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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休息 施設이 斬新한 設計로ㅡ.
三月은 거기 있었다. 노랗게 만발한 영춘화, 대남로(臺南大路) 산책길은 나뭇가지마다 다투어 윤기 고운 비단 무늬 기둥 껍질을 늘씬하게 드러내 보인다. 빨간 동백, 하얀 목련, 그리고 이팝나무 싱그러운 푸르른 속잎…
딴에는 캉캉 춤을 추는 각선미로 매혹적이다. 지금 내 눈 앞에는, 지난 날 경전남부선 철도부지가 새로운 명물로 환상적인 산책로를 열어 보인다. 오랜만에 光州에 내려와 잘 꾸민 산책로를 걷고 싶어 백운 로터리를 돌아서 오는 길이다….
분수대 입구는, 마치 기념관의 참배 길처럼 화사했다. 속잎 피는 나무와 꽃의 향기를 내뿜는 나무들…. 드높은 푸른 하늘…, 명주 천을 길게 풀어 늘인 듯한 흰 구름이 한결 스마트했다.
앉아 쉴 휴식 시설이 석물로, 목제로, 또는 플라스틱으로…. 고풍스런 형태를 벗어나도록 여기저기 마련된 참신한 설계에서 감각이 풍성하고, 그 길목에 새로 들어선 풍치 좋은 팔각정이 걸음을 멈추게 했다….
새로운 주거환경 명소로 일어서는 길 북편 楊林路ㅡ 임립한 아파트 단지의 취락 구조는 내일의 팬터지를 화사하게 열고 있다. 자매도시 타이완의 臺南을 기념하는 산책로….
三月의 길은 나를 매혹하게 한다…. 시민들은 이 거리를 영원한 시(詩)의 도시, 아시아의 중심 ‘문화 수도’로 일구는 웅지를 뇌리에 담아 잠자리 베개 맡에, 늘 출렁이게 하는 것을….
■ 動的인 發見, 個性 있는 創造ㅡ.
기독병원에서 흘러내린 분기점은 엑조틱한 쉼터로 일품이다. 2km에 이르는, 동서 이중의 평행선 산책길의 중심부를 고려해 설계한 듯 사뭇 풍모가 수려했다….
여러 개의 사선으로 포인트를 강조한 굵고 높직한 유선형 대리석 열주들이 서 있는 공간…. 휴식용 장식물이 넉넉하게 배치돼 카메라에 담을 만한 영상미학의 감동을 고루 시각화 하고 있었다.
미지의 현실에서 경이를 느낄만한 둥근 돌 방석에 앉았다. 거기 움직이는 발견이 있고, 개성 있는 창조가 시선을 끌었다…. 감격한 눈빛이 초점을 떠나 있는 사이, 저고리의 단추를 풀고 서늘한 바람에 열기를 날려야 했다.
벌써 나의 기분은 그리스의 유적도시 델피(Delphi)에 가 있었다. 은빛으로 부신 올리브의 나뭇잎 향기를 몰아오듯 서늘한 바람이 아폴로신전의 신역(神域)에 와 쉬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바라보리라
저 방황하는 낮 달이 하늘 정점 가까이를
마치 천국의 넓은 길을
미궁에 빠진 사람처럼 가는 저 모습을…
존 밀턴/펜세로소
신전이 허물어져 흩어진 폐허를 복원한 것 같은 감각을 우러나게 해, 이제 더 이 곳에는 신들이 아닌, 어느 정령(精靈)들이 매달려 있는 성싶은 나무와 풀포기의 생명력에서 초자연적 존재들을 해후하게 하고 있었다….
■ 疲勞 잊도록 彩色된 푸르름ㅡ.
생명 있는 인간이나 자연이 쉬기 위해 예외 없이 `제2의 나’ 라는 생명의 꽃을 남긴다. 성숙한 자신을 사랑하면서ㅡ.
때문에 생명은 끝났다거나 돌아오지 않는다는, 의학자와 과학자의 말부터가 맹랑하다. 생명은 영원하다….
안식하는 이의 침묵이 현실적으로 죽음을 긍정할지 모르지만ㅡ, 인간의 삶 또한 자연과 다르지 않다. 이 산책로의 활력 있는, 빛나는 생명력의 반짝임 모양 재생과 부활의 환희로 사뭇 작열하다. 불의 축제, 꽃의 축제의 아름다움에 주목하지 않으려는가…!
Before us lie: eternity: our souls
Are love, and a continual farewell.
우리 앞에는 영원이 있다, 우리의 혼은 사랑이며,
또 그치지 않는 별리(別離) 다.(W. B. 예이츠의 詩`Ephemera’에서)
신전이 허물어진 그런 환상의 폐허, 臺南大路 산책길에서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여러 꽃과 잎, 잎의 푸르름이 채색된 산책로는 피로를 모르도록 더욱 삶의 기쁨을 내 눈 앞에 일깨우며, 수놓아 보인다….
■ 여울물 일렁이는 自然의 힘ㅡ.
음악가 鄭律成의 좌상이 눈을 끄는, 정율성로 광장을 가로지른 백양로는 근린공원 대남대로의 마지막 푸른 숲길이다. 구름다리를 향해 길게 뻗은 이 산책로는 가까이 냇물을 끼고 있어 한결 매혹적이었다.
길게 엎드린 숲의 터널 길…. 마사지를 받는 살빛 흰 여인의 늘씬한 다리 같아 마치 그 위를 밟는 왜소한 소인국 존재라도 되듯 지레 즐거움이 작은 가슴을 들뜨게 하는 것을.
백양로 끝은 냇둑이다. 여기서부터 구름다리를 만나게 된다. 석판에 두개의 나뭇가지, 그리고 음각으로 하얗게 새긴 ‘광남 보도교’ 표지석이 서 있는 현수교(?)다. 목판으로 발밑이 흐늘거리는 운치를 느끼해 낭만적이다.
구름다리 동쪽 끝은 대남대로와 이어지는 필문대로…. 이색적인 풍치에 압도돼 다리에서 머문다. ‘이 다리는 시가의 첫 가구로 뻗은 케케묵은 문짝으로 만든’ J. 콕토의 ‘조푸르 다리’ 보다 격조 높은 일품 적교(吊橋)다.
다리 중앙부에서 북쪽을 전망해본다. 약간 현기증을 일으켜 마치 뱃머리의 난간에 선 기분이다. 냇물의 우렁찬 흐름소리에 아찔해진다. ‘웅대하고 호방하게 용솟음치는 굉음’(?) 따라 그 위로 우리의 五月이 흘러간다….
무등산 상류의 여울물인데도 이 광경은 흡사 유람선에서 받는 그리움과 설렘이 엇갈리는 희고 깊은 포효를 보듯 장엄하게 느껴진다….
J. W. 괴테는 <자연에 관한 단편>에서 자연을 통해서만 신을 인식할 수 있다고 했다. 배움의 힘을 자연에서 받고 있는 줄 안다. 파리의 문화, 영국의 전통, 독일의 지성은 알면서 왜 우리 것은 망각하고 있는 것일까?♠
마치 갑판에서 후들거리는 쇠잔한 가슴…,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두 팔로 난간을 붙든 채 물결을 내려다본다.
부다페스트의 적교에서 보는 ㅡ좌안의 ‘왕궁의 성’과 우안의 의사당 건조물이 펼치는… 그런 장려한 정경을 연상하지 못해도ㅡ 두나이(다뉴브) 강 푸른 물에서 찾을 수 없는, 힘 찬 물결소리에 귀를 적신다….
약간은 도도한 물 울림이 일으키는 비말, 거기 전율하는 굉음이 울먹이듯 멀리서 달려오는 기관차 소리를 헷갈리게 한다. 아니, 내가 지금 서있는 다리 밑에 녹슨 레일을 받쳐 든 채 옛 잔여 철교가 향수에 잠겨 있는 것을. 나는 어린 날 으레 방학 때면 백양로 시발점 벽도(碧桃)간이 역에서. 이 도시를 오가던 열차에 몇 번이고 레일여행의 문화를 꿈 담아 오곤 했다. 그 열차 철도 다리 위에서 지금 백발을 날리며 여든 해전 과거를 회상한다…. 자연의 힘에 빨려든 감능의 극치로부터 잃어버린 유년시대를 일깨우는 물 흐름 울림이 ㅡ폭포수가 작열하는 요란한 소리도, 강 언덕을 굽이치는 급류도 더욱 아닌, 작은 개울이ㅡ 주는 자연의 위용을 우러르게 했다.
■ 五月의 白楊路 비단 숲 香氣ㅡ.
백양로 400m 구름다리의 운치ㅡ. 냇물이 흐르기에 산책길 백양로의 궁전 뜰 같은 숲은, 붉은 덩굴장미꽃, 집단을 이룬 덜꿩나무 흰 꽃, 때죽나무 흰 방울꽃 마다 깎듯이 흐드러지게 눈부셨다.
뿐이랴, 더욱 구름다리 현관 둘레를 화사하게 불 밝히는 화초는 단연 새빨간 병꽃나무 꽃 무더기였다. 황홀한 꽃 등잔이 조랑조랑 무수히 피어 있어 한결 신바람 나는 산책시간을 즐길 만했다….
깨끗한 가로등과 유선형 벤치를 조화 있게 배치한 화단…, 느릅나무, 단풍나무, 이팝나무, 측백나무, 오엽송, 종가시나무, 수양버들, 박태기나무, 그리고 그 빈 곳을 채운 철쭉과 수국, 수수꽃다리, 라일락이 흡족했다.
냇물을 본다. 얕게 흐르는 물살이 미끄러운 검은 이끼 표면 바닥에서 낮은 제방을 뛰어 넘는다. 그리고 계 거품을 뿜으며 솟구쳐 오른 물 구비는 한숨 내돌리듯 느슨한 돌층계를 흐르다 또 한 번 괴롭게 포말을 튀긴다….
물 위에는 덩치 큰 잿빛 왜가리와 몸집 날씬한 백로가 사이좋게 기웃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냇바닥을 서성거린다. 결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었다. 한 뼘 고수 부지의 풀 섶에는 잠자리와 나비의 순례…,
신화의 세계 같은 저 수면의 맑고 푸른 하늘에는 어머니의 손길을 닮은 목화송이 구름이 두둥실 미소 짓고 있었다. 누이야 오라, 그리고 이 클라리넷 물결의 J. 브람스 곡에 맞추어 너를 안아보고 싶구나…!
■ 빈 자리를 無의 知慧로 메워ㅡ.
성장한 나무마다 녹색 의상으로 푸르다 못해 까맣게 윤기가 흐르던 그날, 우리의 연인은, 五月을 맞으며 귓전에 은밀히 울려오는 L. V. 베토벤의 requiem《미사 솔렘니스》로 화사했다.
그리고 밀회하는 랑데부 젊은이에게는 선택의 계절이었다. 五月을 아름답게…, 햇살은 뜨겁고 지열은 화끈하고 녹음은 즐거웠다. 생동하는 환희의 도취와 육체미를 과시하는 독창성이 최대한 허용됐던 그 五月이 이제 간다.
솔직히 五月이 있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철학자의 길, 산책로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배웠다. 연필 깎듯이 깎아온 수련ㅡ. 이 五月은 그렇게 내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도록 텅 빈 자리를 무의 지혜로 메워주었다….
五月의 태양은 이 숲을 정적과 절규의 미로, 또한 이 냇물을 흘려보내는 미로 반짝이게 했다. 숲의 아늑하고 정화된 그런 쾌감을, 또 냇물의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보이게 하면서ㅡ. 다만 내게는 무엇 하나 남기지 않았다….
숲과 물이 발산하는ㅡ, 구속되지 않은 진솔한 내면의 결정(結晶)이 바로 五月의 쾌적한 이미지였다. 백양로의 ‘자연의 멋’ 숲 속을, 그 때문에 나 혼자 산책해도 처음부터 고독이나 적료의 올가미에 전혀 걸리지 않았다….
■ 五月을 보내는 덧없는 空虛ㅡ.
너비 3m에 길이 400m의 구름다리 훤칠한 난간에서, 五月이 흐르는 가까운 곳부터 겹겹이 대오를 갖춘 형형색색의 교량이 즐비하게 섞갈려 아름다운 흐름을 환송하는. G. 아폴리네르나 J. 콕토의 시를 줍게 한다….
구름다리 먼 거리부터 좁은 길섶에 가지런히 피어 있는 봄의 꽃무늬…, 난간을 관통하는 서늘한 바람이 바다의 쾌속선에 서 있는가싶게 뻐꾹새 음보(音譜) 위로 내 마음도 날듯이 상쾌한 정감을 불러 모은다.
매혹적인 낭만을 퍼 오는 숲 바람 냇바람이 교차되는 꿈의 구름다리…! 어느 시인이 쓴 연인과의 대화가 상큼 뇌리를 스친다.
“당신을 바람이라 부르려오.”
“저 또한 늘 그런 생각이었어요.”
“당신은 잡히지 않은 채 그냥 부유하거든….”
“야곱신의 ‘영원이고 불멸인 것은 공허’라는 말을 기억하십시오.”
이 구름다리는 대남대로 푸른 길 근린공원의 명소다. 한 겨울 해골 같다가도 여름이면 언제나 바람이곤 했다….
五月의 꽃들은 푸른 터널을 더 없이 몽환적인 영상으로 팬터지를 일구어 돌아보면 산책하기에 최고였다. 이제 저 냇물을 타고 미끄러지듯 내 앞을 떠나가는 바람의 五月을 환송하고 나면 내 즐거움도 끝이다. ♠
■ 제1광장. 휴식시설 꽃향기
남구청 로터리에서 시작된 어슬렁 산책길, 숲의 명소가 거기 있었다. 산책하는 것만으로 즐거운 아베뉴ㅡ. 양림산 ‘푸른 언덕’ 자락에 개발된 백양로 ‘푸른 길 근린공원’이다.
백운 광장을 대남대로와 함께 꿰뚫은 지난 날 경전남부선 철길로 3・1 만세사건 전후 주목돼온 개화기 서양촌, 버드름 문화예술 벨트…. ‘잠재적 팔레트 개선’으로 폐부지를 변형한 명물 유원지다.
제1 광장ㅡ. 프론트 게이트에 들어섰다. 수려한 푸른 길 근린공원을 상징하는 코르텐 강판 삼중 구조물이다. 울창한 수림, 6,7개 조명대 기구에 함몰된 쾌적한 분수대 입구에서는 내 어린 추억의 꿈을 치솟게 했다.
휑한 벌판에 작은 건물 한 채와 건널목 차단기가 뎅그렁 서 있던 그 시대만 해도 방학 때면 나를 매혹한 기차여행 간이역 ‘벽도역’ 터다. 이제는 흰 꽃방석 붉은 양탄자 철쭉 무늬로 기념관의 참배 길 모양 화사하다.
두 길 세 겹 가로수 풍경ㅡ, 다양한 풀꽃 융단에 주종을 이룬 느릅나무·때죽나무·단풍나무·이팝나무·자귀나무·떡갈나무·목련·동백·치자나무·능수버들이 터널을 형성하고 있다. 시트와 블록으로 조화된 하나의 식물원이다.
프론트 게이트를 조금 지난 지점에서 대남로 쪽에 훤칠한 가로수 길이 시작되고 폐선 부지와 평행선 산책로가 열린다. 화단의 이팝나무 꽃과 흰 꽃향기 자욱한 산사나무, 4개의 운동기구, 일직선 휴식시설…, 정연했다.
권곡선 기하학 장식 길은 ㅡ청춘 hustle walk! 연륜을 초월한 남녀 휴식의 벤치에도ㅡ 평화로운 대화와 웃음이 감돌아 피로나 고독을 멀리하는 분위기다. 보도블록을 흑백 양탄자 모자이크로 바꾸었으면 좋았을 것을….
리스본의 리베르타데 산책로를 걸었을 여행자는 그렇게 다분히 희망할 것이다. 아ㅡ, 남유럽 Paseo의 향수…. 이 싱그러운 숲에 함께 왔더라면, 아내는 뭐라고 탄식할까…?
■ 제2광장. 연인들의 산책지—.
제2 광장ㅡ. 푸른 길 산책로 가운데 가장 효용성 높은 광장이다. 주변 도로가 요로에 연결 돼 있고, 도서관 등 편의시설이 잘 정비 돼 아무나 들러 부담 없이 시간을 보내기에 편안한 분위기를 불러일으킨다.
가변성 집회장 용도로 기획된 공간 또한 사뭇 이상적이다. 특히 고향을 잃어가는 현대인에게 동경의 향수를 자극하는 테마의 파노라마는 고향의 정을 풀어내는 청량제로 한 가닥 쓰린 회포를 유감없이 자위하게 한다.
관중은 유익한 상상의 장으로 시퀀스의 기적과 어우러지게 마련이다. 그들은 입구에 두개의 회색 차단벽 장식과 일곱 개의 높다란 조명대 등…, 공연장이 자기들에게 곧 현대의 신전이라고 입을 모은다.
산책로 가운데 쭉 곧은 아름다운 구간으로 왕래가 활발한 버스 정류장, 즐비한 황갈색 나무 벤치, 그리고 송알송알 핀 흰 꽃 층층나무… 풍치 좋은 팔모지붕 정자 ‘백운정’의 목가적인 쉼터! 백양로의 가히 꽃이다.
정자의 왼쪽은 표본처럼 꽤 긴 철길이 먼 과거를 아련히 불러내는가 하면 이팝 꽃이 흐드러진 레일 위엔 ‘내일’이라는 작은 도서관이, 그리고 ‘퀴즈’ 커피 로스팅 가게가 이웃 전망 좋은 높은 거리에 드러나 이채로웠다.
정자 앞 조가비 꼴, 낮은 층계 연주석과 축소 무대, 네모난 흑백 대리석 바닥 외곽에 몇 개의 둥근 상석. 맥문동 잎으로 아름다운 높다란 화분과 긴 타원형 벤치들…, 장미꽃이 우아한 저녁이면, 연인들의 산책지로 꽃핀다.
봄, 가을, 파리·비엔나 오페라극장 연주 레퍼토리를 만나게 하는 낭만적인 다목적 집회, 그리고 각종 정치 강연과 노동자의 파업 집회장이 돼 있다.
■ 제3광장. 대리석 원주 공간—.
제3 광장ㅡ. 레일 침목의 잔해를 따라, 두 곳의 돌무더기 기념물까지 2-3분 걸었을까? 고풍스러운 아폴로 신전 폐허에서 표표히 은빛 부신 올리브 잎 향기를 몰아오듯 상쾌한 바람이 광장의 나뭇잎을 흔들어 운치를 돋운다.
남부 한국 관광도시의 거점 명소 예루살렘 빌리지 ‘서양촌’ 이 이국정서로 문화양식을 체질화 한 곳 ‘푸른 언덕’ 흰 꽃 호랑가시나무 길에서 완만하게 굽어 내린 끝자락 엑조틱한 분기점이다.
눈꽃송이 자욱이 흐드러진 이팝나무 꽃구름…. 그리스 델피의 파르나소스산 아폴로 신전 유적에서 보게 하는, 사선 포인트가 여러 곳에 응용된 높고 굵은 코린트식 7개의 열주로, 아무런 문장(紋章)도 없는 대리석 회랑—!
흑백무늬 바닥에 다분히 개성 있는 창조가 응집된, 그러나 비현실적 박제의 형해를 보는, 어느 문학기행 고전 모퉁이의 배경다워 신비롭다….
건물 외관의 입체미와 함께 미묘한 색채와 선형이 모사된 도문 미술의 형상화에서 변화의 통일성을 보게 했다.
양쪽 가로수에 매달린 작은 무수한 새집들…, 더러는 비바람에 일그러져 초라하다. 키 낮은 굴거리, 인동초, 남천이 길섶에 더부룩하고, 밀집된 벤치 가까이 5개의 운동기구가 띄엄띄엄 산책객의 걸음을 비끄러맨다.
널브러진 비둘기 떼가 모이를 쪼아 먹느라고 오가는 사람들을 쫓는 판국이다. 내가 이 길에 집착하는 이유는 프랑스 원예가 앙리 마르티네가 설계한 도쿄의 신주쿠교엔(御苑) 거목 길을 산책한 기억의 회상 때문이었다.
백양로는 그 축소판이다. 역사의 흔적 따라 선인들의 빛난 얼이 살아 숨 쉬는 곳에 지역적 특수성과 역사적 시대성이 교직된 노래비와 화비를 세워 현대인의 낭만을 매료하는 식물원으로 명원(名園)화 했으면 싶었다…
■ 제4광장. ‘정율성 광장’의 멋—.
제4 광장ㅡ. 평행선 가로수 도로가 네거리에서 단절되고, 건너편에 리어게이트가 서 있다. 이팝 꽃 흰 구름으로 부신 하이센스 산책로, 혐오스러운 옛 열차 교각 잔상을 은폐하지 못한 채 유보교(遊步橋) 구름다리로 연결된다.
중국에서 명성을 날린 음악가 정율성 동상이 있는 정율성로 입구…, 대숲을 배경으로 반달 꼴 쉼터에 오선지에서 펜을 멈추고 다른 한 팔을 불끈 들어 노래하는 다이내믹한 그의 영상이 목청을 울렁이게 한다.
4층 흑단 대좌 위의 청동 좌상이 정겹다. 곁에는 명문(銘文)판에 중국저명인사의 건립 기록이 새겨져 있다…. 광장 또한 그렇게 ‘정율성 광장’이 되고 있다. 생가가 있는 정율성로는 한 블록 전면 거리전시관이다.
여기서 이어진 3.1만세운동 길이 구미 풍 양관 등 종교적, 토속 자료를 갖춘 구한말 미국 선교 전초기지 유물 유적지다. 흰 구름이 찢겨 날리는 코발트블루의 하늘이 더욱 높다. 상쾌한 미풍에 머리칼이 날린다.
이 구간은 폐선부지로 노폭이 좁다. 이팝나무, 때죽나무 흰 꽃과 철쭉, 그리고 덜꿩나무 푸른 잎으로 무성한 숲 울(垣)을 이뤄, 밀림의 터널 운치를 드러내지만 쉴 벤치는 세 개로 국한돼 있다.
비포장 산보 길을 따라 전원의 삼림풍 열락에 침윤되면서 리어게이트 저쪽 구름다리로ㅡ. 현란한 햇살을 안고 은회색 다리 난간 아래 냇물이 흐르고…. 물결은 낮은 둑을 곤두박질하다 요란하게 솟구치곤 한다.
■ 구름다리 잇는 리어 게이트—
새 울음, 물 내음을 핥고 불어오는 바람의 묵시…. 그렇게 백로와 왜가리를 달래며 하얀 포말, 비폭의 굉음으로 장려하게 부서지는데 ‘푸른 언덕’을 넘나드는 까치·비둘기·지빠귀들도 냇물에 날아와 함께 서성인다.
빛의 약동, 색의 환희. 한 폭의 회화요 시다. 이 다리를 나는 언제인가부터 센(La Seine)이 흐르는 Pont Mirabeau라고 불러온다. 사랑의 여신상도, 에펠탑도 없지만, 냇물 이웃에 지하철역이 있다. 센 강의 미라보 역 같이….
유보교 밑을 흐르는 물은 한순간도 멎지 않지만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그냥 머무르고 있다. 다리 위를 선회하는 비둘기 떼가 때로는 ‘푸른 언덕’ 예배당 종루 위를 날고 있음을 볼 수 있어서다.
거기 버드름 문화예술 벨트에 지구환경 보전의 기술진보를 보게 했다. 비단 위의 꽃으로 문화의 백미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옛 모습을 남긴 화려한 흔적이 인멸됐다 해도 색상 고운 교회 건물들·첨탑·선교회관·사택·병원·교육기관·기념관·선교기념비, 호랑가시나무, 저 3・1 만세운동 길에 뿌렸던 피의 절규를 비문에서 읽는다.
하나같이 업적의 상징으로, 검버섯 낀 저 외국인 선교사 묘지의 묘비명과 학정‧궤변‧위선에 온 시민의 항거로 폭발한 각종 메모리 앨범이 평화‧자유‧정의‧진리와 사랑의 선교사(史)에 빛나게 했다.
자연은 인간에게 하나의 의무를 지운다. 아니, 백양로 버드름 문화예술 벨트는 꿈과 행복을 전해주는 위대한 전령사다. 유적지 파괴나 훼손 등 오염 없는 역사적 전통과 독자적 발전을 보장했으면 싶었다.
꿈이 흐르는 무수한 교각 위의 선과 각을 테마로 한 환경미술ㅡ, 다리의 미학적 리리시즘과 무지개 형상을 구름다리에서 본 때문이다.
또 이 아름다운 형상은 양안 빌딩 꽃 숲의 전망을 황홀하게 휘감은 저 무지개가 시사하는 선교사들의 거룩한 이상을 하나의 통일된 앙상블로 내 마음을 적시듯 우러르게 했다.
ㅡ“무지개가 구름 사이로 드러나면, 나는 그것을 보고 하느님과 땅 위에 사는 온갖 몸을 지닌 모든 생물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계약을 기억하겠다,”
(구약 '창세기' 9,16)
이 ‘무지개 길’을 보전하고 있는 프론트, 리어, 두 게이트는 한발 한발 옮길수록 그 기적이 빛난다. 일체의 사색과 행위의 급원지요, 축전원이다.
■ 물 흐름의 울림. 격동의 기쁨—.
나는 몽상가ㅡ. 태양이 침묵의 빛으로 발효된 검은 흙에서 삶의 엑스트랙트를 뽑아 올린 꽃향기와 물 흐름의 인스피릿을 일구고 있다.
조각처럼 강렬하고 선명한 선을 과시하는 기록성과 리얼리즘을 화초에서처럼, 냇물의 흐름 위에 재조명해 본다…. 흰 거품 물게 하는 격동의 기쁨으로 이 냇물에 햇볕이 반짝이고 있었다. 무지갯빛이다.
반사적으로 어느 여류시인의 시조가 나의 뇌리를 스쳤다.
억새꽃 은빛 물결 철길 곁을 쫓아 흐른다.
할 말 다해버린 강물위에 해랑 노는 물레새
부리에 금띠 두르고 날개 저어 가고 있다.
李全安/ ‘환속하는 물레새’ 끝 부분
물 흐름의 울림이 보내오는 자유와 해방의 감격이 나를 귀 기울이게 한다. 그리고 미풍에 들뜬 나뭇잎의 정화된 쾌감 따라, 냇물의 포말이 공허하고 평화스러워, 몇 번이고 내 입에서 예지를 끌어내게 했다.
냇물은 절규하는 왁자한 굉음으로 내게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 부정을 일깨운다. 구름다리의 향수… ‘자연의 멋’ 속을 나 혼자 산책해도 처음부터 그늘 진 고독이나 적료의 그물에 저촉되지 않아 기쁘다.
숲과 물이 발산하는 진솔한 내면의 결정(fruition)이 하지의 쾌적한 이미지 때문인지 모르겠다. 오류나 허구가 없다. 자연을 통해 신을 인식하는 백양로는 나의 앨범이요, 사전이요, 모든 것이다.
인생의 밑거름을 놓아준 백양로, 구름다리….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도록 내 텅 빈 자리를 무의 지혜로 채워주고 있다. 공해 없는 낙원을 위해 빛나는 생명력의 반짝임으로 재생과 부활의 환희를 일렁이게 했으면 한다.
대량생산·소비· 폐기에 대한 억제로 도시발전이 건전해진다. 도시공해의 원인으로 대규모 환경 파괴에 따른 서구형 근대화를 단죄하기보다 근대사회의 역할을 반성하면서 자연환경 보전에 적극 공헌하고 싶다.
■ 남광주역 테마 파크의 풍치—.
화려한 색채의 계절 감각이 풀어놓은 남광주역사 테마파크…, 사프란 꽃빛 하늘 아래 신록의 향기가 많은 시민을 무한히 들뜨게 하고 있다. 이팝꽃 활짝 핀 산책로의 지평을 열어온 상쾌한 현관임을 확인하게 했다.
54.903㎡ 규모에 두 개의 열차상행선 광주-파리(도서관), 하행선 광주-여수(전시관)시설 , 다양한 나무 심기, 분수대, 그늘시렁, 편의시설, 지하주차장과 방문자센터 등이 눈을 끈다,
마치 비엔나 시민공원에 있는— 왈츠와 오페레타의 유보(遊步) 연주회장, 쿠아 살롱 한 모퉁이를 연상하게 했다. 쾌적한 Z자형 휴식공간 군중 사이에 끼어 앉았다. 방문자센터에 웅성거리는 굼중, 무슨 볼거리라도 있는 것일까?
녹음을 뚫고 맞은 편 종합병원 산언덕 쪽에서 들려오는 아스라한 클래식 W. R. 바그너의⟪니벨룽겐의 반지⟫…! 나는 지긋이 명상에 잠겨야 했다. 이윽고 클래식 음악을 집어삼키듯, 기관차의 요란한 기적 소리—.
완행열차가 서서히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플랫폼에 진입할 때, 사뭇 마음이 산란하도록 도착 종이 울린다….
‘내 추억의 촉대 위에/ 차례차례로/ 불을 켜고 간 사람들/ 그들의 영혼이/ 지금 도시의 하늘을 지나가는지,’(金光均/汽笛) 퍼뜩 환상에서 눈을 떴다.
옛 남광주역 흔적을 보자는 차원에서 만들어낸 테마파크—. 화단에는 지금 그 이름 남음의 작은 기념 표지석을 보게 한다. 분수와 정자 등 45가지 공원 시설에 이팝나무 등 40여 가지의 나무 30만 그루가 심어졌다.
역사터의 은행나무, 감나무, 삼나무 등, 세 그루 노거수가 일품으로 상징적 랜드마크 역할을 할만하다. 7.9㎞에 이르는 푸른 길 공원은 11만㎡ 규모로 11년 동안 모두 2백78억 원이 쓰였다.
■ 도시는 병들어 있지 않았다—.
五月의 꽃, 이팝나무에서 계절의 여왕 장미에서 거룩한 자연, 장한 인공, 시선한 풍경을 둘러 볼 수 있어 좋았다. 발길을 돌려 반환점 유보교로…. 예닐곱 교각이 거기 무대장치 적 특징 있는 조망을 우러르게 하는 저 신기루—!
커다란 환상의 무지개가 ㅡ마치 센 강 전경이 축소된 희박한 그림처럼ㅡ 떠오르고 있었다. 사색하는 사람들의 고향으로….
환경 엔트로피를 가속화하는 사회공간인데도ㅡ. 유채꽃 아름다운 부평초 기슭에서 백로와 왜가리가 사이좋게 먹이를 찾아 먹고 있는, 도도한 저 냇물소리에 들떠 환시작용을 일으킨 하나의 신기루다. 흡족했다….
푸른 길 산책로를 혼자 걸어도 외롭지 않다. 실연도 좌절도 무기력까지도 정신의 새로운 피를 일구게 하고, 눈앞의 정경에서 신화·전설·기록 아닌, 구상(具象)의 창작성을 재발견하게 해서다.
지성과 감성의 소산으로 과학적 예술적 작품이다. 언어와 색채, 음향으로 조화된 질서의 세계를 통일한 소우주다.
어떤 부정적 영향에 따라 자칫 환경상태가 악화됐을 때 자연 파괴의 사회적 극복으로 시민 모두가 시범을 보일 때 하나의 키 개념으로서 환경보전이 가능할 것이다.♠
■박형구(德庵 朴馨丘. 1928- )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한국소설가협회. 한국현대시인협회. 한국아동문학회 회원. 소설집 《환상,그 빗속을 향하여》 《그 지성의 창변》 장편소설 《구름아, 저 구름아》 동화집 《별난 나라 여행기》 시집 《종이여 울려라》 소년소설 《녹색혁명》 《카인의 환상》등 20여권. 2011 梅泉黃玹文學大賞 등 수상. 503-758 광주 남구 봉선중앙로 46.107동 1207호(봉선동. 삼익아파트) 062-675-0891. 010-3641-0891. homepage: journal-9@hanmail.net ⟪銀河의 宮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