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에서 세 번째 가을을 맞이한다.
세 돌 짜리 꼬맹이의 놀이학교 운동회를 한강변에서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나는 문득 초저녁에 하는< 예술의 전당> 음악분수 쑈를 보고싶었다. 공구르며 달리기도 하고 가장 먼 데서 오신 분 나오세요! 라고 한 진행자의 말에 부산에 온 내가 머일리지 상금을 받아낸 뒷 시분이 그냥 앉아 있기는 날씨도 건강도 너무 좋았다.
집에 있을까 하다 마누라 따라 나온 남편은 아파트 정문 앞에서 각각 다른 노선을 고집했다. 나는 애초부터 밤하늘의 분수를 보러 예술의 전당으로 가고자 했고, 그는 몇 번 씩이나 본 분수는 이제 그만 하고 영화보러 강남으로 가자는 것이다. 정반대 방향인 두 곳은 걸어 30분이면 닿는 거리였다.
가고 싶은 데로 각각 갑시다. 라고 말을 해놓고 몇 걸음 반대방향으로 걷다가 내가 마음을 바꾸었다. 별로 볼 영화도 없지만 내가 남편을 따르기로 하고 영화관으로 갔다. 역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어 망설이다가 이번에는 남편이 나를 따라 예술의 전당으로 가기로 했다. 강남역 9번 출구에서 예술의 전당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남양주행 직행버스도 정류소에 닿았다 떠났다. 남양주에는 아는 화가의 작업실도 있고 미디어영야ㅑㅇ학과 축제로 사흘간 머문 적도 있다. 그때 남양주시가 아름답다는 기억을 가지고 있어, 남편에게 "우리, 남양주에 가 볼까. 그곳에 전원주택도 많던데." 라고 지나가는 말처럼 했더니, 남편도 그럴까 하는 기색이었다. 결심을 하는 사이 예술의 전당으로 가는 마을 버스를 두 대 그냔 보내고서 남양주로 가는 직행버스에 올랐다.
이십 분이면 족히 통고할 잠실 부근을 야구경기가 있어서인지 한 시간이나 걸렸다. 해가 있을 때 나온 것이 극장으로 정류소로 오가는 사이 어둑해지고 남양주입구에 닿았을 때는 어둑한 시간이 되었다. 되돌아오려면 너무 늦은 귀가가 될 것이라 남양주 초입에서 우리는 강남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그래도 영화가 낫다 라는 남편을 따라 영화관으로 가다가 서점이 눈에 띄어 들어갔다. 나는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을 사려고 벼르던 터이고, 남편은 외손주에게 줄 동화책을 사고싶다고 했다. 마침 한중록을 산 나는 시계를 보니 여덟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분수쇼는 아홉 시이니 지금 곧장 가면 가능한 시간이었다. 재미없는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죽이는 것보다 예술의 행기가 가득한 그곳에서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물줄기의 향연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책값 계산을 마친 나는 아이의 동화책을 고르고 있는 남편에게, 따로 ㅐㅇ동합시다. 나는 예술의 전당으로 갈게요. 재빨리 말하고 밖으로 나왔다.
제각기 가고 싶은 데로, 돌아갈 때는 같이 그와 나의 행동지침이 묵계로된 지 꽤 오래이다.
걸어서이거나 택시로 예술의 전당으로 갔어도 마을버스를 타고 그곳으로 가기는 처음이었다. 강남역 9번 출구에서 마을버스가 선다는 것만 알고 있는 나는 버스에 올랐다. 9시 분수쇼를 보기에는 넉넉한 시각이었다.
그런데 버스를 잘못 탔다는 것을 잠시 후에야 알았다. 한참을 구석구석 돌다온 버스는 내가 탔던 건너 편에 다시 머울렀고 다시 꾸불꾸불 돌아 걸어서도 30분이면 갈 거리를 뒷길을 두르고 둘러 한 시간 가까이 되어서야 예술의 전당에 닿았다. 이곳으로 오려면 반대쪽에서 차를 타야 된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았다.
에스컬레트를 타고 올아간 광장은 찬 기운이 돌면서 무대 끝난 뒤 정경이었다. 고요한 적막이 흐르고 희미한 불빛에 나뭇잎들이 미세하게 움직이며 초승달만 떠 있었다. 그대로 돌아서기 아쉬워 허한 마음으로 돌층계를 올라서는데에서 좀 허한 마음으로 돌층계를 오르는데, 아, 그때 'Autum Leaves'가 흐르면서 사방이 밝아지더니 분수대에서 은색 물줄기가 보석처럼 차올랐다. 나는 너무 놀라고 기뻐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잔디밭에 퍼지고 앉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감미로운 음악과 보석보다 아름다운 물줄기가 발하는 자연의 황홀함에 빨려들었다. 분수 뒤에는 소나무가 산수화를 이루고 소나무 위에는 푸른 어둠이 깊은 바다처럼 두루말이하고 있었다. 곡명이 바뀔 때마다 또 다른 감흥이 일고, 이제야 시작하는 분수쇼가 고맙기 짝이 없었다.
분수는 여러 개의 산등성이를 이루었다가 학의 날개처럼 활짝 퍼며 긴 실루엣을 이룬다. 부산의 다데포낙조분수가 눈앞에 겹쳐졌다. 기네스북에 올랐던 낙조음악분수는 젊은 사하구청장의 야심찬 업적이었다. 그가 우리나라 최연소자 구청장으로 당선된 그 즈음에 나는 사하문인들의 회장을 맡아 각종 행사를 벌이게 되었다. 젊은 구청장은 행사 때마다 관심을 보이며 참여해주었다. 당시에 을숙도문화회관을 자주 이용할 목적으로 관장을 만나러 갔는데 젊고 씩씩하고 성실한 인상을 가진 임채균 관장이었다. 하구언을 매일 걸어 출근한다는 그는 진취적이고 예의바르며 시원시원했다.
(시간 관계로 저장만 하고 나중에 계속 쓸 것입니다)
첫댓글 환상의 음악 분수 취하면 마음은 금새 날개를 달고 날아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