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김미선 시인은 경남 진해에서 태어났고, 2003년 {문학예술}과 2010년 {불교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어떤 씨앗}이 있고, 현재 여성문학전문 계간지 {여기}의 편집위원과 부산여성문학인협회 회장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김미선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인 {뜨거운 쓸쓸함}은 군더더기 하나도 없는‘절제의 미학’을 통하여 내공의 단아함과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고승高僧의 설법, 노老배우의 눈빛, 할머니의 손맛에는 공통점이 있다.
구구한 설명이나 꾸밈이 없다. 단 한 마디로, 한순간으로, 한 번의 손길로 우주를 표현한다.
내공의 힘이다. 김미선 시인의 시는 내공의 힘이다.
----정영자, 부산여성문학인협회 이사장, 문학계간지 『여기』발행인
구렛나루에서 새들이 둥지를 틀고 어깨 위에서 나무가 자라난다는 말이 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비우고 타인의 몸과 마음을 비우게 함으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티없이 맑고 깨끗한 세계로 변모시킨다는 것을 뜻하게 된다. 김미선 시인은언어의 사제이며, 그녀의‘절제의 미학’은“영혼의 지독한 추위를 소화([떠도는 시인을 위하여])”시키는 수도승의 그것과도 같다. 법력法力(시력詩力)이 깊으니까 언어와 행동이 절제되어 있고, 언어와 행동이 절제되어 있으니까 그 무엇을 행하여도 모자라거나 넘치는 것이 없다. [염주 한 알]로 성과 속의 경계에서 그토록 아름답고 예쁜‘상사화’를 피워놓고, “나도 있어, 나도 봄이야, 돌 틈 사이 꽃씨 환희 햇살 받고 섰다. 마당귀에 버려진 팔각 문짝 사이로 바위취와 제비꽃 싹 틔운다([꽃 보러 간다])”라는 ‘극락의 세계’를 창출해내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을 증명해 준다. 김미선 시인의 {뜨거운 쓸쓸함}은 절제의 미학의 소산이며, 묵언정진黙言精進의 기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반경환, {애지} 주간, 철학예술가
뜨거운 쓸쓸함
멀리서
비에 젖는 바퀴소리가
붉은 눈망울의 길을 연다
길게 쓸려가는 사랑이 다시
돌아서는 착각으로
가슴이 뛴다
등불 멀어진 길 끝에서
터진 물집이 통점을 찍는다
세상의 뒷덜미에
나무들의 완벽한 일체는
더 이상 의미가 아니다
수많은 갈등과
명치끝에 올라 탄 울렁증이
단 순간 먼 거리를 뛰어 넘는
사랑으로 핀다
발효되지 못한 난생의 외로움
분홍 모자를 찾아 길을 나서면
오래 수태 중이던
서늘한 그림자가 지퍼를 열고
수많은 모르스 부호를 쏟아낸다
염주 한 알
스님은 행선 중
조계산의 매미 울음 한창이다
정갈한 선방 사립문 밀치고
발길 들여 놓은 아낙
스님 곁에서 다소곳이 사진을 찍는다
저 포시라운 상사화를 어쩌누
빗장 지르고
귓가에 들리는 청수 소리에
카메라 셔터가 넘어간다
잠자던 육신 깨우며
잘 견디었던 욕계
상사화 꽃잎 따라 피어난다
선방에 걸터 앉은 연한 보살님
손목 잡힌다
방장 스님 헛기침에
가슴 밑바닥 내리치는 죽장자
빙하착
댓돌에 아릿하게 물든 고무신
여름 땡볕에 얼굴 붉게 탄다
극락교의 무성한 여름
염불을 끌고 간다
----김미선 시집 {뜨거운 쓸쓸함}, 도서출판 지혜, 국판변형 값 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