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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혼자 가는 길
김 익 하
“할아버지 혼자 오셨어요?”
그 물음에 임재만(林在萬)은 눈살부터 찌푸렸다. 평범한 인사말도 상황에 따라선 칼끝이 되고 도끼날이 되어 가슴 복판을 깊이 찍는다. 다솜상조회사 문을 열고 들어서자 출입구 쪽 가까운 자리에 앉아있던 여직원이 안경알을 탐조등처럼 번들거리며 찾아든 용무는 묻지 않고 누구랑 같이 왔느냐는 투로 반문한 말이 그에게 그런 불쾌함을 주었다. 그로선 하도 들어온 말이다 보니 요즘 가장 듣기 거북한 말로 여기고 있는 물음인데, 이곳에서도 역시 다르지 않았다.
주변에서 식솔이 모두 떠나고 난 뒤 홀로 사는 처지에서 그런 소리를 듣는 게 마땅하다지만, 임재만으로선 그때마다 공연히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은 충동까지 일었다. 그런 말을 즐겨 사용하는 사람들은 곁에 조력자나 동행자가 있느냐는 물음이겠으나, 듣는 처지에서는 주변 사람들을 감싸 안지 않고 모두 떠나보내고 홀로 남았으니 ‘그래, 이제 혼자 사니 편하고 행복하슈? 사람 사는 게 결코 그렇지만 않다우.’ 그런 시비조로 들려 그때마다 다분히 힐난의 소리로 바뀌어 비위를 북북 긁었다.
손이 커서 내놓는 음식이 먹고 남을 만큼 푸짐하다고 소문난 손칼국수 식당의 뚱뚱한 여자도 자주 드나들어 이제 얼굴이 웬만큼 익었는데도 찾아들 때마다 어김없이 고개 들어 입버릇처럼 내뱉는 인사 투도 그랬다.
“할아버지 혼자 오셨어요?”
건강 검진하려 병원 접수창구 앞에 서면 접수원이 자라처럼 고개를 옆으로 틀어 내밀고 채근하듯 또 그렇게 물어왔다.
“왜 같이 오시지 않고 혼자 오셨어요?”
고속버스 매표원도 그냥 ‘한 장 드릴까요?’ 로 묻고 말 일을 굳이 사람 속마저 뒤집어놓으려고 작심한 듯 새삼 처지까지 확인하고자 했다.
“혼자세요?”
이따금 교대로 집으로 찾아온 경찰안전센터 순경들도 신문하듯 묻는 투마저 그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인사를 건네 놓고 대답에는 아랑곳없이 휘적휘적 돌아가곤 했다.
“혼자 사세요?”
심지어 홀로 사는 노인 돌봄이 ‘남혜경’이란 명찰을 목에 건 구청 복지센터 여직원까지 초대면 자리인데도 예외가 아니었다. 겨우내 언 강을 녹여내듯 나긋하니 내뱉은 목소리에도 어김없이 그 말이 양념처럼 섞여 있었다.
“혼자세요?”
주변에서 그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사람들은 끝내 그를 홀로 내버려 두고 가면서 처음 인사가 하나같이 혼자냐고 당당하게 물었다. 분명 그렇게 물어오는 사람들 면면을 보면 가족과 함께 살 텐데 홀로 사는 사람에게 웬 관심이 그리 많은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예전 부부와 아니 여러 식솔과 살 때도 그렇게 많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홀로 된 지금 재산이 많거나 인물이 훤한 처지도 아닌데, 부쩍 관심까지 보이니 사람 심리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다행하게도 요즘 사람들은 어떻게 홀로 되었느냐고 묻기는커녕 관심도 보이지 않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사연이야 어찌 되었든 홀로 사는 게 이젠 너나 뿐 아닌 세태라는 말씀이 먼저다. 오히려 식솔들이 북적이는 가정을 보면 왜 그리 올챙이처럼 뭉쳐 아등바등 다투며 복잡하게 사느냐는 물음으로 끝나지 않고, 그 집 아이 교육을 걱정하고 결혼도 염려하며 취업까지 내처 챙겨주는가 하면, 전월세가 하늘까지 치닫는데 그렇게 너르게만 살아서 어찌할 거냐고 총을 앞세우고 달려들 기세로 무장된 논지로 공격해온다.
임재만도 사주에 어떻게 나와 있는지는 몰라도 애당초 작정하고 홀로 살지는 않았다. 그러나 실제 팔자소관은 운세를 풀어가는 형세가 아니라 외로 꼬인 새끼줄처럼 바로 풀어도 뒤꼬여 끝내는 감나무 끝 가지에 남은 까치밥처럼 홀로 댕그라니 남았다.
그런데 식솔들은 태어나 인연을 맺은 역순(逆順)으로 임재만의 곁에서 훌훌 떠나갔다. 셋째 놈이 제일 먼저 곁에서가 아니라 세상에서 떠났다. 맞은 쪽에서 달려든 차량에 택시를 타고 가다 당한 교통사고였다. 둘째는 여식인데 미군과 사귀다가 바다 건너로 떠나가 소식을 아예 끊어 버려 제 어미 배만 빌려 태어났을 뿐 끝내 잊은 자식이 되었다. 큰놈은 공사판으로 떠돌다가 제 회사를 차려 사업한다고 껍적거리다 왕창 말아먹는 것도 모자라 빚더미까지 아비에게 들씌우고 달아나 여태까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같은 하늘 밑에 살면서도 알 길이 묘연했다.
마지막으로 그의 주변에서 떠나간 사람은 여편네였는데 가장 요란법석을 피우며 떠나가서 두 번 다시 입에다 올리기 싫을 만큼 이름만 들어도 머리에서 쥐가 났다. 그녀는 귀가 얇아 이웃들의 말에 기고만장 설치는 성정 탓인지 짬만 나면 성깔머리를 드러냈다.
“에이고 살림에 주접 들어 그렇지 나도 다듬고 나서며 누가 쉰여덟으로 보겠나. 용모도 그렇지만 몸매를 보면 처녀애들도 부러워하지 않겠나.”
듣고 있자니 뚫린 귀가 야속했다. 그 말에 낚여 네 살이나 아래 되는 홀아비와 배를 맞춘 뒤 석 달 동안은 부부간의 맺은 정에 대한 씻김굿이라도 하듯 칼부림하며 싸우다 임재만의 진을 깡그리 빼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떠나갔다. 헤어지기 전, 남편과 쌈질 끝에는 여흥을 풀려는 듯 이웃 아낙들에게 치밀었던 홧김에다 악감정까지 더해 같은 이불을 덮고 산 여자가 어떻게 저리 변했는가 싶게 여길 만큼 악랄하게 그도 입이 부어 아프도록 떠벌였다.
이웃 아낙들이 수상쩍게 쑤군거리며 음탕한 눈빛으로 낄낄댔다.
“아이고 그 집 아저씨 몸 어딘가 병신인가 봐.”
“아, 병신은 무슨 병신. 자식을 셋까지 낳았다는데 시방 그건 또 뭔 소리야?”
“이런 이 여편네 생각하는 게 꼭, 누가 아랫도릴 얘기했나. 참, 나 환장할 일이다.”
“멀쩡한 남편 두고 그 나이에 바람날 이유가 뭐 있을까?”
“남자가 멀쩡한가, 안 한가는 몸을 섞은 둘만이 알겠지?”
“또, 또 너 머리통에는 온통 그딴 생각뿐이냐. 먹은 나이를 버리지 못해 너도 평생 고생깨나 하겠구나.”
“할아버지, 어떻게 오셨나요?”
이런저런 일을 떠올리며 찾아든 이유마저 잊고 있는 임재만에게 상조회사 여직원이 딴생각에 빠진 그의 의식을 다시 흔들어 깨워주었다. 그제야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온 임재만이 가까스로 말문을 열었다.
“내가 이리로 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곳에서 장례 계약서를 쓸 수 있다는 말만 듣고 찾아오긴 찾아왔는데 그게 가능하긴 가능한가요?”
“아예 할아버지, 우리 회사에서는 그런 영업도 합니다. 할아버지가 쓰실 거예요?”
안경알이 탐조등처럼 번들거리는 여직원의 얼굴은 벽화 작업을 끝낸 골목 담벼락처럼 화사하게 펴졌다. 여직원 판단에서도 임재만이 확실한 고객으로 보였음이 자명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계약서를 쓰고 싶다오.”
“예, 할아버지 그러하세요. 제가 담당에게 모셔드리겠습니다. 이리로 오세요.”
여직원이 앞장서 임재만을 매부리코에 눈빛이 시원하게 생긴 사내 앞으로 안내했다. 사십 대여섯 된 듯싶게 보이는데 의자가 꽉 찰 만큼 몸피가 한 곳도 들어간 데가 없게 보일 만큼 우람했다.
“강 부장님, 할아버지가 장례 계약서를 쓰시려고 오셨대요.”
컴퓨터 화면에다 시선을 틀어박고 있던 강 부장이란 작자가 얼굴을 들어 씨름 상대나 만난 듯 임재만의 아래위를 훑어봤다. 그러면서 자리에서 게으르게 일어나 옆에 놓인 둥근 탁자를 손으로 가리키며 임재만에게 말을 건넸다.
“할아버지 이쪽으로 앉으세요.”
강 부장은 계약서 서류를 들고 맞은편 의자에 엉덩이를 내렸다. 우람한 몸집의 사내가 앞에 앉으니 임재만은 마치 산을 마주한 듯했다. 그런데 강 부장이 예외 없이 한마디 툭 던졌다.
“혼자십니까?”
“혼자니 혼자서 이렇게 온 게 아니겠소?”
느긋한 생각을 가지다가도 그 말만 들으면 짜증스러워 달려들어 멱살이라도 잡아 흔들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끓어올라 뒤집히려는 속을 참아내야 했다.
“아 할아버지 장례 계약서는 꼭 홀로 계시는 분이 아니라도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자식들이 있는 부모님들도 요즘 씁니다. 그래서 제가 여쭈어 본 것뿐입니다.”
“나는 홀몸이요. 그래서 내가 직접 써야 하오.”
소리라도 악악이 내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젊은 사람 앞이라 마음을 느긋이 내려 앉히며 차분히 대답하려고 언동까지 가다듬었다.
“잘 판단하셨습니다. 요즘 삼일장을 상조회사에다 맡기면 대략 화장 처리한다 해도 천오백만 원 이상이나 들어갑니다. 그런데 장례 계약서를 쓰면 백여만 원 미만이면, 아니 그보다 더 간소화하면 더 적은 비용으로 장례가 가능한 세상입니다.”
“나에게는 티끌만 한 연고도 없소. 모아놓은 돈 또한, 푼돈뿐이오. 그러니 아주 간단히, 흉하지 않게. 그렇지, 남의 무서운 눈만 가리면서 저승으로 보내주면 된다오.”
자신의 장례를 신문에다 큼직하게 때리고 복도 저 끝까지 애도 화환을 세우려고 찾아온 발걸음이 아니었다. 사후 시신이 거적때기에 싸여 천덕꾸러기로 이리저리 쓰레기장으로 굴러다닐까 봐 찾아온 것이고 또한, 맡길 사람이 없기에 사후를 위탁하러 왔을 뿐이다.
“할아버지 그러시면 이제부터 저와 상의하시면서 계약서를 작성하시도록 하세요.”
“흔히들 보험 계약서를 쓸 때처럼 나에게 불리한 사항을 감추려고 하진 않겠지요?”
“참, 할아버지도. 여긴 그런 데가 아닙니다. 평생 속으면서 사셨어요?”
“으음, 그렇다면 다 작성하고 난 뒤도 마음에 들잖으면 고칠 수는 있소?”
“아예, 그럼요. 열 번 백 번 도장을 찍기 전에는 가능합니다. 우선 여기 계약서에다 인적사항부터 적으세요. 인적사항을 적고 나서 장례 방법은 제가 설명하는 부분에 동그라미를 치면 됩니다.”
강 부장은 장례 계약서 양식지를 임재만 앞으로 검정 볼펜과 같이 밀어 보냈다.
장례 계약서 양식지를 받아 든 임재만은 인적사항부터 바삐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상조회사와의 장례 계약서 작성은 자식들이나 보호자, 또는 나중에 유족들이 쓰는 행위이다. 죽기 전 선산 어디에다 묻어달라, 화장하여 좋은 수목 아래 묻어라, 절로 모셔 제를 올려라, 바다에다 풀어 영혼을 자유롭게 떠돌게 해달라, 그렇게 유언한 들 눈을 감은 뒤면 희망 사항일 수도 있다. 그다음은 산 자식들이나 유족의 상황에 따르는 선택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재만은 막상 자신의 장례에 대한 계약서를 쓰고 있다니 염라대왕 앞에서 이력서를 쓰고 있듯 야릇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젠 장례까지 챙겨놓고 죽을 수 있다는 게 행불행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막연히 앞날에 죽을 거다, 그 불확실한 사후를 자식들이나 유족에게 맡긴 채 이런저런 눈치 볼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죽은 일마저 챙기게 되었으니 사는 날까지 그럭저럭 살아가면 뒷걱정쯤 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묘한 감정이 일었다. 죽는다는 일이 코앞에 다가온 듯했다. 그런 감정에 사로잡혀 장례 계약서를 채워가던 임재만이 눈앞에서 지켜보고 있는 강 부장에게 물었다.
“여긴 어떻게 적으면 되오?”
두꺼비 같은 손을 가진 강 부장의 통통하게 살찐 손가락이 더디게 다가와 서류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 ‘장례 참석자’라는 글자가 박혀있었다.
“이곳에다 할아버지의 임종 자리에 반드시 초대할 사람이 있으시담 적으세요.”
임재만은 알겠다는 듯 망설이지 않고 볼펜 끝에다 힘을 주어 거침없이 써 나갔다. 아내였던 박영자, 큰놈 임장식, 딸애 임춘애. 그리고 막내 임성식?. 임성식은 이미 죽었으므로 쓴들 소용이 없음을 알았다. 물끄러미 이름을 내려다보던 임재만은 ‘임장식, 임춘애’ 이름 위에다 볼펜으로 쭉쭉 서너 번 그었다. 그 자식들이 자기 임종 자리에 올 리 만무했기에 쓴 것을 지워야 마땅했다. 볼펜 글씨라 지우개로 지워낼 수 없기에 금 그어 아님을 표시할 수밖에 도리 없었다. 그리고 한참 골몰하던 끝에 ‘박영자’에서 ‘박’ 자까지만 금을 긋다가 멈추기를 잠깐, 결심한 듯 입술을 깨물며 내처 쭉쭉 내 그었다. 아내였던 그녀도 이미 남의 여자니 올 사람이 아니었다. 임재만은 꽉 움켜쥐었던 손가락 끝을 맥없이 풀었다. 손가락에 잡혀 있던 볼펜이 임무를 다한 듯 떨어져 책상 아래로 떨어져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막내 놈은 죽으면서 보상금이란 걸 남겨 집을 사글셋집에서 조금 너른 전셋집으로 옮기는 데 도움을 주었으나, 나머지 자식들은 쌀 바가지가 선반에 오르내릴 만큼 보잘것없는 살림살이에서 벼룩 간을 빼먹듯 야박하게 야금야금 갈겨갔다.
그러나 그만하고 마무리되었다니 고달픈 삶이라도 꿈쩍거려 살만할 것인데, 큰놈이 사업에 실패하자 거처는 반지하 셋방으로 바뀌었고, 집안 살림은 반쯤 거덜이 났다.
그런데 아내는 달랐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살 수 없다면서 떠나길 작심하고 보따리를 싸놓은 여자가 퍼렇게 내뻗친 독기로 무장한 채 아랫목에 뒤틀고 앉아서 욕지기를 입에 담아 중얼대다가 임재만이 눈앞에 보였다 하면 줄 울음을 말소리와 섞어 크게 내뱉곤 했다.
“아이고오. 팔자도 이리 더러운 년 봤느냐. 떠난다는 년에게 여비도 안 준다니. 망할 놈, 고따위로 야박하게 굴면 어떤 년이 좋아할까. 엉, 엉, 어엉!”
그런 울음도 잦다 보니 이제 곡조마저 터득해서 쥐고 죄는 가락을 얻었다.
“떠나는 데는 멀쩡한 두 다리만 있으면 되는 거지. 얼어 빠질 여비는 무슨 놈의 여비야.”
임재만은 대거리하고 싶지 않았으나 여비를 내놓으라는 소리에 그만 속에서 쓴 물이 울컥 치밀어 올라 버럭 괌을 내질렀다. 여편네가 아니라 자신의 쓸개를 터뜨리는 화근 덩어리였다. 이미 집고양이가 바깥세상의 여느 수놈과 눈이 맞았으니 멋대로 돌아다니는 아무것이나 배만 맞으면 사는 들고양이나 다를 바 없었다.
석 달간이나 되바라지고 암팡스러운 성깔 잔치를 벌여 악세다 보니 임재만은 땡볕으로 짓이겨져 무른 푸성귀 같았다. 그는 하루라도 일찍 발목까지 빠진 진창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여비 타령을 하는 여자와 헤어지자면 어차피 몇 푼의 돈이라도 쥐여주어야 할 텐데, 아무리 눈을 밝게 뜨고 집안을 샅샅이 살펴보아도 땡전 한 푼 나올 건더기조차 없었다.
이리저리 궁리하던 임재만은 반지하 셋방을 빼서 더 높은 지대의 지하방으로 옮겨가며 차액을 주기로 작심했다. 앞으로 홀로 살아야 할 처지일 텐데 지하방이고 뭐고 간에 방과 부엌과 화장실 하나씩만 있으면 자고 먹고 싸는 데는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았다.
떠나는 여비를 움켜쥔 아내는 해외여행 가려고 공항으로 행하는 여자처럼 환한 얼굴로 큰 가방을 시멘트 바닥에 금이 남도록 덜덜 끌며 눈앞에서 휑하니 사라졌다. 그러면서 고작 남겨놓고 간 작별의 말씀이 이랬다.
“나 없이도 잘살아 보시오.”
찰거머리 같은 여자가 떨어져 나가니 마음은 때 벗긴 유리문을 통하여 바깥세상 보듯 그저 시원했다. 그래, 어차피 홀몸으로 태어났으니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다 종국에는 혼자 가는 것이 본디대로 가는 것이지, 임재만은 그런 체념을 가슴에 명패처럼 달고 아내가 떠나간 뒤부터 홀로 살아왔다. 기초 생활 수급자니 정부에서 쥐여주는 몇 푼에다 폐지를 수집해 얻은 돈이 생활비 전부였지만, 모두 곁에서 떠났으니 뜯기는 데가 없어 굶주림은 면할 수 있었다. 이젠 슬하에 오가는 자식도 없을뿐더러 일이 나면 숨넘어가게 달려올 일가붙이도 없으니 기다림도 바람도 또한, 없었다. 그렇게 얽혀 있던 끈을 풀어놓으니 주변에 거치적거리는 게 없어 신변이 한결 자유롭기는 했다.
임재만은 자신의 손으로 작성한 장례 계약서를 다시 살폈다. 부지런히 적었는데 아직 채워야 할 칸이 남아있었다. 어려운 삶을 살았던 만큼 죽음 길을 챙겨놓는 일도 생각처럼 간단하지도 않았다. 그는 지금껏 적은 인적사항을 다시 한 번 소리 내지 않고 읽어보았다. 그것들이 그와 동행했던 흔적들이고 이력들이었다.
‘그래, 드디어 나는 죽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음 그렇지. 주위 사람들을 번거롭게 하며 가뜩이나 세상살이에 시간 쫓기는 그들을 끌어모아 절대 낄낄대지 말고 큰소리로 웃지도 말며 가장 수심 찬 얼굴로 최상의 곡진한 조문 인사를 유족의 귀에다 애틋이 전해주는 도덕적 예의까지 강요하지 않아서 얼마나 부담이 없는가. 편안히 쉬자. 전생에서 고단한 삶을 살았으니 이제 저 세상에 가서는 최상류층 10% 안에 반드시 들어 전생에서 누리지 못한 것들을 마음껏 누려야지 않겠는가.’
그러나 한편 저 세상이 미심쩍은 것은 이 세상에서는 육신과 정신을 다 해도 살아가기에 힘이 부쳐 어렵게 살았는데, 육신마저 버리고 간 정신만으로는 얼마나 더 힘들겠는가. 저승에서는 어려움을 당하면 몸으로도 때워 넘긴다는 말도 불가능한 일이지 않은가. 이 세상살이를 접고 더 편하라고 선택한 저 세상인데, 죽은 뒤의 덕담은 보험사기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필시 그렇다면 아주 고약한 말장난질로 봐도 무방하리라. 이래저래 따져보아도 죽은 자만 섧다는 생각이 내처 들었다.
비상연락용 벨을 설치해 놓은 뒤 일주일에 한 번씩 들락거렸던 남혜경 복지센터 여직원이 할아버지에게 드릴 간절한 소망 하나가 있다고 정색한 채 말했다. 홀로 된 뒤 처음, 타인의 입에서 나온 부탁의 말이라 그는 그것만은 들어줄 작정이었다. 그 순간은 멀리 간 딸보다 눈앞에 바투 앉아있는 그녀가 제 피붙이 같았다. 그런데 그녀는 당뇨로 혈당이 높고 고혈압까지 겹쳤다면서 당장 술과 담배를 끊으라고 했다. 끊지 않으면 죽을 거라 야박하게 말하지 않고 철저하게 관리를 하지 않으면 ‘상당히 위험하다’고 어두운 얼굴로 에둘러 일렀다. 그런데 엄포를 놓지 않고 그게 제 소원이라고 남혜경은 간절한 눈빛으로 매달렸다. 맑은 그 눈빛에 임재만은 마음이 여지없이 허물어져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자, 할아버지 인적사항을 전부 적으셨으면 이제 저와 장례절차를 협의하셔야 합니다.”
느긋한 생각에 잠겨 있는 임재만의 사념을 깨뜨리며 시건방지게 들리는 투로 강 부장이 인적사항만 적은 계약서를 집어 제 앞으로 돌려놓았다.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리자면 지금부터 제가 묻는 말에 찬찬히 생각해 보시고 잘 대답하셔야 합니다. 할아버지의 사후 일은 지금 합의한 대로 진행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계약 금액과 직결되니 지금 형편을 곰곰이 참작한 뒤 말씀하셔야 합니다.”
강 부장의 말이 워낙 신중하여 임재만은 경찰관 앞에서 문초에 자백을 강요당하듯 잔뜩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험설계사도 속임수를 쓸 때는 엄중한 목소리로 그런 연막작전을 펴는 수가 더러 있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러나 의사를 단호하게 전할 필요는 있었다.
“알겠소. 물어보시오”
“우선 돌아가시면 부고를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런 생각이시라면 연락처를 작성해주시면 사후에 저희가 일일이 연락하여 영전에다 불러 세워드립니다. 물론 계약에 포함되고요.”
“아, 시방 누구 염장 지르는 게야? 아까 분명 내가 얘기 해잖여. 올 사람이 없다고! 나 혼자뿐이라고 처음부터 얘기 해잖여.”
임재만은 싸움도 불사하겠다는 듯 성정을 날카롭게 확 드러내며 콧숨까지 드높였다. 죽을 때 아들딸에게마저 알리기를 꺼리는 세태로 변해가는 일부 계층에서 그것들이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강 부장은 깜짝 놀라 마주 서려다가 상대가 노인인지라 얼른 머리를 조아리며 언성마저 낮췄다.
“할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진정하세요. 서류를 순서에 따라 작성하다 보니 그랬습니다.”
“부고는 일없으니 하지 마시오.”
“예, 알겠습니다. 부고는 하지 않는다고 정리하겠습니다. 다음은 빈소를 차리시겠습니까?”
“빈소?! 하 참, 딱하네. 올 사람이 없는 빈소? 조문 올 사람이 있어야 혼도 기다릴 것이 아닌가, 이 사람아. 그건 암만 생각해도 열없는 짓이지. 아예 없애버리자고.”
“그럼 빈소를 차리지 않는다. 좋습니다. 그리고 장례 기간은 며칠로 할까요?”
“장례 기간? 아, 좀 전에 말했잖여. 올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을 텐데 삼일장, 오일장이 죽은 사람에게 뭐에 필요해. 죽을 때 굳었던 피가 몸속에서 풀리면 끌어 묻어도 되니 그때 바로 화장하면 되잖아. 죽은 걸 며칠 둔다 해서 벌떡 살아날 일이 있지도 않을 텐데…….”
“할아버지, 빨리 서두른다 해도 이틀은 주셔야 합니다. 화장 시간을 잡아야 하고 또 사망신고 절차도 밟아야 하니까요. 아침 일찍 돌아가신다면 이틀이 넉넉하지만, 저녁이면 우리가 일 처리에 바빠서 환장한다니까요.”
말인즉슨 죽을 때도 저녁나절보다 아침나절이 좋단다. 죽을 바에는 한나절이라도 당겨서 죽는 게 죽음을 치러내는 사람을 편하게 해준다는 말이다. 아이의 사주를 위하여 인위적으로 분만일을 수술칼 끝으로 조절하듯 죽음 길도 그런 원리가 적용되는 모양이다. 따져보면 말버릇은 고약했으나 일리는 있는 소리여서 나무랄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래 그러 혀. 죽으면 썩어질 몸인데 오래 둔다고 돈 되겠어? 그러니 가장 짧은 거로 하자고. 그게 비용은 훨씬 적게 들 게 아니여?”
“그럼 이틀로 하겠습니다. 그러고 수의는 하시렵니까? 혹 집에서 미리 준비한 거라도 있으시담 그걸로 하셔도 됩니다.”
임재만은 왠지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부아가 슬그머니 머리를 치켜들었다. 여태 강 부장이 가슴 밑바닥을 긁어대는 소리만 골라가며 지껄이기 때문이다.
“아, 수의를 마련해 놓을 여편네가 겹에 있다면야 혼자 이런 계약서를 쓰겠어? 아이코 이거 갑자기 열 받네.”
“할아버지 진정하시고요. 어이 윤지수 씨! 여기 음료수 한 잔 가져와요.”
강 부장이 손에서 볼펜을 놓으며 임재만의 울화를 진정시키려고 여직원에게 서둘러 심부름을 시켰다. 분위기를 식힐 짬이 필요했다.
“할아버지 계약사항에 다 적어놓아야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 죽은 다음에 문제를 일으킬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런 걱정을 하시오?”
“할아버지는 모르시는 말씀인데 경찰관이 임석하면 계약 조건과 틀린 사항이 있으면 저희는 사기죄로 입건됩니다.”
“허 그 참, 세상 우습구먼. 산 사람은 제대로 사는가 살피지도 않을 판세인데 죽은 사람까지 공권력이 나서서 챙기다니 그거 참으로 같잖구먼. 살아있을 때는 모른 척하다가 죽은 다음에 제대로 죽었는가를 감시 감독하다니 웃겨도 한참 웃기는 짓이 아닌가?”
여직원이 오렌지 주스를 쟁반에다 받쳐와 식탁 위에다 조심스럽게 내려다 놓았다. 임재만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농밀하게 보이는 노랑 액체를 들어다 바싹 타들어 간 입에다 부어 넣었다. 그것을 마시자 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처음으로 창자 밑바닥까지 시원함을 느꼈다.
“천천히 드시면서 말씀을 주십시오. 자신의 장례 계약서를 작성하시는 분들의 심경을 알 듯도 합니다. 그러나 확실하게 해놓는 게 저희 일입니다. 할아버지, 그럼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수의를 마련해 놓지 않았다면 새로 하는 거로 하시겠습니까?”
“그걸 꼭 입고 가야 저승사자가 데리고 간다 하든가 요?”
임재만은 여태 꽁해진 속이 풀어지지 않았는데 다시 급히 꽁해지려는 마음을 참아내며 심술궂게 어깃장 놓았다.
“아이 할아버지도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승길은 전생에서 죽을죄를 진 사람도 버리지 않고 데리고 간다고 했는데, 의복을 탓하겠습니까? 한복도 깨끗이 빨아 입으면 가시는데, 문제 되겠습니까.”
“그려 그러해여, 수의를 끌어당기며 큰소리로 통곡할 피붙이도 없는데 수의가 뭣에 필요해. 내가 입었던 한복을 깨끗하게 세탁해 놓을 거니 죽은 뒤 그걸로 입혀 줘. 당신 말이 맞는다면, 어디 저승문을 통과하는데 옷의 가치를 따질 텐가? 늘 몸에 걸치던 것이 편안한 것이지. 아마 이승에서 묻었던 때를 깨끗이 빨아 입고 가면, 별 탈 없이 저승문은 통과할 것이여.”
“예, 알겠습니다. 수의는 입던 한복으로 하겠습니다. 그다음이 가장 중요한 일인데 장례를 치르는 방법입니다. 당연히 화장하시기를 원하시지요?”
“그건 당연한 일, 물으나 마나 한 일 아니오?”
“화장한 뒤 뼛가루를 어떻게 하실 겁니까? 봉안당(奉安堂)에다 산골장(散骨葬)으로 하시겠습니까?”
뼛가루 얘기가 나오자 임재만은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 잠시 대답을 멈추고 심호흡을 뱉어냈다. 자신 죽음에 대한 일이 눈앞 현실로 당장 다가든 듯했다. 아니 흔히 봐왔던 그런 죽음의 장면이 선연하게 떠올라 보였다. 봉안당도 그렇다. 찾을 사람이 없는데 앞으로 봉안당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봉안당은 아예 생각지도 못했어. 산골장이라 허, 허. 그것도 좋지. 모질게 살았던 몸이라 한이 져서 흙에 묻힌 들 쉬이 썩겠는가. 아예 화장으로 때 묻은 육신을 털어내고 남은 뼈는 가루가 되도록 부서 산이든 바다든 흩뿌려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듯 일시에 없어지는 게 좋지. 암 그게 아주 좋지. 내가 이제 이승에 무슨 미련이 있다고…….”
임재만은 허허롭게 헛웃음을 날렸다. 자신의 뼛가루가 산이든 바다든 허공에 뿌려져 바람결에 날리며 허옇게 떨어지는 정경이 눈앞에 선연하게 보이듯 했다.
“어디에다 산골(散骨) 하기를 원하십니까? 산으로 할까요, 바다로 할까요?”
협의가 진행되어갈수록 강 부장이 각박하게 여길 만큼 임재만의 대답을 정확하게 요구했다. 뼛가루를 뿌리는 일로 장례의식은 끝날 것을 알리듯 강 부장이 쥔 볼펜의 위치가 계약서 끝으로 내려와 있었다.
“가만있자. 내 평생 여행이란 한 번도 가지 못했는데 바다가 낫겠지? 출렁출렁 이곳저곳으로 떠다니게. 암 그게 썩 좋고말고. 으음 마침 내가 태어난 곳이 동해 바닷가니 그곳이 좋겠네.”
임재만은 평생 걸어가고 싶었던 길을 떠나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생활에 여유라는 것을 느껴보기는커녕 누군가 쫓아오는 것 같아 가고 싶지 않았던 길만 쫓겨서 숨 가쁘게 줄행랑치듯 이렇게 세상 끝자락까지 살아왔다. 가고 싶은 길은 있어도 마음대로 갈 수 없었다.
장례 계약서 작성은 두어 시간 안에 끝났다. 강 부장이 그것을 임재만 앞으로 내밀었다.
“할아버지 한 번 확인해 보시고 마음에 들지 않으신 부분이 있음 얘기하십시오.”
“어련히 알아서 하지 않았겠소?”
“물론입니다. 제가 한 번 중요한 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대략 추려보면 부고는 없다. 빈소는 차리지 않는다. 장례 기간은 이틀이다. 한복으로 수의로 한다. 화장하여 고향 앞바다에 산골(散骨) 한다. 모두 협의한 대로입니다. 할아버지 맞으시지요?”
“틀림은 없소. 이제 남은 일은 계약금이 얼마인지 말씀하시오. 지장을 여기다 찍으면 되는 거요?”
“예 그곳에다 찍으시면 됩니다. 백만 원을 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세한 것은 금방 우리 윤지수 씨가 뽑아드리겠습니다. 어이 윤지수 씨! 경비를 계산해 할아버지께 설명해 드려. 할아버지 지금껏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끝났습니다. 이젠 저쪽 의자에서 잠깐 기다려주십시오.”
강 부장은 할 일을 모두 끝냈다는 듯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러나 임재만은 할 일이 하나 남아있었다. 여생에 남은 단 하나의 일, 혼자서 죽는 일이 그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끝] [삼척문단 제25호 2016년도 게재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