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과 저항, 그리고 자유
- 2023, 06, 06, 망종(芒種)
벩송은 철학은 문제를 해소하는 작업이라고들 한다. 그 문제는 삶에서 생기는 온갖 난문제(aporia)로서 부조리들과 불협화들을 생산한다. 이것들의 해결에서 간단히 모순의 해소라고 하기도 하는데, 모순의 해결은 문제 해소의 노력과 전혀 다르다. 모순은 사고의 극한에서 끝났다는 효과일 것이다. 삶에서 여러 계열과 선들의 마주침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사건과 같은 난문제는 행동의 귀결에서 과정과 시간이 지나야 풀어지는 경우가 많다. 시련의 해결을 들뢰즈는 흥미있게도 스토아학파와 맞붙여서 불교에서 화두(문제-시련)의 방식이 있었다고 한다. 일단 화두는 선문답과 공안하고도 다른 방식이다.
문제에서는 고통과 곤란에 대해 그것들을 해소하는데 실행하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고통을, 조에 부스케(1897-1950)의 고통처럼, 나머지 생애 동안 지속하여 안고 가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자신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지니고 산다. 그런 문제들에서 어느 시기가 지나서 해소되는 경우들이 많은데, 이 경우에 세월이 약이라고 한다. 해소되었을까? 아픔이 습관 속에 응어리로 뭉쳐서 외피에 당은정을 바르듯이 포장하여 감추어진 또는 잠재화되어 남은 것이리라. 중생 속에서 살아가면서 실행과 더불어 푼다는 의미에서 화두(문제-시련)을 보았을 것이다. 화두 또는 보살행은 헤라클레스를 모방하려는 퀴니코스 학자들과 초기 스토아학자들의 문제의식과 닮았을 것이다.
사고 속에서 풀려고 하는 면벽과 선문답은 다른 의미(방향)를 지닐 것이다. 산중 명상이나 방콕의 성찰은 세상과 우주의 변전에도 사고 속에서 풀 수 있다고 여길 것이고, 이 사고 속에서 만들어진 개념과 관념으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여길 것이다. 그럼에도 화두의 시련-풀기는 중생 속에서, 인민 속에서 있는 사건들과 상태들 속에서 일 것이다.
“좋게 말할 때, 돈 내 놓을래, 한 방 맞을래”라는 조폭의 갈취에 대해,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는 불교에서 선문답(문제-응답)과 더 많이 닮았다. 이런 문제를 이항대립이라고 하면 안 된다. 두 개의 선택지라는 것은 사건과 상태 속에서는 있을 수 없다. 얼마나 많은 선택지들이 있음에도 유용하고 안전한 선택지를 고르는 데 익숙하여 둘 중의 하나라고 하는 경우이나, 삶은 머리에서 사고하듯이 결과(효과)로서 하나의 방향이 있고 이전에는 갈래의 길이 있었다고 하지만, 결과와 다른 길은 두 갈래의 길 중의 선택받지 못한 길처럼 추상적 논리로 사고하는데서 이항 대립이라는 선택지의 효과를 묻는다.
둘 중의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고 힘차게 아랫도리를 차고 튀는 방법도 있다. 막상 당한 착한 아이는 조폭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보복이 두렵다고. 다 내주고 뺨도 맞고 풀려날 수도 있다. 그러나 저항이 보복과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는 다른 길일 수 있다. 그런 조폭 같은 짓을 하는 극우의 방식은 독일의 비스마르크부터라고 하는데, 왜 시기에 이항대립이 극을 이루었을까? 묘하게도 일제가 저항하는 인격들을 제거 하는 방식으로 조선인 부역자들을 부추겼다. 그 일제의 부역자들의 선택지도 이항대립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 착각에는 미 군정에서도 있었다. 그 짓은 천연스럽게 미군정의 한 장교가 하였다고 하니, 일제의 순사의 하수인을 부리는 방식을, 하우스만(1918-1996)도 조폭 똘만이 부리듯 하였다. 달리 행동하기는 중요하다. 이 소중하고 빛나야할 행동이 왜 이항 대립에 묻혀서 적대시하고 악마시하는 것일까? 어느 시대나 어느 사유에서나, 달리 행하기, 달리 실헌하기 달리 방향잡기 등등은 실천의 영역들만이 아니라 학문의 영역들에서도 일어났었고, 일어나고 있다. 발산은 생명의 자발성의 명증한 일이다.
수학의 문제를 푸는 방법이 50여 가지가 넘는다 라고 말한 오일러의 경향이 아니더라도, 세상사의 일들의 해결과 해소 방식들은 매우 다양하다. 아마도 인류의 수만큼 경향이 생겨날 수도 있으리라. 그런데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것은 여전히 존재와 무처럼 절대 모순이라는 순수사유의 것을, 현실의 사건들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선승의 이야기에서도, <남전선사(748-834)이 선원의 동당과 서당의 선승들의 고양이 불성에 대한 대결에서 답을 찾지 못하면 고양이를 죽이겠다고 했었고, 선승들이 해답을 내지 못하여 고양이를 죽였다. 외출했던 조주선사(778-897)가 저녁에 돌아와 그 이야기를 듣고서, 남전이 조주에게 “만약 그대가 그 장소에 있었더라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조주의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조주는 말없이 곧장 짚신을 벗어 머리위에 이고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고 한다.> 달리 행동하기란 문제-응답이 아니라고 하는 이들에게는, 그 문제제기가 잘못되었다고, 또는 가정의 설정이 잘못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린 시절에서부터 일반화된 용어들을, - 구체성을 버리고 추상화의 길로 가게 하는데, - 배우고 익히면서, 나중에는 그 용어들이 당연히 진리이고 완전한 개념과 같은 것으로 여긴다. 착각이라고 생각하여 반성하기보다 습관에 익숙하게 살면서 평안을 추구하고서, 달리 생각하는 이들을 잘못, 오류, 거짓, 악의 축으로 여긴다.
초등과정에서부터 중등과 고등과정을 거치면서 배웠던 원리와 법칙들이 당연히 전제로서 진리이며 완전이라고 여긴다. 배움에는 순서와 과정이 있다는 의미에서 불교에서 공안(公案)의 순서를 따라 익히는 것도 여러 방법 중의 하나이다. 공안 단계에서 선문답의 단계로, 그리고 화두로 확장하는 방식을 생각한다면, 삶에서 사건들은 일어나고 있으면서, 시간의 경과로 곧 바로 일어났던 사건으로 되어버린다.
일어났던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서, 얼마나 많은 관계, 연관, 공감, 공명에 따라 여러 갈래로 있었음에도, 하나의 계열로서 원인-결과로서 한정 지우려는 논리적 사고를 가르쳤다. 그 사고에서 사건들은 과학이라는 이름을 갖기에는 매우 한정된 경계 안에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논리적 사고 한계 안에서 서술 또는 명제와 판단을 진리라고 설정하지만, 이는 자연을 다루는 과학도 아니고 인간의 삶을 다루는 담론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경계 짓는 사고의 논증들을 독사(doxa)라고 또는 관례적 신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사고는 독사에 대항적인 다양한 가지치기를 파라독스라고 여기는데 비해, 어느 한 파라독스는 독사도 파라독스라고 한다. 여러 갈래의 다양한 사유의 전개는 다양한 달론들과 학문들을 낳았다. 각 학문들 각각이 독사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논리의 독사가 이번에서 파라독스가 된다.
논리에 의한 독사의 진리를 우선으로 하던 시기에서, 상부 몇몇은 인간인데 비해 하부의 노예, 농노, 노동자, 중생은 논리적으로 개돼지 취급을 받아왔다. 이 중생 또는 인민이 스스로 인식과 현존의 지위를 차지하면서 자신들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점을 자각의 길로 간다. 상부가 인민을 개돼지 취급한다는 점에서, 그 거울에서는 개돼지의 모습이 투영되어 상부이라는 것이다.
심층이 스스로 인성을 찾아가는데도, 상부는 여전히 마치 거울 보듯이 개돼지의 투영을 벗어나지 못하여, 상부가 현실적으로 개돼지로 비춰진 것이 오늘날 자본주의 제국의 환상 또는 망상일 것이다. 왕이 스님에게 스님은 돼지 같다고 했을 때, 스님이 왕에게 보살 같다고 하는 일화도 있었다. 요즘 민중을 개돼지같은 취급을 하는 이들이, 그들 스스로 개돼지로 살고 있다고 하는 풍자는, 현실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시대를 인정하는 안정과 편리에 빠져 있다. 싯달다는 그 옛날에도 그들에게 탐만치에 벗어나라고 설법을 했다.
상층의 논리적 사고는 자신의 지위가 권리상 어디에도 있다는 보편적 관점을 당연하다고 여김에도, 현실적으로 그 지위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있다고 여기는데서 신실재론의 주장이 나오고, 또한 그 지위가 인민의 투영임에서 인민 속에서 일어나는 신유물론이라고 착각을 넘어서 망상에 빠진다. 이런 극우들의 논리적 사고가, 거울에 비친 자신들의 개돼지 모습을 보고 있는 중일 것이다. 푸르동이 도둑놈이라고 했지만, 현대에서는 얼마나 불평등을 조장하며 처먹는 개돼지 새끼들인가라고 거울효과로 볼 수도 있다.
이에 비해 인민은 현실에서 살고 있고, 과거의 역사적 과정에서 가지치기를 학습하고 익히면서 현실에서 여러 갈래로 실재성을 실현하고자 노력한다. 회오리처럼 끊임없는 가지치기들에서 서로 연결과 관련을 짓는 것은 과거의 공통적 노력의 경향과 미래의 예측의 방향에서 이어진다. 이런 갈래들과 방향들의 현실적 상태에서는 과거의 계열들과 표면의 선들과 종합에는 보르헤스가 말하던 미로와 같은 길이기도 하다.
19세기와 20세기 전반에서 혁명가들은 미로의 연결을 위한 조직화로서 결사체를 만들어서 시작하였다. 21세기에는 사회소통망(SNS)에서, 달리 사유하기, 달리 말하기, 달리 행하기를 통해서 미로를 찾기보다 만들어가기 즉 생성해 나가기가 더 쉬울 것이다. 생명체에서 유전을 통해서 각 생명체들의 자신의 모습과 위상을 과거의 갈래들을 갖고 있듯이, 표면의 미로에서는 과거의 갈래들이 내재해 있다. 그래서 학습하고 익히는 것이다. 역사에서 인격들은 인민 속에서 인민이 겪었던 상태와 사건들을 재인식하면서 자신의 모습, 인성자유주의(리베르떼르)와 인도주의(위마니떼르)를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재인식의 역사적 긴 과정에서, 소요, 혼란, 폭동, 반란이란 용어를 입에 올리며 빨갱이라고 말하는 자들의 일반화와 개념화를 인민은 우리말과 우리글로 이제 깊이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저항(레지스탕스), 항거, 봉기, 항쟁, 혁명은 인민의 덕목이고, 인민의 실천의 문제해소의 방식은 과거의 재인식과 더불어 미래의 공동체의 삶을 새로이 그릴 수 있다.
헤겔이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보았을 때, 그리고 역사 철학을 개념화하였을 때, 인류의 역사에서, 과거에는 왕과 같은 몇 몇이 자유를 누리던 시대가 있었고, 그리도 귀족들과 성직자들과 같은 소수자들이 자유를 노리던 시절을 지나서, 국가 사회의 시민들(부르주아)이 자유를 누리는 시대라고 하였다. 헤겔이 세상을 떠난 현실의 세계에서, 산업사회 시대 이후로 맑스는 노동자(프롤레타리아)가 자유를 누리는 시대를 설파했다. 이 누구나 어디에서 인간이 자유의 평등을 누리는 것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더라도, 과거의 과정들이 이런 방향과 경향을 가지고 전미래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시간이 걸리고, 노력이 필요하다. (3:38, 56QKE)
첫댓글
이오니아의 자연과 휠레를 이어받은,
소크라테스에서 실천과 사유는 시대의 저항과 혁명을 지니고 있었다.
새로운 체제의 성립을 욕망했던 소크라테스의 노력은
참주파에서도 민주파에서도 눈의 가시였다.
문제제기 이항 사이에서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고
달리 사유하기, 달리 실천하기, 달리 혁명하였다는 이유로,
참주파는 민주파를 추동하여 소크라테스를 고발했고,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소신을 발언하면서 독배를 마신다.
소크라테스의 민주와 자유의 실천과 사유는
퀴니코스와 스토아학파로 이어진다.
오래 물밑으로 흐르다가 알렉산드리아 학파에서 플로티노스
스콜라철학에서 불쑥 불쑥 올라오나니
신앙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아벨라르(Pierre Abélard, 1079-1142),
스콜라철학에서 니콜라 도트레꾸르(Nicolas d'Autrécourt, 1300경-1350)도 있다.
프랑스 대혁명에서 로베스삐에르와 혁명파들 사이에
루소의 자연에 관해, 스토아학파의 우주에 관해 사유했다.
라베송의 스토아학파 논문을 거쳐서,
벩송은 스토아학파를 깊이 있게 강의하였고,
당시 꼴레쥬 드 프랑스에서 그 강의를 들었던 에밀 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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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어(Émile Bréhier, 1876-1952)의 제자인 골드슈미트(Victor Goldschmidt, 1914-1981)가
스토아학파의 시간에 대한 박사논문을 썼다.
이 논문을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가 “의미의 논리”에서 여러 번 설명한다.
이 설명은 벩송의 꼴레쥬 드 프랑스 강의를 듣지 않았던 벩송의 사유인데도
들뢰즈에서 다시 솟아난 것과 같다.
서쪽의 끝에서도 또한 동쪽의 끝에서도
달리 사는 터전에서, 달리 생각하는 사유와 실천에서,
박홍규와 윤구병이 솟아났다니...
벩송이 깊이에서 솟아나는 사유는 간헐적으로 그리고 폭발적으로 일어난다고 했다.
저항은 지속되었고, 봉기와 항쟁을 간헐적이며, 혁명은 폭발적이리라. (56QK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