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자 살 (자아를 찾아서 중에서 )
/ 철학자시인 : 박옥태래진
" 무지한! 무지한! "
태진은 그렇게 울부짖으며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는, 세상이 온통 썩은 쥐의 뱃가죽 속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간들은 그 가죽 속의 구더기 떼들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심한 구토를 하면서, 무지한! 무지한! 하고서 울었다.
산을 울리는 그의 울음소리는 꼭 짐승 소리 같았다.
요즘 들어 그는 날마다 술에 찌들었다. 누구와 함께 마신 것도
아니요, 언제나 혼자 마시고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울곤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오늘에야 자신을 마무리 지으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미친 듯이 새벽의 어두운 산자락을 따라서, 산등
성이를 향하여 그렇게 급하게 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온 몸에서는 토한 오물 냄새와 땀 냄새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는 코뿔소처럼 김을 푹푹 내뿜고 있었다.
더듬어 오르는 새벽의 어두운 산길은 험하기만 하였다.
그렇게 미친 듯이 산을 오르는 그의 뒤로는, 지팡이를 든 백발
의 노인과 한 젊은이가 멀지 감치서 그를 따르고 있었다.
그들이 자신의 뒤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었다.
태진은, 자신의 지나간 삶들이 모두가 허무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세상과 자신 모두가 무지했기 때문이라고 생
각했다. 그래서 세상과 자기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지난날들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 빌어먹을 놈의 세상! 어느 세상을 믿고 어느 놈을 믿을 수 있
단 말인가? 그리고, 내 자신 또한 이제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
인가? 40년이란 긴 세월의 삶을 살아오면서, 나답게 살기 위하
여 산다는 것이, 호구지책으로 자신을 죽이고서 남처럼 살아 왔
으니 말이다."
그는 그렇게 내뱉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피와 땀으로 일구었던 삶의 터전을 잃어 버렸다.
그리고 하나 뿐인 가정마저도 잃어 버렸다.또한 자신이 애써
모았던 재산들도, 배불러서 더 배고픈 자들과 간사함을 지혜라
고 말하는 자들에게 모두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에게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차가운 비웃음들뿐으
로,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이제는 무지한 자기 몸뚱이 하나 쉴 곳조차도 없어져 버린 것
이다. 그리고 토끼 눈을 하고 있던 어린 자식들을 십여 년이나
혼자서 키우다가, 이제는 그 자식들마자도, 친척이라는 알량한
사슬에 비겁하게 매달아 두고 떠나 왔으니, 그는 이미 그 곳에
서 죽음을 매달고 온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을 붙잡을 수 있는 이유와 삶을 엮어 갈
수 있는 볼모가, 이제는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더 미워해야 하고 무엇을 더 사랑해야 하며, 무엇을 또
버리고 무엇을 더 찾아야 하는가 하는 것도, 이제 그에게는 어
제의 일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 고통은 희망의 씨앗이요 부서짐은 창조의 시작이다.' 라고 하
던, 그의 젊은 날의 의지들도 모두가 도망을 간 것이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 인간의 완성처럼 여겨
지던 그의 지난날의 도덕들마저도, 모두가 무덤이 되어서 그의
자존심을 모두 부숴 버렸다.
태진의 천성은 착하기만 하였다.
그러나 세상은, 착한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 하고 비웃었다.
그러한 속에서 그는 무너져 간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무지하고 무애한 세상 속에 적응하지 못했던 자
신의 설익은 능력 때문이기도 했었던 것이다.
" 빌어먹을! 내가 무지하고 저들이 모두 무지한데 어디에다 한
탄을 한단 말인가? "
태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산길은 높이 올라갈수록 더욱 험했다. 그는 나뭇가지들을 헤치
며 걷고 있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자살을 위하여 산을 오
르는 지금의 자신을 생각하니, 그는 미칠 지경에 있었다.
차라리 미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잊고서 편할 것이었다.
그러나 미쳐 버리고 싶어도 미쳐지지가 않았다.
그리하여 지금의 그는, 죽음만이 자신의 순수한 자존심을 찾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발바닥이 끈적거리는 것이 피가 흐르는 모양이었다.
다리도 절룩거리고 있었다.
산을 오르면서 바위에 무릎을부딪쳤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몸이 아픈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태진은 죽음을 위해 자신이 산을 오르는 것에 대하여, 한 편으
로는 슬퍼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선택에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자신을 위로해줄 자도 없었고, 자신의 자존심을 찾아
줄 자도 없었다. 그리고 그에게 대화를 해 줄 상대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빨리 산 위로 올라가, 자신의 육신을 세상에 대
한 거부의 화살로, 높은 산 위에서 소리치며 날려 보내려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믿음을 부셔 버리고, 자신의 사랑을
배신으로 갚은 자들의 목구멍을 향한 화살이 되고자 한 것이
었다.
그렇게 그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자살을 위하여, 혼자 산을
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덧 산봉우리 밑에 다다르자 날이 밝아 왔다.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산들이 모두 일어나서 그의 앞을 가로막
고 서 있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빙 둘러 다섯 개의 산봉우리들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이상한 새벽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는 이곳을 언젠가 여러 번 와 본 산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의 앞에 있는 가장 높은 산봉우리를 올려다보았다.
웅장한 큰 산봉우리는 양 옆으로 어깨를 내리 뻗어서, 작은 산
봉우리들을 다시 솟구치고 병풍을 두르듯 감싸고 있었다.
그는 큰 봉우리의 우측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눈동자처럼 숲을
내려다보고 있는 검은 석굴 하나를 찾아냈다.
그러자 그는 가파른 절벽 위에 있는 석굴을 향해 또다시 숨차
게 오르기 시작했다.
" 바로 저 곳이다! 저 곳이라면 내가 조용히 죽을 만한 곳이다.
아니 저 곳을 오르다가 떨어져 죽어도 썩 어울릴 것이다!
무지하고 무애한 인간들을 향하여, 내 순진해서 어리석었던 몸
뚱이를 화살처럼 소리치며 날려 볼 만한 그런 곳이다."
그는 혼자서 그렇게 중얼거리며 깎아지른 절벽을 기어올랐다.
바위 틈새로 자라나 있는 작은 나뭇가지들을 휘어잡고, 금방 미
끄러질 것 같은 절벽 모서리를 밟으면서 기어올랐다.
석굴로 가는 길이 있을 것 같은데 그는 그 길을 찾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렇게 오르면서 계속 중얼거린다.
" 나는 졌다! 삶의 전쟁터에서 졌다! 저들 거짓 양심의 가면 싸
움에서 졌으며, 폐쇄된 관습의 가치관에서 사육된 내 어리석은
도덕들에게 졌다. 명예와 돈, 그리고 탐욕의 열매들을 하나라도
더 따먹기 위하여 서로를 시기하고 죽이는 싸움터에서 나는 낙
오한 것이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이번엔 피식 웃어댔다.
" 이제는 나를 괴롭힐 놈이 없으리라! 가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으니까, 내게서 빼앗아 갈 것 또한 없기 때문이다."
하면서 웃음을 흘렸다.
그는 남쪽 해변 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업을 겸한 농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그 마을에서 신
동으로 불리며 자라났다.
얼굴 또한 빼어나게 잘 생기고 귀골스러워 그 마을에선 모두
그가 보통 아이가 아니라고 했었다.
그에 대한 그의 부모님의 기대 또한 대단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나이 사십이 넘도록 그 어떤 큰 인물도 되질
못했다. 고작해야 서울에 가서 공부를 하고, 돈을 조금 벌어서,
제조 회사 하나를 창업했다는 것 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전에 거래 선의 부도로 문을 닫고 말았다.
그의 천성은 너무 착했다. 그래서 남에게 주는 것은 앞장서서
주면서, 받을 것은 제대로 받지를 못하는 성품이었다.
어찌 보면 그것은 그 집안의 내력인지도 몰랐다.
그의 부모는 물론이요, 그의 조상들도 모두 효도와 우애의 대
를 이어온 집안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태어난 시골 마을 큰길가에는 고풍스런 큰 비각이 하나
있다. 그 비각 안에는 그의 가까운 조상님께서 임금으로부터 직
접 하사 받은 효행비가 세워져 있다.
그것은 그 지방의 본보기요, 긍지이기도 했다.
그러한 집안에서 태어난 자손이었기 때문에, 그의 천성은 자연
의 순리대로 착하게 사는 그런 성품을 이은 것이었다.
태진은 산을 오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음악을 좋아해서 작곡을 공부했었다. 그리고 한 때는 철
학에 심취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는 자연을 사랑해서 여행을
즐기고 수많은 산들을 찾아다니기도 했었다.
그러한 속에서 그는 자연에 대한 깊은 사색의 글들을 써서 신
문에 여러 번의 기고를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헛것일 뿐이었다.
그가 쌓아 온 모든 것들이 모두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천성적으로 물질 위주의 복잡한 도시 생활에 맞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자살을 결심하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이
었다.
그는 아슬아슬한 절벽을 곡예사처럼 기어올랐다.
아침 태양이 산 위로 높이 솟아서야 그는 높은 석봉에 위치한
석굴에 다다랐다.
그 순간에 그는 자유를 위하여 세상을 탈출한 탈옥수의 기분을
잠시 느끼었다.
그리고 석굴 입구에 들어서자, 기진맥진하여 석굴 바닥에 뒹굴
듯 쓰러졌다. 그는 누워서 거친 숨을 내몰며 승리자의 기쁨 같
은 모호한 기분을 맛보았다.
그때 백발노인과 젊은이는 산봉우리에 앉아서 태진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젊은이가 노인께 물었다.
" 저자의 세상의 삶은 왜 저리 힘이 듭니까?"
" 잘못 된 것은 아닐세! 타고난 운명과 천성이 인간의 도덕보다
더 큰 천명을 받고 태어났기 때문일세. 그러기에 자신의 자질과
이 시대의 도덕이 맞지 않기에 그러는 것일세! 그래서 그 너울
과 고통을 벋고 자신을 다시 찾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지."
" 저 친구가 저를 알아볼까요?'
" 결혼 후 20여 년을 여인과 돈과 명예 속에서 자기의 참자아를
잃었으니, 알아본다한들 쉽게 적응이 안 될 걸세."
노인의 말에 젊은이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동녘으로부터 아침 햇살이, 지쳐서 누운 태진의 온 몸을 하얗
게 내려 비추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고개를 들면서 먼 산을 바라본다.
따뜻하고 나른한 햇살 위로 하얀 호랑이 한 마리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산봉우리 쪽으로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호랑이는 산봉우리에 내려서 꼭대기 위를 어슬렁어
슬렁 몇 바퀴를 돌았다.
그러더니 그 백호는 갑자기 산 아래로 순식간에 내달아 와 태
진에게로 덮쳐들었다.
순간 그는 크게 소리를 지르고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지쳐서 누워 있던 사이에 잠깐 꿈을 꾼 것 같았다.
그는 진땀을 쭉 흘렸다. 그리고 정신을 다시 차리고서 석굴 안
의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사람들이 왔다 간 흔적들이 많이 있었다.
이런 높은 곳에, 자연적으로 생긴 석굴이 인위적인 것처럼 방
같이 넓고 깨끗하니 모양새가 좋았다. 사람 다섯 명은 족히 쉴
수 있도록 바닥이 반듯하게 바위로 깔려 있었고, 길게 깊이 들
어간 어두컴컴한 안쪽 구석에는, 아주 오래되어서 낡아 헐은 돗
자리도 보였다.
그리고 입구 왼쪽 벽에는 붉은 페인트로 커다란 십자 표시가
그려져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서 오른쪽 벽을 또 보았다.
그러자 그쪽 편엔 절 표식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타다 남은 양초 토막도 몇 개 있었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올
라와 제각기 자기들의 신을 믿으면서 이곳에서 기도와 수도를
가끔씩 누군가 했었던 자리인 것이었다.
그는 잡신들이 함께 우글거리며 공존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석굴 안이 스산하게 느껴졌다.
그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자 발밑에 무엇이 걸리면서 소리를 냈다.
살펴보니, 회색빛 낡은 판자 쪽 위에 희미한 글씨로 [이 곳은
살아 있는 신의 성전이니 엄숙하라.] 라고 씌어져 있었다.
" 제기랄! 어리석은 짐승들이 이런 곳까지 찾아올라 와 스스로
의 몸을 묶으며, 더욱 가축이 되고자 발버둥을 치다니, 참으로
비참하기 짝이 없다. 빌어먹을! 신이 다 무엇이고 기도가 무
슨 소용이더냐! " 그는 그렇게 내뱉었다.
그리고 나서, 징그러운 무엇을 집어던지듯, 그 팻말을 집어서
석굴 안쪽으로 힘껏 내동댕이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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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으음~! 신음소리가 들려 온다.
저승에서인지 석굴에서인지 모른다.
산천은 푸른데 어이 바람이 우는가?
끈적거리는 핏자국이 영혼의 발바닥에 깔리고 있다.
대지의 신음이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든다.
!!!......
어느 틈에 벌써 2월 마지막 날 입니다....
짧은 2월이라 더 빨리 지나간 것 같습니다
아쉬움 남지 않도록 마무리 잘 하시고....
행복 가득한 날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