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7. 18 - 7. 30 갤러리이즈 (T.02-736-6669, 인사동)
갤러리이즈 10주년전 이대원ㆍ김종학의 색풍류(色風流)
글 : 김윤섭(미술평론가ㆍ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김종학_가을_61.6X72.7cm_acrylic on canvas
이타미 준이 설계한 인사동의 명소명물
세계적인 유명건축가 이타미 준(庾東龍 1937~2011)이 설계한 건축물이 한국 미술문화의 메카인 인사동에도 있다. 그 주인공은 ‘갤러리이즈’이다. 이타미 준은 건축의 설계단계에서 주변 환경의 토착성과 지역적 소재를 잘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갤러리이즈 역시 인사동 지역이 지닌 특별한 감성이 녹아든 대표적인 건축물로 재해석해 냈다. 전체적인 외관을 목재와 금속, 유리 등을 적절한 균형감과 긴장감이 교차되도록 연출했다. 마치 인사동의 오랜 세월이 스민 나무 재질을 현대적인 재질인 유리와 금속이 견고하게 떠받치고 있는 형국이다. 내부 공간은 지하1층부터 지상4층까지 제각각 독립된 네 개의 전시실로 구분해 다양한 전시목적에 맞게 활용되도록 구성했다. 특히 유리 벽면으로 처리된 1층은 안팎의 열린 교감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전시공간의 사례이다.
갤러리이즈(Gallery IS)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다. 갤러리이즈는 건물을 이타미 준이 설계했다는 점이 아니더라도 이름에 더욱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갤러리 이름에 ‘IS’라는 이니셜은 우리에게 ‘갤러리가 과연 어떤 의미인가?’라는 물음(Gallery is…)을 화두로 건네는 듯하다. 실제로 갤러리이즈는 출발은 매우 뜻이 깊다. 갤러리이즈는 유서 깊은 문중인 대구 달성의 남평 문씨가(家) 본리(本里) 세거지(世居地, 대구 지방문화재 3호)의 인데, 문중문고(현대적 의미의 사립도서관)인 ‘인수문고’의 ‘인수’에서 이니셜 ‘IS’를 갤러리 이름으로 차용한 것이다.
김종학_들꽃의 향연_89.4x130.3cm(60호)_acrylic on canvas_2004년
근대 거장전시에서 신진작가 후원까지
지난 10년 동안 갤러리이즈는 다양한 기획전을 펼쳐왔다. 우선 2009년 7월의 개관전 <공존-박생광ㆍ천경자, 미래와 만나다>는 우리나라 한국화 채색계열의 정수로 꼽히는 박생광과 천경자 화백의 작품이 7명의 현대한국화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장을 마련했다. 이어 2010년에 시작된 <작은 보물찾기>전 시리즈는 2012~2013년에도 연이어 현역 중진 유망작가 5~10인의 작품을 선보여 좋은 반응을 받았다. 또한 2010년의 기획전 <공존Ⅱ-근대를 지나 미래를 거닐다>에선 박수근, 이중섭, 도상봉, 김환기, 장욱진 등 한국미술의 대표적인 작고작가와 황주리, 이수동, 이동기 등 현역 현대미술가 등 15명의 작품을 선보였다.
특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기획전을 꾸민 예도 있다. 2012년 <여인의 향기>전은 작고작가부터 원로 및 중진 유망작가 14명이 그려낸 다양한 여인의 이미지 상을 한 자리에서 비교할 수 있는 재미를 선사했다. 참여 작가는 권옥연, 김종학, 이만익, 이왈종, 최종태, 박항률 등 한국 현대미술의 중추적인 위치를 차지한 작가들이었다. 반면 다음 해인 2013년의 <감동을 말하다>엔 김정수, 권두현, 김현정, 두민, 민성식 등 상대적으로 젊은 작가 10명이 초대되었다. 그리고 2015년 7주년을 기념한 <근대 한국화의 거장>전은 소정 변관식, 청전 이상범, 의재 허백련, 이당 김은호, 심산 노수현, 고암 이응로, 운보 김기창 등 근대 한국화 대가들이 총출동해 큰 이슈를 낳았다.
이외에도 독창적인 개성과 경쟁력을 갖춘 개인전이 기획된 사례도 있었다. 2013년 주도양의 ‘Somnium(꿈)’, 2014년 성태훈의 ‘옻칠화’, 2015년 캐스퍼 강의 ‘☰’, 2016년 김시현의 ‘품다;펴다’ 등이 그 예이다. 더불어 갤러리이즈의 주목할 만한 활동 대목은 젊은 신진작가 발굴과 지원에도 힘써왔다는 점이다. 지난 2011년부터 시작한 ‘신진작가 창작지원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주로 대상은 ‘미술대학(대학원포함) 졸업자이며 만40세 이하’의 신진작가이다. 기반을 잡아갈 이 시기는 작가들에게 가장 힘겨우면서도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선정된 작가에겐 전시장과 홍보마케팅을 지원해주는 실질적인 작가후원 프로그램이다. 물론 올해에도 변함없이 내년 1~2월 개인전 지원을 위한 공모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대원ㆍ김종학, 색의 풍류를 말하다
갤러리이즈의 10주년을 기념해 이대원(1921~2005)ㆍ김종학(1937~) 화백의 작품이 한 자리에서 만났다. 두 작가만큼 색(色)을 잘 쓰는 작가도 드물다. 물론 현재 한국 구상화단에서 가장 비중 있는 작고 및 원로작가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구상화가로만 국한하기엔 부족하다. 제각각의 독창적인 화법으로 일가(一家)를 이룬 ‘추상적 구상화’를 개척한 두 작가에게 개별성과 공통점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두 작가의 공통점이라면 무엇보다 ‘색의 환상적 변주’를 빼놓을 수 없다. 화면 전체를 생동감 넘치게 채운 색채의 기운은 보는 사람의 오감을 한꺼번에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굳이 비유하자면 ‘한국적 인상화풍을 독창적으로 완성한 사례’로 평가함에 부족함이 없다. 다음으로 ‘자연을 모티브로 한 한국적인 서정성’도 강조할 만하다. 이대원의 ‘농원(農園) 풍경’ 시리즈나, 김종학의 ‘설악산 풍경’ 연작 역시 한국의 자연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가장 기본적인 물음을 그림으로 옮긴 듯하다. 단순히 풍경의 재현에 그치지 않고, 그 풍경의 감성적 근간에 ‘사랑과 포용의 미덕’을 투영하고 있다는 점을 덧붙일 만하다.
최근의 미술계 뉴스 중에 김종학 화백이 지난 6월 6일부터 4달간 프랑스 기메국립동양박물관(Musée national des arts asiatiques-Guimet)에서 개인전을 초대받았다는 소식은 매우 크게 시사 할만하다. 특히 1980년대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40여 년간의 작업을 아우르는 폭넓은 작품세계가 유럽의 아시아 최대 국립 박물관에 선보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김종학 화백을 ‘한국 현대회화사에서 독보적 화풍을 지닌 작가’로 인정한 셈이다. 비록 일관된 설악산 소재만을 다뤄왔지만, 그의 화면엔 온 자연이 지닌 삼라만상 표정이 특유의 색채와 형태로 조화롭게 재구성되었다. 절기마다 바뀌는 설악산 지천의 꽃 더미와 우거진 나무들의 모습은 심신을 치유하는 힐링의 대상이 되어준다.
김종학 화백 그림의 특징은 거칠고 과감한 필력이다. 어디에도 계산되거나 의도된 면모를 찾아볼 수가 없다. 마치 바람결에 흔들리는 꽃과 수풀 그리고 나무에 캔버스 화면을 그대로 대었다 떼어낸 듯 생생함이 묻어난다. 이번 갤러리이즈 10주년 기념전에 선보이는 작품들 역시 자연의 원초적인 생명력을 물씬 풍기고 있다. 더구나 김종학 화풍에서 가장 선호도가 높다는 ‘한 여름 꽃들의 향연’이나 여인과 해바라기 소재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자연의 민낯을 색의 근원적 아름다움으로 재해석한 즉흥성 미학의 백미들이다.
김 화백의 꽃그림에는 생동하는 자연의 거친 숨결이 강렬한 보색대비를 통해 ‘기운생동’으로 나타난다. 휘몰아치는 색채의 향연은 원초적인 생명력으로 가득한데, 주로 우리의 토종 꽃만 그린다. 특히 덩굴식물들을 선호한다. 남들이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는 식물들에게서 남다른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은 그 자연에 대한 연모(戀慕)가 없다면 불가능할 것이다. 김 화백이 ‘꽃의 화가’로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언제나 30대 마음의 열정으로 자연의 온전함 그 자체를 무욕의 포용성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대원 화백 역시 한국적 자연과 생명에 대한 찬미를 찬란한 빛의 색채로 구현해냈다. 이 화백 그림을 설명하는 키워드를 꼽으라면 선명한 색채, 경쾌한 붓놀림, 빛을 품은 점묘의 터치, 소박한 전원풍경의 진수 등을 들겠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법학도 출신으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와 초대 미술대학장, 홍익대학교 총장(1980∼82년)을 역임하고,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까지 역임했다는 점은 이 화백의 미술계 위상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대원_담_ 41X112cm_oil on canvas_1981
특히 5개 국어(영어·일어·중국어·독어·불어)에 능통해 한국 현대미술을 해외에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든가, 1959년 당시 아시아 재단이 운영하던 우리나라 상업화랑의 효시인 반도화랑을 직접 운영하며 수많은 화단의 거목들(박수근·장욱진·김환기·유영국·도상봉·윤중식·변관식·김기창·장우성 등)의 활동을 도왔던 사례는 미술사 측면에서도 중요하게 언급될 정도이다. 동시에 프랑스 미술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의 “이대원은 빛을 그린다기보다는 데생한다.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그의 나무그림은 한국 수묵화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란 평가처럼, 동서양의 조형어법을 접목한 독창적인 작품세계로도 정평이 나있다.
이번 갤러리이즈 10주년 기념전에 선보인 이대원 화백의 작품도 전원풍경의 직접적인 감흥이 묻어난 운필의 자유로움이 엿보인다. 화면 전체에 분수처럼 쏟아지는 눈부신 색채의 향연이야말로 북받치는 자연에 대한 감흥을 가장 잘 표현한 장면이다. 이 화백은 평소 “늘 같은 것을 보아도 화가의 눈에는 항상 다르게 보인다.”고 강조했을 정도로 자연을 만나는 순간순간의 감정변화를 소중히 여겼다. 서예, 수묵화,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 등을 연구하는 등 본인이 직접 체감했던 전통적인 미의식과 미의 본질을 바탕으로 하되, 동시에 자신만의 현대적 색채와 화면구성으로 재창조해내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이대원 화백의 작품에서 자주 선보이는 과일나무와 농원시리즈, 연못 풍경 등은 화가로서의 삶을 함께한 파주 농원의 풍광이다. 강렬하고 선명한 색채만큼 농원을 사랑했다. 어쩌면 그 농원의 사계절이 변모하는 표정에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봤는지도 모른다. 밝고 화려한 색의 빗방울들이 빛의 입자처럼 눈부시게 만들어낸 환영의 세계가 곧 현실 속에 구현한 자신만의 유토피아는 아니었을까.
“나무는 삶의 방향으로 가지를 뻗는다. 그 나뭇가지는 생명의 선이다.” 이대원 화백의 고백처럼, 갤러리이즈는 지난 10년 동안 나름의 가지를 뻗어왔다. 우리는 그 가지들로 갤러리이즈라는 나무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었다. 남평 문씨의 전통과 격을 잇는 ‘인수문고’의 이니셜 ‘IS’이든, 가장 기본에 충실한 ‘Gallery is~’에 대한 물음이든,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올바른 방향을 갖고 자라야만 바로설 수 있는 나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는 갤러리이즈가 지난 10년의 경험을 되살려 어떤 미래비전을 만들어갈 것인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