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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순정리론 제80권
8. 변정품 ④
2.3. 8승처(勝處)
1) 총설
해탈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다음으로 승처(勝處, abhibhāyatana)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승처에는 여덟 종류가 있으니
두 가지는 첫 번째 해탈과 같고
다음의 두 가지는 두 번째 해탈과 같으며
뒤의 네 가지는 세 번째 해탈과 같다.
勝處有八種 二如初解脫
次二如第二 後四如第三
논하여 말하겠다.
승처(勝處)에는 여덟 가지가 있다.47)
내적으로 색상(色想)이 있어 외적인 색의 적은 부분[少]을 관찰하는 것으로서, 좋은 것[好]이든 혹은 나쁜 것[惡]이든 이러한 온갖 색에 대해 수승하게 알고[勝知] 수승하게 관찰[勝見]하여 이와 같은 [수승한 지견(知見)의] 상(想)을 갖는 것, 이를 일컬어 첫 번째 승처라고 한다.48)
내적으로 색상이 있어 외적인 색의 많은 부분[多]을 관찰하는 것으로서……(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이를 일컬어 두 번째 승처라고 한다.49)
내적으로 색상이 없으면서 외적인 색의 적은 부분을 관찰하는 것으로서……(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이를 일컬어 세 번째 승처라고 한다.50)
내적으로 색상이 없으면서 외적인 색의 많은 부분을 관찰하는 것으로서……(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이를 일컬어 네 번째 승처라고 한다.51)
내적으로 색상이 없으면서 외적인 색으로서 파란 것[靑]과 파란 현색[靑顯]과 파랗게 나타난 것[靑現]과 파란 빛[靑光]을 관찰하는 것으로, 비유컨대 오막가(烏莫迦, utpala) 꽃(靑蓮花)이나 혹은 바라날사(婆羅痆斯, Bārāṇasi:카시국의 수도로 비단으로 유명함)에서 짙게 물 드린 파란 옷과 같은 이러한 온갖 색에 대해 수승하게 알고[勝知] 수승하게 관찰[勝見]하여 이와 같은 [수승한 지견의] 상을 갖는 것, 이를 일컬어 다섯 번째 승처라고 한다.
내적으로 색상이 없으면서 외적인 색으로서 노란 것[黃]과 노란 현색[黃顯]과 노랗게 나타난 색[黃現]과 노란빛[黃光]을 관찰하는 것으로, 비유컨대 갈니가(羯尼迦, karṇikāra) 꽃이나, 혹은 바라날사에서 짙게 물 드린 노란 옷과 같은……(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이를 일컬어 여섯 번째 승처라고 한다.
내적으로 색상이 없으면서 외적인 색으로서 붉은 것[赤]과 붉은 현색[赤顯]과 붉게 나타난 것[赤現]과 붉은 빛[赤光]을 관찰하는 것으로, 비유컨대 반두시박가(槃豆時縛迦, Bandhu jīvakā, 정오에 붉은 꽃을 피워 다음날 아침 해 뜰 때 지는 나무의 이름)의 꽃이나 혹은 바라날사에서 짙게 물 드린 붉은 옷과 같은……(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이를 일컬어 바로 일곱 번째 승처라고 한다.
내적으로 색상이 없으면서 외적인 색으로서 흰 것[白]과 흰 현색[白顯]과 희게 나타난 것[白現]과 흰빛[白光]을 관찰하는 것으로, 비유컨대 오사사성(烏沙斯星, Uśanas tāraka, 太白金星으로 한역됨)이나 혹은 바라날사의 지극히 선명한 흰옷과 같은……(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이를 일컬어 바로 여덟 번째 승처라고 한다.52)
능히 경계대상을 제압하고 조복하기 때문에 ‘승처’라고 이름하였다. 이를테면 비록 소연이 된 일체의 색경(色境)에 청정함과 빛남과 아름다움[華美]과 미묘함이 모두 갖추어져 있을지라도 선근의 힘이 능히 다 압도하여 가려[映蔽] 버리니, 비유하자면 하인이 비록 제 아무리 진귀한 의복을 입었을지라도 주인에게 압도되어 가려지는 것과 같다.
혹은 이러한 처(處, 외적인 온갖 색처)에서 [마음의] 전변(轉變)이 자재하여, 이에 따라 [더 이상] 번뇌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승처’라고 이름한 것으로, [색]처(色處)에 대해 수승하기[勝] 때문에 ‘승처’라는 명칭으로 설정하였다.
혹은 이러한 선근을 바로 ‘처(處)’라고 일컬은 것으로, ‘처’가 능히 수승하기 때문에(다시 말해 ‘수승하게 알고 수승하게 관찰하기 때문에’) ‘승처’라는 명칭으로 설정한 것이다.
2) 자성과 소의지
[앞의 네 승처에서] ‘적은 부분[少]’이란 소연이나 혹은 자재(自在)함이 적은 것을 말하며, 이와 반대되는 것을 ‘많은 부분[多]’이라고 하였으며, ‘좋고 나쁜 색[好惡色]’이라는 말은 저열하고 수승한 색을 나타낸다.
그런데 어떤 이는 “좋은 색에 대해서는 능히 탐(貪)을 일으키지 않으며, 나쁜 색에 대해 진(瞋)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승[처]’라고 이름하였다”고 설하였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승처의 본질[體]은 마땅히 무탐(無貪)과 무진(無瞋)이라고 해야 한다. 따라서 여기에는 별도의 다른 뜻이 있다. [이는] 말하자면 좋은 색이든 나쁜 색이든 그 모두를 부정(不淨)의 행상으로 관찰하는 것이니, 나쁜 색을 [부정의 행상으로] 관찰하듯이 좋은 색에 대해서도 역시 그러해야 하는 것이다.
[좋은 색이든 나쁜 색이든] 그 모두를 부정[의 행상]으로 취하는 마음이 [이미] 자재하게 일어났는데, 어찌 수고스럽게 다시금 나쁜 색을 부정한 것으로 관찰하는 것인가?
일찍이 [나쁜 색에 대해서도] 청정한 것이라고 관찰하여 온갖 번뇌를 일으켰으니, 일찍이 전도된 생각[覺]으로써 청정한 것이라고 관찰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옛날 [일찍이 일으켰던] 탐을 대치하기 위해 참답게 관찰해야 하는 것으로, 그래서 [다시금] 나쁜 색에 대해서도 역시 부정한 것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러한 경계대상을 관찰하는 것을 일컬어 ‘수승하게 안다[勝知]’고 하였고,53) 그 후 관찰이 성취될 때를 일컬어 ‘수승하게 관찰[勝見]한다’고 하였으며, 능히 스스로 이해[了達]하여 “나는 이에 대한 수승한 앎과 수승한 견해를 갖는다”고 하는 것을 ‘이와 같은 [수승한 지견의] 상(想)을 갖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네 가지 승처의 자성과 소의지 등은 순서대로 앞에서 [논설한] 처음 두 가지 해탈과 같다. 즉 처음 두 가지 승처는 바로 첫 번째 해탈의 결과이며, 다음 두 가지 승처는 바로 두 번째 해탈의 결과이니, 그것(즉 제1ㆍ제2해탈)을 자량으로 삼아 능히 여기에 들기 때문이다.54)
[앞의 네 승처에서 좋은 색이든 나쁜 색이든] 그 모두를 부정한 것이라고 관찰하여 능히 제압 조복[制伏]하였으면, 이제 다시 이러한 경계대상을 청정한 것이라고 관찰하여 제압 조복해야 한다. 즉 [뒤의 네 승처는] 내적으로 색상이 없는 이전의 [두 승처에] 편승하여 파란 색 등의 네 가지 현색의 상(相)을 개별적으로 관찰[別觀]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한 ‘파란 것[靑]’이라 함은 꽃 등이 파란 것을 말하고, ‘파란 현색[靑顯]’이라 함은 옷 등이 파란 것을 말하며, ‘파랗게 나타난 것[靑現]’과 ‘파란 빛[靑光]’이라 함은 앞의 두 종류에 존재하는 파란 색의 행상[靑相]을 나타낸다.55) [이는] 다른 색이 섞이지 않은 순수하고 짙은 것[純深]으로, 파란 것의 주변 색[靑邊]과 같은 것이 아니라 [‘파란 것’과 ‘파란 현색’에서] 발생된 파란 영상[靑影]과 공작의 꼬리나 금강석의 파란 [빛]이다. 즉 ‘파란 빛’이라는 말은 파란 [옷]으로서 곱고 깨끗한 것[鮮潔]을 나타내는 것이지 해처럼 밖으로 광명을 발하는 것이 아니다.
혹은 파란 색으로서 현저한 것을 나타내기 위해 꽃이나 옷의 비유를 든 것으로, 가행위 중에서 그것을 방편[門]으로 취하여 승처의 관(觀)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나타낸 것이지 [승처의] 관 중에서 이와 유사한 색을 관찰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막가 꽃(청련화)은 꽃 가운데 파란 [색]이 수승한 것이기에 [꽃과] 함께 생겨난 파란 [색(즉 파란 꽃)] 중에서 이를 방편으로 언급한 것이며, 바라날사(바라나시)는 염색으로 뛰어나기에(유명하기에) [옷과] 화합한 파란 [색(즉 파란 옷)] 중에서 이를 방편으로 언급한 것이다. [물론] 가행위 중에서 단지 이 두 가지만을 취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슬이나 보배는 모든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만약 공한처(空閑處)에 머무는 경우라면 무엇보다 먼저 꽃(오막가 꽃)의 [행]상을 취하지만, 만약 취락(聚落) 중에 머무는 경우라면 먼저 옷의 파란 색(바라나시에서 염색된 파란 옷)을 취한다.
파란 [색]에 대한 [승처의] 관이 이미 그러한 것이라면, 노란 [색] 등의 경우도 역시 그러하다고 해야 한다. 즉 밤이라면 무엇보다 먼저 흰 별을 취하지만, 낮이라면 [흰]옷을 취하니--그 밖의 색(노란 색과 붉은 색)도 모두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 맑게 갠 날의 [밤]하늘에는 오사사(烏沙斯) 별이 온갖 흰색 중에서 가장 수승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네 가지 승처의 자성과 소의지 등은 앞에서 [논설한] 세 번째 해탈(淨解脫)과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하니, 정해탈은 이러한 네 가지 승처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그것을 자량으로 삼아 능히 여기에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의 세 가지 해탈에서는 다만 온갖 색을 능히 총체적으로 부정상(不淨相)과 청정상(淸淨相)으로 취할 뿐이지만,56) 지금의 8승처에서는 온갖 색을 적고 많은 부분이나 파란 색 등의 [각기] 다른 상으로 분별한다. 따라서 앞의 [세] 해탈이 다만 색에 대한 욕탐이나 부정상(不淨想)을 버리고 등지려는 것이라면, 지금의 8승처는 능히 소연을 분석(分析)하여 제압 조복하고, 이에 따라 마음이 일어나게 하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에 따라 세 번째 해탈은 [온갖 색을] 총체적으로 청정상으로 취하기 때문에 하나의 명칭으로 설정하였지만, 8승처 중의 뒤의 네 가지 승처는 [그것을 청ㆍ황ㆍ적ㆍ백으로] 차별하여 취하기 때문에 네 종류로 나누게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만약 정해탈(淨解脫) 역시 [온갖 색을] 차별하여 반연하지만, 청정한 성질을 취하여 다 함께 하나의 명칭(즉 정해탈)으로 설정하였다고 한다면, 뒤의 네 가지 승처 역시 마땅히 하나의 명칭으로 설정해야 하니, 양자를 차별할 만한 인연을 획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2.4. 10변처(遍處)
승처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다음으로 변처(遍處, kṛtsnāyatana)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변처에는 열 가지 종류가 있으니
여덟 가지는 정해탈과 같으며
뒤의 두 가지는 청정한 무색정으로
자지의 4온을 반연하여 [경계로 삼는다].
遍處有十種 八如淨解脫
後二淨無色 緣自地四蘊
논하여 말하겠다.
변처(遍處)에는 열 가지가 있으니, 이를테면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ㆍ청(靑)ㆍ황(黃)ㆍ적(赤)ㆍ백(白)과 아울러 공(空)과 식(識)의 두 가지 무변처(無邊處)를 두루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경에서는 이러한 처(處)에 대해 다 “한 가지로 생각[一想]하여 상하와 좌우[傍]가 무이(無二)이며 무량(無量)하다”고 말하고 있다. 즉 일체의 ‘처’에 대해 사이[間]도 없고 틈[隙]도 없이 두루 사유하기 때문에 ‘변처’라고 이름한 것으로, [생각이] ‘처(處)’에 두루[遍] 하기 때문에 ‘변처’라는 명칭으로 설정하였다. 혹은 이러한 선근을 바로 ‘처’라고 일컬은 것으로, [‘처’의] 행상이 두루 하기 때문에 ‘변처’라는 명칭으로 설정하였다.
즉 여기서 ‘지(地)’ 등은 소연을 나타내며, 앞서 설한 ‘두루[遍]’라는 말은 ‘행상이 [두루 한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행상은 비록 [청정상(淸淨相)으로] 동등하다고 할지라도 소연에 차별이 있기 때문에 변처를 열 가지 종류로 나누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경에서 설한 ‘한 가지’라는 말은 이러한 등지(等至)가 한 종류의 경계대상의 상(相)을 사유하여 현전시킨다는 사실을 나타내며, ‘생각’이라는 말은 바로 승해작의를 나타내니,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마땅히 ‘한 가지로 안다[一知]’고 말했어야 하는 것이다.57) 또한 ‘상하와 좌우’라는 말은 마음[意]의 유전(流轉)을 나타내고, ‘무이’라고 하는 말은 [마음의 유전에] 사이나 틈이 없음을 나타내며, ‘무량’이라는 말은 승해의 무한함[無邊]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 같은 뛰어난 등지를 갈고 닦은 힘으로 말미암아 관행자의 마음은 [자유]자재로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변처가] 능히 소연에 대해 두루 관찰하는 것이라면, 어떠한 까닭에서 오로지 열 가지만이 ‘변처’라는 명칭을 얻게 된 것인가?
[일체 ‘처’에] 두루 하는 행상은 이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으로, 오로지 제4정려와 공무변처ㆍ식무변처에만 무변의 행상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10변처 가운데] 앞의 여덟 가지 변처는 정해탈(세 번째 해탈)과 마찬가지로 자성은 모두 다 무탐의 선근이며, 만약 그것에 수반되는 보조적인 법과 함께 하는 경우라면 모두 다 5온을 본질로 한다. 즉 뒤의 네 가지 승처는 [앞의 여덟 가지 변처의] 가행으로 인생(引生)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뒤의 네 승처)과 함께 정해탈과 같다고 한 것이다.58) [앞의 여덟 가지 변처는] 또한 정해탈과 마찬가지로 제4정려에 의해 일어나며, 아울러 욕계 색처를 소연의 경계로 삼는다.
어떻게 지(地) 등을 역시 색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59)
지(地)와 지계(地界) 등에는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즉 현(顯)ㆍ형색(形色)을 ‘지(地, 즉 현실의 땅)’ 등이라고 말한 것으로, 이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논설한 바와 같다.60) 그래서 ‘지(地)’ 등을 변처라고 설하였을 뿐 지계(地界) 등을 변처라고는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앞의 여덟 가지 변처는 다만 색처를 반연할 뿐이다.
풍(風, 즉 현실의 바람)과 풍계(風界)에는 이미 어떠한 차별도 없다고 하였거늘,61) 어떻게 [‘풍’의 변처] 역시 색처를 반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러한 힐난은 올바른 이치가 아니니, 세간에서도 역시 [현색과 형색을 갖는 가견(可見)의 바람인] 모래바람[黑風]이나 회오리바람[團風] 등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에 따라 앞의 여덟 가지 변처가 색처를 반연한다는 사실은 이치상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뒤의 두 가지 변처는 순서대로 공(空)ㆍ식(識)의 두 가지 청정한 무색정을 그 자성으로 삼으며, 각기 자지의 네 온을 반연하여 경계대상으로 삼는다.
2.5. 해탈 등의 세 공덕의 획득과 소의신
이상과 같은 해탈 등의 세 갈래의 공덕(해탈ㆍ승처ㆍ변처)은 무엇에 의해 획득되며, 어떠한 몸에 의지하여 일어나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멸진정은 앞에서 분별한 바와 같으며
그 밖의 공덕은 두 가지 득과 모두 통하는데
무색정의 공덕은 3계신(身)에 의지하며
그 밖의 공덕은 오로지 인취에서만 일어난다.
滅定如先辯 餘皆通二得
無色依三界 餘唯人趣起
논하여 말하겠다.
여덟 번째 해탈(멸수상정해탈)은 앞에서 이미 분별한 바와 같으니, 이것은 바로 앞에서 [논설한] 멸진정이기 때문이다.62) 그 밖의 해탈 등(7해탈과 8승처와 10변처)은 모두 두 가지에 의해 획득된다. 즉 그것들은 이염과 가행에 의해 획득되니, 일찍이 수습하였던 이도 있고, 아직 수습하지 못한 자도 있기 때문이다.63)
그리고 앞의 여덟 가지 변처를 처음 수습할 때에는 모두 안식(眼識)을 그것의 가행으로 삼으며, 공무변처의 변처를 처음 수습할 때에도 역시 그러하니, 처음에는 반드시 공계(空界)의 색을 반연하기 때문이다.64) 그러나 그 후 승해의 힘에 의해 그것을 원만하게 성취할 때에는 자지의 네 온을 모두 소연의 경계로 삼는다. 또한 식무변처의 변처를 처음 수습할 때에는 다만 의식(意識)을 그것의 가행으로 삼을 뿐이니, 처음에는 반드시 식(識)을 소연의 경계로 삼기 때문인데, 그 후 승해력의 힘에 의해 그것을 원만하게 성취할 때에는 역시 자지의 네 온을 모두 소연의 경계로 삼는다.
네 가지 무색정의 해탈(즉 제4에서 제7의 해탈)과 두 가지 무색정의 변처(즉 공ㆍ식무변처의 변처)는 각기 3계의 몸 모두에 의지하여 일어난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처음 일어날 때에는 대개 하지의 몸에 의지하기에 자지(무색계)와 하지(색계)의 몸에 의지하여 [일어난] 것은 모두 뒤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로지 무소유처의 해탈만은 역시 또한 상지에 의지하여서도 일어날 수 있다.
[무색정의 네 해탈과 두 변처를 제외한] 그 밖의 공덕은 모두 다 욕계의 몸에 의지하여 일어난다. 그것은 오로지 인취(人趣) 가운데 북구로주를 제외한 세 주(洲)에서만 일어날 뿐으로, 그 밖의 세계는 혜(慧)의 힘이 저열하고 성교(聖敎)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무색정의 네 해탈과 두 변처를 제외한] 그 밖의 해탈 등은 욕탐을 대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 2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어떤 이는 설하기를 “[그 밖의 공덕은] 처음 일어날 때에만 오로지 인취에 의지할 뿐이니, 요컨대 그것은 성교의 힘[敎力]에 의해 인기되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즉 성교는 인취 중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천취 중에는 존재하지 않아 설령 거기에 현저한 즐거움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능히 처음으로 일으킬 수는 없다. 따라서 인취에서 처음으로 일으키고 물러나 욕계천(天)에 태어났을 때, 숙세(즉 인취)에서 익힌 힘에 의해 그 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어떠한 연유에서 제3정려에 [6]통과 [4]무량은 존재하는데, 해탈 등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해탈이 존재하지 않는 연유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모두 분별하였다.65) 해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승처도 역시 존재하지 않으니, 해탈을 방편[門]으로 삼아 승처에 들기 때문이며, 승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변처도 역시 존재하지 않으니, 승처를 방편으로 삼아 변처에 들기 때문이다.
또한 제3정려에서는 미묘한 즐거움[妙樂]에 탐착(耽著)하는데, 생사(生死) 중에서 이러한 즐거움은 수승하기 때문에 해탈 등의 세 가지 공덕을 능히 일으킬 수 없는 것으로, 이러한 세 가지 공덕은 모두 다 생사를 등지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6]통과 [4]무량 등은 즐거움에 수순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선정에 의지하여서도 역시 능히 닦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해탈 등의 세 갈래의 공덕(즉 8해탈ㆍ10승처ㆍ8변처)은, 만약 그 중의 한 가지를 획득하여도 그 모두를 획득하게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
[한 가지를 획득하면 그 모두를 획득하지만] 다 그러한 것은 아니다.
그 뜻은 어떠한가?
뒤의 공덕을 획득하였으면 필시 앞의 공덕도 획득하였을 것이지만, 앞의 공덕을 획득하였다고 해서 반드시 뒤의 공덕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즉 변처(遍處)를 획득한 자는 필시 세 가지 공덕을 모두 획득하였으며, 승처(勝處)를 획득한 자는 필시 해탈을 획득하였지만 변처는 결정적이지 않아 혹은 획득하기도 하고, 혹은 획득하지 않기도 한다. 그리고 만약 해탈(解脫)을 획득하였다면, 나머지 두 가지 공덕은 결정적이지 않으니, 변처에 들려면 승처를 방편으로 삼아야 하고, 해탈을 방편으로 삼아 승처에 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탈 등의 [세 공덕의] 차별은 어떠한가?
오로지 능히 버리고 등지는 것[棄背]을 일컬어 ‘해탈’이라고 하며, 이와 아울러 소연을 [분]석(分析)하여 [그렇게 하는] 것을 일컬어 ‘승처’라고 하며, 여기에 무변(無邊)의 [승]해를 더한 것을 ‘변처’라고 이름하였으니, 이 세 가지 선근은 점차적으로 닦아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여사(有餘師)는 설하기를 “이 세 가지 선근은 하ㆍ중ㆍ상품에 의한 차별로서, 이를테면 능히 소연을 버리고, 뛰어나게 조복시키며, 행상이 무변이라는 점에서 승열(勝劣)의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고 하였다.66)
또한 유여사는 “해탈은 오로지 원인이 될 뿐이고, 변처는 오로지 결과일 뿐이며, 승처는 두 가지 모두와 통하는 것이다”고 설하였다.
2.6. 선정을 일으키는 인연
여기서 마땅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니, 상 2계 중에는 [성교를] 설하는 자가 없다고 하였는데, 어떠한 인연에서 선정을 일으키게 되는 것인가?67)
게송으로 말하겠다.
2계(界)에서는 원인과 업에 의해
능히 무색정을 일으킬 수 있으며
색계에서 정려를 일으키는 것은
또한 법이력(法爾力)에 의해서이다.
二界由因業 能起無色定
色界起靜慮 亦由法爾力
논하여 말하겠다.
상 2계에 태어난 경우, 모두 세 가지의 인연에 의해 능히 색계와 무색계의 선정을 인기하여 낳게 된다.
첫째는 원인의 힘[因力]에 의해서이니, 이를테면 일찍이 가까이서 그리고 자주 닦았던 힘이 선정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68)
둘째는 업의 힘[業力]에 의해서이다. 이를테면 일찍이 상지의 생을 초래할 만한 순후수업(順後受業) 등을 지었을 경우, 그러한 업의 이숙이 장차 세력을 현전시킴으로써 [상지로] 나아가 능히 그 같은 선정을 일으키게 되니, 만약 하지의 번뇌를 떠나지 않았다면 필시 결정코 상지에 태어나는 일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법이력(法爾力), 즉 저절로 그렇게 되는 힘에 의해서이다. 이를테면 기세계(器世界)가 장차 허물어지려고 할 때, 하지의 유정은 저절로 능히 상지의 정려를 일으키는데,69) 이러한 단계에 존재하는 선법은 모두 저절로 그렇게 되는 힘에 의해 증성(增盛)되기 때문이다.
즉 온갖 유정으로서 상 2계 중에 태어난 자는 원인과 업의 힘에 의해서만 무색정을 일으키며, 법이력에 의해서는 일으키지 않는데, 무운천(無雲天, 제4정려의 제1천) 등은 삼재(三災)로 인해 허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70) 그렇지만 색계에 태어나 머물 때에는 앞의 두 가지 인연과 법이력에 의해 정려를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만약 욕계에 태어나 상지의 선정을 일으킬 때에는 이 밖에 성교의 힘[敎力]에 의해서도 각각의 선정을 일으키게 된다는 사실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성교의 힘에 의해 [상지의 선정을 일으키는] 자라 함은 인취의 세 주(洲)를 말하니, 하늘[天] 역시 성교를 듣는 일이 있지만, 미미하기 때문에 여기서 설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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