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신앙은 끊임없이 복을 빈다. 개인과 가족의 행복을 위하여 복을 빈다. 다른 피조물들의 행복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자신의 행복에만 관심을 둔다. 이러한 마음을 가리켜서 모든 인간의 심성에 깊이 들어있는 종교성(宗敎性, religiosity, religiosität)이라고 한다.
지극히 불확실한 미래, 갑자기 들이닥칠 수도 있는 자연재해의 가능성, 폭력으로 점철된 인간사회로부터 받을 손해에 대한 공포, 따위의 불행에 대한 확률이 신에게 복을 비는 염원을 극대화한다. 개인의 안전과 건강과 부와 권력, 그리고 그 개인을 둘러싼 가족과 씨족, 더 나아가 민족과 국가의 번영을 염원하는 것이 기복신앙의 요체이다. 기복신앙의 바탕에는 불안이 깔려 있다.
구약성서 역사서에서 가장 골치 아픈 쟁점은 산당인데 이것은 가나안 주민들이 고래로 신봉해온 민속신앙의 제단이었다. 왕들은 하나같이 산당을 철폐하지 못하였다. 이스라엘을 망하게 한 주요한 요인들 중에 하나가 산당이었다고 신명기사가(DtrH)는 서술한다. 산당은 청산하기 가장 어려운 적폐였다고 비평하는데 역대기사가(Chr)도 산당 때문에 남왕국이 망했다고 본다. 남왕국의 성전 보수로 유명한 유다 왕 요아스도 바알종교를 청산하였지만 결국 산당은 철폐하지 못했다. 남왕국의 신명기적 종교개혁으로 널리 알려진 요시아 왕은 바알종교와 더불어 산당까지 다 철폐하는 데 성공하였지만 국가의 멸망을 막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산당(山堂)은 히브리어로בָּמָה (바마)인데 그 복수형은 בָּמוֹת (바모트)이다(겔20:29). 명사 בָּמָה (바마)는 본디 어떤 동물의 등 또는 몸통을 가리키는 용어였는데 나중에 어떤 장소의 높은 곳(high place)을 가리키는 용어로 전용되었다(왕상11:7). 그리스어 번역어 <휩셀로스 ὑψηλός>는 높은 곳이란 뜻이다(신32:12; 33:29). 이처럼 바마는 산등성이나(삼하1:19) 무덤을 가리키기도 한다(겔4:3).
고고학자들이 게셀(Geser)에서 산당을 발굴했는데 산 위의 커다란 석회암석을 제단모양으로 새겨서 거기에 동물희생제사를 드린 암각 제단이다. 거기에서 사람의 뼈들도 출토되었다. 이로 미루어 산당에서 제사와 더불어 장례도 치렀던 같다. 산당<바마בָּמָה >는 본디 가나안 부족이나 이스라엘인들이 고래로 제사를 드리던 장소였다(사무엘과 사울 참조). 간단히 말하자면 가나안의 샤머니즘이 산당에서 거행되어왔던 것이다.
솔로몬 시대부터 산당이 문제로 지목되기 시작한다. 솔로몬은 산당에서 제사를 지낸 장본이다(왕상3:2-4).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 후에도 솔로몬은 모압의 그모스와 암몬의 몰록을 위하여 산당을 지었는데 그것도 예루살렘 앞산에 건축하였다(왕상11:7). 르호보암도 산당을 지었다. 유다 백성 전체가 산당 제사에 물들어 있었다. 그들도 높은 언덕과 푸른 나무 아래마다, 산당과 돌 우상과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다(왕상14:23).
북왕국에서는 여로보암 때부터 백성들이 산당을 짓고 레위인이 아닌 보통 백성을 제사장으로 삼았다(왕상12:31). 벧엘에 송아지 우상을 세우고 그 산당에 제사장을 임직시켰다. 자원하는 자는 누구나 산당의 제사장이 될 수 있었다(왕상13:33). 산당의 우상숭배로 인하여 북왕국은 BC 722년에 망하고 말았다(왕하17:9, 11, 29). 아시리아 정복자들이 그 땅에 산당을 세웠다(왕하17:32). 남왕국 유다도 산당을 철폐하지 못했기 때문에 BC 586년에 멸망을 당했다. 포로기 이후에 디아스포라는 산당을 헐라는 야훼의 명령이 시내산에서 주어졌다는 과거사를 회고하면서 산당을 헐어버리지 못했던 그들의 죄책을 고백하였다(레26:30; 참조. 민22:41; 33:52). 남왕국 유다의 왕들도 하나 같이 산당을 철폐하지 못하였다.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란 상투어가 역사서에서 남왕국 유다 왕들에 대해서 되풀이 된다. 아사(왕상15:14), 여호사밧(왕상22:43), 요아스(왕하12:3), 아마샤(왕하14:4), 아사랴(왕하15:4), 요담(왕하15:35), 아하스(왕하16:4). 이 중 아마샤와 아사랴와 요담과 아하스가 부왕의 대를 이어서 개혁하려고 했으나 산당의 철폐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히스기야 왕이 산당을 철폐하는 데 드디어 성공하였다(왕하18:4, 22). 아시리아의 장군 랍사게가 산당을 철폐한 일로 히스기야를 조롱할 정도로 그의 산당철폐는 주변 열강들의 빈축을 샀다(사36:7). 그러나 히스기야는 나중에 바빌론의 신하들에게 성전 기물을 구경시켜 자랑하는 우를 범하여 유다왕국의 멸망에 빌미를 제공하였다. 그의 아들 므낫세가 등극하자 다시 산당은 복원되고 말았다(왕하21:3). 그 후 요시아 왕이 다시 개혁을 단행하여 산당을 완전히 폐지하였지만 때는 이미 늦어서 유다왕국의 멸망을 막지는 못했다(왕하23:5, 8, 9, 11, 15, 19, 20).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에스겔도 산당의 제사를 맹렬히 비판하였다(사15:2; 16:12; 렘17:3; 겔6:3, 6). 산당에서 인신제사도 이루어졌다(렘19:5).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을 건축한 것을 예레미야는 탄식하였고(렘32:35), 예루살렘 신전은 산당이 되었다고 탄식했다. 에스겔도 산당에서 행음이 이루어졌다고 꾸짖었다(겔16:16). 호세아는 아웬 산당의 죄를 고발했으며(호10:8), 아모스는 이삭의 산당을 저주했고(암7:9), 미가는 예루살렘을 가리켜서 유다의 산당이라고 맹렬히 비난하였다(미1:5). 야훼 하나님께서는 이 산당들의 제사행위에 대해서 매우 노여워하신다(시78:58).
야훼종교는 가나안 주민의 민속신앙을 부정하였다. 산당에 대한 대안사상으로 야훼유일신 신앙이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가나안 민중은 야훼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대 가나안의 농경사회에서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가 산당에서 행해졌기 때문이다. 바알은 가나안 주민들의 주신으로서 기후를 관장하는 신이었다. 가나안 도시국가들의 신전은 지방의 산당들과 연합하여 통치체제를 형성하였다. 산당은 농민들의 신전이었다. 그런데 무슨 까닭으로 야훼신앙은 민중의 산당을 철폐하라고 요구했던 것일까?
가나안의 산당은 풍요를 기원하는 개인 기복의 신앙이었다. 생명과 평화와 정의,그리고 평등과 자유의 참 평화를 염원하지 않고, 오로지 권력을 추앙하고 성공과 물질축복을 기원하는 어리석은 민중의 왜곡된 염원의 종교적 표상이 산당이었다. 민중이 신들의 전쟁을 정당화하는 모든 산당 체제의 잔재를 스스로 청산하는 개혁이 있어야 참된 역사의 진보가 가능해진다. 민중이 한 분 창조주 야훼 하나님을 믿고 깨달아서 한 마음 한 뜻이 될 때, 인류보편의 사랑을 실천하는 민중으로 거듭날 수 있다. 민중이 스스로를 교육하는 과정이 없이 역사의 진보는 없다. 예수님은 이러한 맥락에서 산당이 되어 버린 예루살렘성전을 허물고 사흘만에 새로운 성전을 건축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