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에서 소 한마리를 겨우내 먹이려면 몇 통의 건초가 필요했지만
양을 먹이는 데는 그렇게 많은 건초가 필요하지 않았다.
따라서 늦 여름이면 노르웨이 정착자들은 건초를 베어 말리고 저장하느라 바빴다.
건초량이 겨우내 먹일 수 있는 가축의 수를 결정하기 때문에 건초량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어야 했다.
필요한 건초량은 겨울의 길이에 따라 달라졌다.
사실 그린란드에서 겨울의 길이를 미리 예측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따라서 매년 9월이면 노르웨이 정착자들은
수확한 건초량과 겨울의 길이에 대한 경험적 추측을 을 근거로 고뇌에 찬 결정을 내려야 했다.
몇 마리나 도살할 것인가? 9월에 너무 많이 도살하면 다음 해 5월에 건초가 남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소중한 가축을 쓸데없이 많이 죽였다는 자책감에 사로잡힐 수 있었다.
하지만 가축을 아깝게 생각하여 9월에 너무 조금 죽이면
5월이 되기 전에 건초가 바닥나서 모든 가축이 긂어 죽을 수도 있었다.
건초는 세 종류의 밭에서 생산되었다. 가장 생산성이 뛰어난 밭은 농가 옆에,
가축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치고 거름을 주어 지력을 높였으며 , 건초 생산에만 이용된 텃밭(infield)이었다.
가르다르 목장을 비롯해 몇몇 목장의 옛터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텃밭들로 끌어들인 수로들과 댐들의 흔적이 보인다.
관개 시설을 갖추어 생산력을 높이려 했던 것이다.
건초는 변두리 밭(outfield)에서도 생산되었다. 변두리밭은 농가에서 약간 멀리 떨어진 곳으로 울타리 밖에 있었다.
끝으로 노르웨이 정착자들은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에서 방목장(saeter)이라는 목축업까지 빌려왔다.
겨울에는 가축을 사육하기에 너무 춥더라도 여름에는건초를 생산하며 가축을 방목할 수 있는 고지대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복잡한 방목장에는 집과 축사까지 갖추어져 있어 목장을 축소해 놓은곳이나 마찬가지였다.
농부들은 여름에는 이곳에서 지내면서 가축을 돌보았고 겨울이 되면 본래의 집으로 돌아갔다.
봄이 되면 눈이 녹고 저지대부터 풀이 돋기 시작해 고지대로 올라간다.
그러나 새풀은 영양가가 높고 소화를 방해하는 섬유질이 적다
따라서 방목장은 노르웨이 정착자들이 산에서 잠시 돋는 풀들까지도 놓치지 않고
그린란드의 제한된 자원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고육지책이었고,
여름이 깊어갈수록 가축을 끌고 조금씩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서
새 풀을 가축에게 먹이려는 계산된 목축법이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크리스티안 켈러는 나와 함께 그린란드를 방문하기 전에
"그린란드에서의 삶은 유용하게 쓸 푸른 조각을 찾아내는 삶이다"라고 말했다.
그린란드에서 목축이 가능한 유일한 지역인 두 피오르드에서도
목축을 하기에 최적인 곳은 소규모이거나 거의 없다는 뜻이었다.
나는 배를 타고 , 때로는 걸어서 그린란드의 피오르드를 둘러보았다.
목축이 무엇인지 모르는 도시 촌놈이엇지만 , 나는 노르웨이 정착자들이
어떤 기준에서 목장으로 만들 땅을 택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린란드에 정착한 노르웨이 사람들은 나보다 훨등히 뛰어난 농부였지만 나는 과거를 알고 있었다.
그들이 어떤 땅을 목장으로 만들려고 했고, 어떤 땅에서 성공했고 어떤 땅에서 실패했는지 알고 있었다.
노르웨이 정착자들이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보였지만
실제로는 목장으로 합당하지 않는 땅을 골라내는 데 수년, 아니 수세대가 걸렸을 것이다.
도시 사람,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짐작에 따르면
그린란드에 정착한 노르웨이 사람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기준에서 목장을 결정했을 것이다.
1, 평평하거나 경사가 완만한 저지대(해발 210미터 이하)로 생산성이 높은 텃밭을 가꿀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해야 했다.
저지대가 그런대로 다뜻하고, 눈이 내리지 않는 날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또한 가파른 경사지에서는 풀의 생장력이 상대적으로 더딘 편이다.
노르에이 정착자들이 그린란드에서 조성한목장 중에서 가르다르 성당 목장이 가장 넓었고,
그 다음으로 바트나베르피 구역에 조성된 목장들이 있었다.
2. 넓은 저지대의 텃밭이 부족한 경우에는 약간 더 높은 곳(해발 390미터 이하)에 변두리 밭은 조성해서
건초를 추가로 생산할 수 있어야 했다. 축사의 면적과 칸의 수에서 추정된 가축의 수를 감안할 때
대부분의 목장이 저지대에서 생산한 건초만으로는 가축을을 배불리 먹일 수 없었다.
브라타홀리드에 있는 붉은 털 에리크의 목장이 고지대에 널찍한 변두리 밭을 조성한 대표적인 예이다.
3. 북반구에서는 남향이 더 많은 햇살을 받는다.
따라서 겨울 눈이 더 일찍 부터 녹기 시작하고, 건초를 생산할 수 있는 기간도 더 길다.
일조량도 당연히 더 많다. 실제로 그린라드 노르웨이령에서 최적의 목장들,
즉 가르다르, 브라타홀리드, 발세이, 산네스는 모두 남향이었다.
4. 물 공급도 중요했다. 건초 생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천연 수로를 이용하거나,
인공수로를 만들어서라도 목초지에 물을 공급할 수 있어야 했다.
5. 빙하로 이루어진 계곡에, 혹은 그 부근에 목장을 조성하는 것은 가난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계곡에서 불어노는 차갑고 강한 바람이 초목의 생장을 방해하고, 토양 침식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빙하의 바람은 나르사크와 세르밀리크 피오르드에 가난을 불러왔고,
코로크밸리의 입구와 바트나베르피 구역의 고지대에서 목장을 포기하게 만든 저주였다.
6. 배가 드나들면서 필수품을 실어 나를 수 있는 나루터가 피오르드에 조성된 목장이면 더할 나위가 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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