요.
가령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하나님의 창조원리중에 하나는 필요하지 않은 것은 만들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이게 창조원리중 하나예요.
필요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만들지 않았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냥 돌맹이 그러면 우리가 세상 이 돌맹이는 가치도 없고 발뿌리에 걷어채이는 돌맹이 하면서 무가치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돌맹이가 없으면 콘크리트가 안 됩니다.
돌이 없으면 이 지구위에 우리가 서 있지도 못해요.
그만큼 얼마나 중요해요.
돌이 그야말로 기초가 되는 거예요.
돌이 크면 반석 아닙니까?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거죠. 반석 위에다가..
흙이라고 하면 우리가 흙을 천대하고 다 그저 흙으로 돌아가면 끝나는 걸로. 흙을 아주 헤프게 생각하는데.. 흙이 없으면 아무도 살지 못해요. 다 죽어요.
여러분 돌이 얼마나 소중하며 흙이 얼마나 소중하겠습니까?
돌은 그대로 놔 두면 돌이지만, 흙을 만드는데 돌로 흙을 만드는데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흙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봐야 되는데, 흙을 공부하면 참 흙이 신묘막측한 거야..
우리가 또 헤프게 쓰면 물 쓰듯 한다고 그러죠. 물 쓰듯 한다고..
헤프게 뭐를 쓰면 물쓰듯한다고 하는데 물이 얼마나 소중한 거예요.
그러니까 돌과 흙과 물 이런 것들이 참 소중한 것들이예요.
우리 삶의 기반인데 이런 것을 창조원리에서 볼 때 굉장히 소중한 것이고..
지금은 봄이니까 겨울동안 메말라 있어서 마치 죽은 것처럼 말라있던 그런 것에서 새싹이 파릇파릇 나오니까 그냥 푸른것만 봐도 반갑고 그런 정도지만 조금 있다가 들판에 나가면 온 천지 산야에 이름을 알 수 없는 풀들이 그냥 자라면 우리가 풀 이름 아는 것 몇 개 있겠어요.
풀 이름 20개 말할 자신 있습니까? 글쎄요. 20개 알면 그것은 기적이야.
잘 모릅니다. 그러니까 싸잡아 뭐라고 해요? 잡초..
이름을 모르니까 잡초라고 해요. 잡초..
여러분 하나님이 할 일이 없어서 잡초를 만들겠어요.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잡초는 안 만든다는 거야.
어딘가 뭔가 누군가 어떻게 다 필요해서 만든거예요.
여러분 함부로 가서 풀 보고 잡초라고 해봐요.
풀들이 ‘이 잡놈들!’ 그런다고..
여러분 제가 살고 있는 곳이 경남 산청인데, 산청이 옛날에 유의태와 허준이 살던 곳 아닙니까?
허준이라는 사람은 중국에서 본초강목이라는 중국의학책을 가져와서 보니까 한국과 안 맞는 게 많고 또 올바르지 않게 기록된 게 많으니까 그 본초강목이라는 책을 가져와서 철저하게 비평을 해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지리산에 있는 더 많은 풀을 첨가해서 자기가 쓴 책이 이른바 동의보감이라는 책이죠.
이분이 지리산 산야에 있는 산야에 널려있는 수많은 우리가 이름도 모르는 풀들 전체를 다 찾아서 이름을 그 성질을 분석해 놨어요.
‘이 풀은 몸에 어떻고, 성질은 차다, 성질은 따뜻하다.’ 이런 것을 다 써 놨어요.
우리가 보면 풀이 풀이지 그게 뭐 차고 뜨겁고 한 게 뭐 있겠어요.
똑같은 풀인데..
그런데 이분이 그렇게 다 분류를 하는 거예요.
그 말이 다 옳다고 나는 보장한 만한 근거는 희박한데 어떻든 그런 풀들을 예사로 보지 않고 우리가 볼때는 그냥 잡초는 봤는데 이분은 다 약초로 본거야.
그러니까 허준이 된 거죠. 허준..
우리는 잡초로 보니까 여기 앉아 있는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원리에는 그런 풀 한 포기도 필요하지 않은 것은 만들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씨앗을 보면 씨라는 것은 보면 어떤 씨는 주먹만한 게 있어요. 씨가..
제일 큰 씨앗이 아마 타조알이 아니겠나 타조알..
물론 공룡알이 있으면 그건 더 크지.. 공룡알 못 봤죠.
빵집에 가면 공룡알 빵이 있어..
그보다 더 큰가봐요. 공룡알이.. 공룡알 화석은 제가 봤거든요..
타조알도 큽니다.
그게 하나의 씨인데 크죠.
그다음에 큰 씨가 있다면 알밤이 아니겠나 싶어요. 알밤..
알밤 씨가 상당히 크죠.
그런 것을 심으면 뭐가 날것 같애.. 씨가 크니까..
그런데 작은 씨라고 하면 성경에는 씨앗중에 작은 씨가 겨자씨라고 하죠.
그런데 겨자씨는 커요. 제가 집에 있는데 상당히 큽니다. 겨자씨는 무씨와 배추씨 중간쯤 됩니다.
그러니까 제법 큰거야. 겨자씨는..
더 작은 것은 맨드라미 씨. 더 작아요.
맨드라미 씨보다 더 작은 게 있어. 채송화 씨.
그것은 진짜 작아요. 얼마나 작은지.. 재채기 하면 다 날아가버려..
볼려고 하다가 재채기 한번 하면 다 날아가버려..
그런데 그보다 더 작은 것이 있다고.. 홀씨 같은 것 더 작잖아요.
그런 씨앗을 보면 그 씨라는 게 참 묘한 거야.
어떤 것은 씨가 풀이나 나무에 붙어 있는데 거기에서 떨어지면 안 되는 거야.
그러면 한꺼번에 많이 떨어져가지고 거기에서 나서 너무 비좁게 나서 자라지 못해요.
그러니까 어떻게 씨를 먼곳으로 갖다 놔 줘야 하는데 하면서 갈고리를 만들어 있다가 바지가랑이에 달라 붙어요.
그래가지고 우리가 바지 입는 것 어떻게 알았나 씨가..
경상도에서는 도둑놈이라고 하죠. 그것을 떨면 가서 떨어진데 가서 나는거야.
더 재미난 것도 있어요.
봉숭아 씨. 봉숭아 씨는 이래가지고 있다가 늦은 여름 되면 점점 노랗게 변해 가지고 탁 폭팔해요. 누가 건들지도 않았는데 탁 터뜨리면서 그 안에 있는 씨를 멀리 날려 보내는 거야.
봉숭아 엄마가 그 씨를 날려 보내면서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제일 멀리 가는 놈이 내 아들’이라고 한데..
여러분 아들들 낳아가지고 너무 겨드랑이에 끼고 있으면 안돼.
낳아가지고 탁 하고 퍼져 보내. 5대양 6대주로.. 그런데 보낼게 있어야지..
그런 것도 있고 어떤 세렌게티나 마사이마라의 가시나무 열매는 코끼리가 따 먹으면 7km내지 8km가요. 그리고 사슴이 먹으면 3km가고..
그렇게 먹는 동물에 따라서 흩어지는 거리가 달라요.
그렇게 해서 편면하게 퍼지는 그런 장치를 해 놨어요.
봄인데 봄이 되면 막 온 천지에 기화요초가 피어나는데 거기에 벌과 나비가 꿀을 찾아서 꽃가루를 찾아서 이리저리 다니는데 그게 중매를 한다는 걸 어떻게 알았나.
우리 인간들은 전부 제생각만 해가지고 꽃은 여자고 나비는 수놈이라고 하는데 그것 삼천만의 말씀이라.
꽃은 꽃끼리 숫놈 암놈이 따로 있어요.
나피는 중매쟁이지 나비는 전혀 남자가 아닙니다.
남자는 나비도 아니고 제비도 아니고 그냥 남자야. 그냥..
그런데 남비나 벌은 꿀 찾아서 다니다가 꽃가루 찾아 다니다가 거기 꽃가루를 묻혀서 암꽃 숫꽃 연결시켜서 결실하게..
이런 창조 섭리의 오묘한 것을 보면 잠이 안 올 정도로 신묘막측한 거예요.
너무 아름답게..
그래서 제가 제 국어사전에 잡초라는 말이 없습니다. 잡초는 그어 버렸고, 저의 국어사전에는 우연이라는 말이 없어요. 사오자마자 제일 먼저 빨간 줄을 그어버렸는데 그 밑에다가 ‘내 사전에는 우연은 없다.’
하나님을 말은 사람이 우연이라는 말을 함부로 헤프게 써서 그렇지 우연이 없다는 겁니다.
잡초라는 것도 말이 안돼.
그리고 또 우리가 옛날에 해충. 해충이라는 말을 함부로 썼는데 저의 국어사전에는 해충이라는 말도 없습니다.
부분적으로 보면 벌레가 우리를 헤치는 것 같지만 합목적적으로 전체적으로 합력해서 조화를 이루는 합목적적으로 볼 때는 전부 익충이야.
모든 생명있는 모든 것은 다 나름대로 존재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필요하지 않은 것은 만들지 않으시기 때문이죠.
옛날에 우리가 해충 촌충 요충 이런 것을 기생충이라고 했죠. 기생충을 박멸하자.
학교가면 표어가 기생충을 박멸하자.
그런데 그런 게 우리 인간의 오장 육보 안에 있는 그런 것을 보통 기생충이라고 하지만 내부 기생충 외에 외부 기생충 있잖아.
이로부터 벼룩으로 또 집에 어떤 틈새에 사는 빈대라든지 이게 다 우리가 해충이라고 다 박멸하자고 했는데 지금 보니까 그게 아닌 것 같애요.
이가 있고 벼룩이 있고 해충이 있고 요충 편충이 있을 때에는 아토피라는 게 없었어요.
얼마전에 제가 재미있게 사서 읽고 있는 책이 있는데 우리 까페에 가니까 책을 구해 놨던데.. 보니까..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 라는 책이 예요.
제가 20년 이상 노래하던건데 누가 책을 썼어요. 건방지게..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그런데 이양반 읽어 보니까 이것은 저하고는 비교가 안될만큼 공부를 많이 한거야. 그 방면에..
하나님을 믿는지 안 믿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벌레를 공부해 보니까 나쁜 벌레는 하나도 없다는 거야.
그래서 책 제목이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
그러니까 창세기 읽을 때, 여러분 창세기 끝날 때까지 읽어야 될 책이 엄청납니다.
큰일 난 거야.. 그것 다 쓰고 다 읽고 리포터 내놔야 되요.
그래서 일단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 빨리 적어요. 책 제목을..
서로 읽을려고 난리 나겠죠.
그 다음에 제가 쓴 책 중에 이것은 반드시 읽어야 됩니다.
‘생명 사명 계명’
다 못읽어도 생명 사명 계명 이 세가지 챕터로 되어 있는데 ‘생명’ 파트는 반드시 읽어야 되요.
읽고 보고서를 쓰도록..
그 다음에 한스 요한힘 칠머 이름이 좀 길죠.
한스 요한힘 칠머라는 사람이 칠머야. 독일사람인데, 아주 대단한 사람이야.
제가 근자에 근년에 읽은 책 중에 다 가치가 있는 책들입니다.
한스 요한힘 칠머라는 사람이 썼는데 책 제목은 ‘진화 치명적인 거짓말’ 그런 책이예요.
진화, 치명적인 거짓말이다. 진화론이 그야말로 치명적인 거짓말이다.
보통 딴 나라 사람이 쓰면 별로 비중있게 안 보는데 독일사람이 쓰면 인정을 합니다. 그런 말을..
독일사람은 아주 독하게 쓰니까..
대단해요. 대단해.. 이 사람은 책을 쓸 때 도서관에 앉아서 쓴 게 아니고 발로 밟아 뛰어다니면서 썼어요.
현장에 가서 다 목격하고 그렇게 쓴거야. 그래서 가치가 있죠.
한스 요한힘 칠머의 진화, 치명적인 거짓말이 있습니다.
인터넷 검색하면 다 찾을 수 있어요.
이런 책들을 소개하니까 꼭 읽어 보시고 창세기 공부할 동안에 이런 책들을 읽어서 여러분 창세기를 제대로 공부해야 돼요.
여러분 오늘이 세계 유네스코가 정한 오늘 4월 23일이 책의 날이죠. 책의 날..
들어보셨나요?
그런 것도 안 들어보고 뭐 들어봅니까?
책의 날이예요.
오늘이 세르반테스와 세익스피어가 돌아가신 날이죠.
어떻게 한 날에 그 유명한 두 분이 함께 같은 날에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유네스코가 오늘을 책의 날로 제정한 겁니다.
그래서 오늘 책을 세권을 일단 소개를 했습니다.
네권이죠. 창세기란 책 한권 하고.. 그다음에, 죄송합니다. 제가 쓴 책을 소개 해 가지고..
‘생명 사명 계명’ 그 다음에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 그리고 한스요하힘 칠머의 ‘진화, 치명적인 거짓말’
최소한도 그 몇권 정도는 책의 날을 기념해서 당장 다 못읽어도 사둬요. 조금 있으면 안 나와요. 그 책이..
이런 때 날이면 날마다 나오는 책이 아니라고..
책이 딱 나왔다 하면 사 버려야 돼요. 그다음에는 안 나와요.
왜냐하면 한국사람은 책을 안 읽어든요.
계속 읽으면 스테디셀러라고 하면서 출판하는데 워낙 한국사람이 책을 안 읽기 때문에 책이 재판되는 책이 거의 없습니다.
한번 나오면 그 다음에는 안 나와요. 그 좋은 책들이..
그래서 가끔 제가 많이 소개하지 않는데 제가 이따금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됩니다. 그러면 읽는 것은 놔두고 사요. 집에 있는 책을 다 팔아서라도 반드시 사요.
빨리 사가지고 책을 확보를 해야 돼요. 조금 있으면 안 나와요.
제가 그런 경우가 많아요.
제가 책을 소개 하면 목사님 그때 책을 소개 받았는데 무슨 책이라 했죠? 다시 물어요. 오랜 세월이 지나서..
그래가지고 그때 가보면 없는 거예요.
잽싸게 가서 사야 돼요.
제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읽어야 될 책을 한 100권 정도 우리 홈페이지에 소개를 했는데, 우리 전도사님이 그것을 보고는 우리 까페에다가 비치해야 되겠다고 사러가니까 절반도 없죠?
100권 중에 절반도 없는 거예요. 책을 출판을 안 하니까..
그래서 어떤 책은 그책을 가져와서 창원대학 앞에 가서 복사하는 집에 가서 복사해서 나눠주고 그렇게 합니다.
그렇게라도 복사판을 만들어서라도 제가 소개한 책은 다 한권씩 가지고 있는 것이 좋을 겁니다.
여러분 말이 그렇지 사람이 책을 한권 쓴다고 할 때는 대단한 열정이 있거나 어떤 사명감이 있어야 책을 쓰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연구해서 그렇게 노력해서 쓰기도 하는데, 다 써놓은 것 읽지도 못해요?
그 정도는 노력을 해야 돼요.
그래서 책의 날에 붙여서 오늘 한 말씀 드리는데 책 중의 책은 역시 창세기야..
책 중의 책은 성경이고 성경중의 성경은 창세기야.
또 창세기 중의 창세기는 창세기 1장이고, 1장 중의 말씀은 1장 1절이야..
언제? 태초에. 누가? 하나님이. 무엇을? 천지를. 어떻게? 창조하시니라.
겁나지 않습니까? 여러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 자체가 청천벽력같애요.
이 창세기 1장 1절 앞에 모든 철학은 입을 닫아야 됩니다.
모든 이데올로기는 그냥 토론을 중지해야 돼요.
모든 이데올로기가..
모든 종교는 여기서 끝이 나 버려야 돼요.
그만큼 창세기 1장 1절은 선포중에 큰 선포야.
내가 만들었다는 분이 나타나는데 누가 딴소리를 하겠어요?
그만큼 창세기가 중요하고 그 중에 1장이 중요하고 1장 1절이 중요하다는 거죠.
창세기 1장 1절이 안 믿어지는 사람에게 로마서가 어쩌고 갈라디아서가 어쩌고 무슨 성령이 어쩌고 은사가 어쩌고 다 쓸데없는 소리야.
맨 믿음의 기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는 말씀이 믿어지고 나면
그 다음은 그것은 시간 문제예요. 시간 문제..
반대로 이게 안 믿어지는 사람에게 아무리 다른 걸 갖다 보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맨 믿음의 기초가 창세기 1장 1절에서 출발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머리가 굵어서 결혼까지 해가지고 교회에 나갔거든요.
그때까지만 해도 만물의 기원, 인간의 기원, 이런 데 늘 관심이 있었는데 세상에 교회에 가니까 첫페이지 열자마자 첫 마디에 내가 찾던 답이 그냥 나와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1장에서는 보통 창조의 주체, 누가 창조했느냐? 하는 것과 창조의 순서를 쓰고 있어요.
두가지입니다. 1장에서는..
1장 앞부분에서는 누가 창조했느냐? 언제? 태초에. 누가? 하나님이. 무엇을? 천지를. 어떻게? 창조하셨다.
이렇게 시작했는데, 잘 아시는데로, 첫째 날에 빛이 있으라. 했다는 거죠.
자 이리 보세요.
만약에 우리 지금 저와 여러분처럼 육체를 가지고 있고 육안으로 세상 만물을 감지할려고 할때, 빛이 없으면 빛 하나가 없으면 세상에 어떤 생명도 존재할 수가 없고 있어도 있다는 의미가 무의미해요.
빛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안 보이니까..
빛이 없으면 사람이 살아갈 수가 없고 살아간다손 쳐도 빛이 없으면 볼 수도 없고 아무 것도 아니죠.
여러분 우리가 먹고 마시고 하는 것 여러 가지 누구의 정성과 노력과 땀과 눈물이 다 들어 있지만 글쎄 그래도 빛이 없으면 끝나는 거예요.
빛 하나만 없어져 버리면 아무도 살지 못합니다.
아까 얘기했죠. 돌맹이 돌이 없으면 우리가 발 딛고 설 땅이 없고요.
세상에 그저 흙처럼 밟고 다니면서 천대하는데 흙이 없으면 우리 입에 들어갈 없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고..
세상에 흔한 것 물처럼 헤프게 쓴다고 하지만 물이 없으면 살수 없는 것이고 그 다음에 빛 빛 없으면 아무 생명도 존재하지 못해요. 이게 기본이예요.
그 다음에 공기. 공기 없으면 끝나는 거죠.
이런 것은 다 공짜죠. 그렇죠?
숨 한번 쉬는데 100원씩 내놔. 그러면 내놔야지.. 숨 안 쉬면 죽으니까..
5분만 코를 막고 돈 낼래? 안 낼래? 숨 한번 쉴 때 마다 100원씩 내놔야 안 됩니까?
그러니까 이런 것 다 도저히 사람이 값을 지불할 수 없는데 공짜라..
물 공기 햇빛.
하나님께서 일년에 태양
엄청난 에너지인데 그게 다 공짜 아닙니까?
그래서 빛을 주시고 물을 주시고 반석 우리가 흙 밑에 있는 반석위에 우리가 서서 살게 되어 있고 만약에 돌이 없으면 우리는 용암 위에서 펄펄뛰다가 죽는 거죠.
돌이 구들장이 두꺼워서 밑에 온돌이 들어 있는데 그래서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고 그 우리 지금 돌이라고 하는 지구 밑에 용암 온돌이 거기 있고 그리고 햇빛이 딱 비치면 사람이 살만한 그런 온도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 ‘지면은 식물을 내나 땅 속은 불로 뒤집는 것 같다.’ 그런 말이 있어요. 욥기에 보면..
지면에서는 식물을 내는 정도로 온도가 맞는데 땅 속은 불로 뒤집는 것 같다. 그런 말이 있는데 옛날 사람들은 그런 것을 알았는가봐..
그래서 사람이 발 딛고 사는 땅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게 맨 기초에 암반이 있고 암반 위에 흙을 덮어놨는데 여러분 흙이 없으면 우리가 채소가 나겠습니까? 곡식이 나겠습니까? 과일이 나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를 숨쉬게 하는 게 아까 여러분 함부로 말했던 잡초. 그리고 수많은 나무들.
이런 것이 태양빛을 받아 가지고 탄소 동화작용을 통해 마실만한 그런 산소를 적당하게 균형을 맞춰줘요.
이게 적당해야 됩니다.
만약에 산소 같은 여자 그런면서 아주 상큼하고 상냥하고 그러면 산소같은 여자라고 하는데, 산소같은 여자는 세상 망치는 여자야..
산소라는 게 있을 곳에 적당하게 있어야지 그게 하여튼 모든 망치는데 산소가 들어가요.
여러분 철이 녹이 되는 게 산화예요.
산소 때문에 그래요.
이 산성이란 게 산소가 들어가면 전부 쉬어 빠지고 못쓰게 만들고 그런데 그것이 없어봐. 없으면 큰일나는 거야.
이 공기라고 하는 게 숨쉬는 공기에 산소만 있으면 될줄 알지만 산소만 있으면 큰일 납니다.
산소가 21%가 표준인데 질소가 78% 산소가 12%예요.
그 균형이 딱 맞아야 돼요.
안 맞고 만약에 산소가 많으면 좋다고 산소를 많이 만들어서 산소와 질소 비율이 깨어져서 산소가 25%되었다. 그러면 내일 아침이 어떤 가정 주부가 가스렌지 켜자말자 온 지구가 불타 버려요. 뻥 하면서..
25%되면 큰일나는 거요..
반대로 질소가 많아서 산소가 적으면 어떻게 되느냐?
산소가 17% 이하로 내려가면 내일 아침에 아무도 일어날 필요가 없습니다.
다 질식해서 죽어버렸으니까. 밤새에..
그러니까 17% 내려가도 안 되고 25% 넘어가도 안 되는 거예요.
21% 거기에 딱 맞춰야 돼..
그런데 그것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름 없는 풀들, 나무들 이런 것들이 태양빛을 받아서..
우리 인간이 만든 가스는 다 고약해..
인간은 냄새를 많이 피워. 방귀부터 시작해가지고.. 온갖 가스를 만들고 오염시키고 하는데 이게 전부 자고 나면 또 맞춰놓고 맞춰놓고 풀들이..
그런데 우리는 그냥 잡초 하면서 그냥 제초제 가지고 확 죽으라고.. 그런 무지막지한 짓을 우리가 했다니까..
그러니까 이런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이런 것들이 다 소중해요.
여러분 언젠가 성지순례를 가면 카이로에서 나와서 시내산까지 가는데 하루종일 차를 타고 다니면 해가 꼴까닥 져야 시내산 밑에 도착해요.
그런데 가면서 길에서 나무를 몇 그루 봤는지 셀 수 있어요.
나무가 없다 그말 이예요.
눈 좋은 사람은 풀은 몇 포기 봤는지 셀 수 있다니까..
그런 곳에 가서 보면 잡초라는 말이 얼마나 황송한 말인지..
풀이 우거지고 나무가 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제가 그때 처음에 간 게 1993년도에 갔는데 이집트 사람이 한국에 오면 안 되겠다.
그 사람들이 우리 보면 자살할 거야. 자살..
자기 땅 보다가 우리 땅 보면 자살할 거라고..
얼마나 우리가 아름다운 땅에 사는지..
중근동 문서나 무슨 사막에 문서나 문학들을 보면 그들이 말하는 이상향은 골짜기마다 물이 흐르고 벌 나비가 날고.
그게 한국이예요. 바로 한국.
그러니까 천국 갈 필요가 없어요. 한국에 오면 여기가 천국이야.
여러분 우리 한국은 그야말로 그 사람들 기준에 천국에 가까운거예요.
이런 한국 같은 아름다운 나라에 불평하면 그건 지옥 가야 돼요.
제가 예수님 덕분에 여러 나라에 가봤는데 정말 우리 나라는 좋은 나라예요.
우리 나라와 같은 좋은 나라가 없는 거야.
어떤 나라는 가면 풍광은 괜찮아 보이는데 물이 더러워요.
물이 나빠가지고 물을 한 바게스 길어다가 끓이면 밑에 바닥에 시멘트가 한 숟가락 나와요.
그런 물 자꾸 마시면 우리 몸이 석회석으로 꽉 차겠죠.
우리 나라는 돌이 좋기 때문에 돌이 좋으면 물이 좋거든요.
여기는 잘 모르겠는데 제가 살던 지리산에는 기가 막히죠.
그래서 이런 아름다운 하나님의 창조의 솜씨를 우리가 보면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볼 때 예수님 하지만 성부 하나님은 눈뜨면 전체가 다 하나님의 지문들이예요. 하나님의 지문..
온 천지에 하나님의 솜씨로 가득하지 않습니까?
제가 자주 하는 얘긴데 오늘 모처럼 지나가는데 길가에 하나님께서 꽃다발을 보냈는데 생화로 보냈어요.
혹시 여러분 연애하던 시절에 애정의 표시로 꽃을 사서 가본 사람 있습니까? 꽃 선물을 하거나.. 한번 손 들어봐요. 꽃 선물 해본 사람.
경상도에서 물어본 내가 그렇지..
물을데 가서 물어야지..
경상도 남자들에게 꽃사봤느냐고. 나도 안 사봤어. 나도..
그런데 윗 지방 사람들은 꽃을 사가고 그래요.
러시아의 민요 중에 ‘백만송이의 장미’라는 노래가 있어요.
오늘 저녁에 인터넷 검색해서 들어봐요. 백만송이의 장미.
얼마나 사랑했으면 백만송이나 보냈겠어요.
하나님께서 ‘뭬야? 나는 억만송이 보냈다야..’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것도 해마다..
해마다 철마다 억만송이의 진달래부터 시작해가지고 장마로 모란으로 백합으로 가을에 국화까지.. 수 억만송이를 보내는 거예요.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 아닙니까?
미워하면 뭐하러 꽃을 보내요?
그래서 우리 아까 찬송에도 그런 노래 있죠?
내 마음 귀가 열리면 들린다는 겁니다. 들려..
내 마음에 눈이 열리면 이게 하나님의 꽃다발로 들리고 보인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다고 꽃을 보냈는데 그것을 꺾어서 다른 사람 갖다줘버려..
하나님이 얼마나 기분 나쁘겠어요?
내가 너를 사랑하다는데 꺾어서 딴사람에게 갖다 주면서 엉뚱한 짓 하니까..
일단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을 우리가 정말 감격하고 받을 줄 알아야 돼요.
그래서 제가 적어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꽃 필 때 마다 하나님께서 꽃 배달 올 때 마다 나가서 마중한 해야 될 것 아녜요? 마중은..
반갑게 그래서 꽃도 구경도 하고 단풍도 보고 하나님의 작품 전시회장도 보고 가서 보고 감탄도 해야 될 것 아닙니까?
제가 처음 전에 알지도 못하고 인생을 멋 없이 살았어요. 제가 보니까..
일에서 공부로 찌들려서 사는데 남는 게 별로 없어요. 남는 게..
그래서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제가 ‘신학은 사랑학이다’ 하는 책을 쓰고 그런 안목으로 세상을 보니까 세상이 전혀 다른 세상이야.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전체가 하나님의 연애편지처럼 보이고, 그러니까 읽다가 울죠. 눈물흘리죠..
오늘 낮에 기도하신 집사님이 조집사님인데, 다른 것은 별로 기억에 안 남고 맨 끝에 ‘하나님 많이 사랑합니다’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도 울었을 거야.
전부다 하나님 원망이나 하고, 가만히 있다가 어려울 때 하나님 원망이나 할 줄 알지..
하나님 사랑하다는 말 잘 못해요.
우리 경상도 사람은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 안 해.
너무너무 하나님이 듣고 싶어하는 말 이예요.
여러분 지난번에 봤잖습니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그 말 한번 듣고 싶어서.. 그것 봤잖습니까?
천년을 하루같이 해마다 철마다 그 꽃을 보내면서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 놓으면서 봄에 벗찌부터 산딸기로 복분자로 온갖 과일까지..
계속 바구니 바구니 다 보내는데 그것을 먹으면서 감사도 하지 않고..
보통 강심장이 아니라 보니까..
그래서 이 창조주 하나님의 그 기가막힌 사랑의 이야기가 들려야 돼요.
온 천지에서..
그래서 그렇게 막연히 교리적으로 그저 하나님이 창조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창조를 하되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아름답게 했다는 것 아닙니까?
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뒤죽박죽으로 지은 게 아니라 때를 따라 아름답게 지으셨다는 거죠.
그래놓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면 우리가 볼 때도 좋거든요.
미에 대한 어떤 아이덴티티가 있다는 거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일체감이 생긴다는 겁니다. 미적인 감각이..
여러분 그런 미학이 진짜 아름다움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때도 아름답고 우리가 볼 때도 아름답고, 과거 현재 미래, 언제 어디서 누가 몇 번을 봐도 공통적으로 아름답다고 해야 그게 참 아름다움이예요.
미술하는 분이 우리교회에 있죠.
추상화의 세계가 어떤지 나는 잘 몰라요.
가능하면 추상화보다는 구상화를 하도록.
하나님의 추상화는 구름밖에 없어요.
구름은 하나님의 추상화인데, 나머지는 다 추상화의 아니고 누가 언제 어디서 몇 번을 봐도 남자 여자 할 것없이 누가 봐도 하나님이 만든 것은 아름답다는 말이죠.
꽃이 옛날에는 아름다웠는데 요새는 못생긴 게 있습니까?
여러분 지리산에 가서 진달래를 봐요.
화사한 꽃을 보세요. 그것을 징그럽다고 하는 사람 있습니까?
언제 어디서 누가 몇 번을 봐도 아름답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거예요.
작년에 꽃을 봤는데 올해는 영 꽃을 못 보겠다 그런 사람 있습니까?
최고 아름다운 것을 ‘꽃본 듯이’라고 하죠.
제가 있던 밀양에 가면 ‘동지섯달 꽃본 듯이 날 좀 보소’ 밀양 아리랑에 그런 노래가 있죠.
최고 귀하게 아름다운 것이 동지섯달에 꽃을 보는 것이죠.
요즘에는 꽃이 많이 나오죠. 동지섯달에도..
그러니까 이런 창세기에 미, 아름다움의 근원이 여기에서 나옵니다.
창조의 신비가 창세기 안에 나오는데 모든 만물의 기원, 인간의 기원, 죄의 기원, 그리고 아름다움 미의 근원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미술을 하거나 예술을 한다고 할 때도 역시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해야 돼요.
물리학을 하든지 화학을 하든지 역시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하면, 그 학문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는 거죠.
모든 학문의 기초가 창세기라는 거예요. 창세기..
법을 공부할 때도, 율법서 오경의 율법서를 공부해가지고 법을 공부해야 돼요.
정치를 하는 사람도 성경을 알고 정치를 해야 돼요.
교육을 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는거야..
농사를 짓는 사람도 창세기를 공부해야 돼요.
그래야 잡초 그런 소리 안 하죠.
의학을 하는 사람도 말할 것도 없고, 약학도 마찬가지,
식품영양학 모든 학문..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모든 학문이 뿌리를 창세기에서 뿌리를 내려야 돼요.
그래야만 건전한 바른 학문이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까지 서양사람들이 어설프게 성경을 잘못 가르치기도 했고 잘못 배우고 해가지고 성경은 뭐 기독교 신앙의 어떤 일부 그나마 창세기는 무슨 설화에다가 전설에다가 신화에다가 믹서 했다 이런 식으로 신학자들이 봤기 때문에 창세기의 참된 가치를 거의 인식을 잘 못하고 있어요.
저와 함께 이번 오경을 일단 다 공부하고 나면 오경 공부 끝날때쯤 되면 창세기의 영원한 가치를 공감하게 될 겁니다.
진리라고 하는 것은 언제 누가 어디서 몇 번을 들어도 우리 속에서 달게 ‘아멘’ 하는 거예요.
우리 속, 거듭난 우리 속사람이 진리에 함께 공감한다는 거예요.
오늘은 이제 창세기 첫 운을 띄우는 정도인데 구조만 말씀드리고 정리합니다.
1장부터 11까지가 한 단락이 됩니다. 창세기는.. 1장부터 11장까지..
그리고 12장부터 50장까지 2부, 창세기 제 2부가 되는데, 1부와 2부로 나누어져요.
1부에는 네가지의 큰 주제가 있습니다.
네가지 주제는 따라합시다. 창조, 타락, 홍수심판, 민족의 기원.
이 네가지의 이야기가 나와요.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 딴거하면 안 되고 창조 이야기, 인간이 타락한 이야기, 그리고 홍수심판하는 이야기, 그리고 민족의 기원..
이런 이야기가 1장부터 11장까지 나오는데 이 부분을 우리가 보통 원역사라고 해요.
따라합시다. 원역사.
모든 역사의 기초죠. 원역사..
그 다음에 12장부터 50장까지는 히브리 족장사.
족장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그런 약전입니다. 약전.
약전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톨레돗이라고 하는데 간략한 전기 형식.
간락하게 그러니까 세밀히 쓴 게 아니고 간략한 전기 형식으로 쓰고 있어요.
아브라함 전, 이삭 전, 야곱 전, 요셉 전. 이렇게..
옛날에 춘향전 심청전 하듯이..
아브라함 전기가 간략하게 약전으로 들어있다는 거죠.
아브람함 이야기 뒤에 보면 롯의 이야기가 그림자처럼 나오죠.
이삭 이야기 뒤에는 이스마엘 이야기가 그림자처럼 간단하게 다뤄집니다.
그리고 야곱 이야기 뒤에는 에서 이야기가 역시 복선으로 깔려 나와요.
그 다음에 요셉 이야기 뒤에는 유다 이야기가 함께 복선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이런 구조를 큰 윤곽을 정리를 해서 부단히 읽어서 이 창세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있기 때문에 이 창세기 공부를 제대로 해야 이단에 안 빠진다는 거예요.
대부분 치명적인 이단들은 벌써 창세기부터 잘못 됩니다.
이야기를 해 보면 거의 창세기처럼 잘못되어 나가요.
지금 현재 이슬람교 같은 경우는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하나님께서 바치라고 할 때 이삭을 바친 게 아니고 이삭은 빼돌리고 이스마엘을 바쳐버렸다.
벌써 잘못된 거죠.
그러니까 그런 이슬람은 창세기부터 잘못된 거야.
또 어떤 이단들은 창세기 1장 3장에 있는 창조 타락 그 부분에 교리적인 고장을 일으켜 이단이 됩니다.
그래서 창세기 이야기를 제대로 시작해야 계시록까지 원만히 갈 수 있습니다.
제가 보는 대로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믿음의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창세기를 아주 소중히 여기는 반면에 마귀도 창세기를 중요시 하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어떻게 하든지 창세기를 믿어 버리면 곤란하다, 창세기를 믿어 버리면 하나님 믿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든지 창세기를 뒤 흔들어서 믿지 못하게 해야 돼..
그런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 마귀의 덫에 걸려..
그 마귀가 만든, 창세기를 믿지 못하게 만든 덫 중에 가장 큰 덫이 진화론이죠. 진화론..
이 다음에 그 부분도 공부를 하게 될 겁니다.
진화론이 얼마나 치명적인 거짓말인지 요하힘 칠머 이야기로부터 읽어보시면 좋겠는데,
창세기가 참 중요하다는 겁니다.
창세기를 우리가 똑바로 공부하게 되면 하나님을 바로 믿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그것을 뒤 흔들어서 믿지 못하게 온갖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마귀는 창세기를 믿지 못하게 합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는 마귀가 계시록을 아주 집요하게 공격하는 책이야.
저는 또 계시록을 강조하는 편이죠.
반면에 마귀는 어떻게 하든지 계시록을 뒤흔들어서 보지 못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창세기를 보지 않게 하고 계시록을 보지 못하면 그만 기독교 신앙은 밑도 끝도 없는 얘기가 되어 버리죠.
그렇게 만들려고 하는데 제가 볼 때 수많은 신학자들이 그 덫에 걸려요.
창세기를 무슨 신화나 설화라 그러면서..
안믿을려고 해요.
이것은 그야말로 앞으로 공부해가겠지만 신학적으로, 구약성경 중에서 가장 신학적으로 표현된 책이 아마도 창세기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저는 구약성경중에서 아마 가장 많은 시간을 창세기에서 보내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창세기만 제대로 공부하고 나면 출애굽기 레위기 그런 것은 거의 어렵지 않습니다.
창세기는 아주 중요한 책이고, 우리 신앙과 인생과 역사관 가치관 전체에 걸쳐서 창세기가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창세기 공부는 오늘은 제목 설명만 하고 큰 구분 1부와 2부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그런 것만 말씀드리고 창세기 공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분 마음속에 정리하면 앞으로 몇시간에 걸쳐서 창세기를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창세기 공부에 빠지지 않도록 혹시 빠지거나 하면 녹음된 파일을 구입해서라도 들어서 정리하고 또 때로는 필기를 할 수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특별한 시간을 내어서 영상을 봐야 될 그런 때도 있을지 몰라요.
그러니까 가능면 우리 창세기 공부를 같이 할 수 있도록.
창세기를 다 끝내고 나면 떡을 해 먹을려고 해요.
한권 떼고.. 작은 책은 떡 안 할 겁니다. 큰책은..
오경을 떼면 정말 떡을 해야 되겠죠.
그래서 마침내 66권을, 구약을 떼고 신약 계시록 뗄 때까지 4년 후에 계시록이 떨어질 때 쯤 되면 다른 것 놔두고 성도들이 비좁아서 꽉차고 저 옆에 방까지 TV갖다놓고 볼 만큼..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66권 안에 많은 책들이 있지만 특별히 그 중에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의 주권을 선포하는 이 귀중한 말씀을 오늘 밤에 살펴보았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이 책을 공부할 때 그 안에 담긴 은혜와 진리와 하나님의 애타는 심정을 잘 읽어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고 명철과 총명을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