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의 사이
이구한
너를 끌어안는다
몸을 틀어 밖을 내다보지만
어느 것 하나 건져 올리지 못한다
너에게 무엇을 원하거나
판단하지 않기로 한다
꽃이 피면 꽃이 피는 대로
꽃이 지면 꽃이 지는 대로
그저 바라보기로 한다
항시 차滿있으면서도
끝내 너에게 닿을 수 없어
너를 붙잡던 그때 그 불꽃
기억 너머로 사라져 가는 사이
홀로 사는 노인네처럼
간간이 밖을
내다보는 거울 하나 있다
-김동수, 「거울」, 『그림자 산책』, (미당문학사, 2016)
시인 김동수의 사유는 먼저 물리학에 기초한 자연주의에서 출발한다. 여기에서 자연주의는 문학사조에서 언급한 자연주의와는 다르다. 거시적인 시선으로 본 우주의 질서인 자연의 섭리를 존중한다. 시 ⌜낙화⌟는 그 점을 이렇게 서사하고 있다. “지는 꽃은 지는 꽃대로/ 피는 꽃은 피는 꽃대로/ 너와 나/ 이쯤의 거리에서/ 그저 두고 바라볼 일이로다/ 꽃은 져도/ 향香 남고 씨는 남아/ 꽃 피고 다시 열매 맺게 되나니”.
만상에 존재하는 식물뿐 아니라 세상사도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리라. 이러한 환경 속에서 나와 세계는 아무 관계도 없는 듯하지만 실은 무수한 연관 관계 속에 있는 존재이다. “누군가의 창 안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때가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저만치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누군가의 그림/ 그리고 그림자”(⌜그림자 산책⌟)라고 서사한다. ‘내가 누군가의 창 안을 바라본다’에서 나는 바라보는 주체이다. 또한 ‘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에서 그인 타자도 주체가 되는 이러한 상호 관계는 상호주체성을 인정하게 된다.
상호주체성에 대해 “보이지 않는 그들/ 어디에 가고// 오늘의 나만 여기에 가고 있는 것일까”(⌜흘러⌟)하고 술회하는데 이는 나와 그들 관계에 있어 이미 상호 역동성이 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우리는 저만치 서서 바라보는 누군가의 그림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와 보이지 않는 그들에 대한 관계에서 인간은 또한 거대한 우주의 질서 속에 하나의 그림자를 남기고 떠남도 알려준다. 다시 말해 우주에 존재했던 인간 개별적인 실상은 사라져도 그림자는 남는 것이다. 꽃은 져도 향香 남고 씨는 남아 피고 다시 열매 맺게 되는 이치로서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임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그림자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남긴 현상이며, 또한 떠난 사람이 남긴 향이며 씨인 것이다.
7연에서 “너를 붙잡던 그때 불꽃/ 기억 너머로 사라져가는 사이”의 이미지는 기능적인 면으로 보면 실제 대상의 재현이 아니다. 불꽃은 시각적이지만 기억에 살아있는 관념 속의 추상이다. 이러한 불꽃 이미지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을 표출한 정신적 이미지에 속하며, 거울은 비유 이미지에 속한다.
이러한 김동수 시인의 사유는 눈에 보이는 세계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서도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겨울을 지나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얼굴을 내민 여린 새싹들도/ 시방 저 무거운 허공을/ 밀어 올리고 있는 중이다”(⌜허공의 벽⌟) 하고 겨울을 지난 나뭇가지에서 새싹이 허공의 벽을 밀어 올리고 있는 것을 서술한다. 연약한 생명에서 새싹의 형태만 본 것이 아니라 새싹의 동력을 봄으로 단단한 허공의 벽을 발견한 것이다. 흐르는 시간의 변화 속에 허공의 벽을 밀어 올리는 강인한 생명력을 바라보는 것은 이지적인 눈이어야만 가능하다. 이지적인 눈으로서 시의 절정은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잠재적인 현재에까지 나아간다.
현재라는 시간은 이중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연대기적이고 현실적인 현재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의 과거에서 기인한 잠재적인 현재이다. 잠재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과 대립되지만 서로 상보적인 관계로서 서로의 필요에 의해 사유하게 된다. 시적 화자는 자신의 과거로 부터 비롯한 잠재적 현재를 거울을 통해 찾고자 한다. 하나의 현행적인 사실 뒤에는 거대한 잠재적인 세계가 있다. 눈은 기억과 기대를 토대로 지각을 확장한다. 보이는 것 이상을 본다. 예를 들며 구름을 통해서 가랑비가 내릴 것인지, 소나가가 내릴 것인지, 장마비가 내릴 것인지 열려진 가능성을 본다.
들뢰즈는 잠재적 이미지에 대해 무의식의 원리와 불확실성의 원리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강조한다. 예를 들면 첫 연 “너를 끌어 안는다”는 실재적인 욕구이긴 하지만 대상이 부재하므로 무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다섯째 연 “그저 바라보기로 한다”는 꽃이 필지, 꽃이 질지, 불확실성 원리와 미결정성 원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라캉의 거울은 주체가 거울을 통해 자신의 신체적 이미지를 바라보는 상상계의 거울인 반면 김동수의 거울은 잠재적인 현재를 찾기 위한 주체자 자신을 비유한 거울이다. 이때 거울은 현실태적 이미지를 반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잠재적 현재를 찾기 위한 프리즘 역할을 한다.
시 ⌜거울⌟에서 “꽃이 피면 꽃이 피는 대로/ 꽃이 지면 꽃이 지는 대로// 그저 바라보기로 한다” 시간은 흐르고, 자연도 변하고 대상도 변한다. 변하면 변하는 대로 그저 바라보고자 한다. 변하는 세월을 인정하면서, 너의 존재를 훼손하지 않는 자의 태도로 그냥 바라보고자 한다. 이때 그리움은 수동적인 것 같지만 아쉬움은 가슴에 남아 “몸을 틀어 밖을 내다보”는 능동적인 태도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너를 붙잡던 그때 그 불꽃/ 기억 너머로 사라져 가는 사이” 지나간 추억을 기억하려고 노력할 때 회상의 이미지는 자신이 직접적으로 시간을 보여주지 못한다. 회상은 단지 의식의 생산물로 나타나는 것이며 현실로 되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지금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때 나타나는 잠재적인 과거는 의식의 생산물이 아니다. 잠재적인 것은 오직 어떤 시간과 공간에서 현실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김동수 시인은 기다림에 대해 “기다림에는 내일이 없다// 어제의 그를 보내고/ 오늘의 나를 살아가는 일이다”(⌜부활⌟)하고 다짐을 한다. 끝내 너에게 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다림을 굳어 있던 부리와 발톱을 부숴서 남은 생을 살아가는 독수리에 비유하고 있다. 이렇게 다짐한 그이지만 “내 속에 아직도 맞서 있는/ 두 마음이여”(⌜그냥 바로 보자⌟) 하고 괴로움을 드러낸다. 추억의 설렘이 오래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그에게 사랑은 여백인지 모른다. 이 여백은 “너는 내 삶에 하나의 여백”(⌜때문에⌟)으로서 네가 있어도 없는 듯한, 네가 없어도 있는 듯한 그러한 여백이다. 네가 있어야 할 자리인데 비어 있기 때문이리라. 시 「거울」에서 시적 대상은 너이고 매개물은 거울이다.
현실적인 시간 안에서 잠재적인 현재를 발견하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간간이 밖을/ 내다보는 거울 하나 있다” 그때 그 불꽃의 잠재적인 과거가 현실화로 나타나는 실제를 확인하고자 한다. 이미지는 의미를 생산하기 위해 있다. 시적 화자는 그리운 자의 실상을 확인하고자 하는 거울로서 존재하고 있다.
들뢰즈는 ‘잠재적인 현재가 현실화되는 과정은 재현이 아니라 창조에 의해 되는 것’으로 파악했다. 시인에게 이것은 새로운 발견인 것이다. 따라서 현실적인 현재와 잠재적인 현재 사이에 거울은 있다. 밖을 내다보는 그는 온몸이 거울이다.
6연에서 그는 항시 잠재적인 과거로 차滿 있지만 너에게 닿을 수 없어 잠재적인 현재를 발견하지 못한 채 비어 있는 자로서의 있음이다.
마지막 연에서 밖을 보는 거울이 있다고 표현한다. 이는 거울로서 보여주는 현상적 자아가 있지만 텍스트 밖에서 현상적 자아를 바라보는 시적 자아가 있음을 시사해준다.
이구한 (본명 이광소) 1942년 전북 전주 출생, 1965년 문공부 신인예술상 시부문 당선, 2017년⟪미당문학⟫문학평론 당선. 시집으로 『약속의 땅, 서울』 『모래시계』 『개와 늑대의 시간』이 있음. 평론집으로 『착란 의 순간과 중첩된 시간의식』이 있음. 현) ⟪미당문학⟫ 편집주간