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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 내부의 노동문제는 누가 말하나?- ‘노동착취는 문명화된 인신매매’라는 교황 메시지 되새겨야
편집자 주)
올해 3월부터 가톨릭프레스는 매월 특집 주제를 선정해 주제와 관련한 내용을 취재하고 분석하여 연재 보도 합니다. 특별보도팀 ‘저스티스(Justice)’는 가톨릭프레스만의 살아있는 언어로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될 것을 다짐했습니다. 세 번째 특집 주제는 [노동]입니다.
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계약서를 써주면서 일하자고 말하지만 정작 계약서는 ‘9월부터 6월까지만’ 일 하는 조건이며 연금과 건강보험은 들어주지도 않는다” (…) “‘일 할 수 없는 7,8월은 공기만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을 뜻하며, ‘9월이 되면 다시 일자리를 준다’는 의미다. 이런 방식으로 노동을 착취하는 이들은 거머리와 다름없고 노예가 된 노동자들의 피로 살아가는 것이다.
- 5월 19일, 프란치스코 교황 강론 중에서
한국 천주교는 1968년 급속한 산업화의 그늘에서 고통당하던 심도직물 노동자들의 손을 잡아주며 사회교리를 바탕으로 한 노동투쟁에 공식적인 첫 발을 내딛었고, 2016년 현재까지도 사회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유흥식 주교(대전교구장)는 ‘2016년 노동절 담화문’을 통해 “노동은 단순한 생계의 수단이나 생산의 도구로만 취급될 수 없으며 하느님 창조 질서 안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실현되는 고귀한 장으로 인식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신학적으로 설명하며 고용 보호 정책의 필요성과 산업 재해 방지대책 마련, 최저임금 인상 등을 호소했다.
또한 각 교구 노동사목위원회도 학술 심포지엄과 초청 강연, 연구 보고서 발표 등을 통해 노동에 대한 천주교의 각별한 관심을 드러냈다. 특히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는 ‘2016년 노동사목위원회 자료집’을 통해 한국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상황과 임금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뿐 아니라 교회 내 적정임금 문제를 살핌으로써 교회 내부를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신학적·학술적 성찰을 통해 노동의 의미를 살피고 노동에 대한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교회의 모습은 천주교 신자들에게 큰 자부심으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과연 교회는 세상을 향해 주장하고 가르치려는 바를 자기 스스로 교회 노동자들을 향해 실천하고 있을까?
이번 저스티스 특별보도팀은 세상의 노동문제를 지적하는 교회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그늘을 살펴보고자 한다. 교회가 신학적·학술적으로 노동의 의미를 분석하고 세상을 향해 호소하고 있는 것처럼 교회 내 노동자들에게 그것을 실천하고 있을까? 과연 교회 노동자들의 눈에 비친 고용주 가톨릭교회는 어떤 모습일까? 교회 노동자들의 목소리 없는 목소리를 들어보자.
교회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기에 앞서
제보자들은 교회 내부 노동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용기를 내어 제보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익명’으로 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동안 가톨릭프레스에 도착한 노동관련 제보들을 취합·선별해 제보자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교회 기관으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았고,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그 상처 속에서 남은 것은 무엇인지 물었다.
제보자들은 교회 내부 노동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용기를 내어 제보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익명’으로 해 줄 것을 당부했다. 현재 교회에서 일 하고 있는 노동자뿐 아니라, 구직중이거나 교회를 떠난 제보자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길 두려워했다.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 입장에서 교회의 잘못을 언론에 제보할 경우 손쉽게 부당해고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제보자는 ‘같이 일하기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해고를 당한 사례를 들며, 교회의 잘못을 발설할 경우 틀림없이 인사 보복이 이뤄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또한 제보자들은 ‘성당에 돈 벌려고 다녔다’, ‘돈을 받고 교회 비밀을 팔았다’, ‘사이비 종교를 믿는다’는 등의 소문으로 신앙생활을 그만둬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교회에서 일했던 경력 때문에 이직을 할 경우에도 다시 교회 안에서 구직활동을 할 가능성이 높은데, 교회에 이른바 ‘찍히게 되면’ 그것이 영영 힘들어질 것이라는 걱정도 했다.
보도팀은 제보자들이 받게 될 제2의 피해를 우려해 익명을 결정했다.
사례 1 : “하느님의 뜻 생각하라”
A씨는 1990년대 초부터 수도권의 지역 한 성당에서 10년 이상을 사무장으로 근무했지만 본당 주임신부가 바뀌고 나서 한 달 만에 갑작스런 해고통보를 받았다. 해고 사유는 ‘근무 태만과 지시사항 불이행, 본당 사무장에 적합하지 않은 언행’ 등이었다.
A씨는 “이유가 너무 억울해서 신부님을 찾아갔다. 그런데 신부님은 ‘하느님께서 형제님에게 더 큰 일을 마련해 놓으셨을 것’이라며 ‘지금 눈앞의 고통만 보지 말고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라’는 말을 했다. 그렇게 10년간 일했던 성당에서 쫒겨났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대신해 사무장으로 임명된 사람이 주임신부의 전 본당에서도 사무장으로 일했던 사람이라는 소식을 전해 듣고 허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에 A씨는 해고 사유가 부당하다며 노동부에 부당 해고구제 신청을 했고, 4개월 후 노동부는 해고사유 부당 판정을 내려 복직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A씨는 노동부 명령에도 불구하고 복직되지 못했고 월급도 받지 못했다. 주임신부는 ‘성당 사무장은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인데 어떻게 노동법을 들고 와서 따지느냐. 이것만 봐도 사무장 자질이 없다’며 노동부의 권고를 이행하지 않았다. 결국 A씨는 마음에 또 한 번의 상처를 입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나야만 했다.
그는 “최근 들어 본당 사무장을 자신의 지인으로 바꾸는 신부님들은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이런 잘못된 인사폭력이 발생하는 곳이 존재한다”며 “그러나 교구 인사규정집에 따르면 사무장이나 본당 직원의 임면은 모든 권한이 본당 사제에게 있고, 해고에 대한 기준도 느슨해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 사실상 신부님이 바뀔 때마다 고용불안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사례 2 : “교회 일, 세상 일 잘 구분해라”
B씨는 2006년부터 지방의 한 피정의집에서 월급 70만원에 주 6일 근무로 일했다. 그러나 2013년 피정의집이 법인으로 변경되면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게 됐고, 자신이 1년 계약직으로 매년 계약을 갱신해야 한다는 사실을 계약서를 통해서 알게 됐다.
B씨가 피정의집 원장신부에게 계약서 내용에 대해 묻자 원장신부는 ‘근로계약서는 형식적인 것일 뿐이니 신경 안 써도 된다. 일단 월급이 이전보다 20만원이나 오르니까 좋은 것 아니냐. 긍정적인 것도 많은데 부정적인 것만 보려고 하지마라’고 타일렀다.
계약직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B씨는 노동법 관련 내용을 살피게 됐고 피정의집 근무여건과 급여가 대한민국의 최저기준에도 못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2014년에 재계약을 하면서 근로기준법과 관련된 내용을 이야기하자, ‘피정의집 재정 상태가 어려워 조건을 맞춰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B씨는 “결국 2015년 재계약을 하면서 10만원이 올랐다. 그런데 신부님께서는 ‘교회일과 세상의 일을 잘 구분해야 한다’면서 향후 몇 년간은 임금 이야기를 안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며 “피정 강론을 하실 때는 약자에 대한 배려와 정의를 말씀하시면서도 정작 직원들을 배려하는 일에 인색하고 월급을 아까워하시는 모습을 보면 참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B씨는 현재 주 6일 이상 근무를 하면서 세전 100만원의 급여를 받고 있다.
사례 3 : “하느님 일에 쓰일 돈, 잘 써라”
수도권 외곽의 피정센터에서 일했던 C씨는 퇴직금과 관련해 교회와 분쟁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C씨는 피정센터 야외 청소와 시설물 관리·경비 등의 업무를 모두 도맡아 하면서 10년을 보냈지만, 교구 행사가 끝난 바로 다음날 해고를 통보받았다. 해고 이유는 ‘판단·결정·지시를 지도신부가 내려야 하는데 C씨는 나이가 많아 같이 일하기 부담스럽다’는 것이었다. 2011년 당시 C씨의 나이는 50세였다.
C씨는 “주교님도 오시는 교구행사를 준비하느라 몸살이 날 정도로 뛰어다녔는데 그 다음날 갑자기 해고를 통보하고 위로금 30만원을 받았다. 10년을 일을 했는데 30만원을 받고 다음날부터 나오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며 “신부님에게 퇴직금을 이야기하자 ‘계약서에 퇴직금을 안 받겠다는 항목에 서명하지 않았냐’라고 되물었다”고 말했다.
C씨의 상황을 전해들은 지인들은 시민·사회단체에 상황을 알렸고 결국 노동청에 부당해고 및 퇴직금 관련 소송이 진행됐다. C씨는 지도신부가 노동청의 권고를 무시하고 전화를 피하다가 결국 노동청 직원이 방문해 형사 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자 C씨에게 퇴직금을 줬다고 말했다.
지도신부는 어쩔 수 없이 C씨에게 퇴직금을 주면서도 “하느님의 일에 쓰일 돈이었으니까 의미 있는 곳에 잘 사용해라”고 말했다.
사례 4 : “교회, 노동자 함부로 여기는 태도 고쳐야”
수도권에 있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기숙사에서 일하고 있는 D씨는 비정규직 연장을 위해 2년간 근무 후 6개월간 퇴사 처리를 당하고 다시 다른 부서에서 일하기를 반복했다. D씨는 2008년부터 신학교에서 신학생들의 세탁과 수선을 도우며 일명 ‘빨래방 자매님’으로 근무했다.
D씨는 “어느 날 집으로 직장 건강보험이 지역 건강보험으로 바뀌었다는 서류가 왔다. 그래서 학교에 알아보니 ‘계약직은 2년까지만 일할 수 있어서 퇴사처리 했다’는 말을 들었다”며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계약서를 확인 안한 내 잘못이 크지만, 그래도 미리 알려줄 수도 있는 문제를 이렇게 처리하는 것에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D씨는 학교 관계자로부터 ‘자매님이 평판도 좋고 일도 잘하시는 것 같아서 신학교 일을 계속 하실 수 있다. 대신에 절차상 문제가 있어서 6개월 이후에 다시 일할 수 있으며, 일도 기존에 하던 일 말고 다른 일을 하셔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D씨는 “나중에 신부님이 되실 분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이 이 직업의 자부심이었다. 그런데 젊은 시절 직장생활을 해도 이런 식으로 대하는 곳은 없었다”며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교회까지 사람을 소모품처럼 여기는 것 같아서 많이 힘들었다. 사실 요즘도 가끔 일이 힘들 때는 그때 일이 떠오른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씨는 현재도 신학교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경험했던 계약직 직원의 안타까운 현실을 기도함으로써 하느님께 봉헌했고, 이를 통해 상처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D씨는 신학교에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것이 신앙의 기쁨이고 보람이라면서도, 교회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동자들을 함부로 여기는 태도는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노동사목위원회, “기관 성직자의 사목적 배려 요청”
교구 내 기관에서 자체적으로 채용하고 있는 경우 최저임금에 위반되는지, 그들이 생활하기에 적정한 보상이 되고 있는 지 여부를 확인하고 개선해야 할 책임은 일차적으로 해당 기관의 책임자인 성직자들에게 있다...
2016년 노동절을 맞아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이하 노사위)는 ‘한국의 최저임금 문제’ 자료집을 내면서 ‘교회 내 적정임금 문제’를 짚었다. 노사위는 사회교리의 원리를 통해 노동의 가치를 살피며 교회가 고용주의 입장에서 노동자들에게 지켜야 할 올바른 모습에 대해 언급했다.
노사위는 본당 내 근로자에 대해 “본당 직원들의 임금 수준을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의 노동자들과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면서도 “일반 사회에서 정하는 최저임금 기준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본당의 재정적 상황을 고려하면서도 직원 및 그 가족의 정상적 생활이 유지될 수 있도록 적정한 수준의 임금이 보장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교구 내 근로자들에 대해서는 “교구청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는 직원의 경우, 체계적인 보수규정과 각종 인사규정 등의 적용을 직접 받는다”면서도 “그러나 교구청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직원의 경우 채용과정이나 임금 수준의 결정이 너무 다양하고 복잡해 일원적으로 관리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 “교구 내 기관에서 자체적으로 채용하고 있는 경우 최저임금에 위반되는지, 그들이 생활하기에 적정한 보상이 되고 있는 지 여부를 확인하고 개선해야 할 책임은 일차적으로 해당 기관의 책임자인 성직자들에게 있다”며 성직자들에게 직원의 임금 수준과 근로조건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사목적 배려를 요청했다.
노사위는 자료집을 통해 교회 기관이 신자유주의 사고방식에 젖어 종교 본연의 자세를 망각하고 이익창출에 목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교회가 교회 내 노동자들의 임금에 대해 일반 기업들이 추구하는 ‘효율성’보다는 ‘복음적 정신’을 따라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성직자가 교회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을 대하는 모습을 통해 교회가 사회에 본보기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며, 본당과 기관 단체장을 맡은 사제와 수도자들이 최저임금 문제를 알고 실질적으로 실천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천주교 구인구직란, 비정규직 비율 80% 넘어
교구는 ‘교구청에 등록되지 않은 직원’들이 일하는 곳으로 사제를 파견해, 그 기관의 책임자로 재정·행정·인사 등의 전권을 부여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벗어나기 힘들다.
교회가 스스로의 노동문제를 살피기 시작했다는 뜻 깊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자료집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당부’와 ‘요청’으로 마무리한다. 최저임금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교회 문헌으로 노동의 의미를 파악한 후 본당과 기관의 책임자인 성직자들에게 복음적 노동의 중요성을 호소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교회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사례는 모두 성직자가 책임자인 곳에서 발생한 일이다. 또한 기사의 사례에서 배제된 제보 내용 중에는 성직자가 갑작스럽게 일방적으로 해고를 통보하거나 인격적인 모멸감을 주는 발언을 해 신심을 잃었다는 사연도 있어, 호소에 그친 실천의 노력이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노사위는, 교구청 직속 직원들은 ‘교구청 취업규칙’에 따라 임금과 인사규정의 적용을 받지만 교구청에 등록되지 않은 기관의 직원은 다양하고 복잡해 관리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교구는 ‘교구청에 등록되지 않은 직원’들이 일하는 곳으로 사제를 파견해, 그 기관의 책임자로 재정·행정·인사 등의 전권을 부여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벗어나기 힘들다.
성직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와 교구 성령쇄신 행사가 치러지는 피정센터, 본당 사무장 등 교회 곳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교구청에 등록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사실상 교회 안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 대부분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우와 급여를 받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의 이러한 태도는 본당이라는 하청업체를 두고, 낙하산 인사를 통해 지배력을 강화하면서도, 정작 노동자들의 권리와 복지에 대해서는 책임을 외면하는 세상의 기업과 매우 유사하다.
그렇다면 실제로 현재 한국 천주교가 구인 공지를 통해 선발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얼마나 될까? 정규직 이탈자 비율이 비정규직 이탈자보다 낮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교회 노동자를 찾는다는 구인공고는 천주교가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을 훨씬 선호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지난 2015년 동안 전국 15개 교구(군종교구 제외) 주보와 교구 홈페이지,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등에 게시된 구인공고 가운데 운영주체가 교구‧교구장 혹은 수도원이면서 정규직·비정규직을 표기한 구인공고를 확인한 결과 정규직 채용은 61(18.8%)건이었으며 계약직과 파트타임 등의 비정규직 채용은 263(81.2%)건이었다. 이중 정규직 전환이 가능한 경우는 9건(3%)에 불과했다.
그러나 정규직·비정규직 구인을 밝히지 않은 공고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격차는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직종에 대한 내용을 공고에 알리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 비정규직 채용이라고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정규직 채용의 경우 4대 보험 가입과 호봉에 따른 연봉 상승을 공개해 정규직 채용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추세를 감안했을 때 자세한 정보가 없는 구인공고일 경우 비정규직 채용일 가능성이 크다.
정규직 채용 직종에는 의사와 간호사, 교사, 교구청‧천주교중앙협의회 직원, 교구 운영기관 사무국장, 기자, 지자체로부터 운영위탁을 받은 공기관 직원 등이 있었고, 비정규직 직종에는 본당 사무장과 관리인,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교구 운영기관 보조 사무원 등이 있었다. 또한 정규직 채용일 경우에도 장애인복지 기관의 경우 최저임금 제한에서 제외된 경우가 있기 때문에 최저임금 미만의 보수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 천주교, ‘문명화된 인신매매’ 멈춰야
비정규직이란 일반적으로 사용자와 근로자가 한시적으로 근로관계를 맺는 고용형태로 계약직과 일용직,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등이 여기에 속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보다 상대적으로 법적·제도적 보호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최저임금에 가까운 낮은 급여, 지나친 업무 강도 등 열악한 대우를 받게 된다.
또한 계약기간이 정해져있어 고용이 불안정하며, 부당해고와 같이 노동권을 무시하는 고용환경에 노출되기 쉽고, 사회보험과 각종 기업복지에 있어서도 배제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비정규직 상태가 장기화 될 경우 사회보험제도에 가입하지 못해 노후빈곤을 초래할 수 있으며, 산업재해 등의 위험에 처했을 때 이를 보호하거나 보상할 근거가 없어, 경제적 빈곤화는 물론 사회로부터 소외 당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얼마 전 사람들의 노동을 착취해 노예로 전락시키는 이들은 ‘노예가 된 사람들의 피로 살아가는 것’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교황은 사람들의 노동을 착취해 부를 쌓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는 것이며, 전 세계에서 이런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건적 계약서를 써주며 구직자의 삶을 책임지지 않는 노동력 착취에 대해 ‘노동자들의 피로 살아가는 거머리’와 다름없다고 표현했으며, 나아가 성매매와 아동노동을 목적으로 하는 인신매매뿐 아니라, 휴가나 의료보험 없이 불법으로 일을 시키고 낮은 급료를 지급하는 것은 ‘문명화 된 인신매매’라고 비판했다.
교회가 노동자들에 대한 비정규직 남용을 방지하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사용자의 이익만을 고려한 열약한 노동환경이 지속될 것이다. 특히 교회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으로 계속 고용되면 빈곤의 늪을 벗어나기 힘들다. 교회는 교황이 지적하는 ‘거머리’의 경고를 살펴 스스로가 가난한 노동자들의 피로 살아가는 거머리가 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천주교, 사람에 대한 투자를 지독히 싫어하는 단체
노동자 인권을 보호하는 교회 단체가 있고 교회개혁을 부르짖는 단체도 있지만, 정작 교회 노동자들의 문제를 점검하거나 해결책을 마련코자 노력하지는 않았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재가 도래하면서 자본과 노동의 근로계약 관계는 자본에게 힘을 실어주는 구조가 됐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노동자들은 점차 착취당하는 구조가 되었고, 근로 여건은 갈수록 더 열악해졌다. 반면 사용자는 갈수록 자기의 부를 늘려 나갔다.
오늘날 천주교는 종교의 특수성으로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자각하지 못할 뿐 아니라 성직자 중심주의와 봉건적 구조, 하느님께 순명하라는 종교적 특성으로 국가가 정한 최소의 근로기준인 근로기준법조차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교회 노동자들은 고용불안과 비인간적인 대우, 과도한 근로시간과 열악한 임금을 받아왔지만, 성직자들 중 그 누구도 이러한 ‘집안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지 않았다.
땅을 사들이고 성전을 짓고 그 성전을 채울 값비싼 성물들을 마련하는 동안 교회는 노동자들에게 세상의 최저기준보다 못한 대우와 보상을 했다. 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만한 성당을 짓는 것도 모자라 성당 인근 도로까지 문화공간으로 재개발하며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지만, 수십 년간 교회에서 성직자들을 도와 사목에 보탬을 준 교회 노동자들에 대한 은혜는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
노동자 인권을 보호하는 교회 단체가 있고 교회개혁을 부르짖는 단체도 있지만, 정작 교회 노동자들의 문제를 점검하거나 해결책을 마련코자 노력하지는 않았다. 본당과 기관의 책임자인 성직자들에게 복음적 노동의 중요성을 호소하면서 정작 신학교 교육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나 노동법과 관련한 교육을 실시하는 일은 없었다. 교회 노동자들에 대해 적절한 대우나 보상을 마련하는 일은 그저 ‘호소’에 머무를 뿐, 이를 비판하거나 구조적인 개선책을 제시하는 일도 없었다.
교회가 자신의 필요에 의해 노동자와 자발적으로 근로관계를 맺었다면 이는 근로의 기준을 정한 세상의 법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근로기준법에 따른 인사규정과 급여 체계를 준수해야 한다. 하느님의 일이라는 미명하에 이뤄지는 근로기준법 위반과 노동력 착취에 대한 교황의 비유를 한국 천주교가 다시 성찰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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