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
제철인 참외
수박과 참외가 요즘 제철이다. 과일은 제철의 것이 자연에 알맞게 자라 영양소가 풍부할 것이고 맛도 있고 가격도 싸다. 3월에는 10k 한 상자에 10만원이 훨씬 넘었으나 지금은 2만원 대이다.
어제 아파트에 참외를 싣고 오는 차에서 10k도 넘을성싶은 것을 만원에 샀다. 떼깔도 크고 괞찮은데 양이 엄청 많아 미안할 정도였다. 둘이 한 달 먹을 양이었다. 싸다고 많이 살 일이 아니다.
농산물은 비싸도 안되고 폭락해도 안된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되질 않아 정부 해당부서에서는 해마다 골머리가 아플 것 같다.
참외만 보면 생각나는 사람.
나는 참외만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나의 할머니이다. 어린 시절 우리집에서는 해마다 참외 농사를 지었다. 여름만 되면 할머니는 참외밭 원두막에 기거하셨다. 참외밭을 침입하는 짐승이나 몰래 참외 스리(훔침)하는 아이들을 내쫓기 위해서다. 하교하여 집에 오면 바로 참(간식)을 바구니에 담아 들고 꽤 먼 거리인 참외밭엘 걸어갔다. 동네 동쪽 끝에 있는 비석걸(비석이 있는 개울)을 지나 논뚝길로 가서 과수원 탱자나무 울타리를 지나고 배실이라는 동네어귀도 지나야 했다. 와룡산이 바로 뒤에 있었고 보통정도 크기의 배실못도 있었다.
할머니는 매 그 시간쯤에 원두막에서 볏집 원두막 덮개를 긴 작대기로 열어 놓고 내가 오는 길 쪽을 향해 바라보고 계셨다. 가장 빛깔 좋은 참외 한 개를 따서 옆에 두시고-
크고 빛깔좋은 참외를 먹을수 있었던 단 한사람
열식구가 되는 대 가족중에서 크고 빛깔 좋은 참외를 먹을 수 있었던 단 한사람- 나 뿐이었다. 할머니 자신은 물론 할아버지께서도 크고 빛깔 좋은 참외는 드시지 않으셨다. 내일 이른 아침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논물에 참외를 씻으셔서 주셨다. 뜻뜻하였지만 달콤한 참외- 나만 먹을 수 있었던 큰 참외- 식구들은 팔지 못하는 쪼그라든것이나 깨진 것, 모양이 없거나 심지어 들쥐가 파먹은 것도 도려내고 먹었다. 성하고 상품성있는 것은 다 내다 팔아야만 했다.
할머니가 나에게 아낌없이 잘생긴 참외를 준 것은 장손이자 손자는 나 하나뿐이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나만 귀여워 해 주셨고 나는 나만 챙겨주시는 할머니가 더욱 좋았다.
가난했던 농촌
당시의 참외는 현재의 박나무와 접붙이기한 골참외가 아니고 겉이 민드름한 조선참외였다. 늦게 골참외인 나이롱참외가 나와 인기가 있어서 대부분의 농가들이 그것으로 교체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선호도와 값차이가 많이 났었기 때문이다. 당시엔 참외가 농가의 유일한 현금수입원이었기 때문에 시장에 맞추치 않으면 안되었다. 쌀은 현금화 되는 시기가 길고 시세도 가늠하기 어려워 일손이 적은 농가도 참외농사를 지었다.
이른 새벽이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참외밭에 나와서 그 많은 참외를 따서 크기별로 선별하여 5km되는 논길을 이고 지고 가셔서 치도(차도)에서 참외 중상인들에게 내다 팔았고, 어머니는 값을 더 받은려고 20k가 넘는 참외를 머리에 이고 20리 떨어진 대구시내 반고개까지 걸어가서 소매로 팔고 오시곤 하셨다. 아침도 안 드시고 또 20리 길을 걸어 오시면 중참때가 되었다.
제삿날에만 만나는 나의 할머니-
할머니는 어디서 돈이 생겼는지 가끔씩 나에게 용돈을 주셨다. 아무도 몰래 아무 한테도 말하지 마라 하셨다. 통지표 성적도 묻지 않으셨고 그냥 귀여워 하시기만 하셨다. 잔치집에 갔다 오시면 주머니에서 봉지를 꺼내 먹을 것도 주셨다.
할머니는 아들 넷 딸 하나를 두셨다. 물려 받은 재산 하나 없이 알뜰하게 살림을 사셔서 100여호가 사는 동네에서 몇 번 째 되는 부자가 되었고 딸은 이름있는 가문에 출가하시고
아들셋은 서당과 신식학교를 나오게 하셨다.
할머니는 6.25때 행방불명(전사 미확인)된 아들 하나 때문에 평생을 한에 맺혀 살으셨다. 유달리 나만 사랑하셨던 할머니- 81세로 세상 떠나신지가 반백년이 지났지만 노란 참외를 볼 때마다 더욱 할머니 생각이 난다.
<끝>
2024. 7. 3
백 산 우 진 권 記
첫댓글 기쁠때나 시련에 처했을때 용기를 줄수있는 글귀는^이 또한 지나가리다^가 적절한 표현이라고 합니다.이또한지나갔고 지금세대는 이해못하는,우리세대는 겪은,겪은직한 한편의 단편소설입니다.잘보았습니다.
백 산 선생님 께서는 못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요
진짜로 존경 합니다 .
할매 생각...
할배 생각
이 글 읽으니 60년 전에 돌아 가신 할배한테서 천자문 배우던 초등 때 생각이 나네요.
장죽 대꼬바리로 재떨이 탕탕 치시며 한자를 가르쳐 주시던 할배와 할배 제사상에 담배를 붙여 놓으시다가
늙으막에 담배를 배우신 할매...
그 때가 그립고 살가운 아득한 옛날이 되었구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