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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가 박윤덕 회원이 <월간문학> 2014년 3월호에 동화 "아이들과 금부처"를 발표했다.
동화 아이들과 금부처 박윤덕
사월 초, 햇살이 맑은 토요일 오후였다. 이제 막 돋아나는 새싹으로 봄인데도 남해의 납산이 가을단풍처럼 빨갛게 물들고 있다. 아이들 넷이 모였다. “여기 들어가 의논하자.” 상용이가 마을회관의 방문을 열며 말했다. “그래, 안성맞춤이네, 조용하고.” 인식이가 맞장구를 쳤다. 상용과 인식이가 먼저 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부리와 정평이도 따라 들어갔다. “먼저 인식이 말을 들어보자. 수상한 사람들을 만났다는데…….” 상용이가 미덥지 않다는 표정으로 인식의 얼굴을 보았다. “자식! 왜 내 말을 믿지 못해? 먼저 정평이 할아버지에게 그 전설을 듣고 난 후, 내가 만난 수상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할게. 이야기를 듣고 판단해 봐.” 인식이가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아니, 못 믿는다는 게 아니라 우리 오총사가 활동하려면…….” 상용은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말끝을 흐리며 부리와 정평을 보았다. “우리도 상용이 의견에 찬성!” 부리와 정평은 합창을 하듯 입을 모았다. “그런데 그 전설이 정말일까?” 부리가 의심스럽다는 눈치였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우리 할아버지가 이야기 박사 아니냐? 옛날부터 이 고장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알고 계시거든. 언젠가 할아버지께서 나에게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어.” 정평이가 모두를 훑어보았다. “알았어. 우린 자세히 모르니까 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상용의 눈에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그래, 우리 집으로 가자.” 정평이가 일어서며 말하자, 다른 아이들도 따라 일어섰다. “잠깐만! 오늘 한영이가 안보이네. 왜 안 왔지?” 상용이가 한영과 같은 반인 부리에게 물었다. “응, 한영이가 매우 무서운 병에 걸렸다고 해. 병원에 입원했어. 선생님이 악성골종양이라고 하는데 일종의 암이라고 했어. 치료비가 아주 많이 든데. 그래서 우리 반에서 한영이 돕기 모금활동을 전개할 거야.” 부리가 한영이가 참석치 못한 이유를 설명했다. “학교에서는 우리를 오총사라고 하잖아. 우리가 한영이 돕기에 앞장서지 않으면 누가 서겠어?” 정평이가 모두의 의견을 묻듯 둘러보았다. “그래, 그래. 당근이지. 우리가 누구보다 먼저 앞장서야지.” 상용이가 맞장구를 쳤다. 다른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아이들은 정평이네 집으로 향했다. 정평이네 집 앞에는 넓은 공터가 있고, 그 공터에 큰 느티나무와 정자가 있다. 정평이 할아버지가 오후의 햇볕을 쬐며 정자에 앉아 있었다. 아이들이 정평이 할아버지 앞으로 갔다. 할아버지는 웬일이지? 하는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얘들이 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왔어요.” 정평이가 할아버지 등 뒤로 가서 어깨를 주물렀다. “무슨 이야기?” 할아버지는 정평이가 어깨를 주무르자 시원해서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눈치 빠른 부리도 할아버지의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허어! 오늘 내 어깨가 호강하는구나. 어~ 시원하다.” 할아버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할아버지! 얘들이 빈대절 금부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해요.” 정평이가 말했다. “빈대절의 금부처 이야기? 흠, 그 이야기를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지.” 할아버지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그 이야기는 나도 너희들만 할 때 할아버지께 들은 이야기란다. ‘빈대절의 전설’로 대대로 이어져 전해오는 이야기지. 저기 앞산의 납산봉우리 아래 아주 오래된 넓은 절터가 있었단다. 지금은 대웅전 터만 남아 있지만. 한 때는 스님들도 많았고 절이 아주 융성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앞산 봉우리를 가리켰다. “맞아요. 거기에 절터가 있어요. 우리도 가봐서 알아요.” 아이들이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스님들이 하나 둘 절을 떠나기 시작했지.” 할아버지가 숨이 가쁜지 이야기를 잠시 쉬었다. 아이들의 얼굴에 궁금증이 묻어났다. “그건 빈대 때문이란다. 빈대가 극성을 부려 스님들이 가려워서 견디지 못했던 게지. 스님들이 시나브로 절을 떠났단다. 마지막에 주지스님과 몇 분의 스님들이 남았지. 주지스님은 남은 스님들과 의논한 끝에 절을 떠나기로 했단다. 떠나기 전에 모시던 금부처를 절터에 묻기로 했단다. 옛날부터 절이 망하면 모시던 부처님을 그 터에 묻고 떠나는 풍습이 있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금부처를 절터에 묻었단다.” 말씀을 마친 할아버지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정평이가 할아버지의 어깨에서 주무르던 손을 뗐다. “피곤하구나. 집에 가서 좀 쉬어야겠다.” 할아버지가 일어나 집으로 갔다. 아이들이 정자에 둘러앉았다. 상용이가 인식에게 눈길을 돌렸다. 인식은 상용의 마음을 읽었다. 인식이가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제 우리 마을에 수상한 사람들이 승용차를 타고 왔어. 마침 아버지와 내가 산밭에서 일을 마치고 내려오던 참이었어. 그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아버지에게 빈대절터가 어딘지 알려 달라고 했어. 아버지는 절터가 어딘지 설명해주며 왜 묻는지 물었어. 좀 수상쩍었거든. 자기들은 박물관에서 나온 학예사와 고고학자래. 아버지와 내가 산길을 막 내려가려는데, 그 사람들이 다음 주 토요일에 절터에 가서 금부처를 파가자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어. 그 사람들이 박물관에서 나온 학예사나 고고학자들이라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만약 도굴꾼이라면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가 도둑맞을 게 뻔해. 난 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람들이 수상해. 그래서 너희들을 불러 모은 거야.” 아이들은 사회 시간에 배운 문화재에 대한 생각이 났다. 동시에 도굴꾼에 의해 도굴된 귀중한 우리 문화재가 외국으로 팔려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떠올렸다. 아이들은 그 사람들이 도굴꾼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네 아이들은 다음 주 토요일 아침 일찍 모여서 그 수상한 사람들이 오면 지켜보기로 했다.
토요일 아침이었다.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네 명의 아이들은 빈대절터의 바위틈에 숨었다. “저기 트럭이 오고 있어.” 부리가 나직이 속삭였다. 트럭이 흙먼지를 날리며 산길을 올라오더니 산길의 조금 넓은 빈터에 주차했다. 이어서 배낭에 삽과 곡괭이 등을 넣어 멘 수상한 사람 다섯 명이 차에서 내리더니 절터를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아이들은 긴장해서 눈길을 모았다. 한 시간 쯤 지난 후, 수상한 사람들이 절터에 도착했다. 수상한 사람들은 배낭을 등에서 내려놓더니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기가 대웅전 터다. 작업을 시작하세. 그리고 소리가 나지 않게 해. 산속에서는 소리가 잘 울려 퍼져. 마을 사람들이 알면 일이 수포로 돌아가.” 말을 마친 수상한 사람들의 우두머리가 땅을 팔 구역을 나누어 정했다. 조용한 산속에서 아이들은 숨을 죽이고 수상한 어른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도굴꾼이 틀림없어.” 정평이가 단정적으로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그럼, 만약을 생각해서 부리가 먼저 내려가서 산 아래에 있는 트럭의 번호를 살펴봐. 들키지 않게 조심해.” 상용이가 부리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그래, 알았어.” 부리가 고개를 끄떡이고 조심스레 아이들 곁을 떠나 산 아래로 내려갔다.
해가 높이 떠 어느덧 열두 시 가까이 되었다. “여기 뭔가가 있어!” 대웅전의 중앙 부분에서 땅을 파헤치던 도굴꾼이 소리를 질렀다. 다른 도굴꾼들의 시선이 모아졌다. 아이들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도굴꾼들이 대웅전 터의 중앙으로 모였다. “자, 저리 비켜, 이제부터 내가 호미로 파야겠어.” 우두머리 도굴꾼이 배낭으로 가서 호미를 꺼내왔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호미질을 시작했다. 도굴꾼들은 조용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두머리 도굴꾼이 호미질을 멈추었다. “찾았다!” 호미질을 하던 우두머리 도굴꾼이 환호성을 지르며 30Cm 쯤 되는 흙이 잔뜩 묻은 물체를 번쩍 들어 올렸다. “수건 갖고 와!” 우두머리가 옆에 선 도굴꾼에게 지시했다. 지시를 받은 도굴꾼이 재빨리 배낭에서 수건을 챙겨왔다. 수건을 받아든 우두머리가 물체를 닦았다. 묻은 흙을 닦아내자 물체가 햇빛을 받아 번쩍번쩍 빛났다. “오~ 전해오는 빈대절의 부처가 틀림없군!” 우두머리가 신음을 흘리듯 나직이 탄성을 질렀다. “자, 이제 빨리 떠나자.” 도굴꾼들은 급히 짐을 챙겼다. 우두머리가 금부처를 배낭에 넣었다. 도굴꾼들이 산 아래로 달음질을 치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도굴꾼들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스럽게 뒤따라 산을 내려갔다. 빈터 주차장에 도착한 도굴꾼들은 바삐 트럭을 타고 흙먼지를 날리며 비탈길을 내려갔다. 트럭이 산모롱이를 돌아가자 숨어있던 부리와 아이들이 공터에 모였다. “이제 어떻게 하지?” 인식이가 걱정이 되는지 중얼거렸다. “어떻게 하긴, 부리가 트럭의 번호를 알고 있으니 신고해야지.” 상용이가 손전화를 꺼내들며 부리를 보았다. 부리가 트럭번호를 상용에게 알려 주었다. 상용이가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상용은 아이들의 이름을 밝히고 그간에 있었던 일을 경찰관 아저씨에게 자세히 알려주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제 됐어. 그 도굴꾼들이 곧 잡힐 거야.” 상용이가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모두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이들은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음날 신문에 ‘전설속의 빈대절터의 부처’라는 기사가 났다. 네 아이들의 활동이 신문에 자세히 실려 있었다. 아이들은 어깨가 으쓱해졌다. 학교와 마을에는 온통 빈대절의 금부처와 네 아이들이 화젯거리가 되었다. 열흘 후였다. 아이들은 경찰서에 가서 표창장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경찰서장은 문화재 관리청에서 보상금이 지급된다고 했다. 네 아이들은 보상금을 받으면 한영의 병 치료비로 주기로 결정했다. 경찰서를 나서는 아이들을 따뜻한 햇볕과 봄바람이 포근히 안아주었다.
박윤덕 : 1951년 남해에서 출생 인제대학교 교육행정대학원졸(석사), 경남신문 신춘문예(1988) 동화 당선으로 등단 저서 : 내 친구 달백이 등
동화가 실린 <월간문학> 201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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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김현우 선생님, 늘 작품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